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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전신갑주 1 ㅣ 세계기독교고전 50
윌리엄 거널 지음, 원광연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9년 2월
평점 :

그리스도인들이라면 한번쯤 영적전쟁이라는 용어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불신자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단어로서 전쟁이면 전쟁이지 영적전쟁은 또 뭐야! 라고 생각할 법한 아리송한 단어. 봄의 길목에서 에베소서 6장 10절 이하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관한 성경 말씀을 토대로 쓰여진 17세기 영국 청교도의 진리를 고수했던 국교회 목사 '윌리엄 거널'의 그리스도인의 영적전쟁에 관한 불후의 고전을 만난다. 1, 2권으로 나뉘어진 책의 분량은 글자크기10포인트의 빼곡한 내용으로 채워진 각권 1000페이지, 도합 2000페이지가 넘는 어마무시한 대작이다. 책의 두께부터 기가 질리지만 저작의 그 진중한 무게감 또한 독자의 지성을 압도하기 충분하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던 내가 가진 영적전쟁의 개념들이 얼마나 실개천 수준의 얕은 지식이었는지를 깨닫는 순간은 단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서문에서부터 저자 거널은 성도와 사탄과의 전쟁에 대해 성도들에게 왜 우리가 이 싸움을 싸워야 하는 지와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목자의 마음을 가지고 개진해나감으로서 본서가 가진 그 깊이감을 기대하게 만든다.
영적전쟁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주의해야 할 사항이 신자들의 투쟁의 대상인 사탄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다. 사탄에 대해서 크게 두려워한 나머지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서는 영적전쟁에 대한 회피는 용사로서 부르심 받은 신자들의 정체성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반면 사탄을 너무나 하찮게 여기고, 무시함으로서 그의 공격에 대해 경시하는 태도 또한 사탄에게 있어서는 매우 반가운 신자들의 잘못된 모습 중 하나다. 눈에 보여지지 않는 영적 세계에 대한 인식과 사탄과 죄의 유혹에 대한 심각성을 동시에 균형감있게 이해하고 붙잡는 것만이 신자들에게 있어서 영적전쟁을 가장 올바르게 이해하는 모습일 것이다.
저자인 거널은 우선 이 영적전쟁을 수행하도록 부르심 받은 신자들에게 우리가 이 싸움을 혼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령관 되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믿음으로 싸워 나가는 것임을 주지하며 격려한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그 안에서 우리의 믿음을 발휘하는 것은 사탄과의 싸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많은 신자들이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자신있게 출정하지만 이내 원수의 불화살과 창칼에 의해 유혈이 낭자한 채 쓰러져 돌아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본서를 통해 우선적으로 신자는 그리스도를 갑주로서 입어야함을 강조하며 에베소서 6장 10절 이하에 등장하는 그리스도인의 전신갑주에 관한 설명을 시작한다. 동시에 그 갑주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신적 본질의 것이어야함을 강조한다. 즉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우리 인간의 지혜와 머릿속에서 나온 얇팍한 계산에 의해 지어진 옷을 입고 나가서는 결코 원수의 화전을 소멸시킬 수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리스도의 전신갑주를 취하기보다는 우리의 생각, 힘과 지혜, 경험을 의지하여 우리앞에 닥친 사탄과의 영적싸움을 수행하려고 몸부림치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또한 거널은 신자들에게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말의 의미를 해설하면서 이와 같이 말한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로서 대변되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그냥 가지고만 있어서는 안되고 실제로 그것을 입어야만 그 효력이 있음을 주지시킨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냥 거기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 은혜를 계속 우리의 실제적인 삶 속에서 활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매우 중요한 통찰을 이야기한다. 우리를 향해 칼을 빼들고 돌격해오는 적들이 가득한 전장에서 우리에게 검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예리한 검을 칼집에 넣고 멋진 장식품으로 허리에 차고만 다닌다면 이처럼 어리석은 군인이 어디있겠는가? 