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러시아 원전 번역본) - 톨스토이 단편선 현대지성 클래식 34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홍대화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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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아요, 바람피우세요!" 혼외 섹스를 상품화하여 공급하는 캐나다의 불륜 알선 서비스 '애슐리 메디슨'의 광고 카피입니다. 2015년 한 해커집단에 의해 전 세계 3200만 명의 회원정보가 노출되는 사건이 있었죠. 교수, 의사, 대기업 임원, 공무원, 군인, 심지어 신학교 교수와 목사까지 다수의 사회 지도층 인물들이 이 사이트 회원으로 밝혀졌습니다. 더불어 수많은 여성들의 신상정보를 캐내어 디지털 성 노예로 삼아 전 국민의 공분을 자아낸 N번 방 사건, 여행가방에 9세 아이를 가두고 학대하여 사망케 한 사건, 연약한 어린아이를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학대함으로써 사망케 한 정인이 사건 등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이러한 일들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분노와 아픔, 상실감의 혼돈된 감정으로 이끕니다. 일련의 충격적인 사건들을 접하며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며 이 땅에 태어나서 무슨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인가와 같은 나름의 철학적 질문을 던져봅니다. 단지 먹고 싸고 교배하는 한낱 짐승 같은 존재 목적을 위해 생겨나지는 않았을 텐데 왜 우리는 이런 단세포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이러한 물음 중 작지만 나의 마음속에 깊은 정동을 일으킨 책 한 권을 만났는데 바로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입니다. 톨스토이는 작가 인생의 최정점에 도달했을 무렵 대전환을 맞이하게 됩니다. 인생의 참된 의미에 대한 그만의 철학적 고민을 시작한 것이죠. 이렇듯 인생은 무엇이며 죽음과 절대자 앞에 홀로 서야 하는 존재의 고독함과 두려움의 민낯을 직면했을 때 탄생한 책들이 바로 본서에 수록된 짤막한 단편선들입니다. 톨스토이는 10편의 이야기를 동화 형태로 집필하여 당시 농노와 같은 일반 민중들도 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는 문학적 편의와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책이 말하는 핵심 키워드는 총 3가지로 요약됩니다. 이웃 사랑, 원수 용서, 탐욕 경계. 톨스토이는 기존 러시아 정교회가 추구했던 성경과 교리의 여러 부분을 폐기하고 부인함으로써 기성 권위에 대한 반발을 보입니다. 그 결과 파문을 당하게 되죠. 하지만 그는 자신이 발견하고 신앙했던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이 복음서에 있음을 알았고 그것을 토대로 이웃 사랑과 원수를 용서하기, 탐욕과 욕심을 버리기와 같은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를 자신의 단편선 안에 흥미로운 이야기로 녹여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가장 크고 중요한 계명인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성경 66권을 쥐어짰을 때 남는 그야말로 진액과 같은 가르침이죠. 당시 부유한 지주들은 넒은 땅을 소유하고 안락한 삶을 살았지만 그에 반해 농노들의 힘겨운 삶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본인 또한 부유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상류층의 표리부동한 삶에 환멸을 느낍니다. 이렇듯 모순과 병폐로 가득한 제정 러시아의 사회적,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 그가 발견한 참된 진리는 오직 예수의 복음서가 가르치는 세 가지 핵심으로의 회귀였던 것이죠.

10편의 짧은 이야기 중 각 주제별로 세 편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함께 성지 순례를 떠난 두 노인이 길에서 헤어지게 되는데 한 노인은 계속 성지를 향해 가지만 나머지 한 노인은 길에서 만난 어느 가난한 가족의 비참한 삶을 목격하고 자신이 가진 여비를 털어 그들을 먹이고 입히는 선행을 베풉니다. 그로 인해 그 노인은 어쩔 수 없이 성지 순례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죠. 이야기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성지 순례라는 신자의 의로움과 공로보다는 지금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어서 죽어가는 네 이웃의 삶을 보살피는 실제적인 사랑과 선행만이 하나님께 진정한 경의를 표하는 삶이라는 것이죠. 다시 말해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실제적인 삶에서 사랑을 증명해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담장을 맞대고 살고 있던 이웃이 사소한 문제로 시비가 붙어서 마침내 가족 간 큰 싸움으로 번지게 되었고 급기야는 원수 지간이 되어버린다는 <초반에 불길을 잡지 못하면 끌 수가 없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선친 때에는 사이좋게 지냈던 이웃이 자녀들에 이르러서 원수가 되어 버립니다.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고 재판까지 가는 싸움을 벌이며 나중에는 방화로 이어지는 끔찍한 일들이 발생하죠. 이웃의 사소한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하지 못함으로써 마침내 집이 불타버리는 일들 속에 톨스토이는 네 원수를 용서하라는 예수의 참된 메시지를 투영시킵니다.

