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님의 침묵 (양장) - 1950년 한성도서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한용운 지음 / 더스토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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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로 시작하는 이 시를 대한민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이라면 기억 못 할 사람은 없다.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은 고교시절 국어 시간에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다양한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시의 의미를 받아 적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만큼 이 시는 당시 우리에게 대학 입학시험이라는 현실을 통과하기 위한 일에 있어서 절박함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님의 침묵이 가진 진정한 의미와 만해가 가진 사상과 그의 작품세계 속 문학적 의미를 찾아가는 좀 더 깊은 사유적 고찰은 요원한 일이었다. 이러한 아쉬움 속에서 얼마 전 초판본 북 커버로 만해의 시집을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19세기 구한말에 출생한 만해는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였고, 시인이었다. 칼과 총으로 항일 투쟁을 벌였던 독립운동가는 아니었지만 그에게 있어 칼과 총은 바로 붓이었다. 이 시집을 읽고 있노라면 붓과 펜을 들고 나라를 빼앗긴 한과 설움, 분노를 하얀 원고지 위에 써 내려갔을 만해의 모습이 선명함으로 다가온다. 시집은 그의 대표작 '님의 침묵'을 필두로 우리에게 덜 알려진 88편의 시로 빼곡하다. 한 권의 시집을 관통하는 전체적인 주제는 바로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나라 없는 자의 설움과 슬픔이다. 만해는 그의 시 대다수에서 '님'이라는 의미 있는 메타포를 사용한다. 그에게서 '님'이 가진 상징적 의미는 보는 각도에 따라 빛의 색깔이 변하는 것과 같은 해석하는 사람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일종의 문학적 프리즘이다. 그렇기에 독립운동가로서 만해의 님은 잃어버린 조국이며 종교인으로서 그의 님은 부처일 것이다. 만해는 3.1 운동에 앞장서며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다가 조선총독부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활발한 독립운동과 항일투쟁에 앞장섰던 그의 삶의 한 단면을 들여다볼 때 나는 만해가 대부분의 시에서 사용하고 있는 '님'의 상징적 의미를 일제에 빼앗긴 조국임을 직감한다.

 

 

아래는 님에 대한 시인의 깊은 사랑과 그리움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시의 한 토막이다.

<생명>

...님이여 끝없는 사막에 한 가지의 깃들일 나무도 없는 작은 새인 나의 생명을 님의 가슴에 으스러지도록 껴안아주셔요. 그리고 부서진 생명의 조각조각에 입맞춰주셔요.

님은 잃어버린 조국, 끝없는 사막은 일제 강점기 암흑의 시간들, 깃들일 나무는 조국이 주는 보호와 안정감, 작은 새인 나의 생명은 만해를 포함한 나라 잃은 힘없는 민초들, 부서진 생명은 민초들이 겪는 고난과 죽음을 상징한다. 물론 이것은 독자인 나의 주관적 주석이지만 만해의 전체적인 시가 의미하는 시상은 대부분 대동소이하다. 또 한 편의 시를 보자!

<당신을 보았습니다>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 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너를 도와주는 것은 죄악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아 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이 없습니다. "민적 없는 자는 인권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냐"하고 능욕하려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하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이하 생략)

저녁거리가 없어서 이웃집에 곡식을 꾸러 갔더니 이웃집 주인은 화자를 보고 거지라고 이야기한다. 그러고는 거지에게는 인격이 없기에 거지를 도와주는 것은 죄악일 뿐이라며 문전 박대한다. 해석의 여지가 없다. 일본에게 나라를 강탈당한 조선은 해외 열강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이곳저곳 강대국들을 찾아다니며 조선의 독립을 요청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시의 나오는 대로 차가운 거절과 냉대였다. 만해는 그러한 조국의 상황을 시 한 편에 제대로 녹여냈고, 가슴 저민 슬픔을 극대화했다. 시의 3연은 더욱 노골적이다. 민적이 없기에 인권이 없고 인권이 없기에 마음대로 능욕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장군은 일본제국주의 또는 반민족 친일부역자들을 상징한다. 만해는 그에게 분노로서 항거했다고 말한다. 가만히 앉아서 일제가 던져주는 개밥을 처먹는 묶여진 개가 되기를 거부한 매서운 항일투쟁의 정신이 엿보이는 싯구이다. 그러나 이내 그 적의와 격분이 슬픔으로 화(化) 하고 시인의 시선은 다시금 '님'을 바라본다. 이 시는 빼앗긴 나라와 나라 없는 백성들의 설움과 슬픔이 너무나 역력하게 드러난다. 오히려 만해의 대표작 '님의 침묵'보다 더 깊은 슬픔과 진한 비애가 묻어나는 애가가 아닐 수 없다.

 

 

<선사의 설법>이라는 시 또한 눈여겨볼 만한 수작이다.

<선사의 설법>

나는 선사의 설법을 들었습니다.

