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게으름
김남준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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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쇄 40만 부 판매. 기독교 도서 한 권이 이룬 쾌거다. 속편은 전편에 비해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세간의 암묵적 편견을 불식시키는 책 한 권이 이 40만 부 판매 도서의 속편이다. 안양 열린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김남준 목사의 <다시, 게으름>

18년 전 <게으름>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문체부터가 범상치 않다. 간결해서 군더더기 없고 호흡이 짧다. 저자가 1년 동안 현대 소설과 SNS 언어를 공부했단다. 현대 독자들이 선호하는 독서 취향과 문체의 트렌드를 반영했기에 종교 유무를 떠나 독자의 접근성을 높였다. 그러나 책은 분명 기독교 신앙 도서다.

참으로 바쁜 세상을 살아간다. 저자는 책을 통해 방향을 잃은 삶을 게으른 삶으로 정의한다. 바른 목표와 목적을 갖고 살지 못할 때 그는 게으른 자다! 영원한 절대자에 대한 사랑을 잃었기에 잠시 후면 사라질 헛된 욕망을 향해 부지런히 달음박질한다. 큰 평수의 브랜드 아파트, 고급 외제차, 높은 학벌, 좋은 직장이 전부이기에 옆을 돌아볼 겨를 없이 미친 듯이 내달린다.

 

"사람으로 태어나 그냥 있다가 죽었다!"

"부지런하게 사는 사람도 게으른 사람일 수 있단다. 쓸모없는 일에 바쁘고 마땅히 할 일에 게으르기에."

진짜 부지런한 사람은 진리를 알고 그 진리에 따라서 자신의 삶을 재정렬한다. 진리를 통해 삶에 진정한 목적과 방향의 좌표를 재설정한다. 진리를 알게 될 때 많이 가치 있는 것은 많이 사랑하게 되고, 조금 가치 있는 것은 조금 사랑한단다. 하위의 사랑이 상위의 사랑에 매달리는 형국. 사람은 그 진리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때에야만 기독교 신앙에 귀의한다.

'카르페 디엠'이라는 라틴어가 유행이다. "오늘을 즐겨라!?" 천만의 말씀이다! 오늘 먹고 죽자는 게으름의 구호가 아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철학적 자각이며 신학적 반성이다. 유한한 삶 속에서 삶의 참된 의미를 잊지 말라는 현재적 가르침의 함의다. 저자는 오늘만 진짜 있는 날이고 내일은 덤으로 주어지는 날이라고 말한다. 즉 오늘만 내게 주어졌고 내일은 안 올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내일이 올 것처럼 산다. 그래서 진리를 알고 사랑하며 그 진리를 위해 사는 것도 내일로 미룬다. 오늘은 그저 나를 위해 전전긍긍한다. 책이 말하는 게으른 삶이다!

 

 

전작이 성경이 말하는 게으름의 의미에 주목했다면 속편은 다소 철학적이다. 관통하는 메인 키워드는 질서다. 바르게 사는 삶은 참된 진리를 발견하는 데 있다. 진리는 무질서에 질서를 부여하고 그 질서는 하나님이라는 절대자를 아는 진리로부터 파생된다. 저자는 하나님이 무질서한 인간의 삶 속에 질서가 되실 때 비로소 인간과 만물이 조화와 균정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말한다.

참된 질서를 상실한 인간과 사회는 이기적이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제 자식도 죽이는 인면수심의 세상은 질서 부재를 반영한다. 이처럼 무질서한 세상과 인간은 참된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진짜 게으름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200여 페이지의 짧은 책이다. 문체마저 토막 쳐 있기에 더 짧게 느껴진다. 하지만 울림은 깊다. 저자 김남준, 명불허전이다! 가벼운 신앙 도서들이 넘쳐나는 세대 속에서 여운이 깊은 책을 오랜만에 만난다. 저자는 인생을 가장 짧게 사는 비결은 사치와 허영 속에 사는 것이며 반면 가치 있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은 세월을 아끼는 길이라고 한다.

"사랑은 삶에 목표를 부여한다. 제일 사랑하는 것들로부터 질서가 세워진다." 스스로를 성찰한다. 나의 삶 속에 쳐내야 할 곁가지가 많다. 닦아내야 할 인생과 신앙의 묵은 먼지들...