마지막 이야기는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고발한 <사람에게는 얼마만한 땅이 필요한가>입니다. 광활한 대지를 얻을 수 있는 규칙은 오직 하나! 일출 때 출발해서 일몰 전까지 출발선에 도착하면 하루 동안 밟았던 모든 땅을 헐값에 살 수 있다는 것! 주인공 '빠홈'은 부지런히 걷고 달립니다.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였죠. 그러나 일몰이 가까워오고 아득한 출발선을 바라보며 자신의 과욕을 깨닫습니다. 결국 극심한 피로감과 탈진 상태에서 일몰 바로 전 출발선에 도착하지만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둡니다. 그리고 일꾼들은 빠홈이 누울 수 있는 2미터가량의 무덤을 파고 그를 묻습니다. 결국 그에게 필요한 땅은 정확히 2미터였죠.

지금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이웃 사랑, 원수를 용서하기, 탐욕을 경계하기와 같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인생의 가치를 가장 무가치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시대가 지금이 아닐까요? 이웃의 인격을 사랑하지 않기에 다수 여성들을 사이버 성 노예로 삼고, 자녀들을 학대하여 잔인하게 살해하며 끓어오르는 육체의 욕정과 불타는 육욕에 탐닉하여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혼외정사를 꿈꾸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오늘이 지금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좋은 책 한 권은 인생에 크나큰 양약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서는 나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성찰하도록 독려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답게 살다가 인간답게 죽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이야말로 인생에 있어 가장 가치 있고 중요한 철학적 작업일 겁니다. 아울러 톨스토이의 삶을 볼 때 생각하지 않고 무턱대고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죄악 중의 패악임을 발견합니다. 왜냐하면 생각하지 않을 때 인간은 타자보다는 자신만을 위한 본능에 충실한 존재로 전락하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어쩌면 19세기를 살다간 대문호가 우리에게 남겨 준 촌철살인과 같은 이야기들은 한껏 고양되어 폭발 일보 직전에 있는 21세기 욕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독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적실성을 갖고 다가오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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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모든 사람을 위한, 그리고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이진우 옮김 / 휴머니스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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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죽었다!"라는 너무나 유명한 명제를 남긴 19세기 독일 허무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명성은 철학의 문외한인 모든 이들에게조차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에 좋은 기회가 생겨 그의 대표작 중 한 권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펼치게 된 순간 많은 사람들이 본서를 읽다가 포기했다고 말한 이유를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금세 확인할 수 있었죠. 마치 글자의 미로 속으로 빠져든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니체만의 사고와 글의 향연이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습니다. 정말 "모든 사람을 위한, 그리고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이라는 부제에 걸맞듯 책은 마치 어떠한 독자에게도 쉽사리 자신의 속 마음을 내비치기를 거부하는 것만 같더군요. 그만큼 이 책은 손쉽게 접근해서 그 진의를 모두 이해하고 빨아들이기에는 역부족인 저작이 맞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개신교 신자로서 인간과 삶을 이해하는 데 있어 성경과 대척점에 서 있는 대표적인 허무주의 철학자로서 니체의 저작 한 권 정도는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는 의무감 아닌 의무감이 책을 손에서 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렇듯 메시지의 난해함을 느꼈을 때 찾을 수 있는 꿀팁은 바로 역자 해제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죠. 역자의 해제는 책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나 같은 가련한 독자들에게 니체가 본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key를 마치 지름길을 알려주듯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해제를 먼저 읽고 차근차근 읽기 시작했을 때 대략적인 책의 윤곽이 보였습니다.

