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 - 내 인생을 바꾼 아우구스티누스의 여덟 문장
김남준 지음 / 김영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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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추운 겨울 주일 아침, 교회를 가던 열네 살 까까머리 중학생이 논둑길에 주저앉아 목놓아 울었다. 불현듯 찾아온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세계는 무엇이고 신은 존재하는가?의 존재적 물음 앞에 소년의 마음이 무너졌다. 죽는 게 무서운 것이 아니라 사는 게 두려웠기에 인생의 근원적 질문이 결코 벗어버릴 수 없는 무거운 등짐과 같았다. 그에게는 "존재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신은 없다!"라는 무서운 자각이 무신론자의 길로 안내하는 이정표였다. 수많은 방황과 자살 시도 가운데 열네 살 고뇌의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그토록 경멸했던 기독교에 귀의했다.

개인적으로 매우 존경하는 안양 열린교회 김남준 목사님의 이야기다.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은 그동안 출간된 김남준 목사님의 저작들과는 매우 다른 독특한 책이다. 시도 아니고 산문도 아니다. 저자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 중 한 명인 초대교회의 위대한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의 작품 중에서 뽑은 주옥같은 여덟 문장을 소개한다. 여덟 문장은 그야말로 아우구스티누스 철학의 정수다.

 

가장 높으신 그분이 내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난 그저 인류였다. p61

그분이 내 이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내가 되었다. p79

 

인간은 절대적으로 자유롭다. 자유롭기에 외롭다. 신이 없음을 인정함으로 시작되는 사르트르 철학의 출발점에서 볼 때 인간 존재의 필연성은 없다. 세계 자체가 필연적이지 않기에 그렇다. 저자는 이러한 사유의 출발선상에서 고민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저작을 미친 듯이 탐독했고 그 안에서 진리의 생수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인간은 근원도 없이 세상 밖에 아무렇게나 툭 던져진 여분의 존재다. 주어진 자유에 대해 환호하고 기뻐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그냥 자유롭게 살아가면 된다는 사실이 더 무섭다.

저자는 스물한 살 기독교에 귀의했다.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이 시작되었고 그 길에서 아우구스티누스를 만났다. 그 또한 저자가 고민했던 인생의 문제를 동일하게 고민했다. 가장 높으신 분이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우리는 그저 이름 없는 인류에 불과하다. 그러나 마침내 그분이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시고 찾아오셨을 때 우리는 비로소 내가 되었다. 존재의 근원을 울린다.

 

 

공간은 주고 시간은 빼앗아 간다

 

생(生)과 사(死)의 교차점을 공간과 시간으로 에둘러 표현한 아우구스티누스 명문의 정수다! 공간은 사라질 것들의 전시장이란다. 돈, 명예, 권력, 사랑, 웃음, 행복, 눈물, 기쁨과 슬픔, 만족과 아쉬움... 공간이 인간에게 준다. 모든 인간은 공간에 집착하며 살아 간다. 이런 것들이 인생의 전부인 양 목숨 걸고 산다. 있으면 웃고 없으면 운다. 공간이 주는 일시적 행복이 영원한 것만 같다. 저자는 참된 영원을 바라봤다. 영원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모든 것이 없다 말한다. 마침내 시간은 이 모든 것을 빼앗아 간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가치들이 시간에 의해 빼앗긴다. 죽을 때 관에 넣고 가려고 생각했던 돈과 명예와 권력이 시간에 의해 속절없이 갈취당한다. 생(生)을 바라보는 소름 돋는 통찰이다.

 

생각이 가벼울 때 인생은 무겁다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바쁘다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인생의 의미는 개똥철학이다. 그렇기에 생각이 가벼우면 인생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진정한 지혜는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지혜를 탐구하는 진정한 철학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인간 존재의 모든 괴로움과 고뇌의 근원은 참된 지혜를 만나지 못한 것에 기인한다. 저자는 그것을 알았다. 지혜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갈망한 후에 만난 참된 지혜가 바로 하나님이다. 지혜를 탐구하며 그분을 깊이 사유할 때 인생이 가벼워진다. 공간이 주는 가시적이며 물질적인 것을 위해 생각을 가볍게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본질이 비물질적이기에 진리일 수 있는 시간의 주인이 공간보다 낫다.

지난 3월 아버지를 천국으로 보내드렸다.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소망을 발견한다. 시간이 줄 평안과 안식, 다시 만날 것이라는 소망이 일시적 공간이 주는 아픔을 덮는다. 결국 인간은 혼자 왔다가 혼자 간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생각의 무거움만이 인생을 가볍게 한다. 책을 덮으며 존경하는 한 목회자의 진솔한 자기 고백과 깊은 성찰이 위대한 스승의 가르침과 어울려 아름답게 꽃 핌을 본다. 신자인 것이 감사하다고 느낀 책이다. 열네 살 소년은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어두운 밤을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그분의 사랑 안에서 모든 이들을 사랑할 수 있는 빛의 삶을 살아간다. 지금도 여전히 외로운 인생의 밤길을 홀로 걷고 있다면 이 책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나의 작은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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