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교육의 역사
후스토 곤잘레스 지음, 김태형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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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안수를 받고 목회 사역을 감당하는 목사들의 학문적, 교육적 기원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제법 유익한 책을 만났다. 저자는 감리교 신학 배경의 역사신학자 '후스토 곤잘레스' 교수다. 역사신학자로는 이미 한국에 정평 난 석학이다.

1세기 초대교회부터 20세기 근현대 교회의 신학 교육의 역사를 통전적 관점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책이 가지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신학 교육을 목회자 양성의 좁은 의미와 모든 신자들의 신앙 교육이라는 넓은 의미로 이해의 폭을 넓혔다. 또한 신학 교육의 역사를 통해 현재 교회와 신학교가 당면한 문제를 진단하고 미래적 대안을 제시한다.

서평으로 저자가 제시한 모든 시대 신학 교육의 형태를 상세하게 개관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독자 스스로가 직접 읽어보면 이 책의 가치를 실감할 수 있다.

개인적 통찰로 다가온 내용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중세 6~7세기 '카시오도루스'의 <교범서>의 내용이다. 카시오도루스는 교회 지도자들의 학업 과정에 있어서 트리비움(3학)과 콰드리비움(4학)의 개념을 설명했다. 신학(성경)을 공부하기 앞서 예과적인 개념으로 문법, 천문, 수사학을 공부하는 3학 과정을 거치고 이후 논리, 대수학, 기하, 음악의 4학 과정을 통과한 후에야 비로소 신학적 연구와 성경을 공부하는 과정에 들어간다.

그런데 이것은 중세 시대에만 있었던 관행이 아니다. 초대교회뿐 아니라 종교개혁의 시기에서도 발견된다. '마르틴 루터'의 그늘에 가려 일반인들에게는 덜 알려진 개혁자 '필립 멜란히톤'의 글을 보자!

 

누구든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사람은 그 과업을 돕는 인문학 공부를 통해 반드시 적절하게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p133

 

 

초대교회 '암브로스', '히에로니무스',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교부들은 성직의 옷을 입기 전 탄탄한 인문학적 지식을 쌓았고, 종교개혁 당시 '루터'나 '칼빈'으로 대표되는 프로테스탄트 개혁자들 또한 그랬다.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는 물론이거니와 다양한 인문학적 소양을 통해 지성적 준비를 다했다. 저자는 현대 교회 목회자들이 직면한 문제 중 하나가 '무지의 경전화'라고 말한다. 방대한 지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근현대 과학 문명의 시대 속에서 나의 분야가 아니기에 알 필요가 없고, 오직 신학과 신앙의 우월성으로 세상의 모든 현상과 문제를 재단하려고 하는 오만함에 대한 일갈이다.

 

책을 덮으며 생각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면 분명 교회를 포함한 사회 각계각층에 다양한 변화의 물결이 시작될 것이다. 다시 찾은 일상의 자유 속에서 표류하는 정신들과 공허한 인생의 문제들이 물음표를 갖고 다가올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교회는 사회로부터 동성애를 비롯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영도하에 이루어지는 다양한 가치들의 수용이라는 무형의 압박에 직면해있다. 절대 진리를 고수하면서 동시에 사회의 현상에 대해 교회의 목소리로 답해야 할 때다. 그리고 마이크는 교회 지도자들인 이 시대의 목회자들에게 쥐어졌다.

 

