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2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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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일본 청춘문학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전위적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창작집 <만년>은 정확히 한 세기가 지난 21세기 초 지금의 우리에게 있어 일종의 데자뷰다. 흔들리는 청춘들의 삶과 존재에 관한 실존적 고민을 순백의 원고지 위에 오사무 특유의 암울하지만 위트 있는 문체로 수놓았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지금 우리네 삶을 대변하는 단어이듯 전후 일본에 진하게 드리웠던 절망의 그림자는 당시 일본 사회의 자아상을 보여준다. 시대의 아픔과 고뇌의 흔적은 오사무가 연인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했으나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충격적인 사건 속에 여실히 드러난다. 이 사건은 이후 그의 작품 세계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오사무 세계관의 전형을 이룬다.

<어린광대의 꽃>은 그 충격적인 사건에 대한 일종의 비망록과 같다. 삶의 의지와 의미를 상실했기에 버리기 원했지만 원치 않게 다시 주어진 삶에 대한 비애가 세 젊은이들의 플랫한 대화 속에 건조하게 담겨있다. 누구를 탓하거나 자책하는 것이 아니지만 주어진 상황 자체가 이들에게는 수수께끼다. 오사무는 주사위 판에 던져진 도박과 같은 인생의 가벼움을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밀도 있게 녹여냈다.

잡힐 줄 모르는 청년 실업률, 사회에 나와서도 갈 곳 없어 방황하는 지금의 젊은 세대야말로 기성의 권위가 독차지한 세상이라는 무대 속에서 어설프고 과장된 몸짓으로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해야만 하는 어릿광대와 같다. 웃고 싶지 않지만 웃어야 하고 울고 싶어도 마음껏 울 수 없는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무대에서의 인생 공연이 그들에게 주어진 오늘의 일상이다. 거기에 더해진 초유의 팬데믹은 청년 세대의 미래를 더욱더 불투명하게 만든 요인이다. 광대 가면을 쓰고 가뜩이나 숨쉬기 어려운 삶의 무대 위에서 코로나 마스크까지 더해진 지금의 시대가 마치 오사무가 살았던 모순적 시대의 속편과 같다. 

 

 

<그는 옛날의 그가 아니다>는 책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재미있지만 역설 가득한 작품이다. 작중 화자는 아버지의 유산으로 월세를 받으며 살아가는 소위 '조물주 위에 건물주'다. 그의 집에 '세이센'이라는 남자와 그의 아내가 세 들어온다. 세이센은 번번한 직업이 없다. 수시로 바뀌는 아내와 처가에 기생하듯 살아간다. 화자는 거의 1년이 지났지만 임대료를 받지 못했다. 무엇에 홀린 것만 같다. 시간은 그렇게만 흘러간다.

세입자에게 집세를 받아내려는 집주인이 번번이 세입자의 꾀에 빠져 빈손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로만 본다면 그냥 재미있는 단편 소설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역설 가득한 의미로 채워졌다. 화자의 마지막 대사 속 세이센의 모습 속에 집주인의 모습이 투영된다.

"...어슬렁 헤매고 다니는 저 남자, 그리고 여기 있는 나. 서로 다른 구석이 한 점이라도, 있나?"

아내와 처가에 들러붙어 연명하는 세이센이나 아버지의 유산으로 받은 집 한 채로 월세를 받아 연명하는 작중 화자의 삶이 누군가에게 기생하듯 살아가는 게으른 자들의 전형임을 비꼰다. 세상이 그렇다. 누군가에게 붙어 기생하는 사회. 나의 모습을 성찰하지는 않고 다른 이를 비난하는 세상.

15편의 단편들이 끊어지듯 토막 쳐 있다. 각기 다른 주제와 심상을 전하지만 작품을 관통하는 의미는 하나다. 암울했던 시대속 방황하는 청춘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흐릿한 관점에 투명함을 선사했다. 모순과 역설 가득한 세상에서 작가 본인은 결국 다섯 번의 시도 끝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작품에는 오히려 삶을 향한 간절함과 애절함이 묻어난다. 더 치열하게 살고 싶었고 단단하게 뿌리박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인생이었기에 그의 작품 안에 드러난 메시지가 더 구슬프고 역설적이다.

