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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철학 수업 - 디즈니 영화 속 숨어 있는 철학 이야기
메건 S. 로이드 외 31인 지음, 리처드 B. 데이비스 엮음, 최지원 옮김 / 서울문화사 / 2021년 4월
평점 :

어린 시절 일요일 아침마다 졸린 눈을 비비며 TV를 켰다. 이유는 일요일 아침 7시경에 방영해 주는 만화 영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TV 브라운관을 통해 보이는 만화의 주인공들은 다름 아닌 '월트 디즈니'의 고전적 캐릭터인 미키, 미니, 도널드, 데이지, 구피, 플루토 등이다. 볼거리가 드물던 시절 이 애니메이션은 내 또래 아이들의 독보적 즐거움 중 하나였다. 그런데 얼마 전 디즈니와 관련된 매우 흥미롭고 개성 있는 책 한 권을 만났다. 책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32명의 대학교수, 철학자, 인문학자들이 우리가 즐겨봤고, 여전히 즐겨 보고 있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철학적 메시지로 풀어낸다.
책은 미키, 미니와 같은 고전적 캐릭터부터 뮬란, 주토피아, 토이스토리, 라이언킹, 인크레더블, 인사이드 아웃, 겨울 왕국에 이르는 현대적 캐릭터를 아우른다. 총 6개의 챕터, 27편으로 구성되어 디즈니 사단이 선보인 대표적 애니메이션 속에 흐르는 인문학적이며 철학적인 메시지의 진의를 독자에게 들려준다. 인어공주의 주인공 에리얼을 통해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발견하고, 뮬란을 통해서는 페미니즘과 성 정체성의 문제를 끄집어낸다. 인크레더블을 통해서는 누구나가 특별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통해 디즈니의 환상적인 기술이 선불교의 교리를 만난다. 더불어 슈퍼 영웅들의 행동에 제약을 가하는 법적 문제에 대해서는 영국의 그 유명한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까지 소환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슈퍼 영웅들로 하여금 그의 <자유론>에 근거한 자유와 책임에 관한 한계를 설정해 준다. 페미니즘, 동성애, 선불교적 영성, 맹자 사상, 선전(宣傳), 환경 문제, 실존주의, 유토피아, 미디어, 고대 신화, 불교적 윤회와 죽음, 진화론, 정치철학 거기에 더해 가족의 가치까지 그야말로 디즈니의 세계관은 각종 사상과 철학의 잡탕 용광로가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전 세계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열광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숨겨진 철학적 메시지를 찾아가는 나름의 재미가 있다.
특별히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보았던 애니메이션 몇 편을 책 속에서 만날 수 있었기에 반가웠다. 애니메이션 <겨울 왕국>의 열풍은 한동안 동네 마트에만 나가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엘사의 푸른 드레스 복장을 한 5~6세 여아들의 모습 속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첫째 아이와 함께 <겨울 왕국 2>를 봤다. 책은 겨울 왕국에 숨겨진 메시지를 진정한 사랑의 의미라고 말한다. 부모를 여읜 엘사와 안나 자매의 강한 형제애는 참된 사랑이 결국에는 모든 두려움과 시련을 이긴다는 걸 가르친다. 자신의 마법이 사랑하는 동생 안나와 주변의 사람들을 해칠 수도 있다는 걱정으로 자발적 외로움과 고독을 선택하는 엘사, 어떠한 위험이 기다린다 할지라도 언니와 끝까지 함께 하려고 하는 동생 안나가 가진 자기 헌신의 모습은 온전한 사랑의 의미를 드러낸다.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과거의 삶과 죽음까지도 짊어지는 신성한 개념이다." 타인을 향한 열린 마음,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세상 속에서 겨울 왕국이 가진 메시지는 차갑지 않고 오히려 따뜻하다. 마치 여름을 사랑하는 사랑스러운 눈사람 올라프의 반전 매력과 같이 말이다.