촌철살인의 매 문장이 가히 예술이다. 독자에게 던지는 저자의 에필로그가 마음을 울린다. "살아야 할 이유가 죽을 이유만큼 분명한 사람으로 사소서. 그래야 그대 행복할 것이기에."

 

우리는 짧은 삶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그것을 짧게 만들고 있다. 삶이 모자라는 게 아니라 낭비하고 있다...세네카

게으른 사람, 세월이 가도 후회하지 않을 목표가 없다. 그래서 그가 불쌍한 거다. 지금 마음 바쳐 사랑할 대상이 없다.(중략) 더 불쌍한 사람이 있다. 바르지 않은 것 위해 사는 사람이니, 그는 사랑할 대상을 찾지 못한 사람보다 불행하다.

세상 사랑에 빠질 때, 자기 삶의 주체성은 사라지고 정신은 오직 보이는 세상에 동화된다.

많은 사람이 목숨으로는 80까지 살아도, 의미로는 서른까지밖에 못사니, 안타깝지 않은가?

뒤집힌 질서에 대한 사랑. 그게 인간의 악(惡)이다.

게으름, 하나님 사랑하지 않는 영혼의 병듦이다.

p68,120,121,158,17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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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 수업 - 그들은 어떻게 더 나은 선택을 했는가?
조셉 비카르트 지음, 황성연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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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짜면! "짬뽕과 짜장면 중 무엇을 먹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를 외치는 일명 '결정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고안된 아이디어 메뉴다. 이는 사람들이 중식집 메뉴 하나도 쉽사리 선택하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그뿐인가! 오래전 주말 TV 프로그램 중 '이휘재의 인생극장'이라는 예능이 있었다. 주인공이 운명적인 삶의 갈림길에서 Yes! or No!를 외친다. 이후 주인공이 선택한 각각의 상반된 인생 결과를 보여준다. 당시 시청률이 꽤 높았다. 서로 다른 결정이 이끄는 삶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심리를 정확히 꿰뚫은 프로그램이었다.

이 책 <결정 수업>은 결정과 선택의 순간에서 망설이는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솔루션북이다. 다년간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상담하고 가르쳤던 저자의 경험이 사뭇 체계적이고 농밀하다.

우리가 결정을 미루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결과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다. 저자는 완벽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내가 선택한 결정에 흠결이 없어야 한다. 최상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 것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기인한다. 이는 곧 자연스레 결정을 미루는 요인이 된다. 저자는 말한다. 불완전함을 용인할 때에만 결정할 수 있다! 일단 발을 내딛는 일이 중요하다. 완벽한 정보와 정답을 갖고 결정할 수는 없다.

나는 책을 통해 개인적으로 두 가지 포인트를 수확했다. 첫 번째는 의사 결정에 있어 '직관'의 중요성이다. 선택의 결과는 우리가 알 수 없지만 나의 필요를 탐색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나의 직관이다. 결국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을 들여다보면 거의 대부분 자신이 선호하는 내면의 욕구, 무의식 속 내면의 갈망이 투영된다.

쉽게 말해 인간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는 의미다! 본성이 그렇다. 조금이라도 싫고 꺼리면 안 한다. 그렇기에 그 미세한 차이의 틈새를 잡아내는 일이 필요하고, 그 작업에 있어 중요한 것이 바로 직관이라는 점이다.

 

 

두 번째는 '거리 두기'의 가치다. 코로나19로 귀에 못이 박힌 거리 두기가 결정 솔루션에도 해당된다. 진학, 직장, 결혼, 이사 등 인생 대소사 결정과 선택의 순간에 직관만을 믿기가 미덥지 않은가? 그렇다면 필요한 것이 거리 두기다!

우유부단함의 끝판왕들에게 있어 거리 두기는 필수다. 저자는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의 선호, 자아, 현재 자신의 위치로부터 거리를 두고 멀리서 바라볼 때 당면한 문제에 대해 명료함과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음을 말한다. 즉 내가 선택해야 할 문제를 마치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남의 일을 보는 것처럼 조금은 시크하게 바라보라는 것이다. 달아오른 정신의 열망과 흥분을 가라앉히고 사뭇 냉정하고 쿨하게 문제를 직면하는 것! 한 발짝 뒤로 물러나 거리를 둘 때 우리는 좀 더 객관적이며 정확하게 상황을 인지하고 다소 용이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우리가 선택하는 것의 총합이 우리의 삶이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라고 말했다. 인생은 출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에 선택(Choice)이라는 의미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계속 선택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인생을 예리하게 간파한 통찰이다.

