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살로 읽는 세계사 - 중세 유럽의 의문사부터 김정남 암살 사건까지, 은밀하고 잔혹한 역사의 뒷골목 테마로 읽는 역사 5
엘리너 허먼 지음, 솝희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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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줄다리기가 독살이라는 주제와 만나서 매우 흥미롭게 펼쳐지는 역사 인문학 도서에요! 매혹적인 중세 왕실의 숨겨진 추악함을 엿보는 재미는 덤이죠! 역사에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추천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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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살로 읽는 세계사 - 중세 유럽의 의문사부터 김정남 암살 사건까지, 은밀하고 잔혹한 역사의 뒷골목 테마로 읽는 역사 5
엘리너 허먼 지음, 솝희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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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함 속에 감춰진 추악한 이야기"

 

몇 년 전 동네 노인들이 노인정에서 농약 섞인 사이다를 마시고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일명 '농약 사이다 살인사건'. 동네 노인들의 사소한 다툼 끝에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참극이다. 이렇게 먹고 마시는 음식에 독약을 넣어 대적자를 살해하는 일은 인류 역사 속에서 그 기원이 오래다. 독살이라는 끔찍하지만 흥미로운 주제를 세계사와의 연관성 속에서 인문학적으로 고찰한 책이 바로 오늘 서평 하는 <독살로 읽는 세계사>이다. 미국 태생의 저자 '엘리너 허먼'은 언론학을 전공하고 출판사 편집자로 일한 경력이 있다. 그녀는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흥미로운 스토리로 탈바꿈시키는 이야기 연금술사로 평가받는다. 본서는 인류 역사 가운데 존재했던 독살이라는 독특한 주제를 역사적이고 인문학적인 교훈과 절묘하게 매칭 시킨다. 저자는 우선 중세 유럽의 왕궁에서 벌어졌던 독살의 역사와 기원을 파헤친다. 더불어 중세 유럽 왕실에서 벌어졌던 미스터리한 독살 사건을 다루며 베일에 싸여왔던 진실의 문빗장을 열어젖힌다. 3장에서는 독극물로 정적을 살해하는 일들이 중세 시대만이 아닌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일임을 최근 몇몇의 사건을 통해 소개한다.

중세 유럽의 왕궁에서는 독극물이 암살을 위한 도구로 쓰이기 이전에 의약품의 하나로서 오용되어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망자의 강을 건너게 만들었다. '사람 잡는 의사'라는 제목의 챕터에서 당시 의사들이 납, 수은, 비소, 안티몬 등의 중금속을 약으로서 버젓이 처방 내렸음을 보게 된다. 수은으로 관장을 하고 피부 궤양 환자의 피부에 수은과 납 연고를 바르도록 처방했다. 의학적 지식이 전무하던 시대에 의사들은 돌팔이의 수준을 넘어 마치 주술사와 같았다. 죽은 아기의 피와 살, 인간의 시체와 각종 동물들의 사체와 배설물과 장기 등을 혼합하여 약을 만들었다. 마치 마녀들이 비약을 제조하는 것과 같은 오컬트적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러한 약을 처방받은 환자들은 거의 생체실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고 많은 이들이 감염과 독성에 의해 생명을 잃었다.

2부에서는 다양한 유럽 왕실 인물들의 독살 사건을 다룬다. 우리가 아는 인물 가운데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나 나폴레옹과 같은 이들의 죽음도 독살과의 연관성 속에서 그 진위를 밝힌다. 흥미로운 점은 왕실 인물들의 사인을 당대 부검의들의 소견과 현대 법의학자들의 소견의 대비를 통해 밝힌다는 것이다. 지금껏 독살이라고 여겼던 사람의 사인이 독살이 아니고 여타의 질병으로 인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여럿이다. 마지막 3부에서는 현대에 벌어지는 정치적 독살의 현장을 스케치한다. 주로 러시아에서 벌어진 암살과 독약의 관계를 밝히며 최근 북한 김정남 독살 사건에 관한 이야기도 독자의 관심을 끌기 충분하다.