호불호가 갈린다. 극단적 선택을 한 그의 삶의 마지막과 세상을 바라보는 다소 비딱해 보이는 관점은 불호(不好)일 것이다. 반면 모순과 역설로 가득한 전후 일본 사회의 암울했던 현실 속에서 오사무가 긁어 준 시원스러움이 당시 주눅 들어있던 일본 청년들에게는 열광적인 반응을 일으켰다고 하니 이것은 호(好)일 것이다.

작품의 평가를 오롯이 독자에게 던져주는 책을 오랜만에 만난다. 일본의 천재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 색안경을 벗고 독자와 저자의 만남으로만 독대해보라! 인간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편협한 인식의 외연을 확장 시켜줄 만한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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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이야기 -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효게쓰 아사미 지음, 요시타케 신스케 그림, 김은하 옮김 / 담푸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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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한 여름밤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던 화장실 공포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있는 추억이다. 그뿐인가! 난생처음 들어가 본 시골 푸세식(?) 변소의 기억은 충격 그 자체이기도 했다. 이처럼 화장실에 얽힌 이야기는 한정된 장소로의 제한적 의미를 훨씬 넘어서는 다양함으로 다가온다.

일본인 작가 '효게쓰 아사미'의 <화장실 이야기>는 화장실에 얽힌 짧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한 책이다. 먹고 싸는 행위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인 본능이며 욕구 아닌가? 사실 화장실은 인간의 주거 문화에 있어서 주방만큼 중요한 공간이다. 그렇지만 지금껏 화장실은 다른 공간과는 달리 터부시 되었던 장소 중 하나다.

본서는 인류 문명과 함께 해 온 화장실이라는 공간을 재미있는 스토리를 통해 숙고해볼 만한 대상으로 승화시켰다. 지하철 안에서 갑작스럽게 신호가 온다. 배에서 천둥이 친다. 조금이라도 힘을 빼는 순간 '와르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은 이 난감한 경험. 아마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책의 이야기가 나의 경험과 싱크 100%다. 내 이야기인 줄 알았다. 애국가를 속으로 족히 20번은 불렀다. 집중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다른 생각을 하며 다음 정거장 도착을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열차가 컴컴한 터널에 멈춰 서고 잠시 후 기관사의 안내 방송이 나온다. "우리 열차는 앞 열차와의 거리 유지로 인하여 잠시 정차하도록 하겠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다! 뱃속에서는 당장이라도 쏟아져 나올 것처럼 천둥이 치는데 정차라니!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 책에 나와있다.

이뿐 아니라 변기가 볼일 보는 사람의 건강 상태까지 체크해 주는 인터넷 인공 지능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미래 화장실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또한 병적인 집착을 가진 옛 여자친구가 집까지 침입해서 화장실에 숨어 있던 주인공을 찾아내는 이야기는 은근 소름 돋는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꿰어져 나온다. 재미있다!

 

 

일본의 국민 일러스트레이터 '요시타케 신스케'가 이 책의 삽화를 맡았다는 사실 하나로 선택한 책이다. <있으려나 서점>을 통해서 그의 그림이 갖는 매력에 빠졌던 터라 사실 작가보다는 삽화가를 보고 집어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책을 펼치고서는 삽화만큼 글이 갖는 매력도 상당함을 느낀다.

먹으면 싸야 하고 싸면 또 배가 고파져서 먹어야 하는 어찌 보면 가장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사이클이다. 그렇기에 먹은 것을 내놓아야 하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자연스러운 생리적 현상이다. 나온 것을 깨끗하게 처리해야 할 필요가 화장실을 탄생시켰다. 터부시될 만한 장소가 맞다. 하지만 먹는 일을 담당하는 주방은 깨끗해야 하고 먹은 것을 처리하는 화장실은 상대적으로 덜 깨끗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발상 자체가 인간이 얼마나 자기 본위의 본능적인 존재인지를 말해준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면 안 되듯 먹는 일도 중요한 만큼 싸는 일도 중요하다. 그리고 그 싸는 일을 담당하는 화장실에 대한 기준도 높아져야 한다.

책은 화장실에 얽힌 짧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하지만 귀여운 삽화와 함께 기술된 웹소설 한편이 독자에게 던지는 진의는 단지 '똥 싸는 이야기와 그 공간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끽끽대며 웃고 끝나는 것에 있지 않다.