리뷰의 서두에 '짬짜면' 이야기를 했다. 죽느냐 사느냐를 외쳤던 햄릿의 고민이 아닌 짬뽕이냐 짜장면이냐를 외치는 우리네 현실이 웃프다. 끝없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개인적으로 육지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옛 유배지였던 곳으로 '셀프 유배'를 선택한 낙향의 문제가 최근 내 인생의 가장 큰 선택이고 결정이었다. 직관도 사용했고 거리 두기도 했다. 미래의 큰 그림과 작은 그림도 그렸고 득실의 차이도 따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신자로서 믿음이라는 무형의 요소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아무튼 우리 모두는 출생과 죽음 사이에 계속되는 선택을 강요받는 인생이라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라선 존재들이다.

우유부단함이 신중함의 표상이며 미덕이었던 시기는 지났다. 지금의 시대는 우유부단함으로 자신의 인생을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허용치 않는다. 빠르고 정확한 결정이 박수를 받는다. 그렇다고 동네 구멍가게에서 사탕 사듯 결정할 수만도 없다. 예측 불가의 수많은 변수 가운데 가능한 한 오류와 실패, 후회의 상수를 최소화시키는 결정의 작업은 우리에게 던져진 그야말로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다.

결정은 묘기이며 예술이다! 'The Art of Decision Making', 책의 원제가 그렇게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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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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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소녀가 3명의 불량 청소년들에게 납치되어 몹쓸 짓을 당하고 살해된다. 주인공 '나가미네 시게키'는 10여 년 전 아내와 사별 후 하나밖에 없는 딸을 이렇게 잃는다. 어느 날 누군가의 제보로 딸을 납치하고 살해한 범인의 집에 숨어들어가 방에 있는 녹화 영상 비디오를 보게 된다. 곧이어 자신의 딸을 유린한 짐승들에 대한 아버지의 처절한 복수가 시작되는데...

'무라카미 하루키'와 더불어 현대 일본 문학의 양대 거장으로 불리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저작 <방황하는 칼날>이다. 저자는 단순한 '오징어 땅콩'식 추리, 스릴러 장르의 책을 쓴다기보다 작품 속에 사회적 메시지를 적절하게 녹여내어 독자들로 하여금 주어진 현실을 한 번 더 반추하게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렇듯 명성이 자자하고 한국에도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게이고 작가의 작품을 처음 만난다.

명불허전! 이번에 읽어보니 알 것 같다. 소설이 갖추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요소들에 매우 충실하다. 흡입력이 시쳇말로 장난 아니다. 한번 책을 펼치면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덮을 수가 없다. 500여 페이지의 스토리를 끌고 가는데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다. 문장이 간결한 것도 장점이다. 배경 설명과 군더더기를 최대한 쳐냈기에 글 자체가 무겁지 않고 매우 라이트 하다. 그래서 극강의 몰입감을 선사하다. 더불어 추리 스릴러 장르가 갖추고 있어야 할 긴장감과 마지막 반전까지...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치밀한 구성을 보며 마니아들이 왜 그렇게 게이고를 연호하는지 알 것 같다.

사실 게이고를 만나는 첫 번 째 책이 조금 버거운 주제다. 우리 사회가 가진 '소년법'의 맹점을 부각시키며 피해자를 배려하지 않는 부조리한 사회 사법 시스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책의 전면에 스며들어 있다. 책을 읽으며 슬픔과 함께 분노했다. 완독 후에는 무기력함을 느끼며 우울했다. 완독은 이틀 전에 했지만 감정을 정리하고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시간을 두고 리뷰한다.

 

오히려 법은 범죄자를 구원해준다. (중략) 소년법의 벽은 가해자를 보호한다.

그리고 거의 모든 법은 피해자에게 냉혹하다. p134, p375

 

가해자가 미성년이기에 상상할 수도 없는 범죄를 저질렀지만 갱생을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풀려나는 우리 사회의 허술한 법적 시스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피해자의 아픔은 어디에서도 치유받을 수 없는 부조리한 사법체계는 제2, 제3의 피해자만을 양산해낸다. 그리고 가해자들은 또다시 소년법의 그늘 아래 숨는다. 사람을 죽여도 술을 먹고 저지른 행위였기에 감형을 받는 요지경 같은 세상. 인권이라는 미명하에 피해자의 짓밟힌 인권보다는 한 사람과 그 가족들의 인권을 처참하게 짓밟은 가해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중요시하는 미친 세상에 대한 일갈.