저자는 어떠한 일이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미래 목회 현장 속에서 단편적인 사고와 행동 방식만을 가르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말한다. 이 시대의 목회자들에게는 예상하지 못한 환경과 새로운 도전 속에서 확고한 성경적 진리와 신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도출해내고 제시해 줄 수 있는 깊은 안목과 혜안이 요구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탄탄한 인문학적 지식(리버럴 아트)이 목회자들의 지성 안에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대다수가 문맹이었던 초대교회와 중세 교회 시절 다수의 사제들 또한 무학자들 이었다. 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성경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사실이다. 성직록을 위해서 목회직이 공공연하게 매매되는 시대가 있었지만 역사적으로 목회자의 길이 요원했던 것은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비롯해 라틴어와 같은 고대어를 섭렵해서 라틴 교부와 헬라 교부들의 저작들을 자유자재로 읽어낼 수 있는 지성적 준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아무나 목회자가 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책을 통해 건져올린 가르침은 철학을 포함한 탄탄한 인문학적 지식, 성경과 건강한 신학적 가르침, 깊은 경건에서 우러나오는 실천적 삶(고결한 인성과 바른 성품)의 강조다! 신학 교육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개관해보는 본서를 통해 현대 교회의 문제와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한다. 저자는 말한다. 자신이 책을 통해 밝힌 대안이 실현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오랜 세월 이미 판이 짜인 상태에서 타성에 젖은 판을 깨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에 그렇단다. 그러나 신학 교육의 목적이 하나님을 더 잘 알기 위함이고,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을 더욱 잘 섬기고 높여드리기 위함이기에 판을 깨려는 노력은 교회가 해야 할 당연한 애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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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 - 내 인생을 바꾼 아우구스티누스의 여덟 문장
김남준 지음 / 김영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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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추운 겨울 주일 아침, 교회를 가던 열네 살 까까머리 중학생이 논둑길에 주저앉아 목놓아 울었다. 불현듯 찾아온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세계는 무엇이고 신은 존재하는가?의 존재적 물음 앞에 소년의 마음이 무너졌다. 죽는 게 무서운 것이 아니라 사는 게 두려웠기에 인생의 근원적 질문이 결코 벗어버릴 수 없는 무거운 등짐과 같았다. 그에게는 "존재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신은 없다!"라는 무서운 자각이 무신론자의 길로 안내하는 이정표였다. 수많은 방황과 자살 시도 가운데 열네 살 고뇌의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그토록 경멸했던 기독교에 귀의했다.

개인적으로 매우 존경하는 안양 열린교회 김남준 목사님의 이야기다.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은 그동안 출간된 김남준 목사님의 저작들과는 매우 다른 독특한 책이다. 시도 아니고 산문도 아니다. 저자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 중 한 명인 초대교회의 위대한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의 작품 중에서 뽑은 주옥같은 여덟 문장을 소개한다. 여덟 문장은 그야말로 아우구스티누스 철학의 정수다.

 

가장 높으신 그분이 내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난 그저 인류였다. p61

그분이 내 이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내가 되었다. p79

 

인간은 절대적으로 자유롭다. 자유롭기에 외롭다. 신이 없음을 인정함으로 시작되는 사르트르 철학의 출발점에서 볼 때 인간 존재의 필연성은 없다. 세계 자체가 필연적이지 않기에 그렇다. 저자는 이러한 사유의 출발선상에서 고민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저작을 미친 듯이 탐독했고 그 안에서 진리의 생수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인간은 근원도 없이 세상 밖에 아무렇게나 툭 던져진 여분의 존재다. 주어진 자유에 대해 환호하고 기뻐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그냥 자유롭게 살아가면 된다는 사실이 더 무섭다.

저자는 스물한 살 기독교에 귀의했다.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이 시작되었고 그 길에서 아우구스티누스를 만났다. 그 또한 저자가 고민했던 인생의 문제를 동일하게 고민했다. 가장 높으신 분이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우리는 그저 이름 없는 인류에 불과하다. 그러나 마침내 그분이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시고 찾아오셨을 때 우리는 비로소 내가 되었다. 존재의 근원을 울린다.

 

 

공간은 주고 시간은 빼앗아 간다

 

생(生)과 사(死)의 교차점을 공간과 시간으로 에둘러 표현한 아우구스티누스 명문의 정수다! 공간은 사라질 것들의 전시장이란다. 돈, 명예, 권력, 사랑, 웃음, 행복, 눈물, 기쁨과 슬픔, 만족과 아쉬움... 공간이 인간에게 준다. 모든 인간은 공간에 집착하며 살아 간다. 이런 것들이 인생의 전부인 양 목숨 걸고 산다. 있으면 웃고 없으면 운다. 공간이 주는 일시적 행복이 영원한 것만 같다. 저자는 참된 영원을 바라봤다. 영원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모든 것이 없다 말한다. 마침내 시간은 이 모든 것을 빼앗아 간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가치들이 시간에 의해 빼앗긴다. 죽을 때 관에 넣고 가려고 생각했던 돈과 명예와 권력이 시간에 의해 속절없이 갈취당한다. 생(生)을 바라보는 소름 돋는 통찰이다.