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상상 지도의 식민지화>라는 테마는 디즈니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흥미롭지만 다소 충격적인 내용이다. "플레이보이나 맥도날드, 코카콜라와 마찬가지로 디즈니 브랜드는 하나의 인식론이자 철학이며, 형이상학, 세계관, 삶의 방식이다." 디즈니는 그것을 신봉하는 모든 이들에게 현실 도피적인 환상을 제공하는 데에 최적화된 아이템이다. 깊이 생각하기를 꺼려 하는 현대인들이 디즈니가 던져주는 달콤하고 매혹적인 콘텐츠에 중독되어 약효가 유지되는 잠깐이나마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음을 꼬집는 내용이다. 이것은 종교적이든 그렇지 않든 모든 사람들이 은밀히 증오하고 있는 종교의 종말을 상징한다. 더불어 정형화되고 규격화되어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인간다운 것이고 바른 삶이라는 교과서적이고 꼰대적인 전통 종교에 대한 은밀한 증오를 부추긴다. 왜냐하면 디즈니 세계관과 테마파크 매직 킹덤 안에서는 규율을 벗어나 누구든지 공주가 될 수 있으며 슈퍼 영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즈니는 '우리는 미래의 신화를 창조한다'라는 핵심 구호를 내세우며 사람들의 구조적 잠재의식의 영역까지 점거하기 위해 '칼 융'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한때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열광하던 마이어스의 MBTI가 칼 융의 네 가지 성격 원형에서 탄생했으며 디즈니는 이를 바탕으로 유난히 불교적 색채가 강한 12단계 <스타워즈>의 최종 각본을 만들었다. 또한 디즈니는 <나니아 연대기>의 아슬란이 기독교의 예수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며 나니아 연대기가 기독교적 영화가 아님을 밝히며 큰 진통을 겪었다. 이제 디즈니는 엄청난 자금력을 바탕으로 전체 미디어 분야 1/3을 흡수 통합함으로써 거대 제국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중에서도 디즈니가 세계 최대의 포르노그래피 제작자 중 한 명인 '루퍼트 머독'의 <21세기 폭스>를 인수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뉴스코퍼레이션 산하에 있는 하퍼콜린스의 자회사 중 하나가 '존더반 출판사'인데 이 출판사는 지금 내 책상에도 놓여 있는 NIV(새국제역 성경) 성경의 독점 출판권을 보유한 회사다. 세계 최대의 포르노 제작자가 소유한 회사가 성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니 기막힌 아이러니다. 이 챕터의 요지는 이렇다. 디즈니는 이제 인간의 인식 속에서 펼쳐질 수 있는 대부분의 상상 지도를 식민지화하는데 성공했으며 유일하게 넘지 못했던 두 개의 성(城)인 성(性)과 성(聖)의 영역까지 넘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책을 덮으며 총평을 하자면 어린 시절 나의 일요일 아침잠을 깨웠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에 숨겨진 철학적 메시지들과 디즈니 사단이 가진 기업 경영철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요긴한 책이다. 그리고 편파적인 디즈니 예찬론을 펼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디즈니 해악론, 폐기론을 외치지도 않는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32명의 학자들이 공저했기에 주관적으로 흐를 수도 있는 맥락을 객관적인 관점으로 보정한다. 우리의 일상 속에 이제는 너무나 깊이 들어와있는 디즈니 관련 콘텐츠들은 영화, 애니메이션, 옷, 장난감, 피규어, 음식을 비롯해 셀 수 없이 많다. 적과의 피할 수 없는 동침이라면 정확하게 알고 보고, 사용하는 소비자의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꿈과 희망, 미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매직 킹덤, 월트 디즈니의 세계관과 기업 철학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조망해보길 원하는 독자에게는 매우 큰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반면 디즈니 사단이 가진 다소 음흉한(?) 세계관과 내막을 들여다보길 원하는 독자들에게도 이 책은 흥미롭게 접근할만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