우선 이 책은 철학자의 책이지만 내용이 모두 철학적 용어로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논리적이거나 사변적이지도 않고 수많은 철학적 담론으로 가득한 책도 아닙니다. 그렇기에 독자는 니체의 말을 마치 논술시험 보듯 머리로 이해하려고 시도하기보다는 하나의 그림을 감상하듯 마음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역자는 이 책을 이미지와 비유의 보고라고 표현했습니다. 논리와 철학적 명제를 개념적으로 연결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그렇기에 문학적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철학서라고 보기도 어려운 비철학적 형식의 책입니다.

"신은 없다!"라는 대전제를 깔고 들어가는 저작답게 니체는 인간들에게 참된 존재의 의미를 가르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신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은 주어진 삶의 다양한 정황 속에서 넘어서는 인간, 즉 초인(超人)을 지향합니다. 니체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존재하지 않는 신을 의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는 것이죠. 인간 스스로가 세상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는 길은 바로 넘어서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은 이 책의 백미입니다.

논리적, 분석적, 철학적으로 접근해서는 절대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이미지들의 조합이 코드화된 니체의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19세기 독일과 유럽의 시대정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저작입니다. 근대 유럽의 정신세계를 휩쓴 계몽주의와 이성주의의 사상적 파도 속에서 어쩌면 니체와 같은 철학자와 작품의 탄생은 필연적 귀결인 것이죠. 그런데 책을 통해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는 "신은 없다!"라고 외쳤던 니체에게 있어 진정한 신은 바로 삶 자체였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인간의 삶을 사랑한 무신론적 허무주의자! 표현 자체가 모순과 반전이 가득하죠! 니체에게 있어 참된 신은 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목사였으며 본인 또한 신학공부를 했지만 그 안에서 목도한 개신교의 신이 아닌 인간 실존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요?

현대, 특별히 코로나19라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니체의 사상이 다시금 주목을 받는 이유는 도덕적 절대 기준이 사라진 시대 속에서 자신 스스로가 합리적 결정의 기준과 행동의 주체가 됨으로써 주어진 상황들을 극복해내야 한다는 니체의 메시지가 가진 독특한 매력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여담이지만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신을 배제한 인간 이성의 무한 신뢰와 인본주의가 팽배했던 19세기 유럽의 시대정신은 곧이어 20세기 초 전 유럽을 피로 물들인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통해 사상적 패닉에 빠진다는 것이죠. 아무튼 책을 덮은 이후 프리드리히 니체는 나에게 있어서만큼은 삶을 사랑한 허무주의 철학자라는 반전 가득한 인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논리와 개념이 아닌 이미지로 이해할 것! 저자의 개인적인 삶과 시대적 배경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숙지할 것! 이 두 가지는 니체가 만들어 놓은 지적 미궁에 갇혀 그리스 신화의 우두인신 괴물 미노타우로스와 같은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독자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tip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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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 민심을 얻는 왕도정치의 고전 명역고전 시리즈
맹자 지음, 김원중 옮김 / 휴머니스트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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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브라질 대통령 '보우소나루'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상황 가운데 관광객들과 함께 비치에서 방역 지침을 무시한 채 물놀이를 즐겼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코로나는 그저 단순한 독감일 뿐이라며 팬데믹의 심각성을 무시하는 무책임한 발언과 함께 결국 노마스크를 고수했던 본인도 코로나에 감염된 바 있죠. 1월 현재 브라질의 누적 확진자 수가 8,500만 명이라는 경악할 만한 통계 속에서 전 국민의 면역력 확산에 정부가 책임을 질 수 없다는 발언의 기사를 보며 국가의 수장, 리더가 지니고 있어야 할 최소한의 인격적 덕목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한 나라의 지도자가 지니고 있어야 할 도(道)에 대해 옛 선현들 가운데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중국의 맹자 선생이 기록한 <맹자>는 매우 탁월한 저작이 아닐 수 없죠.