 

생각이 가벼울 때 인생은 무겁다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바쁘다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인생의 의미는 개똥철학이다. 그렇기에 생각이 가벼우면 인생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진정한 지혜는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지혜를 탐구하는 진정한 철학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인간 존재의 모든 괴로움과 고뇌의 근원은 참된 지혜를 만나지 못한 것에 기인한다. 저자는 그것을 알았다. 지혜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갈망한 후에 만난 참된 지혜가 바로 하나님이다. 지혜를 탐구하며 그분을 깊이 사유할 때 인생이 가벼워진다. 공간이 주는 가시적이며 물질적인 것을 위해 생각을 가볍게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본질이 비물질적이기에 진리일 수 있는 시간의 주인이 공간보다 낫다.

지난 3월 아버지를 천국으로 보내드렸다.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소망을 발견한다. 시간이 줄 평안과 안식, 다시 만날 것이라는 소망이 일시적 공간이 주는 아픔을 덮는다. 결국 인간은 혼자 왔다가 혼자 간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생각의 무거움만이 인생을 가볍게 한다. 책을 덮으며 존경하는 한 목회자의 진솔한 자기 고백과 깊은 성찰이 위대한 스승의 가르침과 어울려 아름답게 꽃 핌을 본다. 신자인 것이 감사하다고 느낀 책이다. 열네 살 소년은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어두운 밤을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그분의 사랑 안에서 모든 이들을 사랑할 수 있는 빛의 삶을 살아간다. 지금도 여전히 외로운 인생의 밤길을 홀로 걷고 있다면 이 책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나의 작은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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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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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럭 클럽>, 아주 오래전 나의 심상에 인상 깊이 눌어붙은 한편의 영화다. 20세기 중반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네 명의 어머니들과 네 명의 딸들이 만들어내는 갈등과 회상, 화해의 이야기를 담았다. 각기 다른 시대와 공간의 간극 속에 펼쳐지는 파란만장한 여성들의 삶을 통해 받은 깊은 감동이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내 마음 안에 이른 봄 담벼락 밑 잔설 마냥 녹지 않고 남아있다.

그런데 최근 이런 느낌의 책 한 권이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의 저자 '조남주' 작가에 의해 전해졌다. 민음사 0판 1쇄로 만난 <우리가 쓴 것>은 서론에서 언급한 영화와 같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여성들의 삶의 모습을 작가 특유의 담백하고 플랫한 느낌의 필치로 그려냈다. 작가의 글이 들뜸이 없고 차분하다.

초등학교 5학년 소녀부터 죽음을 눈앞에 둔 여든이 넘은 치매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스토리의 스펙트럼이 제법 넓다. 책은 짤막한 단편 소설 여덟 편을 하나로 묶었다. 각 이야기의 주인공이 전혀 다르기에 같은 인물, 다른 이야기의 전형적 옴니버스식 구성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형식의 느낌은 옴니버스적이다.

책을 덮고 나면 일면식도 없는 소설 속 인물들이 마치 하나의 가족 친지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도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의 모양이 대동소이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여덟 편의 이야기 모두 조남주 작가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독자에게 전하는 조남주 작가에게 온 이야기다. 그렇기에 어느 것 하나 손쉽게 털어버릴 수 없는 와중에 두 편의 이야기를 어렵사리 끄집어냈다. 

