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무삭제 완역본) - 현대판 프로메테우스 현대지성 클래식 37
메리 셸리 지음, 오수원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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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클라라와 태양>이라는 책을 읽었다. 인공 지능 기술의 비약적 발전을 반려로봇이라는 개념으로 승화시킨 책으로서 책의 표지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과학 문명의 시대 속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는 '창조'로서의 인공 지능에 대해 생각하며 만난 또 하나의 책이 바로 여류 소설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다. 이 책은 SF(Science Fiction)라는 새로운 장르의 시작을 알리는 축포를 터뜨림과 동시에 이후 등장한 문학 작품과 영화, 드라마 등의 원형으로서 큰 의미를 갖는 저작이다. 저자인 메리 셸리는 산업혁명이 한창인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계모에게 홀대받는 다소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아버지의 지성적 보살핌 속에서 이른 나이에 수많은 책을 독파하며 지적 근육을 키웠다. 1818년 1월 출간된 본서는 몇몇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유령 이야기'를 써보자는 제안을 통해 탄생된 일종의 사적 게임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장난삼아 썼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책이 갖는 문학적 가치와 내포하는 사회적 의미가 크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된다. 북극 탐험가 '월턴'은 탐험 중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의 조난 당한 남성을 구조한다.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지적 오만함으로 인해 세상에 태어나면 안 될 끔찍한 '괴물'을 탄생시킨다. 그러나 그 공포스러움에 압도되어 괴물을 방치하게 되고 괴물은 세상 속에서 지성과 이성을 지닌 존재로서 성장한다. 인간 세상의 아름다움과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깊은 감화를 받은 괴물은 자신 또한 인간들과 어울리며 사랑을 주고받는 존재로서 다가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과는 달리 흉측한 외모로 인해 사람들에게 배척당하게 되자 급기야는 자신을 만들어놓고 방치한 창조자 프랑켄슈타인의 가족과 친구, 사랑하는 아내를 향해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복수의 칼날을 쳐든다.

책은 일종의 2중 액자식 구성이다. 독자는 탐험가 '월턴'이 자신의 누나 '마거릿'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월턴은 프랑켄슈타인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편지 형식으로 자신의 누나에게 전한다. 전체적으로 1차 액자식 구성이다. 책의 2부 3장부터는 프랑켄슈타인과 괴물의 조우가 이루어진다. 괴물이 자신의 창조자와 독대하며 자신이 버려진 후 인간 세상 속에서 어떠한 삶을 살았고 그 경험을 통해 어떻게 인간 이성과 지성에 눈뜨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이 부분이 상당한 분량으로서 1차 이야기 속의 2차 이야기를 배치시킴으로서 2중의 중첩된 프레임을 형성한다.

 

 

해제에서 역자는 자신의 따뜻한 진심과는 달리 흉측한 외모로 인해 차별받고 무시당하는 '괴물'이 당시 산업혁명으로 인해 차별받는 노동자 계층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또한 사람 취급받지 못하는 괴물의 의미를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여성들에 대한 페미니즘적 서사로서 해석하기도 한다. 책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빛의 굴절로 인해 다양한 색깔을 관찰할 수 있는 프리즘과 같다. 즉 책을 읽는 독자들의 관점과 해석적 견해 차이가 책이 의미하는 바를 다채롭게 채색해낼 수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나의 프리즘은 역자의 해제와는 좀 달랐다. 나는 차별과 페미니즘적 서사라는 키워드를 옆으로 잠시 밀쳐둔다.

우선 책은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내겠다는 인간이 가진 극도의 오만함과 과학적 광기를 보여준다. '창조'라는 영역은 피조물인 인간이 결코 넘보아서는 안될 신성불가침의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과학기술이라는 제2의 신을 통해 끊임없이 그 오만스러움을 뽐낸다. 책의 서두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수재로서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이 인류 문명의 발전이라는 명목하에 '괴물'을 탄생시킨다. 그의 과학적 발견을 향한 열정과 정념이 결코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는다. 그런데 책을 주의 깊게 읽으며 이야기의 내면에 숨겨진 진짜 공포스러움의 민낯을 발견한다. 괴물은 인간을 통해 인간의 감정과 이성, 지성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여 진짜 인간들보다 더 인간적(?)인 인간이 되어간다. 반면 창조자 프랑켄슈타인의 삶은 파멸과 비극이라는 소용돌이를 향해 치닫는다. 자신이 만든 피조물이 창조자의 모든 것을 앗아간다. 다시 말해 자신의 손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급기야는 본인 스스로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것이다. 프랑켄슈타인 = 괴물의 공식이 성립된다. 지금껏 프랑켄슈타인을 괴물의 이름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 무지에 의한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괴물의 조건!?

 

창조자가 되려고 하는 과정은 어찌 보면 스스로의 지적타락을 의미하며 결국 본인 스스로가 제2의 괴물이 되어감을 의미한다. 피조물이 피조물의 위치를 벗어나 스스로 창조자가 되려는 오만스러움을 드러낼 때 '프랑켄슈타인(괴물)'이 되어간다. 프랑켄슈타인의 내면에 괴물의 불안한 심리 기제가 그대로 투사되었다. 인간 본성의 탐욕과 숨겨진 내면의 욕망이 오만스러움과 만날 때 그가 누구든 괴물이 된다.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패륜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이 미친 시대 속 우리네 세상도 괴물이 넘쳐난다. 그렇기에 어쩌면 '인간 프랑켄슈타인'보다는 버림받기 전 '이름 없는 괴물'이 보인 인간다움이 더 인간답게 느껴진다는 사실이 더 서글퍼지는 것은 아닐까? 초여름의 길목, 깊은 진의를 이해하고 읽는다면 피칠갑하는 요즘의 웬만한 호러 소설들과는 결이 다른 공포를 경험할 수 있다. 옛 어른들의 말이 떠오른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 괴물보다 사람이 더 무서워지는 저작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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