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의 일기 세계기독교고전 3
존 웨슬리 지음, 김영운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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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한 그룹의 개신교 목회자들이 생전에 존 웨슬리 목사가 설교하던 영국의 모 교회를 방문했다. 목회자들 중 한분이 일행을 안내하는 현지 가이드에게 물었다. "존 웨슬리 목사님 생전 그의 성공적인 목회와 복음 사역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현지 가이드가 답했다. "목사님! 그 비결을 알고 싶으십니까? 그럼 알려드리겠습니다. 자! 강단으로 올라오십시요! 그리고 존 웨슬리 목사님처럼 강대에 무릎을 꿇으십시요!" 라고 말했고, 질문을 던진 한국인 목사님은 현지 가이드가 시키는 대로 따라했다. 존 웨슬리가 평소에 무릎을 꿇었던 동일한 장소에 동일한 모습으로 무릎을 꿇은 한국인 목사님에게 현지 가이드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잘 하셨습니다. 자! 이제는 우십시요!"

이 짧막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개신교 교단 중 감리교의 창시자인 18세기 영국의 위대한 복음전도자이며 목회자인 '존 웨슬리' 의 그 구령의 열정 중 한 토막을 엿볼 수 있다. 그의 기도의 모습까지는 따라할 수 있지만 잃어버린 수 많은 영혼들에 대한 그 단장의 고통과 함께 흘리는 눈물의 기도는 결코 쉽게 모방할 수 없었다는 일화는 그가 얼마나 복음과 영혼에 대한 사랑, 하나님을 향한 깊은 경외함을 가진 복음 전도자였는지를 일깨워준다.

본서는 이렇게 1703년 18세기 초에 태어나 1791년 세기말까지 살면서 거의 18세기 전체를 복음 전파 하나만을 일생일대 삶의 목표로 여기며 살아내었던 위대한 영적 거인의 발자취가 기록된 저작이다. 존 웨슬리 본인의 일기를 후에 편집자인 '퍼시 파커'가 축약하여 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존 웨슬리의 일생을 가장 집약적으로 알려주고 있기에 현대의 신자들에게 있어서 감리교를 처음 시작한 존 웨슬리의 일대기를 이보다 더 상세하게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은 드물 것이다.

1735년 조지아 선교사로서의 행보부터 시작되는 그의 일기는 그가 숨을 거두기 직전 해인 1790년까지의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옥스퍼드 대학 시절 존 웨슬리는 '신성 클럽(Holy Club)' 을 조직하여 찬송가 작사가로도 잘 알려져 있는 자신의 동생 찰스 웨슬리와 자신 못지 않은 위대한 영적 거인 조지 휫필드 등과 같은 경건한 믿음의 친구들과 함께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하며 어려운 이웃을 구제하는 등의 신앙운동을 통해서 젊은 시절부터 이미 복음 사역자의 초석을 놓기 시작했다. 이후 웨슬리는 동생 찰스 웨슬리와 함께 미국 조지아로 가는 배에 오르는데 그 배에는 한무리의 독일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타고 있었다. 원만할 것만 같았던 그들의 뱃길은 이윽고 배를 한번에 산산조각 내버릴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폭풍을 만나게 되고 배에 탄 많은 승객들은 죽음의 공포 앞에 두려워 떨기 시작한다. 하지만 웨슬리는 이러한 순간에 믿기지 않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이제 곧 배를 삼킬 듯 달려드는 폭풍우 속에서 한치의 요동함도 없이 조용히 시편을 낭독하는 한무리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믿기지 않는 장면에 대해 웨슬리는 그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1736년 1월 25일 주일 (중략) 예배가 시작되면서 시편이 낭송되고 있는데 파도가 덮쳐서 큰 돛대가 산산 조각이 나고 배를 뒤덮어 갑판과 갑판 사이로 쏟아져 내렸다. 마치 큰 바다 깊은물이 우리를 다 삼켜 버릴 것 같았다. 영국 사람 사이에서는 귀를 찢을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독일 사람들은 조용히 계속하여 시편을 낭송하였다. 나는 후에 그들 중 한 사람에게 물었다. "당신은 두렵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그는 "아니오,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렇지만 당신네의 부인들과 어린이들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부드럽게 대답하였다. "아니오, 우리네 부인들과 어린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일기에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개신교 선교 역사 속에서 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들이 바로 독일 경건주의의 대표적 아이콘인 모라비안 교도들이라고 소개되고 있고, 이때 이들의 이러한 죽음을 초월한 깊은 경건함은 이후 존 웨슬리가 평생토록 복음 사역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매우 큰 영감과 더불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전한다.