 

"45억 명, 즉 10명 중 6명이 안전하게 관리된 화장실을 쓰지 못한다고 합니다.

21세기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이 지구." p188

 

간혹 노상에서 일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화장실 사용은 동물과 구분되는 가장 기초적인 척도다. 안전하고 위생적인 화장실 사용은 축복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기에 그렇다. 작가는 아무것도 아닌 소재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누군가에게는 흥미롭게 읽고 던져놓을 수 있는 팝콘과 같은 책일 수 있다. 반면 누군가에게는 화장실이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를 통해 인간 본질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사고를 확장시키는 책이 될 수도 있다.

먹는 일이 중요한 만큼 싸는 일도 중요하다. 먹기만 하고 버리지를 못할 때 인간은 탐욕으로 인한 과체중이 될 수밖에 없다. 뭐든 잘 먹었다면 잘 버려야 한다. 제때 버리지를 못하기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미워하고 반목하며 시기와 질투를 한다. 먹기만 잘하고 버리지를 못하기에 인간관계가 병든다. 웹소설로 탄생한 작은 책 한 권이 상당히 깊은 여운을 남긴다. pc 앞에 오래 앉아 있었더니 신호가 온다. 화장실이나 가야겠다.

 

<담푸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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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세움북스 신춘문예 작품집 - 단편소설, 수필 세움 문학 3
권영진 외 지음 / 세움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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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주요 일간지의 신춘문예는 신인 작가의 등용문이었다. 신예 작가들이 문단에 등단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 코스였기에 명성이 예전만치 못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신문사의 신춘문예는 등단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꿈의 무대다.

지난봄 일반 출판사들도 힘들어하고 있는 출판업계의 불황 속에서 '세움북스'라는 기독교 출판사가 기독교 문학 활성화를 위해 신춘문예를 열었다. 기독교 단편 소설 부문과 수필 부문으로 나누어져서 진행된 대회를 통해 대상을 제외한 우수상과 가작 7명이 입상했다. 그리고 미수상작 여섯 편과 함께 총 열세 편의 소설과 수필이 작품집 형식으로 제작되어 서점에 정식 출간되었다.

기독교 출판사에서 진행된 대회여서 그런지 수상자들 대부분이 전, 현직 목회자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단편 소설 우수작으로 뽑힌 <광야의 사람들>은 복음서에 등장하는 세례 요한이 본격적으로 사역에 임하기 전 경험한 쿰란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탁월한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이야기에 흥미를 더했다. 또 한편의 소설 우수작 <목사 ver. 2.0>은 AI 목사가 인간 목사를 대신해서 목회 사역을 감당한다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소재로서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IT 기술의 발달, 인공지능의 급속한 개발과 보급이 진짜 로봇 목사의 출현을 가져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발칙한 상상을 하게 만든 참신한 작품이다.

가작 입상작인 <인간, 영적인 존재>는 인류의 기원과 생명의 창조에 대한 비밀을 밝히기 위해 미지의 족속을 찾아 떠나는 주인공의 모험을 다룬다. 저자는 인간의 이기심과 비뚤어진 욕망을 인간이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에 대한 변명할 수 없는 증거로 제시한다. 인간 내면을 바라보는 깊은 통찰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또 다른 가작 입상작 <이야기 요나>는 구약 요나서를 배경으로 한 전형적인 기독 소설이다. 4장으로 된 짧은 요나서에 나오지 않는 숨겨진 이야기들을 저자의 문학적 상상력으로 흥미롭게 재구성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아! 어쩌면 진짜 저런 이야기들이 벌어졌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역사적 개연성을 넌지시 던진다.

 

 

수필 부문은 우수작 한 편과 가작 두 편이 수상했다. 우수작 <서시>는 제목에서 윤동주 시인을 연상케 한다. '신정론'이라는 신학적 이슈를 중심으로 인간 존재와 신앙에 대한 깊은 개인적 성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저자의 글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가작 입상작 <곁 사람>은 자비량 목회를 하고 있는 저자가 자신의 사업장에서 경험한 한편의 예화를 통해 겸손과 겸양의 신앙적 미덕을 잔잔한 필치로 그려낸 마음이 따뜻해지는 작품이다.