 

 

"권력의 정점에서 남는 것은 무엇인가?"

 

인류 역사 가운데 권력을 향한 갈망은 끝이 없었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과 흡사한 인간사 각축장에서 상대방을 죽여야지만 내가 그의 권력을 차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광기의 현장 속으로 안내했다. 책은 잘 짜인 한편의 인문학적 지식을 전달한다. 단순한 재미와 흥미로서 책을 덮는다면 분명 독자로서 많은 것을 놓치는 것이다. 첫째, 책은 권력의 허망함을 보여준다. 끝까지 올라간 정상에서 행복은커녕 자신의 음식에 독이 들었을 것을 염려하여 매 끼니마다 일종의 기미 상궁들이 들쑤셔놓은 개밥 같은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니 이보다 아이러니컬한 일이 어디있겠는가? 또한 밥 한끼도 마음 편하게 못 먹는 권력의 정상에서 오히려 돌팔이 의사들의 사이비 독극물 처방에 의해 죽어나가는 권력자들도 부지기수였다고 하니 권력의 허상을 보게 된다. 둘째, 인간의 무지함과 어리석음을 본다. 치명적인 중금속들을 약으로 여기고 처방을 남발했던 당시 의사들이나 그것을 비책으로 여기고 복용하며 도포했던 왕족들과 귀족들의 모습 속에서 인간 무지의 극치를 발견한다.

그런데 맺는말에서 저자의 반문이 핵폭탄 급 반전이다. 의학이 발달했기에 독과는 상관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은 과연 안전한가? 답은 No! 암이나 자폐증, 치매를 유발하는 수많은 화학제품을 먹고 마시고 바르는 삶이 지금 우리의 삶이다. 그야말로 우리네 삶은 독약과의 동침이다! 먼 미래의 후손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중세 유럽 왕실에서 비소와 납 크림을 바르고 수은 관장 등을 행했던 그들을 비웃었듯이 우리를 비웃을 것이다. 역사는 수레바퀴와 같고 해 아래 새것이 없다.

권좌를 지키려고 독살을 시도하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독을 약으로 여기고 사용했다. 독이 약이 되고 약이 독이 되는 요지경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삶을 보며 우리의 삶을 성찰한다. 돈과 권력과 명예와 인기와 지위에 대한 말 할 수 없는 탐욕, 그것을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보이지 않는 싸움이 독살을 불러왔다. 비극의 근원은 언제나 인간 내면의 탐욕이다. 매혹적으로 아름다워만 보이는 중세 유럽 왕실의 숨겨진 추잡함을 가감 없는 전라의 모습으로 볼 수 있는 책으로서 본서는 충분한 인문학적 가치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매우 재미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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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영랑시집 - 1935년 시문학사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김영랑 지음 / 더스토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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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에는 소월이 있다면 남쪽에는 영랑이 있다!" 남과 북의 대표적 서정 시인으로서 김소월과 김영랑을 가리키는 말이다. 김소월에게 있어서 <진달래꽃>이 있다면 김영랑에게는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표적 서정 시인들의 이름과 함께 따라다니는 시그네이처와 같은 작품들이다. 특별히 본 시집에는 남쪽의 순수 서정시를 대표하는 김영랑 시인의 작품 81편이 알차게 수록되어 있다. 일제 치하에서 태어나 나라 잃은 백성의 설움을 간직하며 살았지만 그의 시에서는 암울함과 슬픔의 그림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당시 정치적 이념과 성향을 드러낸 시집들이 많았지만 영랑의 시는 서정적이며 순수하고 아름다운 감정의 미학을 여실히 드러낸다.