은혜, 전신갑주는 이와 같은 것이다. 계속적으로 전쟁에서 활용되어야 하고 적군을 향해 사용되어질 때만이 그 은혜는 유용한 것이며 전신갑주는 그 본래의 목적대로 쓰임을 받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예전에 알고 있었던 이 사탄과의 전쟁,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씨름' 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그 어원적 의미에 대해 듣고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이번 기회에 거널의 본서를 통해서 다시 한번 이 씨름의 의미를 확인하고, 되새기게 된 기회가 너무나 감사했다. 영적싸움의 본질을 거널은 이 '씨름' 이라는 단어 하나로 명확하게 드러낸다. 얼마 전 읽은 책 <리비우스 로마사 2>는 100여년간 계속된 로마와 주변 도시국가들의 전쟁 장면을 리얼하게 묘사한다. 격렬한 싸움이 벌어져서 양군이 피와 살점이 튀는 처절한 전투를 벌이지만 이윽고 힘의 균형이 무너지며 승리와 패배가 나뉘는 불변의 공식이 존재한다. 전투가 끝난 후 패잔병들은 승자들에게 무자비하게 도륙되고, 승자들은 패자들의 무기와 갑옷, 각종 장신구들을 전리품으로 취하는 사후의 약탈 작업을 해나간다. 이렇듯 일반적인 전쟁과 전투는 시작과 끝이 명확하다는 공통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에베소서 6장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이땅에서 신자의 영적씨름은 천국에 갈 때가지 결코 쉼이 없는 치열한 싸움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즉 이 씨름을 이해할 때 한국인들의 정서 속에는 설이나 추석 명절 TV에서 많이 보여주는 민속씨름의 개념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말하는 이 씨름은 고대 근동과 그리스, 로마 시대의 씨름인 지금의 올림픽에서 볼 수 있는 쫄쫄이 타이즈를 입고 펼치는 그레코로만형 레슬링을 의미한다. 올림픽 레슬링 경기를 관전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레슬링은 양 선수가 서로의 손을 부여잡고 상대방을 쓰러뜨리기 위해 쉼없이 움직이며 공격과 수비를 반복한다. 쉽사리 결판이 나지 않기에 선수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계속적으로 몸을 부대끼고 서로를 밀어내며 쓰러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렇게 잠간의 방심이 곧 패배로 이어지는 레슬링과 같이 신자와 사탄과의 영적전쟁은 이와 같은 씨름을 의미하며 이것은 죄와 사탄과의 쉼이 없는 연속성을 가진다는 의미를 거널은 본서를 통해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신자들이 이러한 강력한 대적들과의 싸움에서 사용하도록 부여받은 하나님의 전신갑주 하나하나를 들어 설명하며 각 무기들의 특징과 개념들을 에베소서 6장 말씀을 기반으로 매우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2권에 등장하는 무기 중 하나님의 말씀의 검에 대한 내용은 참으로 생각할 부분이 많았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6가지의 무기와 무장들 가운데 유일한 공격무기인 성령의 검, 말씀은 가장 중요한 무기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검을 '좌우에 날이 선 검'으로 묘사한다. 나는 본서를 통해 원수를 베어 쓰러뜨리는 말씀의 검이 가진 그 놀라운 파워에 대해 읽으며 오래 전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 <글래디에이터>가 떠올랐다. 로마시대 원형 경기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검투사들의 경기 장면들이 끔찍하게 묘사되었는데 영화 중 검투사들이 들고 나오는 검의 모양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당시 로마군단 각개 보병들의 주력 무기 중 하나인 짧고 날카로운 검은 좌우에 날이 모두 서있는 양날검이었는데 이 양날감이 가진 파워와 전투 상황에서의 유용성에 대해 이 또한 한국적 정서 속에 살아가는 한국인들은 조선시대 고유의 편날검을 떠올리기에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로마군단 경보병들은 적과 조우하여 전투가 시작됨과 동시에 근접거리에서 각자 가지고 있는 투창을 적을 향해 힘껏 집어던진 후 빠른 걸음으로 적의 방진을 향해 양날검을 빼어들고 돌격한다. 적의 진영 깊숙이 파고 든 경보병들은 가차없이 적군을 찌르고 베어내기 시작하는데 이때 이 근접 백병전에서 로마군 경보병들이 가진 이 양날검의 파워가 그 진가를 발휘한다. 편날검은 적을 한번 휘두르며 베어내면 칼을 쥔 손의 모양을 바꿔야지만 2차 베어내기가 가능하지만 양날검은 한번 내려침으로서 적군에게 1차로 상해를 가하고 손의 모양을 바꿀 필요도 없이 곧이어 내려친 검을 반대의 날로 올려치기를 함으로서 또 다른 적군을 살상할 수 있는 매우 강력하면서도 실효성있는 무기였다. 혹자는 로마군단이 그 오랜 시간 유럽의 패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를 바로 이 로마군단 경보병의 양날검을 꼽기도 한다.