BC 4세기 중국이 수많은 나라들로 조각조각 나누어져서 자웅을 다투었던 전국시대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정치신념을 유가에 기초하여 집대성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맹자는 '여민동락(與民同樂)' 즉, "백성과 함께 즐거움을 함께 한다"라는 왕도정치의 기본을 설파한 인물입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연이은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민심을 어루만지는 군주만이 천하를 얻을 수 있음을 깨달은 맹자의 사상은 당시 정치이념으로서는 매우 친민적인 개념이었죠. 이번에 만난 책 <맹자>는 부제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민심을 얻는 왕도정치의 고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맹자보다 100여 년 먼저 살다 간 유가의 창시자인 공자 선생 가르침의 핵심인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사상이 맹자의 이념적 기틀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는 가운데 책은 군주가 지녀야 할 인의예지의 정신을 기본으로 한 '항산','항심' 즉, 기본적인 생계가 보장될 때 민심이 따라옴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맹자를 말할 때 '맹모삼천지교'라는 고사 성어가 떠오릅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 맹자의 바른 교육을 위해서 시장과 묘지, 서당으로 세 번의 이사를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죠. 보통 교육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많이 사용되는 말인데요, 이러한 어머니의 영향 때문인지 맹자 또한 인간이 금수와 다른 점은 교육을 통해 오륜을 정립해가는 점에 있다고 말합니다. 즉 바른 교육과 사상을 통해서 군주들을 가르치고 안내함으로써 올바른 정치를 실현해 가도록 돕는 데 있어 <맹자>는 매우 유익한 저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본서는 크게 총 7편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편의 제목은 첫머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으로 지어졌습니다.

맹자는 책을 통해 지난한 전쟁의 화마 속에서 상처 입은 민심을 얻기 위해 왕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인덕과 경제 안정, 세금 부담의 완화, 인재 등용과 같은 합리적인 정치사상을 설파했습니다. 실제적인 토지 제도의 개혁을 통해 경제적 어려움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하지 않았고, 학교 교육에 대한 강조를 잊지 않음으로써 인간이 가지고 있어야 할 기본적 도덕성의 함양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사상적 원류였던 공자 유가 사상의 핵심인 인의예지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었죠.

주옥같은 금언들 가운데 내면에 깊이 아로새겨지는 내용이 있습니다. 어느 날 양나라의 양왕이 맹자에게 "천하를 누가 하나로 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맹자께서는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자가 천하를 통일할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가뭄 속 벼 싹은 단비가 내리면 고개를 든다. 천하에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마른하늘에 내리는 단비에 벼 싹들이 고개를 들 듯 그런 사람에게 천하 백성의 민심이 고개를 들고 따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전국시대라는 군웅할거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할 때 맹자가 가진 정치 이념이 얼마나 인간적이며 도덕적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임과 동시에 인간 내면의 허를 찌르는 그야말로 촌철살인의 고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시쳇말로 반전 가득하다는 말들을 많이 하죠. 맹자 선생은 바로 이런 반전 매력이 가득한 인물이었습니다.

전국시대 군주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전쟁을 일삼고 그것으로 인해 영토를 확장하는 것만이 왕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을 완성하는 것으로 여겼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개인적인 이익과 영달을 위해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는 것은 크게 개의치 않은 이들이 왕으로 군림했습니다. 맹자는 이러한 당시 군주들의 실정(失政)을 직접 목도했고, 그 아래에서 아파하는 백성들의 신음 소리를 청취했습니다. 그렇기에 눈앞에 보이는 이득과 야욕을 만족시키기보다 고통스러움에 눈물짓는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경제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우선임을 강조했던 것이죠. 현실 정치의 무대는 맹자 선생이 살았던 기원전 4세기의 그때나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이나 기실 별반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코로나19로 수많은 자국민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바비큐 파티를 계획했다는 브라질 대통령의 어처구니없는 모습 속에서 전국시대 군주들의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저잣거리와 계곡에 오랜 전쟁과 가뭄으로 인해 굶어죽은 아이들과 노인들의 시체가 수습되지도 못한 채 방치되어 있었다는 전국시대의 참상이 지금의 코로나19와 전 세계적 경제 위기 속에서 현대인들이 느끼는 은근한 두려움의 속살은 아닐는지요?