예전에 백석 시인의 <사슴>을 통해 북녘땅의 토속적 방언으로 그려진 시에서 깊은 흙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이번 영랑시집에서는 전라도 방언의 정겨움과 구수함이 전해진다. 시인이 주로 활동했던 고장과 지방의 색깔이 묻어 나오는 시는 사람 냄새가 나서 좋다. 영랑시집 또한 이와 같다. 시대의 상황은 분명 어둡고 참담했지만 이러한 암울함 속에서 밝은 희망과 바람을 단어 하나하나에 압축시킨 시인의 노력이 전해진다. 그렇기에 독자는 영랑 시인의 시를 통해 작은 소망의 씨앗이 어둠과 절망의 진토를 뚫고 싹을 띄우는 문학적 발아의 현장을 목격한다. 순수 문학이 가진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감당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일본 제국주의 군홧발에 짓밟히며 신음하는 민초들의 비참한 현실 속에서 영랑의 시는 아직 오지 않은 봄을 노래한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계절의 순환은 정해진 법칙이다. 이렇듯 시인의 시는 터널과 같은 암흑 속에 내던져진 민족의 가슴에 아름다운 심미적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삶은 살만한 것이고 아직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음을...

 

 

영랑 시인의 대표적 작품으로서의 시 한 편을 보자!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중략)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상징적 의미의 어휘가 수놓아져있다. 시인이 말하는 모란은 무엇이고 봄은 무엇일까? 전문적인 해제를 보게 되면 이 시가 의미하는 바를 수학 문제의 정답처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독자로서 고유의 심상으로 시를 읽고 싶다. 나름대로 해석한 영랑의 모란은 잃어버린 조국의 주권, 봄은 일제로부터의 해방,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은 조선이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날이다. 봄(자유)을 여읜(빼앗긴) 것이 시인에게 설움과 슬픔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마지막에 시인은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는 말이 되지 않는 모순 어법을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시인에게 있어서 봄은 두 가지의 중첩된 의미를 가진다. 봄(해방, 자유)은 그 자체로서 찬란할 정도로 눈부시지만 지금은 빼앗겼기에 슬픔만이 투사된 봄(해방, 자유)인 것이다.

정치적 성향과 이념을 배제한 유미적이고 상징적인 서정시를 썼던 시인이지만 그 또한 나라 잃은 백성이었다. 또한 그가 광복 전까지 일제의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등을 거부했다는 사실은 그의 시에 묻어나는 저항적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노골적인 항일 정신을 분출하지 않았지만 시인은 자신만이 가진 문학적 실력을 십분 발휘하여 자신의 시 속에 숨겨진 투쟁의 정신을 코드화한 것이 아닐까? 물론 독자인 나만의 생각이다.

 

 

또 다른 느낌의 시를 감상해보자!

<향내 없다고>

향내 없다고 버리실라면

내 목숨 꺽지나 마시오

외로운 들꽃은 들가에 시들어

철없는 그이의 발끝에 좋을걸

나는 이 시를 읽으며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로 시작하는 소월의 <진달래꽃>이 연상되었다. 향내가 없기에 버리고 가는 님과 나 보기가 역겨워 떠나는 님이 가지는 시적 심상이 묘하게 어울린다. 영랑과 소월 시의 화자는 모두 떠나보내는 사람의 입장이다. 슬픔과 원망이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내가 이제 향내(쓸모)가 없기에 버리고 떠나는 그 사람은 상대방을 의미 있게 여기지 않는 형편없고 철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화자는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망나니와 같이 비루한 사람이지만 그 철없는 그이의 발끝에라도 있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한다. 어휘의 나열이 감각적이고 깊다. 천박함은 찾아볼 수 없고 차분하게 가라앉은 느낌이 깊이 우러나온 차 잎의 짙은 향기와 같다. 아울러 정직한 감정을 토로하는 시인의 마음이 맑다.

81편의 시가 53편과 28편의 시로 나뉘어서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약간의 시기적 구분이 있으며 그에 따라서 시인이 표현하는 시상이 조금씩 상이함을 느낄 수 있다. 전반부의 시들은 대체로 순수 서정시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나라 잃은 백성이 말하는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정제된 언어의 향연이 지면을 채운다. 대다수 시는 4행으로 한연을 구성하는 정형시의 형식을 취한다. 그래서 호흡이 짧고 입안에 운율이 맴돈다. 짧기에 더 함축적이고 상징적이며 간혹 역설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후반부에 실린 시들은 느낌이 생소하다. 서정적인 아름다움의 기본 골격을 무너뜨리지는 않지만 표현하고 발산하는 느낌의 결이 전반부 시들과는 사뭇 다르다. 처형장, 죽음과 같은 어두운 이미지를 그리는 시들이 등장한다. 일본의 식민 통치가 막바지에 이르며 악에 받힌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한창인 시기에 쓰인 시들은 시상 자체에 암울함이 서려있다. 시인은 문인으로서 자신의 문학적 사명을 일제의 잔혹한 핍박의 시기 속에서도 결코 놓치지 않았다.