 

 

세상이라는 시스템이 만들어낸 괴물을 인간의 힘으로 인간으로 되돌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뿐이다.

일정 기간 '보호'된 죄인들은 세상의 기억이 흐릿해질 무렵 다시 원래 세상으로 돌아온다. 그 대다수는 또 다시 법을 어긴다. 그들은 알고 있지 않을까? 죄를 저질러도 어떤 보복도 받지 않는다는 것을. 국가가 그들을 보호해준다는 사실을. 우리가 정의의 칼날이라고 믿는 것이, 정말 올바른 방향을 향하고 있나? (중략)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칼날은 진짜일까? 정말 '악'을 벨 힘을 가지고 있나? p508, p534

 

소설 속 주인공은 국가 사법체계의 무능함 속에 내리쳐야 할 방향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칼날의 끝을 본인 스스로가 짐승들의 목을 향해 겨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고대 바벨론 함무라비 법전의 소환, 동해보복법의 현대판 버전이다. 법이 무능하기에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야만 하는 슬픈 현실.

소설이 재미를 선사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딱 킬링타임용으로 적당하다는 사고의 발현이다. 반면 소설과 문학이 재미라는 본연의 임무(?)와는 결이 다른 사회적 각성의 기능을 선사할 때 그것은 작가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신성한 의무를 실행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동안 내가 현대 소설을 터부시하고 오해했던 것이 이런 부분이다. 시간이 아깝고 건질 게 없어서... 처음으로 만난 게이고의 작품이 나의 이런 편견을 한순간에 불식시킨다.

소설이 재미로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파장과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야 얼마나 좋을까? 우리 사회가 가진 사법체계의 허술함과 소년법의 맹점, 피해자 보다 가해자의 인권을 더 중시하는 초점 잃은 인권 의식에 대한 반성이 사회 저변에서 거세게 일어나면 좋겠다.

먹고살기에 바쁜 세상 속에서 나와 내 가족이 당한 일이 아니기에 쉽게 망각해버리는 현실을 작가는 소설 속 주인공의 입을 빌려 말한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지 않을 때 누구나 다음번 희생자로 뽑힐 수도 있음을 말이다. 게이고의 경고가 섬찟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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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전문의도 실천하는 치매 예방법 - 9가지 치매 원인을 이기는 하루하루 생활 습관
엔도 히데토시 지음, 장은주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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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88234'라는 말을 들어봤는가? 99세까지 88하게 살다 2~3일 앓고 죽자(4:死)라는 일종의 100세 시대 표어다. 누가 만들었는지 참 재미있다. 하지만 99세까지 사는 일에 있어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88하게 사는 삶, 즉 삶의 질이 가진 중요성이다. 악담 중의 악담으로 "벽에 ×칠 할 때까지 살아라!"라는 말이 있듯 아무리 오래 살아도 옛 어른들이 말한 소위 노망 즉, 치매로 고생하며 오래 사는 것은 누구나 원하는 100세 시대의 삶은 아니다.

치매 없이 삶을 즐기며 건강하게 오래 살다가 고통 없이 떠나는 인생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치매는 정말 예방할 수 없는 노년의 불청객인가? 35년간 치매 전문의로서 일한 일본의 '엔도 히데토시'. 그가 집필한 시원스러운 답변이 일품인 책 한 권을 만난다. 중장년층 독자들을 염두에 둔 듯 활자, 줄 간격, 글 밥 적음 등의 가독성이 매우 우수하다.

저자는 우선 치매의 9가지 위험 인자를 말한다. 교육 조기 중단, 고혈압, 비만, 난청, 흡연, 우울증, 운동 부족, 사회적 고립, 당뇨.