본서는 일기 형식으로 기록되었기에 내용이 매우 스피드하게 전개된다. 대부분 존 웨슬리가 영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이야기가 시간과 장소를 따라가며 기록되어지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독자는 교통수단이나 통신수단도 변변치 않았던 지금으로부터 300여년 전의 그 위대한 복음 사역의 한 현장을 함께 동행하며 직관하는 듯한 현장성을 실감나게 맛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연평균 8000마일을 말을 타고 다니면서 연 1000회가 넘는 설교를 했다. 교구 목회자가 아닌 순회 복음 전도자였기에 그의 대부분의 설교 장소는 야외였으며 그렇기에 어느 곳이든 그가 발을 딛고 서는 곳은 그의 교회였고, 지나가다 멈춰서 그의 설교를 듣게 되는 모든 이들은 그의 회중들이었다.

그가 영국 국교회의 배경속에 있었지만 감리교라는 새로운 교단의 시작은 분명 당시 시대와 종교적 배경 속에서 쉽사리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일이었기에 존 웨슬리의 복음 사역은 환영을 받기보다는 감리교를 이단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비난과 천대 심지어는 집회를 방해하는 폭력배와 부랑자들로부터의 갖은 폭력과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만드는 칼부림과 같은 고난과 핍박의 시간들이 더 많았음을 본서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웨슬리 그가 자주 애용했던 주 교통수단인 말에서 떨어지는 일은 다반사였고, 말을 타고 가다가 수렁과 물에 빠지는 일과 타고 가던 마차가 뒤집어지고, 배가 파선될 것 같은 폭풍우를 만나는 등의 자연적인 위협들 또한 존 웨슬리의 복음 사역에 있어서 크나큰 위험 요소로 빈번하게 상존했다. 더군다나 가정적으로는 남편의 서류들과 편지들을 몰래 훔쳐 내용을 변개하여 적수들과 신문사에 넘겨주어 남편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웨슬리가 전도 여행을 가면 질투와 의심에 사로잡혀 100마일 씩 말을 달려 남편을 쫓아가고, 남편에게 난폭하게 손찌검을 하며 남편의 머리털을 한줌씩 잡아 뽑는 등의 악행을 일삼았던 3대 악처 중 하나인 아내를 두었다는 사실은 위대한 복음 전도자의 삶에 있어서 매우 아이러니컬한 사실이면서 동시에 그의 지난한 인생의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해준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8:35,38~39)

나는 존 웨슬리의 이러한 고난과 핍박의 상황 속에서도 오직 잃어버린 영혼과 하나님을 향한 그 끊을 수 없는 사랑과 열정을 목도하며 사도 바울의 위와 같은 고백을 떠올린다. 위험천만한 삶의 정황들과 자연의 위협, 수 많은 대적자들의 비난과 방해, 무지한 백성들과 폭력배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칼 앞에서도 결코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자신이 끊어지지 않을 것임을 굳게 믿고 신뢰한 한명의 위대한 영적 거인의 삶을 통해 잃어버려졌던 수 많은 영혼들이 지옥으로부터 영생을 얻게 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이 감격의 장면들을 본서를 통해 직접 확인해보라!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는데 있어서 웨슬리에게는 이러한 모든 장애들은 그저 한낱 작은 고민거리도 되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불굴의 의지와 복음과 구령의 열정을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그의 마음 속에는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불타는 듯한 갈급함만이 있을 뿐이었고, 그것은 '온 세상이 나의 교구다' 라는 그의 외침 속에 아주 잘 녹아있다.

88세의 일기로 그가 그토록 사모했던 하나님의 품에 안겨 영원한 안식을 누릴 때까지 결코 진정한 쉼이 없었던 이 위대한 전도자의 삶을 바라보며 나는 오늘 또 다시 겸손히 나의 영혼의 옷깃을 여민다. 한번 왔다가는 인생을 누구는 이렇게 영혼의 주인되신 분을 위해 자신의 삶을 아낌없이 불사르는 삶을 살다갔는데 또 다른 누구는 오늘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고민하며 연약한 믿음의 한계성을 습관처럼 내밷고 살아가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나는 개인적으로 존 웨슬리가 시작한 감리교의 근간을 이루는 알미니안 신학에는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리에 대한 견해가 조금은 다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임을 알기에 존 웨슬리의 일기를 통해 다시 한번 그의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영혼에 대한 불붙는 듯한 열정에 진심어린 박수와 함께 존경의 고개를 숙인다. 거인의 발자취! 배우고 싶고, 따르고 싶어 눈물이 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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