"너는 사랑의 쇠사슬에 묶여서 고통을 받지 말고 사랑의 줄을 끊어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즐거우리라"고 선사는 큰 소리로 말하였습니다.

그 선사는 여전히 어리석습니다.

사랑의 줄에 묶인 것이 아프기는 아프지만 사랑의 줄을 끊으면 죽는 것보다도 더 아픈 줄을 모르는 말입니다. 사랑의 속박은 단단히 얽어매는 것이 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해탈은 속박에서 얻는 것입니다.(이하 생략)

시인은 조국을 향한 끝없는 그리움을 사랑의 쇠사슬에 묶였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시인은 그 사랑의 쇠사슬, 즉 조국과의 인연을 끊고 충성심을 버리면 고달픈 삶이 편해질 것이라는 변절의 목소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실제로 애국충정을 고수하던 당시의 많은 문인들이 일제의 폭압과 회유에 못 이겨 항일의 붓을 꺾었던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시의 놀라운 반전은 2연에서 드러난다. 조국을 향한 끝없는 사랑을 이어가는 것은 계속되는 핍박을 예고한다. 그래도 이 조국과의 사랑의 줄을 끊고 배신의 옷을 입는 것은 죽음보다도 더 아픈 일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랑의 속박은 단단히 얽어매는 것이 풀어주는 것'이라는 역설의 미학을 선보인다. 여기서 시인이 말하는 속박은 바로 조국이 백성들에게 끼치는 통치이며 지배이다. 속박과 구속이 아무리 고달프고 아프더라도 일제로부터 받는 속박보다는 조국이 주는 속박이 비교할 수없이 좋다. 그리고 시인은 잘못된 설법을 전하는 선사를 향해 그것이야말로 백성들을 풀어주는(자유롭게 하는) 것임을 일갈한다.

88편 시의 대다수는 일정한 시의 구조를 따르지 않는 자유시가 대부분이며 간혹 몇 편이 정형시와 산문시로 구성되어 있다. 시인이 가진 조국에 대한 사랑과 잃어버린 주권에 대한 안타까움을 매우 절제된 필치로 한 글자씩 써 내려간 느낌이 사뭇 정갈하고 깊다. 또한 구절마다 떠나간 애인에 대한 그리움과 다시 돌아올 것에 대한 애틋한 기다림이 따뜻한 봄날 마당 한켠의 아지랑이와 같이 피어오른다. 그것은 마치 어느 여인네가 님을 그리워하는 그것보다 더 깊고 푸르다. 또한 시의 특징은 출가한 불교의 승려답게 매우 종교적이며 그렇기에 더욱더 숭고하고 비장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만해의 시가 가지는 가장 큰 특색 중 하나는 바로 종교적 색채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종교적 색깔과 서정적 이미지를 아름답게 중첩시켰기에 글이 들뜨지 않고 천박하지 않다. 이렇듯 그의 시는 차분하게 가라앉아서 하얀 도화지를 무겁게 짓누르듯 번져나가는 수묵화가 가진 흑백의 공간 미학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만큼 시상이 의미하는 바가 가볍지 않고 진중하며 깊다. 그렇기에 시를 읽는 독자는 행간의 여백과 연의 구분을 호흡하듯 읽어내려갈 필요가 있다. 그냥 소설 읽듯 읽지 말라는 당부다.

상징과 은유라는 문학이 가진 훌륭한 무기로 항일투쟁의 선봉에 섰던 만해의 정신이 깊이 배인 시집 한 권으로 며칠간 나의 마음도 모처럼 차분함을 되찾는다. 더불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갖은 고문과 고초를 당했을 만해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책을 읽는 내내 숙연함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일제 치하라는 아픔의 근대사를 통과하며 시인이 느꼈을 그 깊은 슬픔과 쓰라림의 정서를 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찌 한 권의 시집을 통해서 온전히 빨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할 수도 없을 뿐더러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그 시대를 살다간 사람들에 대한 지독한 오만이다. 시험에서 1점이라도 더 받기 위해 갖가지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암기했던 만해의 시를 이해타산의 마음을 내려놓고 정독했다. 결코 그렇게 대해서는 안될 작품에 대한 나의 씻을 수 없는 과오에 대한 일종의 회개다. 고마웠고 미안했다. 부드럽고 섬세하지만 그 안에 담긴 시상만큼은 마치 벼리고 벼려 날 선 푸르스름한 식도(食刀)와 같다. 시인은 칼과 총이 아닌 붓과 펜으로서 자신의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 시 한 편에 잠자고 있던 민중의 혼을 깨웠다. 무지렁이 백성들에게 나라 없음의 슬픔과 삭힌 비애를 날 것 그대로 전달했다. 그렇기에 그의 시집에서는 민족의 날숨과 들숨의 숨결이 여과 없이 전해지는 것만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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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고요하지 않다 - 식물, 동물, 그리고 미생물 경이로운 생명의 노래
마들렌 치게 지음, 배명자 옮김, 최재천 감수 / 흐름출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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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동물의 왕국,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심취해 있었던 때가 있었다. 열대의 정글과 밀림, 아프리카의 초원, 태평양의 깊은 심해, 남극과 북극의 설원까지 우리가 쉽사리 가볼 수 없는 지구촌 곳곳의 다양한 동식물의 모습을 브라운관을 통해 시청할 수 있었던 것은 현대 과학 기술 문명이 우리에게 준 또 하나의 시혜다. <숲은 고요하지 않다>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종이책 버전이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다. 독일의 여성 행동생물학자 '마들렌 치게'는 책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숲에 관한 상식을 일거에 말소한다. 그녀의 책에는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 사이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 이름 모를 풀벌레들의 울음소리와 작은 새들의 지저귐이 정다운 그런 숲은 없다. 대신 해석이 어려운 기괴한 동물들의 울부짖음과 반향이 독자들의 귀를 시끄럽게 한다.