치매는 아직까지 현대의학으로 완치하기는 어렵지만 기본적인 생활습관 개선으로 충분히 예방하거나 발병 시기를 늦출 수 있는 질환이다. 저자가 언급한 치매 위험 요인은 40대부터 주의해야 할 성인병 위험 요인을 중복해서 포함한다. 이는 중장년 시기에 성인병 예방을 겸한 생활습관 개선을 신경 쓰면 그것이 노년의 치매 예방으로 직결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책에서는 40대부터 반드시 숙지하고 실천해야 할 다양한 실천법을 소개한다. 맵고 짠 음식 덜먹기, 녹황색 야채와 육류 섭취를 균형감 있게 늘리기, 이어폰 소리 줄이기, 사람들과 어울리기, 주 3회 이상 빠른 걷기 이상의 유산소 운동과 적정한 무산소 운동하기, 일상에서 계단 오르기, 책상에 너무 오래 앉아 있지 않기 등 깨알 조언이 가득하다.

 

 

간혹 휴대폰을 손에 쥐고 휴대폰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가끔 방금 사용했던 자동차 키를 어디에 뒀는지 깜박할 때가 있기에 남일 같지 않다. 건망증이다. 그런데 돌봄의 필요 여부로 결정되는 '경도인지장애'라는 것이 있다. 치매는 아니지만 치매 전 단계다. 경도인지장애를 방치하면 치매로 직결되기에 건망증이 심해지면 의심을 해봐야 한다.

나는 요즘 해야 할 일들을 다이어리에 꼼꼼히 적는다. 예전부터 메모의 습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더 열심히 한다. 어떤 일을 하려고 생각했다가 잊어버린다. 심지어는 인터넷에 접속한 이유도 깜박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더욱 더 경각심을 갖고 실천하는 일이 바로 메모의 습관이다. 일종의 자구책이다.

또한 80대에 발병하는 치매는 40대부터 서서히 알츠하이머병이 진행된 결과라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40대 또는 그 이전부터 건강한 생활습관 개선이 중요하다. 책을 읽으며 가장 와닿았던 몇 가지 생활 습관 중에 계속 뇌를 사용하고 단련하라는 내용이다. 이를테면 장기나 바둑, 머리 쓰는 보드 게임 등도 좋다. 그러나 가장 격려가 되었던 솔루션은 공부와 독서였다. 어학 공부를 비롯해서 다양한 학습과 독서가 치매 예방에 그렇게 좋단다. 책 좋아하는 나로서 그야말로 복음이다!

200여 페이지의 짧은 책이라서 주말 이틀 만에 여가 선용하듯 완독했다. 책의 요지는 심플하다. 식습관 개선, 운동, 생활 습관 개선! 건강한 음식 먹으며 운동 열심히 하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사람들과 많이 웃으면서 즐겁게 지내라! 끝! 정말 간단하지 않은가? 그러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배워서 알고는 있어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자루 속 구슬일 뿐. 자루 속 구슬을 보배로 만들고 싶은 독자들에게 가볍지만 무게감 있게 일독을 권해볼 만한 책이다.

보너스! 책에는 <치매 자가 테스트>표가 첨부되어 있다. 높은 점수는 치매 고위험률을 나타낸다. 나는 최하 점수다. 마음을 쓸어내린다. 하지만 자만하지 말라! 책의 저자가 나에게 던지는 '마음의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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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국가에서
V. S. 나이폴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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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의 속살을 예리한 면도날로 도려낸 책 한 권을 만난다. 탈식민주의 문학의 대가, 톨스토이의 재림이라는 극찬의 수식어가 따라붙는 작가 'V. S. 나이폴'의 <자유 국가에서>가 그것이다. 책은 네 개의 단편과 한 개의 중편으로 구성된다. 나이폴은 다섯 편의 소설을 통해 탈식민주의 시대 속 방황하는 인간 군상의 저린 비애와 좌절, 고뇌를 절제된 필치로 그려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트리니다드에서 태어난 나이폴은 태생부터가 피식민지인이다. 일찍부터 영국으로 건너가 공부하며 영문학을 공부했고 이후 서머싯 몸 상을 수상한 <미겔 스트리트>등 다수의 작품을 출판하며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다양한 작품으로 수상했으며 그중 <자유 국가에서>는 영미권 최고의 문학상이라고 불리는 맨 부커 상의 영예를 가져온 작품이다.

