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숲은 고요하지 않다 - 식물, 동물, 그리고 미생물 경이로운 생명의 노래
마들렌 치게 지음, 배명자 옮김, 최재천 감수 / 흐름출판 / 2021년 4월
평점 :

한동안 동물의 왕국,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심취해 있었던 때가 있었다. 열대의 정글과 밀림, 아프리카의 초원, 태평양의 깊은 심해, 남극과 북극의 설원까지 우리가 쉽사리 가볼 수 없는 지구촌 곳곳의 다양한 동식물의 모습을 브라운관을 통해 시청할 수 있었던 것은 현대 과학 기술 문명이 우리에게 준 또 하나의 시혜다. <숲은 고요하지 않다>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종이책 버전이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다. 독일의 여성 행동생물학자 '마들렌 치게'는 책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숲에 관한 상식을 일거에 말소한다. 그녀의 책에는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 사이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 이름 모를 풀벌레들의 울음소리와 작은 새들의 지저귐이 정다운 그런 숲은 없다. 대신 해석이 어려운 기괴한 동물들의 울부짖음과 반향이 독자들의 귀를 시끄럽게 한다.
저자는 미생물과 식물, 동물에 이르기까지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물들은 생존의 일환으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상호 간 소통한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건넨다. 서로 간 소통의 기본은 인간만이 가진 언어임을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 매우 낯설지만 흥미로운 명제다. "동식물이 상호 소통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미생물이 대화를 한다고?" 그런데 책을 펼치면 저자의 이야기가 허언이 아님을 발견한다. 저자는 책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서 정보가 어떻게 교환되는지와 정보 교환의 대상과 목적, 숲이 아닌 도시에서의 소통과 변이에 대한 생물학적 연구의 결과를 흥미롭게 서술한다.
대부분의 동물들이 이용하는 방법은 청각적 메시지이다. 끊임없이 울부짖고 괴성을 발사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개체를 유지하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이다. 또 한 가지 방법은 화학 신호를 이용한 커뮤니케이션이다. 페로몬이나 배설물을 통해 자신들의 터전에 대한 경계를 표시하여 다른 그룹의 침입을 사전에 방지한다. 특별히 집단생활을 하는 오소리, 토끼, 원숭이들은 그들만이 가진 공중변소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한곳에 모여진 배설물들은 그들 나름의 좋은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된다. 식물 또한 그들만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통해서 개체를 유지한다. 인상 깊었던 내용은 버섯과 식물의 상호 공생이다. 버섯은 균사로 주위에 있는 식물 파트너의 뿌리 세포 주위를 감싸고 들어가서 상호 간에 물과 영양분을 공급한다. 버섯은 식물을 통해 양분을 공급받고 식물은 버섯을 통해 가뭄과 해충을 이겨내는 저항력을 갖게 된다.
또한 흔치는 않지만 곤충이나 작은 동물을 잡아먹는 식충 식물의 소통 방식 또한 매우 흥미롭다. 주전자풀, 끈끈이주걱과 같은 식충 식물은 독특한 화학, 청각 신호를 통해 먹잇감을 찾는다. 일종의 포식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단세포 생물인 아메바, 짚신벌레와 같은 작은 생명체들 또한 소통한다는 점이다. 이렇듯 생존 본능이란 생명체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생의 기운을 가진 이 땅의 모든 존재들에게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자신들의 생명을 이어가도록 주어진 자연스러움의 표상이다.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서는 발신자와 수신자가 공통의 '데이터풀'을 사용해야 한다.
즉 같은 언어를 써야 한다. 그것이 의사소통의 전제조건이다. p279
소통의 전제를 이야기하는 매우 인상 깊은 구절이다. 소통은 서로 간의 같은 언어로서 동일한 울림이 전달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전혀 다른 개체와 종(種) 간의 불통을 의미한다. 인간의 커뮤니케이션도 이와 같다. 분명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여전히 불통이다. 상대의 말을 도통 알아들을 수 없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다 보면 갈등이 생기고 급기야는 소통의 단절이 온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이렇게 점차 대화 단절, 불통의 사회가 되어가는 것만 같다. 인간 세계에서는 외적으로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소통이 되는 것이 아니라 화자와 청자가 '동일한 정서'라는 데이터풀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가의 여부가 소통을 좌우한다. 확실히 인간은 고차원적이다. 정서와 내면의 감정까지 연관돼야지만 가능한 소통이라니...
한때 일본에서 유행했던 신조어이며 지금은 하나의 사회적 문제이자 일종의 라이프 스타일을 대변하는 말이 되어버린 '히키코모리'라는 용어가 있다. '은둔형 외톨이', 사회와 담을 쌓고 방에만 틀어박혀 사는 사회 부적응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더불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대변하는 또 하나의 단어는 바로 '고독사'이다. 죽은 지 몇 달이 지나 서야 발견되는 쓸쓸한 죽음 말이다. 커뮤니케이션의 단절과 무관심이 불러온 비극적 사회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두문불출을 일상에서 시전하는 사람들, 부모와 자녀들 간 대화의 장벽이 높게 쌓아진 가정, 카페에 앉아 몇 시간씩 아무 대화 없이 서로의 휴대폰만을 응시하며 끽끽대고 좋아하는 친구와 연인들의 요상한 모습들이 가진 공통점은 소통의 부재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우리 사회가 가진 병적 행태의 단면이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이렇게 말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정보를 주고받는다". 그렇다! 자연의 모든 생명체는 그들만의 언어로 서로 간 소통한다. 그것이 포식을 위한 위험한 소통이든 아니면 짝짓기를 통해 번식하기 위한 사랑의 소통이든 모든 동식물은 오늘도 시끄럽게 그들만의 소리를 낸다.
저자는 독자들을 숲으로 초대한다. 그러고는 숲속에서 자연의 언어를 발견하라고 손 내민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겸허함이 있을 때 대화의 문이 열린다. 자연 속 생명체들의 모습 속에서 소통의 겸손함을 배우라고 초청한다. 그들의 생존은 같은 공간 안에 살아가는 다른 생명체들과 얼마나 성공적으로 소통하느냐에 달렸다. 그렇기에 그들의 대화는 절박함과 동시에 겸허하다. 숲의 동식물은 내가 가진 것 이상으로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탐욕의 소통이 아닌 필요의 소통을 행한다. 인간들이 자연의 시끄러운 백색 소음 속에서 배워야 하는 교훈은 상대에게 자신의 생각과 의견만을 관철시키려는 일방적인 소통 방식을 내려놓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을 때 상대방이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진의가 들리기 시작한다. 마치 책 속에 등장하는 버섯과 식물의 공생관계처럼 말이다. 책은 숲으로 대변되는 자연 속 생명체들의 바이오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으로 가득하다. 그렇기에 자연 속 생명체들을 관찰하며 소통에 대한 깨달음, 사고의 전환을 통한 삶의 리프레시를 바라는 독자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을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