총칼을 들고 일본제국주의의 심장을 강타한 무장 항일운동가들이 있었다. 반면 붓과 펜으로서 일제에 저항하며 항일했던 저항 시인들이 존재했다. 또한 붓과 펜이 직접적으로 일제의 심장을 겨누지는 않았지만 일제에 의해 민족의 정서와 감정이 메말라가고, 아름다움에 대한 미적 감각이 소멸되어가는 것을 막아선 사람들도 있다. 영랑 시인은 바로 이와 같은 부류의 문인이라고 여겨진다. 그가 쥔 붓과 펜은 적의 심부를 겨눈 것이 아니라 민초들의 마음을 겨눴다. 민초가 살아야 해방 이후를 도모할 수 있음을 알았기에 백성들의 마음과 감정마저 일제에 의해 유린되고 늑탈 당하지 않도록 그의 시는 무형의 방패가 되었다.

이렇듯 아름답고 서정적인 시로서 고통의 시기를 통과하는 민족의 가슴에 희망과 소망의 씨앗을 뿌렸다. 언제 싹이 나고 꽃을 피우며 열매 맺을지 그 누구도 모르는 시대를 살았지만 시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했다. 본인 스스로가 3.1 운동으로 인해 6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했을 정도로 시인에게는 이미 항일의 마음이 충만했다. 저항의 펜끝이 가리키는 방향은 달랐지만 시인이 써 내려간 한 편의 시 속에 녹아져 있는 정신은 극일이며 민족혼의 부활이 아니었을까? 이 시대 순수 서정시가 가진 깊은 여운을 느껴보고 싶다면 소월과 대비되는 영랑의 시집은 단연코 최고의 선택이 아닐까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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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학 - 기독교인 책 읽기 가이드
토니 라인케 지음, 김귀탁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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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에게는 지독한 독서 편식 습관이 있었다. 대학시절 깊이 심취해있었던 어느 은사주의 기독교 선교 단체의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만 병적으로 사서 읽었다. 거의 편집광적이었기에 학생 시절 없는 돈을 쪼개서 사 모았던 책들이 꽤 된다. 지금은 그중에서도 좀 건전하다 싶은 몇 권만을 남겨두고 나의 서가에서 싹 다 밀어낸 상태다. 이렇듯 신앙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어리숙한 청년 시절에 나는 바보 같은 독자였다. 최근 이 바보 같은 독자가 10년만 빨리 만났으면 독서 습관을 바꾸고 어쩌면 인생도 바뀌었을 독서에 관한 훌륭한 책을 구입해서 읽었다. 얼마 전 깊은 영감을 얻은 <스마트폰, 일상이 예배가 되다>의 저자 '토니 레인케'의 좀 더 오래된 책 <독서신학>이 그것이다.

이 책은 부제에서 드러나듯이 '기독교인 책 읽기 가이드'이다. 기독교 신자로서 독서의 당위성과 실제적인 독서 지침을 균형 있게 가르친다. 1부에서는 책과 독서의 신학이라는 큰 주제하에 성경이 말하는 책 읽기, 비디오 지향적인 우리 문화 속에서 활자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 신자의 독서에 있어 성경적 세계관의 중요성, 비기독교 독서의 유익 등이 매우 세밀한 필치로 소개된다. 더불어 2부에서는 독서의 실제적 지침으로써 책을 효율적으로 읽게 하는 깨알 조언이 가득하다. 책에 어떻게 밑줄을 긋고 메모할 것인가부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독서 그룹을 만들고 인도하는 방법까지 정말 깨알 조언이 맞다!

