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누구든돌린다‬

누구든 돌린다


검은 것과 흰 것을 구분하는 일
검기도 하고 희기도 한 것들이 뒤섞여 물든다


누구든 돌린다


그물은 침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결코 입을 열지 않는다


누구든 돌린다


롤러코스터를 타면 속이 울렁거렸던 기억
뒤엉켜 부딪히며 내는 즐거운 비명


누구든 돌린다


언젠간 멈춘다


누구든 걷는다


누구든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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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발바닥 되던 날, 보라카이(3)

‪#‎보라카이‬ ‪#‎여행‬

1. 바닷물이 몸을 맡기면 파도와 물의 흐름에 따라 몸이 떠내려 간다. 자연 물침대이자 무료마사지숍이다. 어제는 무료마사지를 충분히 받았기에 D-MALL 초입에 있는 마사지숍을 갔다. FOOT SPA를 예약했는데, 1인당 650페소(한화 12,000원 정도)를 지불했다. 기댈 수 있는 의자에 앉았다. 40대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가 거품나는 기계로 발을 씻겨 준다. 어릴 때 엄마나 아빠가 목욕탕에서 내 발바닥을 씻겨 주었겠지만 성인이 되어 내 발을 남에 맡긴 건 처음이었다. 
처음치곤 기분이 묘하면서도 괜찮았다 아직까진.


2. 아저씨가 입을 꽉 다물고 구두솔 같은 도구를 내 발에 갖다대었다. 정말 열심히 내 발을 긁었다. 책상 위 연필 낙서를 지운 후에 나온 지우개똥이 수북이 쌓이듯 몇 년 묵은 각질이 쌓였다. 이 아저씨는 분명 한국에서 군대생활을 했다면 군화를 잘 닦았을 것 같다. 나중에 물어보니 이 가게에서만 10년을 일했다고 한다. 남자라 그런지 힘도 좋고 연륜이 느껴졌다. 간지럽기도, 아프기도, 짜릿하기도, 오그라들기도 하는 묘한 기분, 엄마가 애기도 빨간 '다라이'(다라이라고 해야 그 느낌이 산다)에 물 받아서 내 발을 씻겨주었던 그 때의 모습의 재현이라고 할까. 내 발바닥은 아기 발바닥이 되었다. 스크럽이 끝나고 추가비용을 내고 발사지를 받았다. 아픈데 좋았다. 마사지 하는 부분이 몸 어디인지 물었다. '신장' '눈' '방광' 한국말로 또렷이 답해주는 친절한 아저씨 덕분에 1시간 반동안 즐거웠다.


3. 오후에는 바다로 '호핑투어'를 나갔다. 스쿠버 다이빙보다는 간소하게 물안경에 호스만 달린 장비를 착용하고 물 속에서 열대어를 보는 체험, 호스가 연결된 부분을 잘못 문 탓인지 바닷물을 왈칵 들어와 삼켰다. 내 식도가 소금에 절여지는 건 아닌지.....


4. 저녁엔 또 한국인이 운영하는 마사지, 해변가 펍에서 맥주 한잔. 보라카이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아침 5시에 일어나 서둘러 섬을 나왔다. 섬에 오던날 어둠이 감추었던 시골 풍경들과 7시를 갓 넘긴 시각에 등교를 시작하는 초등학교 학생들을 보며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여행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나 여행갈 준비를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일상에서 여행을 꿈꾸며 다시 여행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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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 2

‪#‎화해‬ ‪#‎돌‬


철조망 사이로 돌이 떨어졌다 
내가 돌을 피한 것이 아니라 돌이 나를 피했다


돌이 멈춰 선 자리로 걸어가 발바닥으로 밟았다
이리저리 굴려도 성한 곳 하나 없는 몸
이리저리 채였을 그것을 손바닥으로 쥐었다


바닷가에서 태어나 바람과 파도를 만났다면 매끈했을 몸
산에서 태어나 여기까지 굴러 온 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갈고 닦고 품고 깎았던 

삼키고 씹고 숨겼던 


불에 달궈진 돌 위에서 익어가는 고기를 보며
웃었다



같은 곳에 묻히기로 했다


던졌다
몇 발자국 못가고 멈췄다


걸었다
멈춘 그 지점을 향해 너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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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바다, - 보라카이 (2)



1. 닭 울음 소리에 잠을 깼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를 조금 넘었다. 술자리에서 대여섯 명이서 하는 '눈치게임'처럼 하나가 끝나자 마자 딴 놈이 울었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필리핀 사람들은 닭을 많이 먹기도 하거니와 싸움닭 용으로 닭을 집집마다 대여섯 마리씩 기른다고 했다. 가끔 오후 늦게 우는 닭도 있는데 수입닭은 자기가 태어난 나라의 새벽시간에 맞춰 운다고 들은 것 같다. 수구초심은 닭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구나. 앞으로는 '닭대가리'라는 말을 비하투로 쓰지 말아야지. 내가 닭띠기도 하고.