단편 <무리에서 벗어나 한 개인으로>는 인도 뭄바이 출신의 이민자가 미국 워싱턴이라는 낯선 세계 속에서 겪는 이방인으로서의 생소한 경험을 1인칭 시점으로 흥미롭게 풀어간다. 주인공 '산토시'는 정부 고위직 관리인 주인의 하인으로 미국 워싱턴에 간다. 인도 정부에서 마련해 준 거처에는 산토시의 방이 없다. 산토시에게 주어진 주거 공간은 한평 남짓한 붙박이장이다. 독자는 여기서부터 계층으로 나누어진 인간 비애의 현실을 맛본다.

미국 워싱턴은 유색인종인 산토시에게 관대하지 않다. 외로운 이방인이 백인 주류 사회에서 겪는 냉대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디에도 마음 붙일 곳이 없는 이민자는 영원한 방랑자의 표본이다. 짧은 영어를 배우고 유행 지난 양복을 사 입지만 백인들에게 있어 산토시의 정체성은 여전히 뼛속까지 이방인이며 절대 타자다. 서구 사회의 냉소적 시각을 받아내며 백인 중심의 인종 시스템 속에 온전히 동화되고 녹아질 수 없는 주인공 산토시의 심적 갈등과 고통을 적절한 유머와 믹스했다. 고급 레스토랑에 후줄근한 츄리닝을 입고 정장 구두를 신은 채 들어간 것과 같은 느낌. 그렇기에 더 안쓰럽고 씁쓸하다.

타이틀 작 <자유 국가에서>는 중편 소설이다.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 체류 중인 영국 정부 행정관 '바비'와 동료 관리의 아내 '린다'가 차를 타고 유럽인 거주 구역으로 이동하며 겪는 이야기다. 소설 초반 주인공 바비는 원주민들에게 호의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나 주유소에서 흑인 종업원이 실수로 자신의 차 유리에 큰 흠집을 낸다. 종업원에게 불같이 화를 내는 바비의 모습은 백인들 안에 내재해 있는 인종 우월주의적 DNA가 표출되는 장면이다. 잠자고 있을 뿐 수면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차별과 혐오의 시각이 사뭇 깊다. 바비는 원래 인종에 호의적 인물이 아니었나 보다!? 모순적 인간 본성의 민낯이다.

 

 

나이폴은 어디에서도 환대받을 수 없는 피지배 식민지 유색 인종이 느끼는 깊은 상실과 슬픔, 어느 한 곳 몸을 누이고 마음 붙일 수 없는 방랑자들의 절망과 삭힌 비애를 가감 없이 날 것 그대로 전달했다. 그러나 나는 <자유 국가에서>를 나만의 또 다른 관점으로 소화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640km의 여정 속에서 만난 미개한(?) 원주민들의 시각으로 바라본 바비와 린다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탈식민주의 상황 속 감소한 국가 권력의 남은 힘을 부여잡고 가는 곳마다 "나는 정부 관리다!"라고 외치는 빈약한 자기주장 속에 숨겨진 팩트! 소설 말미에 원주민 군인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바비의 무력한 모습은 돈과 권력이라는 실제적인 힘이 없으면 이 세상 모든 이가 억압받을 수 밖에 없는 약육강식 사회 구조의 축소된 전형이다. 더불어 이것은 바비와 린다 또한 험난한 여정 속에서 냉대 받고 위협받을 수 있는 개연성 하의 힘없는 방랑자일 뿐임을 시사한다.

책은 혐오와 차별의 문화가 일상이 된 우리 사회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단적인 예로 이 땅의 영원한 이방인,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우리의 관점은 어떠한가? 흑인 소년에게 5실링을 쥐여주는 감싼 동정을 베풀지만 자신의 차 유리를 긁어 놓은 흑인 직원의 실수는 용납하지 못하는 바비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오버랩되지 않는지... 서평의 서두에서 말했듯 이 또한 결국은 인간 본성이라는 근원적 문제로 귀결된다. 본성 자체가 부패했기에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지 못하고 업신여기며 군림한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No답!

나이폴은 더 넓고 큰 거시적 관점에서 글을 쓴 것이 아닐까? 거대한 시스템 속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이 세상 모든 비기득권-피부색과 인종을 떠나서-인간 군상이 가진 슬픔, 억압의 현실을 고발하는 것은 아닐는지? 보편적 질문으로부터 사유의 범위를 확장시켜본다. 일단 집고 읽어보라!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것은 개별 독자의 몫이다!

 

<민음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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