 

 

사람 죽는 일이 너무 가깝고도 태연하다. 게다가 나는 남편도 보냈고 아들도 먼저 보내 봤다. 그때는 정말 못 살 줄 알았는데 또 그럭저럭 살아진다. p25

 

'매화나무 아래'는 요양원에서 죽음을 눈앞에 둔 치매 언니를 바라보는 여동생 동주의 이야기다. 동주의 시선과 감정의 곡선을 따라가다 보면 인생의 허무함과 모진 생명에 대한 연민이 가슴 시리게 다가온다. 여유를 허락지 않는 우리네 삶의 여정 속에 힘겹게 달려왔을 인물들의 꺼져가는 삶이 마치 한철 아름답게 피었다 지는 매화의 그것처럼 아련하다. 암으로 먼저 떠난 둘째 언니와 치매로 사그라져가는 큰 언니 그리고 그 뒤를 따라가는 주인공의 모습 속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진득한 삶의 비애가 사뭇 깊다.

더불어 삶과 죽음이라는 보편적 주제가 친근하게 잇대어 있다. 남편과 아들을 먼저 보내고 못 살 줄 알았는데 그럭저럭 살아진다는 문장 속에서 삶을 향한 애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죽음을 생각하기에 애통한 것이 아니고 삶을 생각하기에 소망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삶과 죽음이 종이 한 장 차이와 같이 친근한 인생 속에서 한철 피었다 지는 매화와 같이 우리네 인생이 나와 어울려 치대는 그들에게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의미로서 선물되면 족하다.

주인공 동주가 언니들의 삶과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것이 그와 같다. 자매로서 한 나무에서 아름답게 피어 서로를 빛내주다가 소박하게 지는 것. 상처와 아픔의 기억일랑은 잊고 또 새롭고 찬란하게 피어나는 것. "겨울이 봄이고 봄이 겨울이다. 언니야." 자연의 순환성 속에 숨겨진 인생의 깊은 의미를 성찰하도록 독려하는 문장이 아닐 수 없다. 작가가 그만큼 인생의 진한 맛을 안다. 매화는 내년에도 핀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을 살아내야 한다.

 

 

성실하고 꾸준하게 자기 일을 해 나가는 것. 그 평범한 일상이 삶을 버티게 해 준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지도, 누군가에게는 싸워 얻어내야 하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p258

 

'오로라의 밤'은 중년의 고교 교감인 주인공 '나'와 시어머니, 직장맘 딸이 엮어가는 3대에 걸친 여성 서사다. 남편은 10년 전 교통사고로 죽었다. 지금은 시어머니와 단둘이 산다. 죽기 전 버킷 리스트인 오로라 직관을 위해 주인공 '나'는 시어머니와 함께 캐나다로 향한다. 고부간의 해외여행이라는 우리네 정서 속 불가능한 일이라 여겨지는 설정 자체가 낯설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미션 임파서블한 삶의 정황을 파서블함이 가득한 삶의 체취로 가득 채운다. 영하 30도의 찬 바닥에 누워 숨 막히게 펼쳐지는 오로라 쇼의 장관을 볼 때 이들은 이미 고부가 아닌 인생의 동반자요 친구임을 확인한다. 아들, 남편을 먼저 보낸 시어머니와 며느리 그리고 어린 아들을 키우느라 고군분투하는 손녀이자 딸의 삶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이 가지는 중첩된 역할과 감정의 그림자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여성들의 인생은 무엇인가 말하고 싶지만 고구마 한 개를 먹은 것 마냥 가슴 언저리에 꽉 막힌 답답함이 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 시대 여성들의 삶이 가지는 모양과 의미는 비슷하다 못해 같다. 그러나 그녀들은 그것이 일상이라는 가면을 쓰고 다가오기에 오늘도 살아가는 것이고 내일도 살아내려고 몸부림친다. 책의 구절과 같이 평범한 일상이 우리의 삶을 버티게 해주기에 그렇다. 그리고 너무나 평범한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를 알기에 그렇다.

