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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이야기 -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효게쓰 아사미 지음, 요시타케 신스케 그림, 김은하 옮김 / 담푸스 / 2021년 7월
평점 :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한 여름밤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던 화장실 공포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있는 추억이다. 그뿐인가! 난생처음 들어가 본 시골 푸세식(?) 변소의 기억은 충격 그 자체이기도 했다. 이처럼 화장실에 얽힌 이야기는 한정된 장소로의 제한적 의미를 훨씬 넘어서는 다양함으로 다가온다.
일본인 작가 '효게쓰 아사미'의 <화장실 이야기>는 화장실에 얽힌 짧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한 책이다. 먹고 싸는 행위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인 본능이며 욕구 아닌가? 사실 화장실은 인간의 주거 문화에 있어서 주방만큼 중요한 공간이다. 그렇지만 지금껏 화장실은 다른 공간과는 달리 터부시 되었던 장소 중 하나다.
본서는 인류 문명과 함께 해 온 화장실이라는 공간을 재미있는 스토리를 통해 숙고해볼 만한 대상으로 승화시켰다. 지하철 안에서 갑작스럽게 신호가 온다. 배에서 천둥이 친다. 조금이라도 힘을 빼는 순간 '와르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은 이 난감한 경험. 아마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책의 이야기가 나의 경험과 싱크 100%다. 내 이야기인 줄 알았다. 애국가를 속으로 족히 20번은 불렀다. 집중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다른 생각을 하며 다음 정거장 도착을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열차가 컴컴한 터널에 멈춰 서고 잠시 후 기관사의 안내 방송이 나온다. "우리 열차는 앞 열차와의 거리 유지로 인하여 잠시 정차하도록 하겠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다! 뱃속에서는 당장이라도 쏟아져 나올 것처럼 천둥이 치는데 정차라니!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 책에 나와있다.
이뿐 아니라 변기가 볼일 보는 사람의 건강 상태까지 체크해 주는 인터넷 인공 지능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미래 화장실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또한 병적인 집착을 가진 옛 여자친구가 집까지 침입해서 화장실에 숨어 있던 주인공을 찾아내는 이야기는 은근 소름 돋는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꿰어져 나온다. 재미있다!

일본의 국민 일러스트레이터 '요시타케 신스케'가 이 책의 삽화를 맡았다는 사실 하나로 선택한 책이다. <있으려나 서점>을 통해서 그의 그림이 갖는 매력에 빠졌던 터라 사실 작가보다는 삽화가를 보고 집어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책을 펼치고서는 삽화만큼 글이 갖는 매력도 상당함을 느낀다.
먹으면 싸야 하고 싸면 또 배가 고파져서 먹어야 하는 어찌 보면 가장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사이클이다. 그렇기에 먹은 것을 내놓아야 하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자연스러운 생리적 현상이다. 나온 것을 깨끗하게 처리해야 할 필요가 화장실을 탄생시켰다. 터부시될 만한 장소가 맞다. 하지만 먹는 일을 담당하는 주방은 깨끗해야 하고 먹은 것을 처리하는 화장실은 상대적으로 덜 깨끗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발상 자체가 인간이 얼마나 자기 본위의 본능적인 존재인지를 말해준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면 안 되듯 먹는 일도 중요한 만큼 싸는 일도 중요하다. 그리고 그 싸는 일을 담당하는 화장실에 대한 기준도 높아져야 한다.
책은 화장실에 얽힌 짧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하지만 귀여운 삽화와 함께 기술된 웹소설 한편이 독자에게 던지는 진의는 단지 '똥 싸는 이야기와 그 공간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끽끽대며 웃고 끝나는 것에 있지 않다.
"45억 명, 즉 10명 중 6명이 안전하게 관리된 화장실을 쓰지 못한다고 합니다.
21세기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이 지구." p188
간혹 노상에서 일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화장실 사용은 동물과 구분되는 가장 기초적인 척도다. 안전하고 위생적인 화장실 사용은 축복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기에 그렇다. 작가는 아무것도 아닌 소재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누군가에게는 흥미롭게 읽고 던져놓을 수 있는 팝콘과 같은 책일 수 있다. 반면 누군가에게는 화장실이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를 통해 인간 본질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사고를 확장시키는 책이 될 수도 있다.
먹는 일이 중요한 만큼 싸는 일도 중요하다. 먹기만 하고 버리지를 못할 때 인간은 탐욕으로 인한 과체중이 될 수밖에 없다. 뭐든 잘 먹었다면 잘 버려야 한다. 제때 버리지를 못하기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미워하고 반목하며 시기와 질투를 한다. 먹기만 잘하고 버리지를 못하기에 인간관계가 병든다. 웹소설로 탄생한 작은 책 한 권이 상당히 깊은 여운을 남긴다. pc 앞에 오래 앉아 있었더니 신호가 온다. 화장실이나 가야겠다.
<담푸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