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러시아 원전 번역본) - 톨스토이 단편선 현대지성 클래식 34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홍대화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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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물음 중 작지만 나의 마음속에 깊은 정동을 일으킨 책 한 권을 만났는데 바로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입니다. 톨스토이는 작가 인생의 최정점에 도달했을 무렵 대전환을 맞이하게 됩니다. 인생의 참된 의미에 대한 그만의 철학적 고민을 시작한 것이죠. 이렇듯 인생은 무엇이며 죽음과 절대자 앞에 홀로 서야 하는 존재의 고독함과 두려움의 민낯을 직면했을 때 탄생한 책들이 바로 본서에 수록된 짤막한 단편선들입니다. 톨스토이는 10편의 이야기를 동화 형태로 집필하여 당시 농노와 같은 일반 민중들도 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는 문학적 편의와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책이 말하는 핵심 키워드는 총 3가지로 요약됩니다. 이웃 사랑, 원수 용서, 탐욕 경계. 톨스토이는 기존 러시아 정교회가 추구했던 성경과 교리의 여러 부분을 폐기하고 부인함으로써 기성 권위에 대한 반발을 보입니다. 그 결과 파문을 당하게 되죠. 하지만 그는 자신이 발견하고 신앙했던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이 복음서에 있음을 알았고 그것을 토대로 이웃 사랑과 원수를 용서하기, 탐욕과 욕심을 버리기와 같은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를 자신의 단편선 안에 흥미로운 이야기로 녹여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가장 크고 중요한 계명인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성경 66권을 쥐어짰을 때 남는 그야말로 진액과 같은 가르침이죠. 당시 부유한 지주들은 넒은 땅을 소유하고 안락한 삶을 살았지만 그에 반해 농노들의 힘겨운 삶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본인 또한 부유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상류층의 표리부동한 삶에 환멸을 느낍니다. 이렇듯 모순과 병폐로 가득한 제정 러시아의 사회적,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 그가 발견한 참된 진리는 오직 예수의 복음서가 가르치는 세 가지 핵심으로의 회귀였던 것이죠.

10편의 짧은 이야기 중 각 주제별로 세 편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함께 성지 순례를 떠난 두 노인이 길에서 헤어지게 되는데 한 노인은 계속 성지를 향해 가지만 나머지 한 노인은 길에서 만난 어느 가난한 가족의 비참한 삶을 목격하고 자신이 가진 여비를 털어 그들을 먹이고 입히는 선행을 베풉니다. 그로 인해 그 노인은 어쩔 수 없이 성지 순례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죠. 이야기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성지 순례라는 신자의 의로움과 공로보다는 지금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어서 죽어가는 네 이웃의 삶을 보살피는 실제적인 사랑과 선행만이 하나님께 진정한 경의를 표하는 삶이라는 것이죠. 다시 말해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실제적인 삶에서 사랑을 증명해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담장을 맞대고 살고 있던 이웃이 사소한 문제로 시비가 붙어서 마침내 가족 간 큰 싸움으로 번지게 되었고 급기야는 원수 지간이 되어버린다는 <초반에 불길을 잡지 못하면 끌 수가 없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선친 때에는 사이좋게 지냈던 이웃이 자녀들에 이르러서 원수가 되어 버립니다.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고 재판까지 가는 싸움을 벌이며 나중에는 방화로 이어지는 끔찍한 일들이 발생하죠. 이웃의 사소한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하지 못함으로써 마침내 집이 불타버리는 일들 속에 톨스토이는 네 원수를 용서하라는 예수의 참된 메시지를 투영시킵니다.

마지막 이야기는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고발한 <사람에게는 얼마만한 땅이 필요한가>입니다. 광활한 대지를 얻을 수 있는 규칙은 오직 하나! 일출 때 출발해서 일몰 전까지 출발선에 도착하면 하루 동안 밟았던 모든 땅을 헐값에 살 수 있다는 것! 주인공 '빠홈'은 부지런히 걷고 달립니다.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였죠. 그러나 일몰이 가까워오고 아득한 출발선을 바라보며 자신의 과욕을 깨닫습니다. 결국 극심한 피로감과 탈진 상태에서 일몰 바로 전 출발선에 도착하지만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둡니다. 그리고 일꾼들은 빠홈이 누울 수 있는 2미터가량의 무덤을 파고 그를 묻습니다. 결국 그에게 필요한 땅은 정확히 2미터였죠.

지금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이웃 사랑, 원수를 용서하기, 탐욕을 경계하기와 같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인생의 가치를 가장 무가치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시대가 지금이 아닐까요? 이웃의 인격을 사랑하지 않기에 다수 여성들을 사이버 성 노예로 삼고, 자녀들을 학대하여 잔인하게 살해하며 끓어오르는 육체의 욕정과 불타는 육욕에 탐닉하여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혼외정사를 꿈꾸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오늘이 지금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좋은 책 한 권은 인생에 크나큰 양약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서는 나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성찰하도록 독려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답게 살다가 인간답게 죽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이야말로 인생에 있어 가장 가치 있고 중요한 철학적 작업일 겁니다. 아울러 톨스토이의 삶을 볼 때 생각하지 않고 무턱대고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죄악 중의 패악임을 발견합니다. 왜냐하면 생각하지 않을 때 인간은 타자보다는 자신만을 위한 본능에 충실한 존재로 전락하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어쩌면 19세기를 살다간 대문호가 우리에게 남겨 준 촌철살인과 같은 이야기들은 한껏 고양되어 폭발 일보 직전에 있는 21세기 욕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독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적실성을 갖고 다가오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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