이렇듯 맹자 선생의 가르침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시대의 폐부를 관통하는 묵직한 그 무엇을 선사합니다. 왕도정치의 바이블로서 비단 국가의 정사를 맡은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정치고전일 뿐이라고 여긴다면 이 책의 가치를 제한하는 견해일 수 있습니다. 누차 강조했듯이 맹자가 가진 사상적 뿌리는 공자 유가의 인의예지로서 사단(四端) 즉, 인간이 가지고 있어야 할 네 가지의 바른 마음이며 이는 군주뿐 아니라 금수가 아닌 이상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어야 할 가치이며 기준인 것이죠. 그렇기에 <맹자>는 물고 뜯고 끄집어 내리고 죽고 죽이는 인간사 각축장의 현실 속에 살아가는 모든 독자들에게 2,400여 년의 시간적 간극을 뛰어넘어 작지만 명확한 깨달음의 메아리로 전해져 오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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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너리 - 평범함으로의 부르심, 21세기 리폼드 시리즈 16 21세기 리폼드 시리즈 16
마이클 호튼 지음, 조계광 옮김 / 지평서원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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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부터 TV를 통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입니다. 시청자들은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스타가 되기 위해 경쟁을 펼치며 울고 웃는 모든 과정을 지켜봅니다. 이렇듯 사람들이 노래, 댄스, 요리 등 장르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오디션 예능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볼 때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시대정신이 '탁월함'과 '드러냄'이라는 키워드로 대변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나의 이름을 세상 속에 드러내어 유명해짐으로써 얻게되는 사람들의 인정과 관심, 박수갈채를 갈망함과 동시에 무명과 평범함을 극도로 혐오하는 문화 현상의 반영이 아닐까요?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비단 일반적인 사회에만 국한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교회 또한 이미 이러한 세상의 문화적 트렌드에 함몰된 지 오래죠. 시대가 변했기에 복음을 담는 도구도 바뀌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복음주의를 지향하는 다수 교회들의 소위 엔터테인먼트적 예배 속에서 보여지는 탁월함과 드러냄이라는 키워드는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이러한 상념 속에 책을 읽는 내내 정말 닭살이 돋는 듯한 전율을 경험한 책 한 권을 만났습니다. 더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 없는 미국 개혁주의 신학자이며 목회자인 '마이클 호튼' 교수님의 저작 <오디너리 : 평범함으로의 부르심>이 그것입니다.

책에서 말하는 요지는 단순합니다. 혁신과 불만족, 평범과 만족! 세상은 차치하고 교회 또한 이제는 평범함을 지루함과 동일어로 여기는 시대 속에서 사람들은 무엇인가 획기적이고 흥미로운 콘텐츠들을 찾습니다. 매주 우리를 흔들어놓고 설레게 만들어 줄 새롭고 참신한 그 무엇을 추구하는 정신이 신자들의 마음을 들뜨게 만듭니다. 그렇기에 전통적 예배 안에서 드려지는 설교와 성례는 이제 오랜 고대의 유물과 같이 여겨지곤 하죠. 그러나 저자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사역의 진정한 핵심은 비범한 일이 아니라 평범한 일, 곧 일상에서 발견됨을 말합니다. 변화나 혁신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에 있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그 평범한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더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에 대한 가르침인 것이죠.

그러면서 저자는 그동안 신자들이 가진 세상에 의해 왜곡되었던 '탁월함'의 개념 자체를 재정의합니다. "탁월함은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을 추구하는 덕성이다. 완전주의자들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 (중략)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욕망, 곧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의 말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태도... (중략) 같은 죄인들의 인정과 칭찬을 바라면서 살아간다." 저자가 정의하는 성경적 탁월함은 필연적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야 한다는 것이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이 여기저기서 한껏 부풀어 오른 내면의 공명심이 우리의 삶을 성경적 평범함에 만족하며 머무르도록 허락하지 않는 세대 속에서 참된 탁월함의 정의가 빛을 발합니다.

또한 책에서 발견한 중요한 내용 하나는 역사적 부흥 운동과 평범함의 관계였습니다. 언약 공동체의 평범한 삶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꾸준히 성장하기보다는 무엇인가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부흥을 갈망했던 운동들은 교회의 평범한 사역, 예를 들면 정기적인 전도, 세례와 성찬, 설교와 고백의 기도, 성도의 교제와 같은 것들을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것으로 치부했죠. 대신 타는듯한 열정과 환호 속에서 출발한 부흥 운동은 다양한 스타 목사와 사역자들을 양산해내게 되었고, 이들을 바라보는 대다수 복음주의 신자들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으로서 왜곡된 탁월함과 드러냄을 미친 듯이 갈망토록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집니다.