아무튼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써 내려간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검은 아마도 자신을 지키는 감옥의 로마병사들의 무기를 보고 묘사했을 가능성이 큼을 짐작할 때 이 말씀의 양날검은 원수를 공격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그 무한한 파워와 효율성을 지닌 무기 중 하나라는 사실임에 틀림없다. 거널은 이 말씀의 검이 가진 효용을 설명하며 박해자, 이단, 부패와 정욕, 안팎의 환난들이 이 말씀의 검에 의해서 무너짐을 이야기하고 동시에 이 검의 사용법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 그리스도인의 전신갑주를 날마다 갈고 닦으며 녹슬지 않도록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거널은 기도를 이야기한다. 오래 전 군생활을 할 때 개인 병기를 꺼내서 총기를 분해하고 기름칠을 하며 깨끗히 청소하는 병기수입 시간을 갖곤 했다. 전시를 대비하여 군인들은 이렇게 자신의 개인 병기를 전투가 발발했을 때 최상의 기능을 발휘하도록 기름칠하고 닦고 조이고 하는 등의 대비태세를 갖추는 일을 한다. 거널은 신자들 또한 이와 같음을 말한다. 아무리 탁월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공급받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군사된 신자들이 평안할 때에 그 무기들을 갈고 닦지 않는다면 그 무기들은 얼마 못가서 녹슬고 좀이 먹어 실제 사탄과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을 때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할 것이다. 기도는 바로 이와 같음을 말한다. 쉬지말고 기도함으로서 우리가 받은 전신갑주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해야하는 책임과 의무가 신자들에게 주어졌다.
숨이 넘어갈 정도의 막대한 분량의 책을 읽으며 나 또한 그 동안 알고 있었던 영적전쟁의 피상적인 사실들과 잘못 알고 있었던 지식들이 조금은 제 자리를 찾아가는 듯한 기분이다. 워낙 내용이 방대하기에 일독으로는 내용 전체를 이해하고 소화하기는 어렵다. 재독을 하면 더할나위 없이 좋지만 서가에 들여놓고 그리스도인의 영적전쟁에 관한 내용에 대해서 알고 싶을 때 수시로 꺼내어 관련 본문을 찾아 읽는다면 지식적으로나 경건의 진작을 위해서 매우 큰 도움이 될 말한 위대한 저작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영적전쟁에 대해서 너무나 많은 오해함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한 오해들이 교회와 선교단체 안에서도 공공연한 모습으로 드러나며 영적전쟁이라는 명분하에 타종교의 앞마당에 가서 정상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행을 벌이는 무례하고 몰상식한 행위들이 있지 않았는가? 끓어오르는 영적 감정과 정서 속에서 영적전쟁을 앞뒤 안가리고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면 되는 일종의 샤머니즘적 행위로 오해하는 경박함과 무식함을 끊어버릴 때가 되었다. 차가운 이성과 날카롭고 정확한 기독교 지성, 뜨겁고 따뜻한 목자의 마음을 가진 경건함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권위인 성경에 근거하여 풀어가는 균형잡힌 영적전쟁과 그리스도인의 전신갑주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본서는 모든 신자들이 읽고 그들의 서가에 꽂아두어야할 최고의 기독교 고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