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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우스 로마사 2 - 끝나지 않는 전쟁 ㅣ 리비우스 로마사 2
티투스 리비우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3월
평점 :

역사서가 가지는 가장 중요한 문헌적 가치 가운데 하나는 바로 그 역사책을 기록한 저자가 얼마나 그 역사적 사건들과 가까운 시대에 살았느냐 하는 현장성의 유무이다. 마치 고조선의 역사를 2019년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누군가가 기술한다고 생각할 때 내용이 아무리 잘 기록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당시 사건들에 대해서 너무나 오랜 시간이 흘러 시간적 간극이 큰 역사서는 역사책이라기보다는 역사소설로 전락할 우려가 있기에 한권의 역사책을 선별할 때 우리는 저자가 태어난 시대를 염두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적지 않은 로마의 역사를 다룬 책들이 출판되었지만 오늘 소개하는 본서는 단연코 그 역사적 현장성에 있어서만큼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로마 역사의 교과서적 저작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왜냐하면 이 책의 저자인 '티투스 리비우스' 그 자신이 이미 그 로마 역사의 한가운데서 태어나 살다간 사람이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없는 명확한 증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사랑한 책, 하버드대 고전 추천 도서 등 셀 수 없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본서를 만난 것은 작년 이맘 때이다. 현대지성을 통해 총 4권으로 기획되어 출간되는 그 첫번째 책을 받아들고 순식간에 읽었던 기억이 있다. 전편의 마지막 덮개를 덮으며 그 후속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책이 세상에 몇권이나 되겠냐만서도 나의 손에 들려진 본서가 바로 그렇게 후속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몇 안되는 책 중의 한권이라는 사실에 행복해하며 2권의 출간을 관심있게 기다렸다. 1년여의 시간이 흐르며 차츰 기억에서 잊혀져 갈 무렵 2권의 출간 소식은 나의 마음안에 마치 가뭄에 단비를 맞이하는 농부의 심정 그 자체로 다가왔다.
1권에서 저자는 로마라는 도시국가가 세워지게 된 배경부터 왕정이 세워지고, 이후 공화정으로 정치체제가 바뀌게 된 이야기들, 1권의 마지막에서는 갈리아인들에 의해 그 찬란했던 로마가 무자비하게 짓밟히는 비극과 함께 카밀루스라는 영웅에 의해 로마가 수복되는 이야기를 끝으로 1권을 마무리한다. 이어 2권은 끝나지 않는 전쟁이라는 부제에 어울리게 BC389년부터 BC293년까지 대략 100여년의 시간동안 진행되어 왔던 공화정 로마와 로마를 둘러싼 주변 도시국가들과의 치열하고 처참한 크고 작은 전쟁과 전투의 기록들로 가득하다.
이 시기는 대부분 동일한 패턴으로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감을 볼 수 있다. 전쟁이 없는 시기의 로마는 내부적으로 귀족과 평민들이 고리대금과 토지 문제 같은 경제적 이슈로 인해 갈등하다가 외부의 적들에 의한 침략이 이루어지면 원로원은 군대를 일으켜서 적들과 싸우기 위해 지금의 군 총사령관에 해당하는 독재관을 임명하고, 임명된 독재관은 자신과 함께 군대를 이끌 부사령관급의 사마관을 지명한다. 그리고 이들은 징집된 로마군단을 이끌고 외부의 적을 맞아 전투를 벌이고, 승리한 후 약탈을 통해 전리품을 획득하여 원로원의 허락 하에 개선 군대로서 로마 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복귀한다. 이러한 역사 패턴의 반복이 본서의 전면에 흐른다. 