 

현대 문화에서 언어보다 비디오 형상이, 지성적인 것보다 미적인 것이 더 매력을 끄는 현상...(중략) 문제는 기독교인들이 말 속에 담겨 있는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충분히 인내할 것이냐, 아니면 우리 문화 속에서 급속도로 변하는 이미지들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피상적인 즐거움에 점차 만족하게 될 것이냐에 있다. p70

 

1부에서 많은 내용들이 있었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이야기는 위와 같다. 예전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신문을 찾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스마트폰을 켜고 밤 사이의 뉴스와 이메일, SNS를 확인한다. 이것이 활자를 밀어낸 이미지 중심 문명의 도구들이 가진 위상이다. 활자 매체가 전달하는 그 원초적인 지적 희열보다는 인스타그램의 비주얼적이며 감각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된 현대인들의 마음은 이렇듯 디지털 기기에 점거된 지 오래다. 지성적인 것보다는 미적인 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 끄는 세상 속에서 잉크와 종이 냄새를 풍기는 독서는 너무나 원시적이고 1차원적이다. 저자는 독서를 통해 저자가 말하는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충분한 인내심을 잃어버린 기독교인들을 염려한다. 수 없는 피드에 의해 인스턴트식으로 올라오는 SNS의 이미지들은 휘발성이 특징이다. 일시적이고 피상적인 만족만을 줄 뿐 인간을 깊은 사유로 이끌지 못한다. 단지 자신의 게시글에 빨간색 '좋아요' 숫자와 하트로서 주어지는 일종의 디지털 마약이다.

 

소위 '기독교' 서적에서 나오는 영적 위험들이 더 유해하다...(중략) 성경의 진리가 교회 안에서 어떤 사람의 손에 뽑혀 나오고 뒤틀려질 때 이단이 태어난다. 그 결과 나타난 오류는 교회 밖에서 연원하는 어떤 오류보다 더 위험하다. p97~p98

 

또한 저자는 신자들이 읽어도 좋은 책과 피해야 할 위험성 있는 책들에 대한 경고를 잊지 않는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사실은 저자가 지적하는 핵심 중 하나로써 소위 기독교 '신앙 도서'라는 책들이 가진 영적 위험이다. 신자들의 영혼을 위협하는 요소는 교회 밖 이단이 아닌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여 영혼을 노략질하는 교회 내에 있는 트로이의 목마와 같은 '신앙 도서'들이다. 서론에서 나의 경험이 그것을 증명한다. 심각하게 경도된 카리스마틱한 도서들을 포함해서 한때 조국 교회에 큰 히트를 치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목적과 긍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책들, 가계에 저주가 대물림 된다는 식의 허언 가득한 책들은 분명 저자가 말하는 책들 가운데 하나이다. 단지 기독교 신앙 도서이기에 또는 저자가 유명한 목사님이기에 좋은 책일 것라며 덮어놓고 선택하는 독자들의 모습 속에서 청년 시절 바보 같은 독자로서의 나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건강하고 균형 잡힌 독서 가이드를 해 줄 독서 멘토의 부재로 인한 비극이다. 

 

 

2부에서는 이제 독서를 위한 실제적 지침들을 소개한다. 현대 독자들에게 독서를 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너무 바빠서 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바빠서 독서를 못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은 어찌 되었든 전부 한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독서는 못하지만 현대인들의 TV와 넷플릭스, 유튜브, SNS 사용 시간은 여전히 높다. 저자는 이러한 데이터를 보여주며 우리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독서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를 하기 싫기 때문에 독서를 못하는 것이라는 뼈 때리는 불편한 진실을 말해준다. 그렇다. 우리는 저자의 송곳 같은 지적대로 너무 바빠서 책을 못 읽는 것이 아니다. 단지 책을 읽기 싫어서 안 읽는 것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책을 읽는 데 요구되는 훈련을 거부하기 때문에 책을 멀리한다. 그리고 그것은 영적 문제로서, 시간 부족의 문제가 아닌 인격적 훈련의 문제다. (중략) 만일 우리가 게으름과 방종과 같은 우상들을 죽이지 않는다면 이 우상들은 우리의 독서 능력을 죽일 것이다. p214

