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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읽는 사도신경
윤석준 지음, 한동현 그림 / 퓨리탄리폼드북스(PRB) / 2022년 7월
평점 :

매주일 교회에서 고백하는 '사도신경'이 오랜 타성에 젖어 습관적으로 되뇌는 주문과 같이 되어버리지 않았는지를 점검케 하는 책을 만났다. <지하철에서 읽는 사도신경>
사도신경은 모든 기독 신자들의 신앙과 믿음의 총체요 정수다. 2천 년 전 초대교회 사도들의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우리가 믿는 정통 신앙이 그리스도를 따랐던 사도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공교회적으로 밝히는 거룩한 행위다. 그런데 대체 지하철과 사도신경,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지하철은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 모든 인간 군상의 현실적 삶의 애환이 담긴 공간이다. 책을 읽고 스마트폰을 보며 화장을 고친다. 또는 누군가와 대화하고 신문을 읽으며 사색에 잠기고 때로는 피곤에 지친 육신에 잠깐의 쉼을 제공한다. 이렇듯 지하철은 현대인들의 일상성의 표상이다.
저자는 조국 교회의 신자들에게 있어 일상적 삶의 공간인 지하철에서의 짤막한 묵상을 제공하기 위해 책을 집필했다. 본문은 사도신경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의 사도신경 묵상과 통찰이 참으로 명품이다. 12장으로 구성된 사도신경의 내용을 건강한 개혁신학적 관점에서 균형 있게 기술했다. 결코 어울리지 않을듯해 보이는 일상으로 대변되는 지하철과 사도신경이라는 믿음의 진수가 기막힌 하모니를 이뤄 명품 묵상으로 재탄생했다.

매 챕터의 내용이 깊다. 그렇기에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더디다. 그만큼 생각할 거리가 많은 수작이다. '11장 나는 육의 부활을 믿습니다'는 신자의 삶에서 부활이 가지는 참된 의미와 가치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습관적으로 고백했던 '다시 사는 것'의 비밀이다.
저자는 뛰어난 통찰력으로 시간을 조명했다. 과거는 기억 속에만 존재하고 미래는 상상 속에만 있다. 그러나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다. 그렇기에 그분의 지배 속에 있는 신자 또한 과거와 미래에 영향받지 않는 현재성의 삶을 살 수 있다.
그러한 신자의 현재적 삶은 세례라는 과거와 육의 부활이라는 미래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세례를 통해 신자가 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세례를 통해 과거의 내가 죽고 현재의 나로서 살아간다. 반면 미래에 일어날 신자의 육의 부활은 장래 하나님 안에서의 온전한 부활을 소망케한다. 즉, 세례를 통해 과거가 신자의 삶의 지평 속에서 실존으로 꽃 피었고, 육의 부활을 통해 미래가 신자의 삶에 침투했다.
현재라는 실존을 관통하는 세례와 육의 부활이 없이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이 땅에서의 현재만 있다. 그렇기에 지금의 삶이 마지막인 것처럼 '카르페 디엠'에 열광한다. 하지만 신자들의 삶은 다르다. 과거와 미래가 현재 속으로 수렴될 때 신자의 삶은 현실의 삶에 대한 충실함으로 드러난다. 저자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언약적 삶'이라고 표현했다.
주일 아침마다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육의 부활을 믿는다는 단순한 고백에 이런 어마 무시한 진리가 녹아져 있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는다. 육의 부활을 믿는 신자는 대충 살 수 없다. 그렇다고 현재가 전부라는 생각으로 이전투구하는 삶을 살아서도 안된다.

사도신경을 이처럼 멋지게 풀어내다니 놀라울 뿐이다. 저자의 성경적, 신학적, 지적 통찰에 박수를 보낸다. 결국 책에서 말하는 요지는 지하철이라는 일상의 공간에 침투하는 기독교 신앙의 정수다.
일상과 신앙의 간극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살아가기에 신자들의 삶은 힘이 없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유난 떨지 마!"라는 자조는 신자의 삶이 얼마나 이중적이고 모순적인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교회도 죄인들이 모인 공동체이기에 적당히 허물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자기 합리화가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에 대해 일갈한다. 거룩함과 구별됨을 포기하는 현대 교회 민낯에 대한 뼈아픈 질책이다.
사도신경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기계적 암기가 아닌 매 구절이 신자의 삶을 뒤흔드는 엄청난 고백임을 생각하며 천천히 고백해 본다. 매 구절에 대한 의미가 우리의 삶을 관통할 때 느끼는 이질적 느낌이 사뭇 새롭다.
떠밀려감이 지배하는 관성의 지하철과 멈춤이라는 묵상의 조화, 일상성의 대표 아이콘인 지하철과 신자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사도신경의 하모니가 한 권의 책에 응축되었다. 결코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불협의 주제다. 특별하지만 평범한 사도들의 고백이 평범한 삶의 현장에 풀어질 때 신자에게 있어 지하철은 더 이상의 지옥철이 아니다.
<문화충전200% 카페를 통해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