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수도사의 두건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3
엘리스 피터스 지음, 현준만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중세 역사 추리 소설로 인해 뜨거운 열대야의 여름밤이 즐겁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 3 : 수도사의 두건>을 기대감 속에 펼친다.
2권에서 잉글랜드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 간의 왕위 쟁탈 내전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며 전화의 기운은 슈루즈베리를 지나갔다. 3권은 내전 이후 평화와 일상을 되찾은 슈루즈베리 수도원 캐드펠 수사의 향기로운 허브 농원을 비추며 시작된다.
캐드펠 수사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허브 농원에서 땀을 흘리며 각종 허브 작물을 가꾸기에 열심이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읽다 보면 사건의 전개가 있기 전 허브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작가인 '엘리스 피터스'가 허브를 비롯한 당대의 역사적 배경과 고증에 상당히 충실했음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래서 책의 스토리가 더 사실적이고 입체적이다.
특별히 3권으로 출간된 본작 <수도사의 두건>은 영국 추리작가협회를 통해 '실버 대거 상'을 수상했다고 하니 추리 소설 마니아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내전의 폭풍이 지나고 일상을 회복한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에서의 새로운 사건의 전개는 어느 영주의 일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의 전 재산을 슈루즈베리 수도원에 기탁하고 대신 자신의 안락한 노후를 보장받기 원하는 영주 '거베이스 보넬'이 나타난 것이다.
보넬이 가진 땅과 재산이 워낙 막대했기에 이 제안은 수도원 입장에서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적인 사안이었기에 재고할 이유도 없이 받아들여진다. 수도원은 보넬 영주와 그의 아내, 2명의 하인을 위한 거처와 일정량의 음식, 의복, 연료, 용돈을 제공하는 대가로 영주의 모든 재산을 기탁 받기로 결정했다.
보넬 영주가 자신의 아내와 하인들을 데리고 수도원 소유의 사저로 입주한 후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다. 식사를 하는 도중 보넬 영주가 독살 당한 것이다.
독살에 사용된 독은 주인공 캐드펠 수사가 허브 밭에서 키운 '수도사의 두건'이라는 이름의 풀로 제조한 맹독성 약품이었다. 소량만 섭취해도 사망에 이를 수 있는 극약이었기에 다룰 때 항상 주의를 요하는 약품이 영주를 살해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범행에 이용된 도구가 캐드펠 수사 본인이 직접 만든 맹독성 약품이었기에 당연히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 캐드펠 수사. 운명의 장난처럼 그의 앞에 젊은 날 자신의 연인이었던 여인이 등장하며 혼란스러움과 당혹스러움이 교차하는 사건의 한 가운데에서 캐드펠 수사는 다시 한번 예리한 관찰과 직관, 추리의 기지를 발휘하여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이번 작품의 기저에는 탐욕이라는 주제가 깔려있다. 슈루즈베리 수도원장은 워낙 인품이 훌륭한 인물로서 모든 이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 숭앙 받는다. 반면 부수도원장은 차갑고 냉혹하며 엄격하다. 그는 끊임없이 고위 성직을 염원하며 수도원장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린다.
보넬 영주가 자신의 전 재산을 수도원에 기탁하고 이주하려는 결정을 내렸을 때 캐드펠 수사는 의아했다. 아직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수도원에 자신의 여생을 맡긴 채 무위도식하는 나태한 삶이 축복받은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더불어 청빈과 금욕, 복종을 목적으로 세워진 중세 수도원이 막대한 금액의 재산을 받고 세속인에게 수도원 사저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 또한 생소하다.
추리소설 한 권에 시대가 갖는 모순을 적실성 있게 담아냈다. 국왕이 너무 오래 살면 암살을 부르기 마련이라는 노골적인 대사 속에서 부수도원장의 수도원장 자리를 향한 탐욕이 드러난다. 전 재산을 기탁하는 대가로 죽을 때까지 일종의 노령 연금과 같은 서비스를 받으며 일신의 편안함을 누리고자 원하는 보넬 영주의 모습 또한 탐욕의 전형이다. 세속인에게 엄청난 재산을 기탁 받기로 결정한 수도원의 모습 또한 청빈과는 거리가 먼 탐욕스러움을 드러내는 치부가 아닐까?
권력을 향한 광적인 집착, 로또에 인생을 거는 세태의 초라함, 종교 단체의 금권화와 같은 지금의 시대를 정확하게 반영한 본작이 신기할 따름이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과 함께 사건의 중심에 선 캐드펠 수사는 이렇게 탐욕의 키워드로 점철된 사건의 실마리를 어떻게 풀어헤쳐 나갈 것인가? 놀라운 상상력과 치밀한 사건의 구성이 보는 이의 예측을 불허하는 정통 역사 미스터리의 단짠단짠한 맛을 느끼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분명 읽는 이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는 단순한 킬링타임용 추리소설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