내부의 갈등은 외부의 위기를 통해 극복한다는 중국 병법서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 고대 로마의 역사 속에서 여실히 증명된다는 점은 독자들이 눈여겨볼 만한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인상깊게 읽었던 부분은 책의 제 9권 <카우디움 협곡에서의 대참사> 이다. BC321년 로마군은 삼니움군과의 전투를 위해서 카우디움이라는 지형적으로 매우 불리한 협곡을 통과하는 무리수를 선택한다. 삼니움군의 매복이 기다리는 협곡에서 독안에 든 쥐와 같은 처지가 되어버린 로마군은 진퇴양난에 빠지게 되고, 이윽고 전투가 개시되면 제 아무리 용맹스러운 로마 군단이라 할지라도 삼니움군에 의해서 전멸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삼니움군의 사령관 폰티우스는 백전노장인 자신의 아버지 헤레니우스에게 신이 내린 듯한 이 기회를 어떻게 이용해야 할 지에 대해서 조언을 구했을 때 이 노병은 로마군을 절대 공격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놓아주든가 아니면 한명도 남기지 말고, 전부 도륙하라는 극과극의 처방을 내놓는다. 이러한 아버지의 이해할 수 없는 정반대의 조언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보낸 폰티우스는 로마군을 무사히 보내주는 대신 로마군 모두가 무장해제를 한 후 반라의 몸으로 걸쳐놓은 막대기 아래로 허리를 굽혀 지나가야 하는 명예를 먹고 사는 군인들에게 있어서는 죽음보다도 더 끔찍한 치욕의 행위를 강요한다. 이런 말할 수 없는 수모와 수치스러운 치욕을 견디며 목숨을 구걸한 로마군은 숨만 붙어 있을 뿐 죽은 것과 다름이 없는 듯한 마치 좀비의 모습을 한 채 로마로 복귀한다.
이후 카우디움 협곡에서의 굴욕의 책임이 당시 군대를 이끈 사령관이었던 포스투미우스 자신에게 있음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신병을 삼니움에게 넘겨줌으로서 로마는 삼니움과의 평화보장에는 책임이 없음을 주지시키고, 삼니움과 전면전을 벌이도록 억지 명분을 만드는 포스투미우스의 계략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포스투미우스와 로마의 얼토당토한 계략에 대해 삼니움의 사령관 폰티우스는 일언지하 거절한다. 너희가 그렇게 평화보장을 없던 것으로 하려면 너희 군대가 모두 항복전처럼 카우디움 협곡으로 돌아와서 독안에 든 쥐가 되는 상황을 똑같이 재연해놓아야지만 평화보장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가막힌 답변을 내놓으며 치욕스러움에 한창 독이오른 로마의 예봉을 꺽는다. 하지만 로마는 삼니움의 수락여부와는 상관없이 억지스러움으로 평화 보장의 이행을 완료했다고 생각하고, 이제 자신들의 명예에 먹칠을 한 삼니움군에 대해서 말할 수 없는 잔인한 복수전을 시작한다. 내용에 따르면 불명예와 치욕을 씻기 위한 불타는 듯한 적개심과 복수심으로 로마군은 피에 굶주린 미친듯한 모습으로 삼니움 진영을 향해 돌격했고, 눈에 보이는 모든 생명체, 남녀노소 심지어는 가축들까지 무자비하게 학살하였는데 만약 지휘관이 제지하지 않았다면 모든 생명체가 하나도 남김없이 도살되었을 법한 피비린내 진동하는 복수전을 전개했다고 한다.
이 본문을 읽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사가 떠올라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된다. 로마군을 털끝하나 건드리지말고 평안히 보내주는 은혜를 베품으로서 로마를 영원한 우방으로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로마의 주력 군단을 완전히 궤멸시킴으로서 로마군을 향후 수십년간 회생 불능으로 만들어버림으로서 일시적이나마 평화를 누릴 것인가? 선택해야 했던 폰티우스는 아버지의 조언을 우숩게 여기고, 로마군에게 치욕스런 항복과 함께 병력을 그대로 보존토록 만든 이도 저도 아닌 최악의 결정을 내림으로서 그물에 걸린 사자의 코털을 뽑는 어리석음을 보여주었다. 예전에 읽었던 <인간은 어리석은 판단을 멈추지 않는다>라는 책이 떠오른다. 인류 역사는 인간의 어리석은 판단에 의해서 만들어져왔다는 인간의 우둔함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이 넘쳐났던 책이었는데 리비우스 로마사를 통해 그 책의 내용을 검증받게 된다.