책은 여성들의 삶이 가지는 의미를 잔잔한 수채화와 같이 인생이라는 캔버스에 다채롭게 채색했다. 또한 인생의 씨줄과 날줄이 질서 있게 얽히고설켜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갈하게 짜인 직조물의 그것과 같다. 작가는 다양한 연령층의 주인공들을 통해 시대를 아우르는 평범한 여성들이 가지는 고유한 생각과 멈춰진 삶의 회로를 가동한다. 날선 페미니즘적 투쟁은 없다. 그저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가진 고민과 그녀들의 잊힌 시간을 삶이라는 일상의 현장 속에 자유롭게 풀어놓는다. 그것이 이제 막 인생의 꽃을 피우는 10대부터 석양을 향해 낙화하는 80대의 삶을 일관성 있게 관통하는 책의 주제다. 책은 다양한 역할의 옷을 입고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여성들에게는 공감, 그녀들과 함께 살아가는 남성들에게는 이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삶은 복잡한 듯하지만 단조롭다.

<민음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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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지 마 과학! 5 - 정신이 태양계에 정신 놓다 놓지 마 과학! 5
신태훈.나승훈 글.그림, 류진숙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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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TV가 있던 시절 우리 집 1호가 매번 낄낄대며 보는 만화가 있었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재미있길래 그런가 궁금해서 함께 봤는데 진짜 재미있었다! 조회 수 28억 뷰를 넘어서는 초인기 웹툰으로 시작된 애니메이션 '놓지 마 정신줄'. 별 다른 것은 없다. '정신이'라는 주인공 대학생과 그의 가족이 펼치는 일상 웹툰이다. 그런데 이 만화가 왜 이리 큰 인기일까? 이유는 웃음의 포인트를 적재적소에 찔러 넣는 작가의 기발함이다. 이렇게 큰 인기를 누리는 애니메이션은 보통 책으로 출간되는 정석적인 수순을 밟는다. 놓지 마 정신줄도 <놓지 마 과학!>이라는 컨셉을 갖고 어린이 독자들과 만났다. 일종의 과학 학습 만화다.

책은 초등학교 3~6학년 과학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을 바탕으로 교과 연계를 고려하며 만들어졌다. 초등학생이 배우는 과학의 내용들은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렇기에 생활 속에서 만나며 의문을 품게 되는 다양한 과학적 지식들을 보다 더 재미있고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학습 만화로 기획되었다. 그리고 그 주인공들로 소위 초등학생들에게 핫하다는 놓지 마 정신줄 캐릭터들을 소환했다.

이번에 만나 본 5권의 부제는 '정신이 태양계에 정신 놓다'이다. 주인공 대학생 '정신이'가 그의 요절복통 친구들과 함께 우주선을 타고 태양계를 여행하며 우주에 관한 지식들을 나눈다. 물론 후반부의 몇 개 이야기는 탄산음료의 발명, 장마는 왜 생길까, 엉덩이 주사의 원리, 타조가 날지 못하는 이유 등과 같은 일상 속 숨겨진 과학지식을 나눈다.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들이 등장해서 제법 유용한 과학 상식을 이야기한다. 웹툰이나 TV 애니로서 워낙 웃기고 재미있었기에 책 또한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중력이 없는 우주 공간에서 '큰 일'을 봐야 하는 우주인들은 어떻게 화장실을 사용할까?라는 대목에서 우리 아이들은 빵 터졌다. 역시 똥과 방귀 이야기는 만고불변 어린이들의 공통된 웃음 포인트다. 1년이 88일 밖에 안되는 행성, 낮과 밤이 42년에 한 번 바뀌는 행성이 있다는 이야기는 나 또한 처음 알았다. 알고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기본적인 우주에 관한 상식이 상식이 아니었다. 20개의 테마가 지구와 우주, 일상과 날씨, 동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매 챕터가 끝날 때마다 해당 단원의 내용을 한눈에 정리해 주는 과학 상식 코너는 매우 유익하다. 어린이 독자들은 웃기고 재미있는 만화를 통해서 전체적인 주제를 학습하고 마지막에는 정리된 내용으로 배운 지식을 복기할 수 있다. 또한 중간마다 크게 단원을 끝내면서 중요한 과학 원리들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부분은 이 책이 단순 흥미만을 추구하는 만화책이 아님을 보여준다.

