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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축일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4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중세 역사추리물의 고전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네 번째 이야기는 주요 배경인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에서 시작된다.
본 시리즈는 단편으로 출간되어 전편과의 연결성 없이 독립적인 스토리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전작에 등장했던 사건과 인물들이 후속편에도 등장하기에 순서대로 읽어나갈 때 사건과 인물에 관한 전체적인 이해가 쉽다.
슈루즈베리를 흔들었던 내전의 포화가 사그라진 지 이제 1년여의 시간이 지났다. 스티븐 왕이 권력을 잡은 상태에서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았던 슈루즈베리는 왕에게 여러모로 미운 털이 박힌 듯 하다.
내전 기간 파괴 된 성벽이며 시내의 도로 등이 아직 복구되지 않은 상태로 방치되고 있었는데 모두 다 재원의 부족으로 인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스티븐 왕에 대해 충성 맹세하지 못했던 슈루즈베리에 대한 홀대라고도 볼 수 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 4 : 성 베드로 축일 / 엘리스 피터스,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펴냄>은 이러한 슈루즈베리의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 일어난 사람들의 갈등으로부터 시작된다.
슈루즈베리 수도원에 새 수도원장이 부임한 지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자신이 새로운 수도원장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던 로버트 부수도원장은 타지에서 온 신임 수도원장 '라둘푸스'에게 자리를 내어준 상태다. 김칫국부터 마신 격이었다.
이렇게 슈루즈베리 수도원도 새롭게 짜인 권력 체계 속에서 다른 모양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시점이다. 그러나 주인공 캐드펠 수사는 여전히 자신의 허브 밭을 성실하게 가꾸며 수도원 내에서 벌어지는 파워게임에는 무관심하다.
한편 슈루즈베리는 '성 베드로 축일'을 기념하기 위한 장을 준비 중이다. 3일간 축일장이 열리면 타지에서 온 수많은 상인들이 다양한 물건을 가지고 와서 판매를 하는 커다란 시장이 열린다. 한마디로 마을의 가장 큰 축제다.
문제는 이 3일간의 축일장이 열릴 때 타지의 상인들이 슈루즈베리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통행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을 슈루즈베리 수도원에 납부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3일간의 축일장 동안 장사를 하지 못하고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 슈루즈베리 상인 길드는 불만이 많다. 장사도 못하지만 외지 상인들의 수레와 마차들이 오가며 가뜩이나 엉망인 도로를 더 파손시키는 일들이 발생했다.
정부의 지원은 끊긴 상태이며 축일장 통행세와 성벽, 도로 보수세와 같은 세금은 전혀 걷히지 않은 채 수도원의 수입으로 들어가는 상황에 대한 상인 길드의 불만이 폭발 직전이다. 상인들은 새로 부임한 라둘푸스 수도원장에게 수도원이 걷어들이는 축일장 세금의 작은 부분을 도로와 성벽 보수를 위한 재원으로 나눠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차갑다.
이러한 중에 축일장을 하루 앞둔 날 '토머스'라는 이름의 나이 든 거상이 발가벗겨진 채 단검에 찔려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낮에 상인 길드의 청년들과 주먹다짐을 하며 한바탕 소동을 벌인 터라 용의자는 사방에 널려 있다.
새로운 사건이 발생했고, 여기에 어김없이 주인공 캐드펠 수사가 빠질 수 없다. 예리한 촉으로 사건의 냄새를 맡아가는 캐드펠 수사는 미궁 속으로 빠져가는 사건의 실마리를 잡기 위해 죽임 당한 상인 토머스의 조카딸 '에마'와 한 팀을 이루며 사건의 진실 속으로 접근하기 시작하는데...

정통 추리소설이 지닌 진지함과 흥미로움이 우아하게 결합된 작품이다. 거상 토머스가 살해되기 전 이미 사건의 복선을 기막히게 깔아놓는 작가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독자로 하여금 누가 토머스를 무슨 이유로 죽였을까를 의심하며 고민하게 만드는 작가의 트랩이 기막히다. 스토리를 따라가며 나만의 용의자 명단을 구성했다. 나름의 이유를 통해 전부다 타당한 범행의 동기를 가지고 있기에 진범을 가려내는 일이 지난하다.
희생자가 부유한 상인이었기에 돈과 관련된 원한 관계가 급기야 살인을 불러왔다고 추측할 수도 있다. 반면 상인의 조카딸이 가진 빼어난 미모가 그녀를 흠모하는 남자들의 범행 동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자신의 아름다운 조카딸 에마에게 시답지 않은 남자들의 접근이 금지된 것은 토머스 탓이다.
책을 펼치면 모든 상황과 정황을 조합해서 살인 사건의 퍼즐을 짜 맞추는 두뇌게임이 시작된다. 독자는 캐드펠 수사와 에마가 판을 짜는 영리하고 흥미로운 게임을 지켜보며 즐거움을 취하면 된다. 책 한 권이 더위에 잠 못 이루는 여름밤을 지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