또 다른 가작 입상작 <뭔지, 먼지>는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이 아렸던 작품이다. 어렵사리 개척한 교회가 이제 조금 자립을 하나 싶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급기야는 교회문을 닫게 된다. 담임 목사였던 저자는 이제 당장 생계를 위해서 막노동을 한다. 저자는 하나님이 창조한 먼지와 같은 인간이 공사장의 흙먼지를 마시며 낯선 존재의 정체성을 체험하고 있음을 담담한 필치로 그려낸다. 마음이 많이 아팠다. 이와 같은 목회자들과 교회들이 얼마나 많을까! 저자를 위해서 짧게나마 기도한다. 언젠가 먼지 속에서 다시금 빛을 볼 때가 오도록...

이 외에도 입상에 버금가는 훌륭한 미수상작 여섯 편이 함께 수록되었다. 기독교 문학 활성화를 위한 세움북스의 첫걸음이 매우 귀하다. 더불어 재능있는 글쟁이들이 갯벌 속 진주와 같이 너무나 많이 묻혀있음을 알았다. 일간지의 신춘문예는 많은 상금, 정식 문인으로서 신인 작가 등단과 개인 도서 출간, 따라오는 명예 등 메리트가 크다. 반면 기독교 출판사에서 이루어진 신춘문예는 규모와 기획력에 있어서는 비교할 수없이 조촐하다. 그러나 기독교 문학 활성화라는 첫 도전치고는 여느 주요 신춘문예와 비교할 때 결코 작은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해를 거듭할수록 더 깊은 경건 문학들이 쏟아져 나오면 좋겠다. <천로역정>과 같은 작품들이 세움북스 신춘문예를 통해 소개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나님과 인간, 세상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인간의 바른길과 하나님을 향한 신적 갈망과 애정이 문학의 옷을 입고 표현되면 좋겠다. 나는 기대하고 기도한다. 제2의 '존 번연'들이 세움북스 신춘문예를 통해 정식으로 등단하는 날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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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영원한 안식 세계기독교고전 37
리차드 백스터 지음, 김기찬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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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목자>를 통해 '리처드 백스터'를 처음 만났다. 청교도 목회자가 동료, 후배 목회자들에게 권하는 목회자의 바른 상이 맑고 투명하게 다가왔다. 이번에는 또 다른 수작 <성도의 영원한 안식>을 통해 신자의 죽음과 영원한 천국의 쉼을 말한다. 총 16장에 걸쳐 안식에 관한 종말론적 묵상이 제시된다. 천상적 안식은 죽음 이후 신자들에게 주어진다. 신자는 더 이상 은혜의 수단들이 필요 없으며 모든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는다. 우리의 전인이 회복될 것이고 절정은 최고선이신 우리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향유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

 

'카르페 디엠'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에게 참된 쉼이란 없다. 현대의 신자들은 이 땅의 삶이 참된 안식을 줄 것처럼 올인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천국의 안식을 기대하는 마음이 없기에 이 땅에서의 고난과 고통의 현실을 도에 넘게 두려워한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신자에게는 모순의 극치다. 신앙이 신앙의 푯대, 궁극적 목적지를 부정하는 경도된 현실. 지금의 삶을 즐기고 현재의 시간만이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들이 우리의 시선을 영원한 본향으로 향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지난 3월 아버지께서 천국으로 가셨다. 아버지의 빈소를 지키며 애써 감정을 눌렀다. 다시 만날 것이라는 확신과 믿음이 나의 마음을 천상의 안식에 대한 기대로 채웠다. 이후 약 한 달이 넘은 어느 주일, 김남준 목사님의 부모 공경에 관한 설교에서 그동안 눌러왔던 나의 삭힌 슬픔이 봇물 터지듯 터져버렸다. 안식에 대한 소망과 기대가 나의 마음을 채웠다는 자기 기만이 여실히 발각된 시간이다. 천상의 안식보다 이 땅에서의 시간이 가지는 의미의 무게감이 더 컸기에 아버지의 소천과 성도의 영원한 안식에 대한 소망이 짓눌린 비애를 이기지 못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 리처드 백스터라는 청교도를 통해 천상의 안식을 향한 순도 높은 소망함을 만난다. 백스터는 이 땅에서 천국의 안식을 구현하는 단계까지 나아가라고 말한다. 천상의 기쁨과 안식에 관한 설렘을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며 이웃과 호흡을 공유하는 현실 세상에까지 확장시키길 요구한다. 그의 경건이 놀랍고 하나님의 은혜가 경이롭다.