저자는 미생물과 식물, 동물에 이르기까지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물들은 생존의 일환으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상호 간 소통한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건넨다. 서로 간 소통의 기본은 인간만이 가진 언어임을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 매우 낯설지만 흥미로운 명제다. "동식물이 상호 소통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미생물이 대화를 한다고?" 그런데 책을 펼치면 저자의 이야기가 허언이 아님을 발견한다. 저자는 책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서 정보가 어떻게 교환되는지와 정보 교환의 대상과 목적, 숲이 아닌 도시에서의 소통과 변이에 대한 생물학적 연구의 결과를 흥미롭게 서술한다.

대부분의 동물들이 이용하는 방법은 청각적 메시지이다. 끊임없이 울부짖고 괴성을 발사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개체를 유지하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이다. 또 한 가지 방법은 화학 신호를 이용한 커뮤니케이션이다. 페로몬이나 배설물을 통해 자신들의 터전에 대한 경계를 표시하여 다른 그룹의 침입을 사전에 방지한다. 특별히 집단생활을 하는 오소리, 토끼, 원숭이들은 그들만이 가진 공중변소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한곳에 모여진 배설물들은 그들 나름의 좋은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된다. 식물 또한 그들만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통해서 개체를 유지한다. 인상 깊었던 내용은 버섯과 식물의 상호 공생이다. 버섯은 균사로 주위에 있는 식물 파트너의 뿌리 세포 주위를 감싸고 들어가서 상호 간에 물과 영양분을 공급한다. 버섯은 식물을 통해 양분을 공급받고 식물은 버섯을 통해 가뭄과 해충을 이겨내는 저항력을 갖게 된다.

또한 흔치는 않지만 곤충이나 작은 동물을 잡아먹는 식충 식물의 소통 방식 또한 매우 흥미롭다. 주전자풀, 끈끈이주걱과 같은 식충 식물은 독특한 화학, 청각 신호를 통해 먹잇감을 찾는다. 일종의 포식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단세포 생물인 아메바, 짚신벌레와 같은 작은 생명체들 또한 소통한다는 점이다. 이렇듯 생존 본능이란 생명체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생의 기운을 가진 이 땅의 모든 존재들에게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자신들의 생명을 이어가도록 주어진 자연스러움의 표상이다.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서는 발신자와 수신자가 공통의 '데이터풀'을 사용해야 한다.

즉 같은 언어를 써야 한다. 그것이 의사소통의 전제조건이다. p279

 

소통의 전제를 이야기하는 매우 인상 깊은 구절이다. 소통은 서로 간의 같은 언어로서 동일한 울림이 전달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전혀 다른 개체와 종(種) 간의 불통을 의미한다. 인간의 커뮤니케이션도 이와 같다. 분명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여전히 불통이다. 상대의 말을 도통 알아들을 수 없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다 보면 갈등이 생기고 급기야는 소통의 단절이 온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이렇게 점차 대화 단절, 불통의 사회가 되어가는 것만 같다. 인간 세계에서는 외적으로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소통이 되는 것이 아니라 화자와 청자가 '동일한 정서'라는 데이터풀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가의 여부가 소통을 좌우한다. 확실히 인간은 고차원적이다. 정서와 내면의 감정까지 연관돼야지만 가능한 소통이라니...