재미와 흥미를 추구하며 사람들의 관심과 인정, 스포트 라이트를 갈망하는 신자들, 탁월함이라는 미명하에 무엇인가 획기적이고 참신한 프로그램을 추구하는 교회는 실용주의가 낳은 기형적 부산물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와 조지 휫필드 같은 영적 거인들은 하나님께서 전통적인 설교와 성례라는 지역 교회가 가진 '평범한 은혜의 수단'에 복을 베푸시는 것을 참된 부흥으로 이해했습니다. 더 이상의 새로운 사도와 계시는 없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폭발적이고 열광적인 예배와 교회 내 넘쳐나는 프로그램이 우리를 참된 신자의 삶으로 이끌지 못합니다. 오직 계시된 말씀인 성경과 하나님께서 세우신 무명의 평범한 목회자들을 통해서 전해지는 설교와 성례라는 평범한 은혜의 수단만이 우리를 성경적이고 바른 신자의 삶으로 이끌 수 있을 뿐이죠.

우리 시대와 문화는 세상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마저도 어벤져스와 같은 영웅을 갈망하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책을 덮으며 발견하는 점은 참된 신자의 삶이 이와 같지 않다는 것이죠. 오늘도 이른 아침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직장에 출근했습니까? 여전히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마트에서 물건을 사며 가족을 위해 빨래와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셨나요? 혹은 집안을 청소한 후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의 숙제를 봐주고, 간식을 챙겨주며 이웃집 혼자 사는 할머니의 필요를 돌보셨습니까? 당신이 만일 오늘도 세상이 말하는 탁월함, 획기적이지도 않고 흥분되지도 않으며 사람들의 박수갈채와 칭찬, 인정은 없지만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 일상이라는 삶의 부르심 속에서 말씀과 성례를 통해 주어지는 평범한 은혜의 수단들에 감사하며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내었다면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어벤져스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이러한 세상의 수많은 무명의 영웅들이 가진 삶의 가치를 존중하며 바른 신자의 성경적 정체성을 회복하도록 격려하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30년간 톳밥과 먼지 속에서 대패와 망치를 손에 쥔 채 무명 목수의 일상을 살아내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배워가기 원하는 이 땅의 모든 평범한 신자들에게 이 책을 기꺼이 추천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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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바빙크의 찬송의 제사 - 신앙고백과 성례에 대한 묵상 헤르만 바빙크의 교회를 위한 신학 2
헤르만 바빙크 지음, 박재은 옮김 / 다함(도서출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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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연인간의 관계 속에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요? 이제는 제법 시간이 흘러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아득한 기억의 창고 속에서 소환해야만 하는 일이 서글프지만 생각해 보면 화려하고 값비싼 선물, 함께 먹는 맛있는 음식, 함께 찾아가는 멋진 장소도 아닌 것 같습니다. 돌이켜볼 때 사랑하는 연인간의 관계 속에서 빼놓을 수없이 중요한 모습은 바로 서로를 뜨겁게 사랑한다는 진실된 '고백'이 아닐까요? 그런데 얼마 전 이 고백이 연인간의 관계에서뿐 아니라 하나님을 신앙하는 기독교 신자에게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핵심임을 알려주는 책 한 권을 만났는데 화란 개혁주의 신학자요 목회자로서 너무나 저명한 '헤르만 바빙크'의 <찬송의 제사>가 그것입니다.

