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살로 읽는 세계사 - 중세 유럽의 의문사부터 김정남 암살 사건까지, 은밀하고 잔혹한 역사의 뒷골목 현대지성 테마 세계사 5
엘리너 허먼 지음, 솝희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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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함 속에 감춰진 추악한 이야기"

 

몇 년 전 동네 노인들이 노인정에서 농약 섞인 사이다를 마시고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일명 '농약 사이다 살인사건'. 동네 노인들의 사소한 다툼 끝에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참극이다. 이렇게 먹고 마시는 음식에 독약을 넣어 대적자를 살해하는 일은 인류 역사 속에서 그 기원이 오래다. 독살이라는 끔찍하지만 흥미로운 주제를 세계사와의 연관성 속에서 인문학적으로 고찰한 책이 바로 오늘 서평 하는 <독살로 읽는 세계사>이다. 미국 태생의 저자 '엘리너 허먼'은 언론학을 전공하고 출판사 편집자로 일한 경력이 있다. 그녀는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흥미로운 스토리로 탈바꿈시키는 이야기 연금술사로 평가받는다. 본서는 인류 역사 가운데 존재했던 독살이라는 독특한 주제를 역사적이고 인문학적인 교훈과 절묘하게 매칭 시킨다. 저자는 우선 중세 유럽의 왕궁에서 벌어졌던 독살의 역사와 기원을 파헤친다. 더불어 중세 유럽 왕실에서 벌어졌던 미스터리한 독살 사건을 다루며 베일에 싸여왔던 진실의 문빗장을 열어젖힌다. 3장에서는 독극물로 정적을 살해하는 일들이 중세 시대만이 아닌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일임을 최근 몇몇의 사건을 통해 소개한다.

중세 유럽의 왕궁에서는 독극물이 암살을 위한 도구로 쓰이기 이전에 의약품의 하나로서 오용되어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망자의 강을 건너게 만들었다. '사람 잡는 의사'라는 제목의 챕터에서 당시 의사들이 납, 수은, 비소, 안티몬 등의 중금속을 약으로서 버젓이 처방 내렸음을 보게 된다. 수은으로 관장을 하고 피부 궤양 환자의 피부에 수은과 납 연고를 바르도록 처방했다. 의학적 지식이 전무하던 시대에 의사들은 돌팔이의 수준을 넘어 마치 주술사와 같았다. 죽은 아기의 피와 살, 인간의 시체와 각종 동물들의 사체와 배설물과 장기 등을 혼합하여 약을 만들었다. 마치 마녀들이 비약을 제조하는 것과 같은 오컬트적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러한 약을 처방받은 환자들은 거의 생체실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고 많은 이들이 감염과 독성에 의해 생명을 잃었다.

2부에서는 다양한 유럽 왕실 인물들의 독살 사건을 다룬다. 우리가 아는 인물 가운데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나 나폴레옹과 같은 이들의 죽음도 독살과의 연관성 속에서 그 진위를 밝힌다. 흥미로운 점은 왕실 인물들의 사인을 당대 부검의들의 소견과 현대 법의학자들의 소견의 대비를 통해 밝힌다는 것이다. 지금껏 독살이라고 여겼던 사람의 사인이 독살이 아니고 여타의 질병으로 인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여럿이다. 마지막 3부에서는 현대에 벌어지는 정치적 독살의 현장을 스케치한다. 주로 러시아에서 벌어진 암살과 독약의 관계를 밝히며 최근 북한 김정남 독살 사건에 관한 이야기도 독자의 관심을 끌기 충분하다.

 

 

"권력의 정점에서 남는 것은 무엇인가?"

 

인류 역사 가운데 권력을 향한 갈망은 끝이 없었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과 흡사한 인간사 각축장에서 상대방을 죽여야지만 내가 그의 권력을 차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광기의 현장 속으로 안내했다. 책은 잘 짜인 한편의 인문학적 지식을 전달한다. 단순한 재미와 흥미로서 책을 덮는다면 분명 독자로서 많은 것을 놓치는 것이다. 첫째, 책은 권력의 허망함을 보여준다. 끝까지 올라간 정상에서 행복은커녕 자신의 음식에 독이 들었을 것을 염려하여 매 끼니마다 일종의 기미 상궁들이 들쑤셔놓은 개밥 같은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니 이보다 아이러니컬한 일이 어디있겠는가? 또한 밥 한끼도 마음 편하게 못 먹는 권력의 정상에서 오히려 돌팔이 의사들의 사이비 독극물 처방에 의해 죽어나가는 권력자들도 부지기수였다고 하니 권력의 허상을 보게 된다. 둘째, 인간의 무지함과 어리석음을 본다. 치명적인 중금속들을 약으로 여기고 처방을 남발했던 당시 의사들이나 그것을 비책으로 여기고 복용하며 도포했던 왕족들과 귀족들의 모습 속에서 인간 무지의 극치를 발견한다.

그런데 맺는말에서 저자의 반문이 핵폭탄 급 반전이다. 의학이 발달했기에 독과는 상관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은 과연 안전한가? 답은 No! 암이나 자폐증, 치매를 유발하는 수많은 화학제품을 먹고 마시고 바르는 삶이 지금 우리의 삶이다. 그야말로 우리네 삶은 독약과의 동침이다! 먼 미래의 후손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중세 유럽 왕실에서 비소와 납 크림을 바르고 수은 관장 등을 행했던 그들을 비웃었듯이 우리를 비웃을 것이다. 역사는 수레바퀴와 같고 해 아래 새것이 없다.

권좌를 지키려고 독살을 시도하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독을 약으로 여기고 사용했다. 독이 약이 되고 약이 독이 되는 요지경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삶을 보며 우리의 삶을 성찰한다. 돈과 권력과 명예와 인기와 지위에 대한 말 할 수 없는 탐욕, 그것을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보이지 않는 싸움이 독살을 불러왔다. 비극의 근원은 언제나 인간 내면의 탐욕이다. 매혹적으로 아름다워만 보이는 중세 유럽 왕실의 숨겨진 추잡함을 가감 없는 전라의 모습으로 볼 수 있는 책으로서 본서는 충분한 인문학적 가치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매우 재미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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