한때 일본에서 유행했던 신조어이며 지금은 하나의 사회적 문제이자 일종의 라이프 스타일을 대변하는 말이 되어버린 '히키코모리'라는 용어가 있다. '은둔형 외톨이', 사회와 담을 쌓고 방에만 틀어박혀 사는 사회 부적응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더불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대변하는 또 하나의 단어는 바로 '고독사'이다. 죽은 지 몇 달이 지나 서야 발견되는 쓸쓸한 죽음 말이다. 커뮤니케이션의 단절과 무관심이 불러온 비극적 사회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두문불출을 일상에서 시전하는 사람들, 부모와 자녀들 간 대화의 장벽이 높게 쌓아진 가정, 카페에 앉아 몇 시간씩 아무 대화 없이 서로의 휴대폰만을 응시하며 끽끽대고 좋아하는 친구와 연인들의 요상한 모습들이 가진 공통점은 소통의 부재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우리 사회가 가진 병적 행태의 단면이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이렇게 말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정보를 주고받는다". 그렇다! 자연의 모든 생명체는 그들만의 언어로 서로 간 소통한다. 그것이 포식을 위한 위험한 소통이든 아니면 짝짓기를 통해 번식하기 위한 사랑의 소통이든 모든 동식물은 오늘도 시끄럽게 그들만의 소리를 낸다.

저자는 독자들을 숲으로 초대한다. 그러고는 숲속에서 자연의 언어를 발견하라고 손 내민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겸허함이 있을 때 대화의 문이 열린다. 자연 속 생명체들의 모습 속에서 소통의 겸손함을 배우라고 초청한다. 그들의 생존은 같은 공간 안에 살아가는 다른 생명체들과 얼마나 성공적으로 소통하느냐에 달렸다. 그렇기에 그들의 대화는 절박함과 동시에 겸허하다. 숲의 동식물은 내가 가진 것 이상으로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탐욕의 소통이 아닌 필요의 소통을 행한다. 인간들이 자연의 시끄러운 백색 소음 속에서 배워야 하는 교훈은 상대에게 자신의 생각과 의견만을 관철시키려는 일방적인 소통 방식을 내려놓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을 때 상대방이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진의가 들리기 시작한다. 마치 책 속에 등장하는 버섯과 식물의 공생관계처럼 말이다. 책은 숲으로 대변되는 자연 속 생명체들의 바이오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으로 가득하다. 그렇기에 자연 속 생명체들을 관찰하며 소통에 대한 깨달음, 사고의 전환을 통한 삶의 리프레시를 바라는 독자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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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 개정판
김훈 지음 / 푸른숲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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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편없이 비루한 인간을 가리켜 시쳇말로 개만도 못하다고 말한다. 그만큼 인간이 인간 답지 못하기에 오히려 개가 더 낫다는 속 쓰리는 관용어다. 그런데 살다 보면 진짜 개만도 못한 인간들을 보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럴 때마다 조상들의 지혜에 탄복한다. 역시 세상에는 개만도 못한 인간들이 많다. 이런 상념 속 이 시대의 진정한 글쟁이라고 여기는 존경하는 '김 훈' 작가님의 오래전 저작 <개>를 개정판으로 만나는 행운을 갖었다. 2005년작이니 벌써 16년 전에 쓰인 책이지만 이번에 글을 새롭게 다듬어서 출간했다. 저자는 서문에서 "들뜬 기운을 걷어내고, 거칠게 몰아가는 흐름을 가라앉혔다"라고 말한다. 오래전 책을 읽다가 실제로 피부에 소름이 돋는 경험을 하게 만든 그의 저작 <칼의 노래>에서 느꼈던 아찔한 글 놀림의 향연이 서두에서부터 펼쳐진다.

본서는 독특하다. 지난해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이라는 말(馬)을 주인공으로 한 판타지 소설로서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저자가 이번에는 16년 전 육필로 눌러 쓴 자신의 원고지에서 개(犬)를 주인공으로 소환했다. 말 그대로 1인칭 전지적 개(犬)시점이다! 인간과 인간 세상을 주인공 '보리'라는 수캐의 눈으로 바라봤다. 인간이 아닌 개가 바라본 인간과 인간 세상의 모습이기에 필터가 없다. 이야기는 댐 건설로 인해서 수몰이 예정된 어느 작은 산간 마을로부터 시작된다. 보리는 다섯 마리 중 세 번째로 태어난 수놈 진돗개다. 출산 중 다리를 삔 채로 태어난 맏이는 장애로 인해 급기야는 더 이상 개로서 한 평생을 살아낼 수 없음을 직감한 제 어미에게 잡아먹힌다. 주인들은 제 새끼를 잡아먹은 몹쓸 개라고 매 타작을 한다. 하지만 보리의 눈에는 어미가 형을 잡아먹은 것이 아니라 제 자리로 돌려보낸 것이라고 말한다.

 

엄마의 뱃속으로 다시 들어간 맏형의 몸은 엄마의 영양분이 되고 엄마의 젖이 되어

눈도 못 뜬 우리의 목구멍 안으로 다시 들어왔을 거다. 우리는 그 젖을 빨아 먹었다. p27

 

새끼를 잡아먹었다고 흠씬 두들겨 맞은 어미를 보며 보리는 말한다. 사람들은 개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눈치가 없다고 말이다. 그러고는 사람들은 그들끼리조차도 눈치가 없다고 일갈한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제멋대로 하는 사람이 잘난 사람으로 대접받는 요지경과 같은 인간 세상의 모순과 병폐를 한낱 미물인 개가 꼬집는다. 개가 인간보다 낫다. 어느 날은 보리가 주인 할머니의 어린 손자가 싸질러 놓은 똥을 먹는다.