책을 펼치고 앉아서 읽기 시작하자 아이들이 옆으로 따라붙었다. 우리 집 1호는 이미 완독했지만 내가 책을 펼치자마자 소리 내어 읽어달란다. 아직 글을 모르는 2호는 그림 자체가 뿜어내는 개그 아우라에 연신 '꺄르르'하며 넘어간다. 정말 거짓말 없이 앉은 자리에서 순식간에 완독했다. 그만큼 독자들을 빨아들이는 책 자체가 가지는 흡입력이 대단하다.

금성이 본인처럼 아름다운 비너스 여신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이라며 '자뻑'하는 캐릭터 앨리스의 말을 듣고는 우주선의 공기 상태가 안 좋아서 다들 정신을 못 차린다며 빨리 신선한 공기를 마시라고 권하는 정신이의 멘트에 빵 터졌다. 자칫 루즈해질 듯하면 이렇게 사이 공간에 개그 장치를 지뢰밭처럼 깔아놓았기에 독자들의 시선을 빼앗기지 않는다.

또한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모든 내용을 총정리하며 복습해 볼 수 있는 '정신이와 함께하는 퀴즈' 코너다. 읽은 내용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를 테스트해보는 장이다. 내가 문제를 내고 아이들과 나의 옆 지기까지 각자 정답을 이야기하는 짤막한 가족 퀴즈대회를 열었다. 전형적인 학습 만화가 갖추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내용을 아주 충실하게 갖춘 책이다. 이런 만화책이라면 아이들에게 구입해 줘도 좋다. 괴물, 흑마술, 요괴, 귀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폭력을 일상화하는 여느 만화책과는 차원이 다르다. 돈 주고 사서 보는 만화책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않겠는가?

초등학교 연계 과정을 통한 과학 지식과 웃음이 어우러진 만화책 한 권이 선사해 주는 이득이 참으로 크다. <놓지 마 과학>은 시리즈다. 지금까지 여러 권이 출간되었다. 아직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번 여름방학은 <놓지 마 과학>시리즈로 집콕 피서해보는 것도 '슬기로운 생활'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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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무삭제 완역본) - 현대판 프로메테우스 현대지성 클래식 37
메리 셸리 지음, 오수원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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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클라라와 태양>이라는 책을 읽었다. 인공 지능 기술의 비약적 발전을 반려로봇이라는 개념으로 승화시킨 책으로서 책의 표지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과학 문명의 시대 속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는 '창조'로서의 인공 지능에 대해 생각하며 만난 또 하나의 책이 바로 여류 소설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다. 이 책은 SF(Science Fiction)라는 새로운 장르의 시작을 알리는 축포를 터뜨림과 동시에 이후 등장한 문학 작품과 영화, 드라마 등의 원형으로서 큰 의미를 갖는 저작이다. 저자인 메리 셸리는 산업혁명이 한창인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계모에게 홀대받는 다소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아버지의 지성적 보살핌 속에서 이른 나이에 수많은 책을 독파하며 지적 근육을 키웠다. 1818년 1월 출간된 본서는 몇몇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유령 이야기'를 써보자는 제안을 통해 탄생된 일종의 사적 게임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장난삼아 썼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책이 갖는 문학적 가치와 내포하는 사회적 의미가 크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된다. 북극 탐험가 '월턴'은 탐험 중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의 조난 당한 남성을 구조한다.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지적 오만함으로 인해 세상에 태어나면 안 될 끔찍한 '괴물'을 탄생시킨다. 그러나 그 공포스러움에 압도되어 괴물을 방치하게 되고 괴물은 세상 속에서 지성과 이성을 지닌 존재로서 성장한다. 인간 세상의 아름다움과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깊은 감화를 받은 괴물은 자신 또한 인간들과 어울리며 사랑을 주고받는 존재로서 다가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과는 달리 흉측한 외모로 인해 사람들에게 배척당하게 되자 급기야는 자신을 만들어놓고 방치한 창조자 프랑켄슈타인의 가족과 친구, 사랑하는 아내를 향해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복수의 칼날을 쳐든다.