헤르만 바빙크를 떠올릴 때 개신교, 특별히 개혁주의 신학에 동의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비범한 인물이며 그가 펼친 신학 사상의 방대함과 깊이에 감탄을 자아내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의 신학 사상이 매우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철학 체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에 쉽사리 접근하는 것이 어렵고 이해에 있어서도 난해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읽었던 <믿음의 확신>을 보며 바빙크의 목양적 관점에서 쓰여진 따뜻한 온기를 이 책 <찬송의 제사>를 통해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결코 사변적이거나 관념적이지 않습니다. 신자라면 누구나 손쉽게 책을 펼쳐들고 깊은 감사와 감격 속에서 바빙크가 말하는 '찬송의 제사'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빙크는 본서 속에 성례와 신앙고백에 대한 묵상을 담았습니다. 개신교 신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일이죠. 그것은 죄악 속에 있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결코 변치 않고 변개치 않으시는 '은혜 언약'의 토대 위에서 신자가 자신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신앙의 행위입니다. 믿음을 고백하는 신자는 자신의 인생과 삶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며 삶의 질서를 오직 그분 안에서 재정렬 합니다. 특별히 본서는 그 신앙고백이 개신교 성례라는 특별한 은혜의 방편 안에서 이루어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책의 부제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성례와 신앙고백에 대한 묵상, 세례, 입교, 유아세례, 초신자와 같은 믿음의 첫 발을 떼는 이들에게 있어서 기본임과 동시에 핵심을 가르쳐주는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7페이지의 다소 짧은 내용 속에 총 12장으로 구성되어 신앙고백의 근거와 기초, 본질, 내용 등을 균형 있게 담았습니다. 바빙크의 방대한 지적 능력으로 봤을 때 신앙고백과 그에 따른 교리를 이렇게 작은 책 속에 압축시켜 집필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저작이죠. 독자는 먼저 신앙고백을 이해하기 앞서 개신교 신앙고백의 근거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 신앙고백의 근거가 바로 '은혜 언약'안에 있음을 말합니다. 영원한 죽음 속에 던져질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에 기초한 일방통행적 개념의 언약 그 자체가 은혜일 수밖에 없음을 깨달으면 마음속 깊은 곳에 감동이 몰려옵니다. 그리고 이 은혜 언약은 바로 세례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가 그분의 양자가 되었다는 가시적 표지와 보증으로 드러나며 이것이 바로 신앙고백의 근거요 기초가 되는 것이죠.

책이 가지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바빙크가 신자 된 어린 자녀들에게 또한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입니다. 책은 분명히 신자의 가정 안에 있는 어린 자녀들 또한 자신의 신앙과 믿음을 고백하는 과정 속에 있어야 함을 역설합니다. 신앙고백의 규칙을 이야기하는 챕터에서 바빙크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는 반드시 가르침과 훈련을 동시에 포함해야 함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정신과 마음에 동시에 역사하도록 해야 하며, 지성과 행동 모두에 함께 영향을 미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말씀에 대한 가르침은 반드시 진리의 교리에 따라 주의 깊고 정확하게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합니다. 진리에 대한 선명한 묘사 없이 감정과 정서만을 고양해서도 안되며 진리에 대한 묘사와 정확한 개념만을 이야기해서도 안된다는 것이죠. 정신과 의지와 앎과 행함, 정서와 감정의 깨우침이 균형을 잡고 함께 가야만 함을 강조하는 내용 속에서 <신앙 감정론>을 통한 '조나단 에드워즈'의 아련한 향기가 느껴집니다. 즉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바른 신앙고백의 규칙은 정확한 진리의 교리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앎과 그것이 실제 삶의 지평 속에 풀어져야만 하는 과제를 모두 포함합니다.

서두에서 연인간의 진실된 고백이 중요함을 말했습니다. 그것은 서로를 향한 거짓 없는 마음과 참된 사랑을 확증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요소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신앙하는 믿음은 바르고 참된 신앙고백을 통해서 외적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로마서의 말씀과 같이 우리 입술의 고백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여김 받게 만드는 이 믿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참된 것임을 확증해 줍니다.

세례와 입교 등 믿음의 첫 행보를 내딛는 이들에게 있어 본서의 내용은 실로 엑기스만을 뽑아냈다 보아도 과언이 아니리라 여겨집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발견하는 사실은 바빙크가 가르치는 책의 내용이 너무나 보편적이어서 새내기 신자들뿐 아니라 모든 신자들이 들고 읽어야 할 필요성이 보인다는 점입니다. 처음 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인으로 고백하며 세례와 성찬으로 그분을 향한 사랑과 믿음의 고백을 확증했던 그때의 감격적인 기억은 어디로 갔을까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한 신학자요 목회자가 남긴 짤막한 책 한 권의 마지막 뚜껑을 덮으며 나의 냉랭해진 마음의 심지에 다시금 불을 댕겨봅니다. 바빙크는 우리의 신앙고백이 일시적이고 단회적으로 그쳐서는 안됨을 역설합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순결한 사랑과 그분이 사랑했던 이웃에 대한 연민과 애틋함은 매일의 삶 속에서 고백돼야만 하고 이어져야 합니다. 정확하고 바른 교리적 말씀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바른 신자의 전인을 통한 신앙고백은 하나님을 향한 '찬송의 제사'가 되어 이 땅에서 우리의 마지막 호흡이 멈추고 우리의 영혼이 영원에 잇대는 그 순간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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