 

똥을 먹는다고 똥개가 아니다. 도둑이 던져주는 고기를 먹는 개가 똥개다. p85

 

토막 토막 치고 빠지는 촌철살인의 문장이 아닐 수 없다. 인간 세상에 정말 똥개가 많다. 작가는 보리의 눈과 입을 빌려 지금의 시대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벼리고 벼려 시퍼렇게 날 선 식도(食刀)와 같은 김 훈 문장의 정수다!

이후 보리는 수몰된 고향집을 떠나 주인집 할머니의 둘째 아들이 살고 있는 어촌 마을로 터전을 옮긴다. 그리고 보리의 주인은 이제 할머니가 아닌 둘째 아들이다.

 

영원이라는 말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말인데, 개들의 나라에서 영원이라는 말은 한 주인 곁에 끝까지

눌어붙어 있다는 뜻이 아니라, 현재의 주인을 향한 마음이 '영원'하다는 뜻이다. p65~66

 

사람들은 자신이 기르던 개를 잡아먹기도 하고 팔아 버리기도 하고 내다 버리기도 한다. 보리는 현재 자신에게 밥을 주고 재워주고 쓰다듬어 주는 지금의 주인이 영원한 주인이며 이런 주인을 향한 마음이 영원하다는 의미로 '영원'의 의미를 재해석한다. 개의 관점 속에 작가가 이 시대를 향해 던지는 금언이 제대로 녹아져 있다.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는 배신과 반목이 판을 치는 인간 세상 속에서 어쩌면 보리가 말한 대로 인간에게 있어서 '영원'은 무의미한 단어일 수 있다. 현재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는 그 사람이 내가 따를 수 있는 주인이며 그 사람을 향한 나의 마음이 영원하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은 인간 사회의 그 얄팍하고 가벼운 관계의 허상을 제대로 건드리는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개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 세상의 아름다움과 슬픔, 삶의 고단함이 애절하게 다가온다. 더불어 인간 세상의 모순과 어리석음, 고집스러움과 무지는 책을 펴는 독자의 마음을 깊은 비애 속으로 낚아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김훈 작가의 문장은 징그럽게 꿈틀대는 생명체와 같다. 글을 읽을 때마다 글 자체가 독자에게 엉겨 붙는다는 생각을 안 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그렇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 뚜껑을 덮고 나서는 나의 머리와 가슴에 달라붙은 문장의 생명력을 털어버리는 수고스러운 작업을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순간 지적 농아인이 되어버리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기가 너무나 고달프다. 그만큼 김훈 작가의 문장에는 생명력이 있다. 16년 전에 쓴 글을 개정판을 위해 재소환하며 들뜬 기운을 걷어내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유려한 문장 사이사이 어휘와 어휘가 서로 치대며 작가의 관념을 뜨겁게 쏟아낸다.

개를 모티브로 했기에 때로는 낯선 익살스러움과 유머가 다소 까불듯이 문단의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작가 특유의 진중함과 무게감이 자칫 날릴 수도 있는 문맥의 고삐를 단단히 붙잡아준다. 또한 이 책이 가지는 특징 중 하나는 개라는 미물의 심리를 너무나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의 심리와 작가의 언어가 서로 치열하게 치받으며 사람들의 힘겨운 삶을 제대로 채색해간다. 더불어 개의 눈으로 바라본 모순과 역설이 가득한 인간 세상에 대해 작가는 거침이 없다. 가난과 아픔이 있고 죽음이라는 현실의 무게가 모두를 짓누르지만 개의 눈으로 봐도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 그래서 작가는 보리의 눈과 입을 빌려 세상에 호소한다.

220여 페이지의 다소 짧은 산문이지만 거의 기예에 가까운 작가의 문장력에 현기증을 느끼며 완독했다. 책을 읽는 중간에 아무것도 못했다. 무심코 내뱉는 독자의 숨 고르기가 저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느껴졌기에 그랬다. 그래서 책을 펼쳐들고 긴 호흡 속에서 단번에 읽어내려갔다. 책의 곳곳에 싸질러 놓은 듯한 보리의 똥 구린내와 오줌 지린내가 진동하는 듯한 문학적 판타지를 경험한다. 그만큼 작가가 벌려놓은 글 판이 무섭다. 개 한 마리를 가지고서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쥐락펴락하는 작가의 내공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렇기에 책이 가지는 무게감은 단순한 산문집의 수준을 벗어난다.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을 통해서는 역사적 비애를 가슴 사무치도록 전달했다. 오래전 절판되었기에 소위 '김 훈 마니아'들이 중고책방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았다는 전설적인 산문집 <밥벌이의 지겨움>에서는 소시민들의 텅 빈 위장을 자극하는 깊은 비애를 발견한다. 그리고 <달 너머로 달리는 말>과 본서 <개>를 통해서는 한낱 미물이라고 여긴 말과 개의 관점에서 철저하게 인간사의 구석구석을 핥아내는 기염을 토했다.