인간사가 '모 아니면 도'라는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초등학생들도 아는 사실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가끔은 '모 아니면 도' 의 수학 공식과 같은 선택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인간은 그러한 결정을 해야하는 선택의 순간에서 이도 저도 아닌 마치 폰티우스와 같은 회색빛깔 선택을 통해서 일을 그르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오죽하면 결정장애인들을 위해서 '짬짜면' 이라는 요상한 메뉴까지 등장했을까?
또한 자신들이 받아들이고 감내하기로 결정한 굴욕적 평화보장을 깨고 삼니움을 전멸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신병을 삼니움에게 넘기라는 참 얄팍한 상술같은 계획을 계책이라고 들고 나온 집정관 포스투미우스의 모습이 참으로 이채롭다. 굴욕의 책임을 지고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겠다는 희생정신에는 고개가 숙여지지만 한편으로는 참 찌질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약속을 하고 약속을 밥 먹듯이 깨지만 또 그 약속과 신의를 깨는 데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음을 비굴하게 표명하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군상의 추한 모습들이 묘하게 오버랩된다.
삼니움군의 사령관 폰티우스의 어리석음, 로마군 집정관 포스투미우스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는 불성실함이 지금을 살아가는 나에게 깊은 깨달음과 통찰로 다가온다. 그러면서 또한 책의 중후반부에 등장한 감찰관 아피우스의 이야기 또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18개월의 감찰관 임기가 끝난 후 동료 감찰관 플라우티우스는 법규대로 감찰관직을 사임한다. 그러나 다른 한명의 감찰관이었던 아피우스는 법정 시한으로 정해진 감찰관직을 내려놓지 않고 버티는 이례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감찰관의 임기가 예전에는 5년이었는데 최근에 18개월이라는 짧은 임기로 개정된 법에 대해 순응할 수 없었던 그만의 궤변을 가지고서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결과는 그 혼자 억지스럽게 단독 감찰관 업무를 계속 수행했다는 것으로 끝난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에 대한 그 말할 수 없는 미련은 달콤한 마쉬멜로처럼 끊을 수 없는 유혹인가보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고개를 숙일 수 있게 만드는 그 권력의 달콤함을 한번 맛본 사람들은 마치 마약과 같아서 쉽게 그 자리를 내려놓지 못한다고 하던데...국가나 기업이나 교회나 사회 시스템 전면에 퍼져있는 가진 자의 그 역겨운 권력에의 욕망, 고대 로마의 역사적 사실을 통해 그 추한 단면을 생생하게 엿본다.
역사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거울과 같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민낯을 본다. 우리보다 앞서 살다간 그들의 아름다움과 추함, 성공과 실패를 바라보며 우리는 그 이상의 성공을 꿈꾸고, 때로는 선조들의 잘못을 재탕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반면교사 삼는다. <리비우스 로마사 2>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로마라는 당대 최강의 국가가 그들을 둘러 싼 여타의 도시국가들과 끊임없이 부대끼며 살아 간 꾸밈없고 가식적이지 않은 역사적 산 교훈을 전달한다. 100여년의 시간동안 끊임없이 죽고 죽이는 전쟁의 역사 속에서 로마라는 공동체는 그들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정치 체제와 군사적 기반들을 마련해간다. 그러한 사회적 발전의 과정 속에서 로마는 더욱 더 튼튼한 국가로서의 기틀을 세워 갈 수 있었고, 이후 도래하게 될 제정 로마의 길을 닦는 사전 작업으로서의 과업을 이루어나간다.
한권의 책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이루말할 수 없이 크다. 특별히 실제로 있었던 사실에 대한 객관적 서술을 기반으로하는 역사서야 두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독자는 로마라는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한 위대한 민족의 생생한 삶의 보고 속에서 인간 사회의 다채롭고 다양한 모습들을 엿본다. 그리고 그러한 실제적인 교훈과 가르침을 각자의 삶 속에 진득하게 우려내기 위한 또 한번의 지난한 작업들을 해나가야 하는 필연적인 숙제를 부여받는다. 왜냐하면 로마사라는 거대한 역사 수업 강의실에 들어 온 이상 독자는 리비우스라는 당대 최고의 역사가를 교수님으로 모시게 된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가 던지는 로마사라는 크고 깊은 지성의 바다 속에서 빠져죽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허우적거려야 할 이유가 충분하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