 

 

신자의 안식을 바라보는 청교도의 시각이 탁월하다. 천상의 안식만을 바라보며 정작 이 땅에서의 삶을 등한시하게 될 때 나타나는 부작용을 사전에 차단코자 하는 신학적 예지력이 신의 한 수다. 천상의 삶이 현재적 삶을 집어삼키도록 방조한 시한부 종말론의 병폐가 떠올라 한순간 씁쓸하다. 천상의 안식을 소망하지만 이 땅에서 주어진 현실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일의 균형을 줄타기하듯 맞춘다.

또한 천국의 안식을 바라보는 마음과 동시에 현실적 고통에 함몰되지 않는 것! 현실 속에서 천상의 안식이 주는 기쁨을 미리 맛보는 일이 필요하다. 이 땅에서 주는 인스턴트식 즐거움의 허상이 결코 천국의 안식이 주는 즐거움과는 비교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현실의 고난을 감내하며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죽음과 신자의 안식은 얼핏 결이 다르지만 뗄 수 없이 잇대어 있다. 죽음에 관한 묵상은 우리의 마음을 천상의 찬란한 안식에 관한 묵상으로 이끈다. 죽음을 생각할수록 삶은 투명해지고 이후의 안식은 기쁨으로 화한다. 이 세상의 시간이 가지는 의미에 무게를 둘 때 나와 같은 실수를 하게 된다. 이별은 분명 슬픈 일이다. 하지만 천상의 영원한 시간이 가지는 가치를 묵상할 때 소망함이 슬픔을 덮는다. 그리고 이것이 선택된 신자의 바른 신앙의 모습이다. 청교도 혁명과 왕정복고, 비국교도 박해라는 매일 아침 죽음이 문턱에서 기다리고 있던 시대를 살아낸 청교도는 이것을 알았다.

현실성을 강조하는 문구도 헛되다. 그렇다고 지금의 삶을 이후의 삶을 위한 담보로 통배팅하는 무지도 싫다. 성도의 영원한 안식은 이 땅에서의 삶 속에 천상의 안식을 구현하며 살아갈 때 가시화된다. 더불어 진짜 영원한 천상의 안식을 소망하며 기쁨으로 천성의 입구에 도달하는 삶이다. 택자 된 신자에게는 우리가 들어갈 말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안식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기에 이 땅에서의 즐거움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고난과 고통, 죽음 또한 친근하다.

고전의 품격! 청교도의 저작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캐주얼한 신앙서적들과는 격이 다름을 느낀다. 그들의 참된 경건과 진리에 관한 청명한 통찰이 깊은 여운으로 다가온다. 조금씩 되뇌며 읽을 때 들뜬 감정은 가라앉고 소란스럽던 정신은 제 길을 찾는다. 영혼의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저작의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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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멋진 휴식 - 32인의 창의성 대가에게 배우는 10가지 워라밸의 지혜
존 피치.맥스 프렌젤 지음, 마리야 스즈키 그림, 손현선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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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워라밸'이라는 신조어가 낯설지 않다. ‘Work-life balance’ 만큼 직장인들이 가진 전형적인 일과 삶의 고민을 적실하게 풀어놓은 단어도 없다. 먹고살기 바빴던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해도 휴식의 개념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반면 휴식의 중요성이 지금 시대만큼 크게 대두된 적도 없다.

향후 효율적인 생산성을 기대하며 휴식하는 것은 참된 휴식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휴식이 가져다주는 하나의 열매일 뿐 휴식을 취하는 진정한 목적이 될 수 없다. <이토록 멋진 휴식>은 이같이 참된 쉼의 목적과 의미가 무엇인지를 워커홀릭이었던 2명의 공저자가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기록하여 남긴 저작이다. 재미있는 것은 책의 중간마다 우리가 아는 유명 인사 32인이 바라본 일과 쉼에 관한 짧지만 강한 인사이트를 첨부했다는 점이다.