개의 눈으로 인간과 인간 세상을 보고 싶다면 이 책 한 권이면 된다.

명불허전! 김 훈! 이 시대의 진정한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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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6-04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월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숨비북 2021-06-05 05:39   좋아요 0 | URL
생각지도 못했는데 연락받아서 깜짝놀랐네요..축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화학 - 엉뚱하지만 쓸모 많은 생활 밀착형 화학의 세계
조지 자이던 지음, 김민경 옮김 / 시공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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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가습기 살균제 파동, 치약 파동, 여성 위생용품 파동 등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들의 공통점은 모두 화학제품이 가진 위험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소비자의 건강과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한동안 화학제품에 대한 불신이 이어지기도 했었죠. 그러나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리는 망각의 강을 건너 여전히 화학제품에 둘러싸인 삶의 편의를 누리며 삽니다. 얼마 전 이렇게 우리네 일상 속에서 생활 화학으로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책으로 접했습니다. MIT의 가장 웃긴 화학자라는 조지 자이던의 <오늘의 화학>은 일상 속 화학물질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기록한 과학 리포트이자 과학 에세이입니다.

저자는 책을 통해 화학이라면 고교시절 수업 시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지는 주기율표와 염기서열 암기 세대에게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재미있는 화학에 얽힌 주제들을 투척합니다. "치토스를 먹으면 수명이 줄어들까?", "선크림을 평생 발라도 문제가 없을까?, "커피는 과연 몸에 이로운가?"와 같은 질문들이 그것이죠. 흥미 있는 주제에 대해 화학 상식을 배워간다는 심정으로 저자가 초청하는 화학 교실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논의의 핵심은 정말 치토스 과자를 먹어야 하느냐 마느냐와 같은 단편적인 해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자는 실제로 좀 더 광범위하게 논지를 확대시킵니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화학적 방법으로 만들어진 초가공식품이나 생활 화학제품들을 먹고 쓰고 하는 문제가 가진 오류와 오해,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작업을 펼쳐 가는 것이죠.

책은 가공식품의 폐해 여부, 자외선 차단제의 안전성, 담배와 전자담배의 안전성 비교, 커피의 유해성 여부, 수영장 냄새의 원인, 우리는 언제 죽을까와 같은 세부 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그냥 몸에 안 좋으니 먹지도 말고 쓰지도 말라는 일방통행식 주입교육 텍스트의 시전이 아니라 정말 몸에 좋은지 안 좋은지 직접 확인해보자고 독자의 손을 잡아 이끕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너무나 쉽게 접하게 되는 초가공식품, 예를 들어 가공육, 스낵류, 라면, 탄산음료, 에너지 드링크, 유제품,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포장된 빵, 설탕, 시리얼, 사탕, 초콜릿, 아이스크림, 레인지에 돌려먹는 즉석식품 등은 정말 우리 몸에 안 좋은 것일까요? 저자는 그동안 우리가 무턱대고 안 좋다고 생각했던 초가공식품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내려놓으라고 말합니다. 책의 요지는 초가공식품을 비롯한 우리가 일상 속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화학 제품에 대해 무턱대고 나쁘다고 치부해버리지 말고 좋지 않다면 무슨 이유로 그런 것인지에 대해 생각의 회로를 가동하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10장으로 구성된 책의 내용 전체를 통해 우리의 일상 속 화학 식품과 제품이 가진 진실을 과학자답게 밝힙니다. 또한 다양한 실험과 문헌을 넘나들며 가능하면 독자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재미있게 설명하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합니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서두에서 밝힌 초가공식품에 대한 자신만의 의견을 피력합니다. 가공식품을 "가능하면 먹지말라"라는 것이죠! 그러나 가공식품이 사람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한 결과는 상대적 위험성을 내포하기에 온전한 사실이라고 말할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것은 이제 가공식품을 더 이상 '독'이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자제해달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건강을 직접적으로 해치는 수많은 진짜 독이 상존하는 세상 속에서 사탕이나 초콜릿이 독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 치토스를 먹으면 수명이 줄어들까와 같은 처음의 질문은 의미가 없습니다.

