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멋진 휴식 - 32인의 창의성 대가에게 배우는 10가지 워라밸의 지혜
존 피치.맥스 프렌젤 지음, 마리야 스즈키 그림, 손현선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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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워라밸'이라는 신조어가 낯설지 않다. ‘Work-life balance’ 만큼 직장인들이 가진 전형적인 일과 삶의 고민을 적실하게 풀어놓은 단어도 없다. 먹고살기 바빴던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해도 휴식의 개념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반면 휴식의 중요성이 지금 시대만큼 크게 대두된 적도 없다.

향후 효율적인 생산성을 기대하며 휴식하는 것은 참된 휴식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휴식이 가져다주는 하나의 열매일 뿐 휴식을 취하는 진정한 목적이 될 수 없다. <이토록 멋진 휴식>은 이같이 참된 쉼의 목적과 의미가 무엇인지를 워커홀릭이었던 2명의 공저자가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기록하여 남긴 저작이다. 재미있는 것은 책의 중간마다 우리가 아는 유명 인사 32인이 바라본 일과 쉼에 관한 짧지만 강한 인사이트를 첨부했다는 점이다.

 

창의성, 쉼, 잠, 운동, 고독, 성찰, 놀이, 여행, 테크놀로지까지 현대인들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삶의 이슈를 휴식의 개념과 기막히게 믹스했다. 저자들이 말하는 휴식은 단지 삶에서 잠시 일이라는 플러그를 뽑는 것이 아닌 완전한 멈춤 즉, Time Off를 말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매 순간이라는 시간을 의식하는 것이다. 이는 초침으로서 흘러가는 표면적 시간으로서의 크로노스가 아닌 의미로서 다가오는 카이로스의 시간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다.

 

책은 타임 오프를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가치로서 평가한다. 문명사회로의 진입 후 인간은 결코 참된 쉼을 경험하지 못했다. 저자들은 '생산성이 왕이다'를 외치게 만든 만행의 시작은 프로테스탄트의 직업윤리라고 비꼰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고귀한 여가를 강조했던 것과 달리 청교도 직업윤리는 여가를 정죄하고 오직 일만 고귀한 것임을 강조했다고 일갈한다. 사실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통해 노동을 신과 이웃을 섬기는 일종의 성화 과정으로서 구원의 확증을 위한 도구로 보았을 뿐 휴식은 극악이며 생산성만이 선이며 지복임을 강조하지는 않았기에 이 부분은 저자들의 편견이 가미되지 않았나 싶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현대인들이 지나치게 많이 일하고 있음을 염려하며 적당한 게으름의 유익을 말한다. 하루 4시간 근로! 꿈같은 말이다. 나머지 시간은 빈둥대며 놀라는 것이 아닌 또 다른 교육과 문화라는 재창조의 시간으로 선용할 수 있다는 획기적 사고의 발상이다.

 

 

책을 읽으며 이처럼 깊은 양가감정을 느낀 자기개발서는 처음이었다. 하루 4시간 근무라는 허언처럼 들리는 이론 앞에서 마음속으로 열광했다. 맞아! 사람 사는 게 이런 거지! 어린 시절 개미와 베짱이라는 동화가 우리의 부지런함과 게으름의 선악 판단과 가치 기준을 교묘하게 세뇌시켰다고 여겨졌다. 의도적 멈춤, 삶을 돌아보며 성찰하고 가족과 함께 유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휴식의 중요성은 책이 주는 가장 큰 가르침이며 붙잡아야 할 귀중한 교훈이다.

그러나 이 책의 맹점이 한 가지 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이 이처럼 큰 책도 처음 본다. 워라밸을 강조했던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살던 당시의 고대 그리스는 노예들이 육체노동을 담당했던 시대였다. 그가 말한 '고귀한 여가'는 육체노동이라는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정된 계층에게나 주어진 특권이다. 즉, 소스타인 베블런이 자신의 책 <유한계급론>에서 밝힌 놀고먹는 소수의 상류 계급 말이다. 인류 문명의 발전이 소수의 유한계급에 의해서 발전되었다는 주장이 일견 타당할 수도 있지만 그 소수의 유한계급을 먹여살리기 위해서 수많은 육체노동 계급이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책의 포커스가 제대로 쉴 수 없는 불합리한 사회 시스템에 갇힌 육체노동자가 아닌 상대적으로 휴식을 보장받기 쉬운 지식근로자, 정신노동자들에게나 해당된다는 점은 책이 가진 아쉬움이다. 택배 기사들의 과로사,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죽음 등은 최근 우리 사회를 물든인 가슴 아픈 노동 현실의 민낯이다. 타임 오프라는 거창한 쉼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다운 휴식의 개념이 필요한 시대다.

이런 표현도 참 어폐가 있지만 사회가 굴러가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한다. 요즘 같은 살인적 무더위 속에서 쓰레기를 치워야 하고 땅을 굴착해야 하며 높은 송전탑에 매달려 전선을 수리해야 한다. 이 리뷰 또한 책을 전해 준 택배 기사님의 수고로 인한 결과물이다.

진정한 워라밸의 의미는 정신노동자와 육체노동자 모두가 함께 공존하며 인간답게 일하고 쉬는 것에 있다. 책에서 말하는 고귀한 여가, 쉼, 운동, 잠, 고독, 놀이 등 다양한 타임 오프의 훌륭한 통찰이 소수의 유한계급에게나 해당되는 배부른 소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불합리한 사회 노동 시스템의 전면 재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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