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님의 침묵 (양장) - 1950년 한성도서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한용운 지음 / 더스토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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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로 시작하는 이 시를 대한민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이라면 기억 못 할 사람은 없다.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은 고교시절 국어 시간에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다양한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시의 의미를 받아 적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만큼 이 시는 당시 우리에게 대학 입학시험이라는 현실을 통과하기 위한 일에 있어서 절박함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님의 침묵이 가진 진정한 의미와 만해가 가진 사상과 그의 작품세계 속 문학적 의미를 찾아가는 좀 더 깊은 사유적 고찰은 요원한 일이었다. 이러한 아쉬움 속에서 얼마 전 초판본 북 커버로 만해의 시집을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19세기 구한말에 출생한 만해는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였고, 시인이었다. 칼과 총으로 항일 투쟁을 벌였던 독립운동가는 아니었지만 그에게 있어 칼과 총은 바로 붓이었다. 이 시집을 읽고 있노라면 붓과 펜을 들고 나라를 빼앗긴 한과 설움, 분노를 하얀 원고지 위에 써 내려갔을 만해의 모습이 선명함으로 다가온다. 시집은 그의 대표작 '님의 침묵'을 필두로 우리에게 덜 알려진 88편의 시로 빼곡하다. 한 권의 시집을 관통하는 전체적인 주제는 바로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나라 없는 자의 설움과 슬픔이다. 만해는 그의 시 대다수에서 '님'이라는 의미 있는 메타포를 사용한다. 그에게서 '님'이 가진 상징적 의미는 보는 각도에 따라 빛의 색깔이 변하는 것과 같은 해석하는 사람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일종의 문학적 프리즘이다. 그렇기에 독립운동가로서 만해의 님은 잃어버린 조국이며 종교인으로서 그의 님은 부처일 것이다. 만해는 3.1 운동에 앞장서며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다가 조선총독부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활발한 독립운동과 항일투쟁에 앞장섰던 그의 삶의 한 단면을 들여다볼 때 나는 만해가 대부분의 시에서 사용하고 있는 '님'의 상징적 의미를 일제에 빼앗긴 조국임을 직감한다.

 

 

아래는 님에 대한 시인의 깊은 사랑과 그리움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시의 한 토막이다.

<생명>

...님이여 끝없는 사막에 한 가지의 깃들일 나무도 없는 작은 새인 나의 생명을 님의 가슴에 으스러지도록 껴안아주셔요. 그리고 부서진 생명의 조각조각에 입맞춰주셔요.

님은 잃어버린 조국, 끝없는 사막은 일제 강점기 암흑의 시간들, 깃들일 나무는 조국이 주는 보호와 안정감, 작은 새인 나의 생명은 만해를 포함한 나라 잃은 힘없는 민초들, 부서진 생명은 민초들이 겪는 고난과 죽음을 상징한다. 물론 이것은 독자인 나의 주관적 주석이지만 만해의 전체적인 시가 의미하는 시상은 대부분 대동소이하다. 또 한 편의 시를 보자!

<당신을 보았습니다>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 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너를 도와주는 것은 죄악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아 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이 없습니다. "민적 없는 자는 인권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냐"하고 능욕하려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하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이하 생략)

저녁거리가 없어서 이웃집에 곡식을 꾸러 갔더니 이웃집 주인은 화자를 보고 거지라고 이야기한다. 그러고는 거지에게는 인격이 없기에 거지를 도와주는 것은 죄악일 뿐이라며 문전 박대한다. 해석의 여지가 없다. 일본에게 나라를 강탈당한 조선은 해외 열강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이곳저곳 강대국들을 찾아다니며 조선의 독립을 요청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시의 나오는 대로 차가운 거절과 냉대였다. 만해는 그러한 조국의 상황을 시 한 편에 제대로 녹여냈고, 가슴 저민 슬픔을 극대화했다. 시의 3연은 더욱 노골적이다. 민적이 없기에 인권이 없고 인권이 없기에 마음대로 능욕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장군은 일본제국주의 또는 반민족 친일부역자들을 상징한다. 만해는 그에게 분노로서 항거했다고 말한다. 가만히 앉아서 일제가 던져주는 개밥을 처먹는 묶여진 개가 되기를 거부한 매서운 항일투쟁의 정신이 엿보이는 싯구이다. 그러나 이내 그 적의와 격분이 슬픔으로 화(化) 하고 시인의 시선은 다시금 '님'을 바라본다. 이 시는 빼앗긴 나라와 나라 없는 백성들의 설움과 슬픔이 너무나 역력하게 드러난다. 오히려 만해의 대표작 '님의 침묵'보다 더 깊은 슬픔과 진한 비애가 묻어나는 애가가 아닐 수 없다.

 

 

<선사의 설법>이라는 시 또한 눈여겨볼 만한 수작이다.