질문에 대한 명확한 정답을 요구하는 교육 문화 속에서 성장해온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읽는 내내 의문이 떠나지 않았던 독특한 책이었습니다. 선크림을 발라도 되는가의 질문에 "바르면 안돼!"라고 이야기해 주지 않기 때문에 그렇죠. 커피를 마셔도 되는가의 질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대체 커피가 몸에 좋다는 것인지 아닌지를 명확하게 답변해 주지 않기에 답답함도 있습니다. 그런데 책을 좀 더 주의 깊게 읽어내려가다 보면 저자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일종의 저술 패턴이 마치 한때 유행했던 매직아이에서 숨겨진 그림이 떠오르듯 보이기 시작합니다. 소위 천재들이 모인 MIT에서 제일 웃기는 화학자라는 닉네임이 허투루 지어진 것이 아님을 확인합니다. 주제 하나를 가지고 1+1=2라는 뻔한 해답을 알려주기 위해 책을 쓴 것이 아니죠. 1+1=3이 아니고 왜 2인지에 대한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책의 목적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교실에서 선생님이 던져 놓은 사고의 미끼를 두고 급우들끼리 치열한 토론과 논쟁을 펼치게끔 방목하는 교육 문화 속에서 만들어진 논리적 괴물들의 특징이죠. 갇힌 우리 안에서 얌전히 끼니때마다 주는 여물을 먹으며 키워지는 우리의 교육 문화 속에서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튼 치토스를 먹어야 하는가, 선크림을 발라야 하는가, 담배와 전자 담배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까, 커피는 마셔도 되는가, 실내 수영장에서 계속 운동을 해도 되는가와 같은 선택의 문제는 책을 읽은 독자가 직접 이해하고 선택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합리적 인과관계인 연관성 속에서 모든 문제를 확인해보라고 조언합니다. 건강을 염려한 초가공식품의 섭취 여부를 떠나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는 오히려 우리가 건강에 미치는 전혀 다른 요인들을 너무나 쉽게 간과해버린다는 것에 있다는 것이죠. 던져진 주제에 대해 그것이 왜 잘못되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온전히 이해하라! 그리고 다른 요인들과의 합리적 연관성을 배제하지 말고 원인을 추론해나가라! 실제와 현상에 기반을 둔 과학, 합리성과 증명에 기인한 논리가 믹스 된 개성있는 책 한 권을 소개해봤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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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6-05 0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다양한 책을 많이 읽으시네요~~~
친추 하고 갑니다아
좋은 하루 되세요~

숨비북 2021-06-05 06:04   좋아요 1 | URL
네~이것저것 잡식성으로 읽어요~ㅎㅎㅎ
저도 친추했어요..감사합니다~^^
 
에이징 브레인 - 생생한 뇌로 100세까지 살아가기
티머시 R. 제닝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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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개봉된 <내 머리 속의 지우개>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진행성 치매에 걸린 여자 주인공과 그녀의 곁을 지키는 남자 주인공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영화였죠. 알츠하이머 치매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보는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영화였는데 개인적으로 치매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치매와 뇌 건강에 대한 흥미로운 책 한 권을 만났는데요 미국의 신경정신과 의사이며 약리학자인 '티머시 R. 제닝스'가 집필한 <에이징 브레인>입니다. 책의 부제인 '시간의 법칙에 저항하라'해서 드러나듯이 이 책은 뇌의 노화와 치매의 상관성, 건강하게 늙어가기 위한 다양한 건강 실천방법에 대한 실용서입니다. 책은 뇌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들과 건강을 증진하는 생활방식, 치매를 예방하는 검증된 방법과 같이 매우 실제적인 지침들로 가득합니다. 또한 저자의 장모가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렸던 개인적으로 아픈 가족사를 가지고 있기에 저자의 이야기는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편안한 노년은 젊은 날에 성실했던 사람이 누리는 보상이다.

노년의 전망은 슬프고 우울한 쇠퇴가 아니라 더 나은 세상에서 누릴 만년 청춘의 희망이어야 한다.

레이 파머(미국 성직자, 시인)

 

인간이라면 모두 나이를 먹고 언젠가는 죽음의 문턱에 이르게 됩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나이 듦과 죽음의 순간을 맞기 전 우리는 늙음, 즉 노화라는 신체의 지속적이며 급격한 퇴보를 경험하게 되죠. 그런데 본서에서 매우 특이할만한 내용을 만났습니다. "살아온 경험과 그간의 선택이 각자 세월을 통과하는 데 영향을 미쳐 노화-활력과 기능의 점진적 상실-를 늦추기도 하고 촉진하기도 한다."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이 먹음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육체의 늙음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서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는 뜻이죠. 노화를 촉진하는 요인이 있는 반면 노화를 늦추어 건강한 노년을 맞이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 저자가 책에서 말하려는 요지입니다.