한국 성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간 독서량의 지표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독서 현실을 대변한다. 한국 성인 독서량이 연간 6.1권이며 10명 중 1명은 지난 1년간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고 한다. 두 달 전 서울에 갈 일이 있어서 정말 오랜만에 지하철을 탔는데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내가 앉아 있는 맞은편 한 줄의 사람들 전원이 스마트폰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읽었다. 너무 신기해서 주위를 둘러봤는데 내가 탄 칸의 승객 중 99%가 스마프폰을 보고 있는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보며 위의 지표가 말해주는 데이터가 거짓이 아님을 실감했다. 예전에는 그래도 지하철에서 신문이며 책을 보는 사람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었는데 그것도 이제는 옛말이 된 지 오래다. 파도와 같은 디지털 물결 속에서 심심할 틈을 허용치 않는 너무나 재미있고 흥미로운 콘텐츠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렇기에 이제 우리는 구텐베르크가 아닌 구글과 넷플릭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우리의 지성과 감성의 전당에 모시고 살아간다.

마지막으로 책을 통해 발견한 중요한 tip은 '한 번에 세 권의 책을 읽는 것', '지속적이고 직선적인 집중력을 보존하고 계발하기','책에 메모하고 줄 긋는 방법'과 같은 매우 실제적인 내용이다. 장소와 시간에 따라 한 번에 세 권의 책을 멀티로 읽는 독서 습관의 효율성을 이야기하는 저자에게 매우 공감했다. 왜냐하면 현재 나 또한 이와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트를 옆에 두고 공부하듯 읽는 공부 독서(보통 묵직한 신학, 철학 도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신앙 도서 또는 비기독교 도서 그리고 서평단에 참여해서 읽게 되는 도서 등으로 분류한다. 또한 저자는 치고 빠지듯 단편적으로 필요한 정보만을 받아들이는 인터넷 습관이 우리의 지속적이고 끈기 있는 직선적 집중력에 유해함을 말한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한 권의 책을 60분 내지 90분 정도 우직하게 읽어낼 수 있는 인내와 집중력이 필요하다. 토막 치듯 클릭하고 미끄러지듯 스크롤을 올리는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 고문과 같은 요구일 것이다.

"여백의 메모는 저자의 지성과 독자의 지성이 충돌하는 지점이다.(중략) 책 속에 메모를 하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기억해 두기 원하는 진리의 보석을 강조하고자 하는 데 있다." p245,247 나는 책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는다. 그리고 밑줄 그은 내용을 완독 후 [책속한줄]이라는 이름으로 블로그에 포스팅한다. 이것은 나중에 내가 다른 용도로 책의 내용을 인용할 때 꺼내어 쓸 수 있는 요긴한 문학적 재료가 된다. 또한 책에 관한 나의 망각을 되살려줄 수 있는 이정표와 같다. 아울러 기독교 신자로서 비기독교 책들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 또한 탁월하다. 하나님께서는 일반은총 속에 비기독교인 저자들의 책을 통해 인간과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이해하며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물론 여기에는 독자의 지성 속에 바른 성경적 세계관이 정립되고 기반되어야 한다는 선행 조건이 전제된다.

