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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영랑시집 - 1935년 시문학사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ㅣ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김영랑 지음 / 더스토리 / 2021년 4월
평점 :

"북쪽에는 소월이 있다면 남쪽에는 영랑이 있다!" 남과 북의 대표적 서정 시인으로서 김소월과 김영랑을 가리키는 말이다. 김소월에게 있어서 <진달래꽃>이 있다면 김영랑에게는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표적 서정 시인들의 이름과 함께 따라다니는 시그네이처와 같은 작품들이다. 특별히 본 시집에는 남쪽의 순수 서정시를 대표하는 김영랑 시인의 작품 81편이 알차게 수록되어 있다. 일제 치하에서 태어나 나라 잃은 백성의 설움을 간직하며 살았지만 그의 시에서는 암울함과 슬픔의 그림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당시 정치적 이념과 성향을 드러낸 시집들이 많았지만 영랑의 시는 서정적이며 순수하고 아름다운 감정의 미학을 여실히 드러낸다.
예전에 백석 시인의 <사슴>을 통해 북녘땅의 토속적 방언으로 그려진 시에서 깊은 흙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이번 영랑시집에서는 전라도 방언의 정겨움과 구수함이 전해진다. 시인이 주로 활동했던 고장과 지방의 색깔이 묻어 나오는 시는 사람 냄새가 나서 좋다. 영랑시집 또한 이와 같다. 시대의 상황은 분명 어둡고 참담했지만 이러한 암울함 속에서 밝은 희망과 바람을 단어 하나하나에 압축시킨 시인의 노력이 전해진다. 그렇기에 독자는 영랑 시인의 시를 통해 작은 소망의 씨앗이 어둠과 절망의 진토를 뚫고 싹을 띄우는 문학적 발아의 현장을 목격한다. 순수 문학이 가진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감당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일본 제국주의 군홧발에 짓밟히며 신음하는 민초들의 비참한 현실 속에서 영랑의 시는 아직 오지 않은 봄을 노래한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계절의 순환은 정해진 법칙이다. 이렇듯 시인의 시는 터널과 같은 암흑 속에 내던져진 민족의 가슴에 아름다운 심미적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삶은 살만한 것이고 아직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음을...

영랑 시인의 대표적 작품으로서의 시 한 편을 보자!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중략)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상징적 의미의 어휘가 수놓아져있다. 시인이 말하는 모란은 무엇이고 봄은 무엇일까? 전문적인 해제를 보게 되면 이 시가 의미하는 바를 수학 문제의 정답처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독자로서 고유의 심상으로 시를 읽고 싶다. 나름대로 해석한 영랑의 모란은 잃어버린 조국의 주권, 봄은 일제로부터의 해방,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은 조선이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날이다. 봄(자유)을 여읜(빼앗긴) 것이 시인에게 설움과 슬픔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마지막에 시인은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는 말이 되지 않는 모순 어법을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시인에게 있어서 봄은 두 가지의 중첩된 의미를 가진다. 봄(해방, 자유)은 그 자체로서 찬란할 정도로 눈부시지만 지금은 빼앗겼기에 슬픔만이 투사된 봄(해방, 자유)인 것이다.
정치적 성향과 이념을 배제한 유미적이고 상징적인 서정시를 썼던 시인이지만 그 또한 나라 잃은 백성이었다. 또한 그가 광복 전까지 일제의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등을 거부했다는 사실은 그의 시에 묻어나는 저항적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노골적인 항일 정신을 분출하지 않았지만 시인은 자신만이 가진 문학적 실력을 십분 발휘하여 자신의 시 속에 숨겨진 투쟁의 정신을 코드화한 것이 아닐까? 물론 독자인 나만의 생각이다.

또 다른 느낌의 시를 감상해보자!
<향내 없다고>
향내 없다고 버리실라면
내 목숨 꺽지나 마시오
외로운 들꽃은 들가에 시들어
철없는 그이의 발끝에 좋을걸
나는 이 시를 읽으며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로 시작하는 소월의 <진달래꽃>이 연상되었다. 향내가 없기에 버리고 가는 님과 나 보기가 역겨워 떠나는 님이 가지는 시적 심상이 묘하게 어울린다. 영랑과 소월 시의 화자는 모두 떠나보내는 사람의 입장이다. 슬픔과 원망이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내가 이제 향내(쓸모)가 없기에 버리고 떠나는 그 사람은 상대방을 의미 있게 여기지 않는 형편없고 철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화자는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망나니와 같이 비루한 사람이지만 그 철없는 그이의 발끝에라도 있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한다. 어휘의 나열이 감각적이고 깊다. 천박함은 찾아볼 수 없고 차분하게 가라앉은 느낌이 깊이 우러나온 차 잎의 짙은 향기와 같다. 아울러 정직한 감정을 토로하는 시인의 마음이 맑다.
81편의 시가 53편과 28편의 시로 나뉘어서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약간의 시기적 구분이 있으며 그에 따라서 시인이 표현하는 시상이 조금씩 상이함을 느낄 수 있다. 전반부의 시들은 대체로 순수 서정시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나라 잃은 백성이 말하는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정제된 언어의 향연이 지면을 채운다. 대다수 시는 4행으로 한연을 구성하는 정형시의 형식을 취한다. 그래서 호흡이 짧고 입안에 운율이 맴돈다. 짧기에 더 함축적이고 상징적이며 간혹 역설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후반부에 실린 시들은 느낌이 생소하다. 서정적인 아름다움의 기본 골격을 무너뜨리지는 않지만 표현하고 발산하는 느낌의 결이 전반부 시들과는 사뭇 다르다. 처형장, 죽음과 같은 어두운 이미지를 그리는 시들이 등장한다. 일본의 식민 통치가 막바지에 이르며 악에 받힌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한창인 시기에 쓰인 시들은 시상 자체에 암울함이 서려있다. 시인은 문인으로서 자신의 문학적 사명을 일제의 잔혹한 핍박의 시기 속에서도 결코 놓치지 않았다.
총칼을 들고 일본제국주의의 심장을 강타한 무장 항일운동가들이 있었다. 반면 붓과 펜으로서 일제에 저항하며 항일했던 저항 시인들이 존재했다. 또한 붓과 펜이 직접적으로 일제의 심장을 겨누지는 않았지만 일제에 의해 민족의 정서와 감정이 메말라가고, 아름다움에 대한 미적 감각이 소멸되어가는 것을 막아선 사람들도 있다. 영랑 시인은 바로 이와 같은 부류의 문인이라고 여겨진다. 그가 쥔 붓과 펜은 적의 심부를 겨눈 것이 아니라 민초들의 마음을 겨눴다. 민초가 살아야 해방 이후를 도모할 수 있음을 알았기에 백성들의 마음과 감정마저 일제에 의해 유린되고 늑탈 당하지 않도록 그의 시는 무형의 방패가 되었다.
이렇듯 아름답고 서정적인 시로서 고통의 시기를 통과하는 민족의 가슴에 희망과 소망의 씨앗을 뿌렸다. 언제 싹이 나고 꽃을 피우며 열매 맺을지 그 누구도 모르는 시대를 살았지만 시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했다. 본인 스스로가 3.1 운동으로 인해 6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했을 정도로 시인에게는 이미 항일의 마음이 충만했다. 저항의 펜끝이 가리키는 방향은 달랐지만 시인이 써 내려간 한 편의 시 속에 녹아져 있는 정신은 극일이며 민족혼의 부활이 아니었을까? 이 시대 순수 서정시가 가진 깊은 여운을 느껴보고 싶다면 소월과 대비되는 영랑의 시집은 단연코 최고의 선택이 아닐까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