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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5
엘리스 피터스 지음, 이창남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캐드펠 수사 시리즈 5 : 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 / 엘리스 피터스, 이창남 옮김 / 북하우스 펴냄>는 이번에 새롭게 출간된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마지막 책이다. 시리즈는 21권으로 구성되었고, 나머지 책들은 근간 예정이라고 하니 5권 이후의 이야기들도 곧 만나볼 수 있다.
중세 역사 추리소설로서 각 책마다 색다른 재미와 짙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의 매력이 상당하다.


5권 <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는 인류의 가장 큰 죄악 중 하나인 탐욕의 키워드를 소환한다. 평화로운 슈루즈베리 수도원에 결혼식 행렬이 들어온다. 모든 이들이 화려한 결혼식 행렬을 지켜보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거기에는 남녀노소 모든 사람들을 포함하여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들인 나환자들도 있다.
결혼식 행렬의 시작은 역시나 새 신랑의 모습이다. 그런데 새 신랑의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낯설다. 교활한 눈매에 머리가 벗겨진 외모가 어디를 보아도 중년을 지나 노년을 향해 가는 늙은 사내다. 결혼식의 새 신랑은 '휴언 드 돔빌'이라는 남작으로서 스티븐 왕과 친분이 깊은 인물이다.
반면 돔빌의 아내가 될 여성은 이제 갓 유모의 품을 벗어났을 정도의 어리고 앳된 소녀 '이베타'다. 신랑의 행렬보다는 소박한 신부의 행렬 속 이베타의 표정은 어둡다. 어딘가 모르게 이 결혼이 매우 잘못되었다고 직감될 정도로 새 신부의 얼굴은 말이 아니다.
작가는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도로에 운집한 군중을 기생충처럼 여기며 그들에게 사정없이 채찍을 휘두르는 새 신랑 돔빌 남작의 폭압적인 모습을 묘사했다. 이는 마치 이 결혼이 매우 불행한 일이 될 것임을 암시하는 듯 하다. 더불어 앞으로 벌어질 사건의 복선과 같은 역할을 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예리한 독자는 아마 이 부분에서 사건의 진범을 예상해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앳된 신부 이베타는 나이 많고 오만하며 잔인한 돔빌 남작에게 시집을 가는 걸까? 여기에서 소환되는 키워드가 바로 탐욕이다.
이베타는 부모 모두를 일찍 여윈 고아다. 아버지가 상당한 땅을 갖고 있는 자산가였기에 그녀에게 모든 재산이 상속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이베타를 대신해서 후견인의 역할을 자처한 이들이 바로 그녀의 삼촌과 숙모다.
여기에서부터 벌써 냄새가 난다. 돈 앞에서는 부모 자식의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세상은 중세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하물며 후견인이 조카와 삼촌 관계라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삼촌 '고드프리드'와 숙모 '애그니스'는 자신의 어린 조카가 가진 재산을 갈취하기 위한 방법으로 결혼이라는 이름의 인신매매를 진행 중이다.
폭압스러운 돔빌 남작은 왕과 친분이 깊었고, 권력을 지닌 인물이었기에 이베타를 돔빌 남작과 결혼시킨 후 이베타의 막대한 재산을 남작과 분할하기 위한 계략을 세운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돔빌 남작의 향사 '조슬린'은 이베타를 흠모한다. 그리고 이베타를 이 지옥에서 건져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싸우지만 역부족이다. 오히려 돔빌 남작에게 미운 털이 박혀 도둑의 누명을 쓰고 향사 자리에서까지 쫓겨나는 수치를 당한다.
이후 불행한 결혼식이 치러지기 전날 밤 놀라운 사건이 발생한다. 새 신랑 돔빌 남작이 살해된 채 발견된 것이다. 사건이 있는 곳이라면 주인공 캐드펠 수사가 출동하지 않는가? 캐드펠 수사의 촉이 발동하는 순간이다.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 들어가는 캐드펠 수사 앞에 놀랄만한 사건의 베일이 벗겨지기 시작하는데...
탐욕스럽고 야비한 돔빌 남작이 살해된 것은 새 신부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인데 과연 누가 새 신부를 위해서 이러한 엄청난 일을 벌인 것일까?

추리소설 마니아 중에서도 정황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난 독자라면 아마 대략 눈치챘을 것이다. 돔빌 남작은 다양한 사람에게 원한을 산 인물이다. 그중에서 살의를 불러 일으킬만한 원한은 무엇이었을까를 곰곰이 복기해 보면 된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정도의 분노는 자신의 전 존재를 흔들어놓는 공격을 통해 생성된다. 작가는 인간의 본성을 면밀하게 파악했고, 본작의 이야기 속에 잘 녹여냈다.
악의에 기반한 탐욕이 어느 누군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분노를 유발했다. 다른 이에게 가하는 폭력을 너무나 가볍게 여기는 세태를 꼬집는다. 자신이 피해를 준 상대에 대한 참회와 사죄가 실종된 이 시대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개정판 캐드펠 수사 시리즈 5권은 이렇게 마무리 된다. 나머지 후속작은 근간이라고 하니 기다려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