본서를 통해 나의 독서습관을 다시 한번 점검할 수 있었다.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줄이고 다시금 효율적인 독서의 계획들을 세워본다. 독서를 하는 이유와 목적의 참됨을 성찰하며 신자로서 독서의 목적이 나의 즐거움과 단순 지식을 쌓고 그것을 자랑하기 위한 교만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신자가 추구해야 하는 독서의 궁극적 목적은 결국 신적 영광의 구현이다. 그다음이 우리의 지성을 고양함으로써 얻게 되는 책을 통한 심미적이고 지적인 즐거움이다. 나는 인생에서 황금기의 시간을 잘못된 신앙 도서들을 탐독하며 돈과 시간, 열정을 낭비했다. 바른 독서 멘토를 만날 수 없었기에 벌어진 참극이다. 이 책은 이처럼 기독교 신자들이 나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읽어봐야 할 필독서이다. 더불어 독서를 해야 하는 성경적 이유와 목적, 좋은 책을 선별하는 기준, 비기독교 도서의 유익, 책을 읽는 데 있어서의 모든 기술적이고 실제적인 지침 등을 제공하는 훌륭한 나침반이자 가이드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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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철학 수업 - 디즈니 영화 속 숨어 있는 철학 이야기
메건 S. 로이드 외 31인 지음, 리처드 B. 데이비스 엮음, 최지원 옮김 / 서울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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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일요일 아침마다 졸린 눈을 비비며 TV를 켰다. 이유는 일요일 아침 7시경에 방영해 주는 만화 영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TV 브라운관을 통해 보이는 만화의 주인공들은 다름 아닌 '월트 디즈니'의 고전적 캐릭터인 미키, 미니, 도널드, 데이지, 구피, 플루토 등이다. 볼거리가 드물던 시절 이 애니메이션은 내 또래 아이들의 독보적 즐거움 중 하나였다. 그런데 얼마 전 디즈니와 관련된 매우 흥미롭고 개성 있는 책 한 권을 만났다. 책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32명의 대학교수, 철학자, 인문학자들이 우리가 즐겨봤고, 여전히 즐겨 보고 있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철학적 메시지로 풀어낸다.

책은 미키, 미니와 같은 고전적 캐릭터부터 뮬란, 주토피아, 토이스토리, 라이언킹, 인크레더블, 인사이드 아웃, 겨울 왕국에 이르는 현대적 캐릭터를 아우른다. 총 6개의 챕터, 27편으로 구성되어 디즈니 사단이 선보인 대표적 애니메이션 속에 흐르는 인문학적이며 철학적인 메시지의 진의를 독자에게 들려준다. 인어공주의 주인공 에리얼을 통해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발견하고, 뮬란을 통해서는 페미니즘과 성 정체성의 문제를 끄집어낸다. 인크레더블을 통해서는 누구나가 특별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통해 디즈니의 환상적인 기술이 선불교의 교리를 만난다. 더불어 슈퍼 영웅들의 행동에 제약을 가하는 법적 문제에 대해서는 영국의 그 유명한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까지 소환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슈퍼 영웅들로 하여금 그의 <자유론>에 근거한 자유와 책임에 관한 한계를 설정해 준다. 페미니즘, 동성애, 선불교적 영성, 맹자 사상, 선전(宣傳), 환경 문제, 실존주의, 유토피아, 미디어, 고대 신화, 불교적 윤회와 죽음, 진화론, 정치철학 거기에 더해 가족의 가치까지 그야말로 디즈니의 세계관은 각종 사상과 철학의 잡탕 용광로가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전 세계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열광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숨겨진 철학적 메시지를 찾아가는 나름의 재미가 있다.