책은 노화와 뇌 건강을 위한 실제적이고 실용적인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매일 적당량의 운동과 수면, 자연식 위주의 식사, 흡연과 음주의 절제, 타인에 대한 원한과 적개심 줄이기, 긍정적 마인드와 건강한 신앙의 힘 의지하기, 다양한 예술과 취미 활동, 새로운 학습 기회에 참여하기 등이 그것이죠. 우선 저자는 건강법을 벗어나서는 건강을 유지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인간은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살 때만이 건강한 삶과 건강한 노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제시하는 방법 중 하나는 '용불용의 법칙'입니다. 즉 무엇이든 강해지려면 그 부분을 써야 한다는 것으로서 뇌도 자꾸 쓰면 특정 활동에 상응하는 신경세포가 활성화된다는 것입니다. 부단한 자기계발과 새로운 교육과 정신활동, 학습을 이어가는 길만이 뇌의 노화를 늦추고 치매를 예방하는 가장 중요한 지름길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평생교육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나봅니다.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책과 펜을 놓지 않는 것!

 

 

우리 사회가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는 질병이 바로 치매이리라 봅니다. 그런데 책을 통해 발견하는 사실은 역시 만병의 근원은 바로 스트레스라는 것이죠. 만성적 염려, 해결되지 않은 죄책감, 계속 이어지는 갈등 관계 등은 스트레스의 주요 인자입니다. 거기에 덧붙여서 매사에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며 용서와 이해, 관대함이 없는 마치 싸움닭 같은 사람들은 치매의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될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자는 원한과 갈등의 관계를 용서와 화해로써 해결하라고 강조합니다. 스트레스와 자기 스스로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 신체 건강과 뇌의 급속한 노화를 촉진시킨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본서의 중요한 key입니다. 아울러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소멸되고 없어지는 것이 우리네 육체이지만 호흡하는 동안만큼은 자신의 존재로 인해 누군가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운동하고 음식을 가려먹으며 나쁜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등의 실제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음식과 관련하여 저자의 실제적 조언이 매우 큰 도움이 됩니다. 개인적으로 커피를 좋아하기에 커피가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글을 읽으니 매우 반갑기도 했고요. 그외 오메가3, 기름기 많은 생선, 강황과 후추, 호두, 녹차, 석류주스, 해바라기씨, 아몬드, 시금치, 호박, 고추, 비타민C 등의 섭취를 권장하고 반대로 인공감미료와 탄산음료 등은 백해 무익한 식품으로 섭취를 자제하라고 말합니다. 또한 책의 챕터마다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사항들을 한 번 더 요약해 주면서 실천 계획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책이 가진 장점 중 하나입니다. 건강한 노화와 치매 예방을 위하여 실천 사항들을 따로 적어서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고 매일 실천해도 좋을 것 같네요.

책의 마지막은 치매 가족을 돌보는 데 있어서 기억해야 할 세부적인 지침들입니다. 그런데 내용 중에 매우 중요한 점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바로 치매 가족을 돌보는 데 있어서 간병의 기준을 정해놓으라는 것이죠. 쉽게 말하면 치매에 걸린 부모님의 요양원 이주 시기를 결정하는 기준점입니다. "돌볼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작 필요한 간호를 제공할 능력이 없어서다."라는 사실을 명확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매우 객관적 지표인 것 같습니다. 알츠하이머 치매라는 불청객을 최대한 예방하며 건강하게 생활하다가 눈을 감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품는 소망입니다. 그렇기에 책의 내용 하나하나가 마음 깊이 와닿네요.

한때 '웰빙(well being) 열풍이 불었죠! 몸에 좋은 음식을 찾아다니고, TV 홈쇼핑에서는 갖가지 건강 보조식품 광고가 화면을 가득 채웠습니다. 골목마다 생겨난 피트니스센터와 요가, 필라테스 스튜디오를 보며 육체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건강하게 살려는 사람들의 웰빙 욕구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죠. 그리고 또 한때는 웰다잉(well dying)의 바람이 불기도 했습니다.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는 인식의 전환이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답게 죽고 싶은 갈망의 표출로서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움직임으로 나타나기도 했죠. 그런데 나는 책을 덮으며 웰에이징(well aging)의 개념을 추가하고 싶었습니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노화이지만 어떻게 하면 더 잘 늙을 수 있을까의 고민이 농축된 말이죠.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늙어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강건해진다)." 고린도후서라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필연 신앙과의 깊은 연관성이 있는 말씀이지만 책이 강조하는 뇌 건강 및 노화의 중요성과 표면적 의미상으로는 일견 일치하는 것도 같기에 다소 불경(?)스럽지만 인용해봤습니다. 잘 먹고 잘 살다가 잘 죽는 것도 중요하지만 품위 있게 늙어가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매우 중요한 일이죠. 지금껏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실존의 문제 앞에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회피할 수 없는 운명이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기에 죽음보다 선행되는 잘 늙는 것의 문제는 쉽사리 간과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책의 저자는 치매라는 불청객을 떨쳐버리고 건강하게 늙어가는 웰에이징이야말로 웰빙과 웰다잉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인생의 경첩임을 강조합니다. 그렇기에 책에 가득한 실제적 조언들은 자신의 장모가 치매에 걸려 죽어가는 현장을 목격한 증인으로서 저자가 독자에게 남기는 진정 어린 충고이며 가르침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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