<선사의 설법>

나는 선사의 설법을 들었습니다.

"너는 사랑의 쇠사슬에 묶여서 고통을 받지 말고 사랑의 줄을 끊어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즐거우리라"고 선사는 큰 소리로 말하였습니다.

그 선사는 여전히 어리석습니다.

사랑의 줄에 묶인 것이 아프기는 아프지만 사랑의 줄을 끊으면 죽는 것보다도 더 아픈 줄을 모르는 말입니다. 사랑의 속박은 단단히 얽어매는 것이 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해탈은 속박에서 얻는 것입니다.(이하 생략)

시인은 조국을 향한 끝없는 그리움을 사랑의 쇠사슬에 묶였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시인은 그 사랑의 쇠사슬, 즉 조국과의 인연을 끊고 충성심을 버리면 고달픈 삶이 편해질 것이라는 변절의 목소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실제로 애국충정을 고수하던 당시의 많은 문인들이 일제의 폭압과 회유에 못 이겨 항일의 붓을 꺾었던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시의 놀라운 반전은 2연에서 드러난다. 조국을 향한 끝없는 사랑을 이어가는 것은 계속되는 핍박을 예고한다. 그래도 이 조국과의 사랑의 줄을 끊고 배신의 옷을 입는 것은 죽음보다도 더 아픈 일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랑의 속박은 단단히 얽어매는 것이 풀어주는 것'이라는 역설의 미학을 선보인다. 여기서 시인이 말하는 속박은 바로 조국이 백성들에게 끼치는 통치이며 지배이다. 속박과 구속이 아무리 고달프고 아프더라도 일제로부터 받는 속박보다는 조국이 주는 속박이 비교할 수없이 좋다. 그리고 시인은 잘못된 설법을 전하는 선사를 향해 그것이야말로 백성들을 풀어주는(자유롭게 하는) 것임을 일갈한다.

88편 시의 대다수는 일정한 시의 구조를 따르지 않는 자유시가 대부분이며 간혹 몇 편이 정형시와 산문시로 구성되어 있다. 시인이 가진 조국에 대한 사랑과 잃어버린 주권에 대한 안타까움을 매우 절제된 필치로 한 글자씩 써 내려간 느낌이 사뭇 정갈하고 깊다. 또한 구절마다 떠나간 애인에 대한 그리움과 다시 돌아올 것에 대한 애틋한 기다림이 따뜻한 봄날 마당 한켠의 아지랑이와 같이 피어오른다. 그것은 마치 어느 여인네가 님을 그리워하는 그것보다 더 깊고 푸르다. 또한 시의 특징은 출가한 불교의 승려답게 매우 종교적이며 그렇기에 더욱더 숭고하고 비장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만해의 시가 가지는 가장 큰 특색 중 하나는 바로 종교적 색채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종교적 색깔과 서정적 이미지를 아름답게 중첩시켰기에 글이 들뜨지 않고 천박하지 않다. 이렇듯 그의 시는 차분하게 가라앉아서 하얀 도화지를 무겁게 짓누르듯 번져나가는 수묵화가 가진 흑백의 공간 미학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만큼 시상이 의미하는 바가 가볍지 않고 진중하며 깊다. 그렇기에 시를 읽는 독자는 행간의 여백과 연의 구분을 호흡하듯 읽어내려갈 필요가 있다. 그냥 소설 읽듯 읽지 말라는 당부다.

상징과 은유라는 문학이 가진 훌륭한 무기로 항일투쟁의 선봉에 섰던 만해의 정신이 깊이 배인 시집 한 권으로 며칠간 나의 마음도 모처럼 차분함을 되찾는다. 더불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갖은 고문과 고초를 당했을 만해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책을 읽는 내내 숙연함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일제 치하라는 아픔의 근대사를 통과하며 시인이 느꼈을 그 깊은 슬픔과 쓰라림의 정서를 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찌 한 권의 시집을 통해서 온전히 빨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할 수도 없을 뿐더러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그 시대를 살다간 사람들에 대한 지독한 오만이다. 시험에서 1점이라도 더 받기 위해 갖가지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암기했던 만해의 시를 이해타산의 마음을 내려놓고 정독했다. 결코 그렇게 대해서는 안될 작품에 대한 나의 씻을 수 없는 과오에 대한 일종의 회개다. 고마웠고 미안했다. 부드럽고 섬세하지만 그 안에 담긴 시상만큼은 마치 벼리고 벼려 날 선 푸르스름한 식도(食刀)와 같다. 시인은 칼과 총이 아닌 붓과 펜으로서 자신의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 시 한 편에 잠자고 있던 민중의 혼을 깨웠다. 무지렁이 백성들에게 나라 없음의 슬픔과 삭힌 비애를 날 것 그대로 전달했다. 그렇기에 그의 시집에서는 민족의 날숨과 들숨의 숨결이 여과 없이 전해지는 것만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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