특별히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보았던 애니메이션 몇 편을 책 속에서 만날 수 있었기에 반가웠다. 애니메이션 <겨울 왕국>의 열풍은 한동안 동네 마트에만 나가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엘사의 푸른 드레스 복장을 한 5~6세 여아들의 모습 속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첫째 아이와 함께 <겨울 왕국 2>를 봤다. 책은 겨울 왕국에 숨겨진 메시지를 진정한 사랑의 의미라고 말한다. 부모를 여읜 엘사와 안나 자매의 강한 형제애는 참된 사랑이 결국에는 모든 두려움과 시련을 이긴다는 걸 가르친다. 자신의 마법이 사랑하는 동생 안나와 주변의 사람들을 해칠 수도 있다는 걱정으로 자발적 외로움과 고독을 선택하는 엘사, 어떠한 위험이 기다린다 할지라도 언니와 끝까지 함께 하려고 하는 동생 안나가 가진 자기 헌신의 모습은 온전한 사랑의 의미를 드러낸다.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과거의 삶과 죽음까지도 짊어지는 신성한 개념이다." 타인을 향한 열린 마음,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세상 속에서 겨울 왕국이 가진 메시지는 차갑지 않고 오히려 따뜻하다. 마치 여름을 사랑하는 사랑스러운 눈사람 올라프의 반전 매력과 같이 말이다.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상상 지도의 식민지화>라는 테마는 디즈니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흥미롭지만 다소 충격적인 내용이다. "플레이보이나 맥도날드, 코카콜라와 마찬가지로 디즈니 브랜드는 하나의 인식론이자 철학이며, 형이상학, 세계관, 삶의 방식이다." 디즈니는 그것을 신봉하는 모든 이들에게 현실 도피적인 환상을 제공하는 데에 최적화된 아이템이다. 깊이 생각하기를 꺼려 하는 현대인들이 디즈니가 던져주는 달콤하고 매혹적인 콘텐츠에 중독되어 약효가 유지되는 잠깐이나마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음을 꼬집는 내용이다. 이것은 종교적이든 그렇지 않든 모든 사람들이 은밀히 증오하고 있는 종교의 종말을 상징한다. 더불어 정형화되고 규격화되어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인간다운 것이고 바른 삶이라는 교과서적이고 꼰대적인 전통 종교에 대한 은밀한 증오를 부추긴다. 왜냐하면 디즈니 세계관과 테마파크 매직 킹덤 안에서는 규율을 벗어나 누구든지 공주가 될 수 있으며 슈퍼 영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즈니는 '우리는 미래의 신화를 창조한다'라는 핵심 구호를 내세우며 사람들의 구조적 잠재의식의 영역까지 점거하기 위해 '칼 융'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한때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열광하던 마이어스의 MBTI가 칼 융의 네 가지 성격 원형에서 탄생했으며 디즈니는 이를 바탕으로 유난히 불교적 색채가 강한 12단계 <스타워즈>의 최종 각본을 만들었다. 또한 디즈니는 <나니아 연대기>의 아슬란이 기독교의 예수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며 나니아 연대기가 기독교적 영화가 아님을 밝히며 큰 진통을 겪었다. 이제 디즈니는 엄청난 자금력을 바탕으로 전체 미디어 분야 1/3을 흡수 통합함으로써 거대 제국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중에서도 디즈니가 세계 최대의 포르노그래피 제작자 중 한 명인 '루퍼트 머독'의 <21세기 폭스>를 인수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뉴스코퍼레이션 산하에 있는 하퍼콜린스의 자회사 중 하나가 '존더반 출판사'인데 이 출판사는 지금 내 책상에도 놓여 있는 NIV(새국제역 성경) 성경의 독점 출판권을 보유한 회사다. 세계 최대의 포르노 제작자가 소유한 회사가 성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니 기막힌 아이러니다. 이 챕터의 요지는 이렇다. 디즈니는 이제 인간의 인식 속에서 펼쳐질 수 있는 대부분의 상상 지도를 식민지화하는데 성공했으며 유일하게 넘지 못했던 두 개의 성(城)인 성(性)과 성(聖)의 영역까지 넘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책을 덮으며 총평을 하자면 어린 시절 나의 일요일 아침잠을 깨웠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에 숨겨진 철학적 메시지들과 디즈니 사단이 가진 기업 경영철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요긴한 책이다. 그리고 편파적인 디즈니 예찬론을 펼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디즈니 해악론, 폐기론을 외치지도 않는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32명의 학자들이 공저했기에 주관적으로 흐를 수도 있는 맥락을 객관적인 관점으로 보정한다. 우리의 일상 속에 이제는 너무나 깊이 들어와있는 디즈니 관련 콘텐츠들은 영화, 애니메이션, 옷, 장난감, 피규어, 음식을 비롯해 셀 수 없이 많다. 적과의 피할 수 없는 동침이라면 정확하게 알고 보고, 사용하는 소비자의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꿈과 희망, 미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매직 킹덤, 월트 디즈니의 세계관과 기업 철학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조망해보길 원하는 독자에게는 매우 큰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반면 디즈니 사단이 가진 다소 음흉한(?) 세계관과 내막을 들여다보길 원하는 독자들에게도 이 책은 흥미롭게 접근할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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