책은 일종의 2중 액자식 구성이다. 독자는 탐험가 '월턴'이 자신의 누나 '마거릿'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월턴은 프랑켄슈타인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편지 형식으로 자신의 누나에게 전한다. 전체적으로 1차 액자식 구성이다. 책의 2부 3장부터는 프랑켄슈타인과 괴물의 조우가 이루어진다. 괴물이 자신의 창조자와 독대하며 자신이 버려진 후 인간 세상 속에서 어떠한 삶을 살았고 그 경험을 통해 어떻게 인간 이성과 지성에 눈뜨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이 부분이 상당한 분량으로서 1차 이야기 속의 2차 이야기를 배치시킴으로서 2중의 중첩된 프레임을 형성한다.

 

 

해제에서 역자는 자신의 따뜻한 진심과는 달리 흉측한 외모로 인해 차별받고 무시당하는 '괴물'이 당시 산업혁명으로 인해 차별받는 노동자 계층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또한 사람 취급받지 못하는 괴물의 의미를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여성들에 대한 페미니즘적 서사로서 해석하기도 한다. 책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빛의 굴절로 인해 다양한 색깔을 관찰할 수 있는 프리즘과 같다. 즉 책을 읽는 독자들의 관점과 해석적 견해 차이가 책이 의미하는 바를 다채롭게 채색해낼 수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나의 프리즘은 역자의 해제와는 좀 달랐다. 나는 차별과 페미니즘적 서사라는 키워드를 옆으로 잠시 밀쳐둔다.

우선 책은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내겠다는 인간이 가진 극도의 오만함과 과학적 광기를 보여준다. '창조'라는 영역은 피조물인 인간이 결코 넘보아서는 안될 신성불가침의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과학기술이라는 제2의 신을 통해 끊임없이 그 오만스러움을 뽐낸다. 책의 서두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수재로서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이 인류 문명의 발전이라는 명목하에 '괴물'을 탄생시킨다. 그의 과학적 발견을 향한 열정과 정념이 결코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는다. 그런데 책을 주의 깊게 읽으며 이야기의 내면에 숨겨진 진짜 공포스러움의 민낯을 발견한다. 괴물은 인간을 통해 인간의 감정과 이성, 지성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여 진짜 인간들보다 더 인간적(?)인 인간이 되어간다. 반면 창조자 프랑켄슈타인의 삶은 파멸과 비극이라는 소용돌이를 향해 치닫는다. 자신이 만든 피조물이 창조자의 모든 것을 앗아간다. 다시 말해 자신의 손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급기야는 본인 스스로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것이다. 프랑켄슈타인 = 괴물의 공식이 성립된다. 지금껏 프랑켄슈타인을 괴물의 이름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 무지에 의한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괴물의 조건!?

 

창조자가 되려고 하는 과정은 어찌 보면 스스로의 지적타락을 의미하며 결국 본인 스스로가 제2의 괴물이 되어감을 의미한다. 피조물이 피조물의 위치를 벗어나 스스로 창조자가 되려는 오만스러움을 드러낼 때 '프랑켄슈타인(괴물)'이 되어간다. 프랑켄슈타인의 내면에 괴물의 불안한 심리 기제가 그대로 투사되었다. 인간 본성의 탐욕과 숨겨진 내면의 욕망이 오만스러움과 만날 때 그가 누구든 괴물이 된다.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패륜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이 미친 시대 속 우리네 세상도 괴물이 넘쳐난다. 그렇기에 어쩌면 '인간 프랑켄슈타인'보다는 버림받기 전 '이름 없는 괴물'이 보인 인간다움이 더 인간답게 느껴진다는 사실이 더 서글퍼지는 것은 아닐까? 초여름의 길목, 깊은 진의를 이해하고 읽는다면 피칠갑하는 요즘의 웬만한 호러 소설들과는 결이 다른 공포를 경험할 수 있다. 옛 어른들의 말이 떠오른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 괴물보다 사람이 더 무서워지는 저작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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