 

창의성, 쉼, 잠, 운동, 고독, 성찰, 놀이, 여행, 테크놀로지까지 현대인들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삶의 이슈를 휴식의 개념과 기막히게 믹스했다. 저자들이 말하는 휴식은 단지 삶에서 잠시 일이라는 플러그를 뽑는 것이 아닌 완전한 멈춤 즉, Time Off를 말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매 순간이라는 시간을 의식하는 것이다. 이는 초침으로서 흘러가는 표면적 시간으로서의 크로노스가 아닌 의미로서 다가오는 카이로스의 시간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다.

 

책은 타임 오프를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가치로서 평가한다. 문명사회로의 진입 후 인간은 결코 참된 쉼을 경험하지 못했다. 저자들은 '생산성이 왕이다'를 외치게 만든 만행의 시작은 프로테스탄트의 직업윤리라고 비꼰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고귀한 여가를 강조했던 것과 달리 청교도 직업윤리는 여가를 정죄하고 오직 일만 고귀한 것임을 강조했다고 일갈한다. 사실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통해 노동을 신과 이웃을 섬기는 일종의 성화 과정으로서 구원의 확증을 위한 도구로 보았을 뿐 휴식은 극악이며 생산성만이 선이며 지복임을 강조하지는 않았기에 이 부분은 저자들의 편견이 가미되지 않았나 싶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현대인들이 지나치게 많이 일하고 있음을 염려하며 적당한 게으름의 유익을 말한다. 하루 4시간 근로! 꿈같은 말이다. 나머지 시간은 빈둥대며 놀라는 것이 아닌 또 다른 교육과 문화라는 재창조의 시간으로 선용할 수 있다는 획기적 사고의 발상이다.

 

 

책을 읽으며 이처럼 깊은 양가감정을 느낀 자기개발서는 처음이었다. 하루 4시간 근무라는 허언처럼 들리는 이론 앞에서 마음속으로 열광했다. 맞아! 사람 사는 게 이런 거지! 어린 시절 개미와 베짱이라는 동화가 우리의 부지런함과 게으름의 선악 판단과 가치 기준을 교묘하게 세뇌시켰다고 여겨졌다. 의도적 멈춤, 삶을 돌아보며 성찰하고 가족과 함께 유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휴식의 중요성은 책이 주는 가장 큰 가르침이며 붙잡아야 할 귀중한 교훈이다.

그러나 이 책의 맹점이 한 가지 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이 이처럼 큰 책도 처음 본다. 워라밸을 강조했던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살던 당시의 고대 그리스는 노예들이 육체노동을 담당했던 시대였다. 그가 말한 '고귀한 여가'는 육체노동이라는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정된 계층에게나 주어진 특권이다. 즉, 소스타인 베블런이 자신의 책 <유한계급론>에서 밝힌 놀고먹는 소수의 상류 계급 말이다. 인류 문명의 발전이 소수의 유한계급에 의해서 발전되었다는 주장이 일견 타당할 수도 있지만 그 소수의 유한계급을 먹여살리기 위해서 수많은 육체노동 계급이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책의 포커스가 제대로 쉴 수 없는 불합리한 사회 시스템에 갇힌 육체노동자가 아닌 상대적으로 휴식을 보장받기 쉬운 지식근로자, 정신노동자들에게나 해당된다는 점은 책이 가진 아쉬움이다. 택배 기사들의 과로사,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죽음 등은 최근 우리 사회를 물든인 가슴 아픈 노동 현실의 민낯이다. 타임 오프라는 거창한 쉼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다운 휴식의 개념이 필요한 시대다.

이런 표현도 참 어폐가 있지만 사회가 굴러가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한다. 요즘 같은 살인적 무더위 속에서 쓰레기를 치워야 하고 땅을 굴착해야 하며 높은 송전탑에 매달려 전선을 수리해야 한다. 이 리뷰 또한 책을 전해 준 택배 기사님의 수고로 인한 결과물이다.

진정한 워라밸의 의미는 정신노동자와 육체노동자 모두가 함께 공존하며 인간답게 일하고 쉬는 것에 있다. 책에서 말하는 고귀한 여가, 쉼, 운동, 잠, 고독, 놀이 등 다양한 타임 오프의 훌륭한 통찰이 소수의 유한계급에게나 해당되는 배부른 소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불합리한 사회 노동 시스템의 전면 재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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