2. 이틀째 일정은 여유있게 정오경부터 시작해서 오전에 조금 여유롭게 움직였다. 조식을 먹었는데, 최근에 생긴 호텔이고 한국 고객들이 많아서 그런지 김치, 밥도 있고 입맛에 잘 맞았다. 식사 후에 '화이트 비치'를 따라 난 길을 걸었다. 해가 쨍쩅하다가 금방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씨마저 감싸는 산호초로 이루어진 모래사장을 보면서 천천히 걸었다. 골목길 사이로 'd talipapa'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시장인데, 각종 기념품, 옷가지부터 수산물과 과일을 파는 전통 시장이다. 특별히 눈에 띄는 건 없지만 여행지의 시장은 그 자체로 설렘을 준다.




관광객이 많이 다니는 길 대신 메인 도로를 따라 마사지숍이 많은 station 3로 가다가 과일과게에서 망고를 샀다. 보라카이에는 망고나무가 세 그루 밖에 없다고 한다. 망고는 다 육지에서 공수해온 것이고 랍스터 같은 것도 근해에서 잡히는 것은 거의 없다. 특히 나물이 귀한데 섬 사람들이 주로 먹는 채소는 '깡콩'이다. 외형은 시금치 나물처럼 푸르고 식감은 시금치보다는 아삭아삭 조금 더 씹히는 식감이 있다. '깡콩'한 접시 가격이 치킨카레 한 접시 가격이다. 맥주는 San Miguel 이 유명한데 한국돈으로 한 캔에 1,200-1500원 정도였다. 술을 좋아했으면 종류별로 사먹어 보고 비교해보겠는데 그러다가 호텔에서 몸저 누울 수도 있으므로 그건 포기했다.





3. 오후에는 별다른 일정이 없다. 그냥 자유시간. 아내와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바다로 나갔다. 보라카이 섬의 전체구조는 station 1에서 station 3로 긴 화이트 비치가 펼쳐져 있고 station 1으로 갈수록 모래 알갱이가 작고 곱다. station 3 쪽은 한국, 중국 관광객이 많았고, station 1으로 근접할 수록 조금 더 조용한 분위기에서 한가롭게 썬 탠이나 책을 읽는 서양인들을 볼 수 있었다.



바다는 바다였다. 연인끼리 가족끼리 물 속에서 놀고, 모래 사장에서는 필리핀 얘들이 모래로 'I LOVE BORAKAY' 글자를 넣은 모래 조형물을 만들어 사진 1장에 1달러를 받았다. 마사지나 호핑투어를 예약하라고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상인들, 누워서 썬 탠을 하는 여자들, 그리고 물 침대같은 바닷물에 몸을 맡기고 드러누운 우리. 바다는 바다다. 가끔씩 입 속으로 들어오는 바닷물은 짰지만.



4. 저녁식사를 마치고 Staion 2의 중심가인 'D MALL'로 가서 자몽,망고스틴도 사고 망고아이스크림도 먹었다. 아내가 미리 가격대비 만족도가 높은 마사지숍을 알아둔 덕분에 전신마사지를 받았다. 평소에 휴양지에서 물놀이하고 마사지 받는 그야말로 힐링 휴양 여행을 원했던 아내의 로망이 조금 충족되었으려나. 하긴 지난 6월의 이탈리아 여행은 퍽 힘들었었다. 생전 처음 받아본 전신마사지를 받았는데 이거 중독될 것 같다. ㅎ

#보라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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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겨울로, 보라카이 (1)
#보라카이

공항미팅 시간에 여유있게 도착하기 위해 11시 20분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각자 하나씩 끌고 집을 나섰다. 5분 정도 큰 대로로 걸어나왔다. 302번을 타면 인천공항에 내린다. 배차간격이 긴지 20여분을 기다려 302번 버스가 도착했다. 타려니 아저씨가 "짐이 커서 못 타십니다. 터미널 가서 리무진 타세요." 차문 옆에 여객운수사업법상 부피가 큰 물건을 가진 승객의 어쩌구저쩌구 문구, 그렇게 여행은 시작됐다. 야속한 302번 아저씨라는 아내의 푸념을 다시 집에 되돌아가는 길에 내내 들으며. 자가용을 끌고 다시 공항으로 출발.

에어아시아 비행기로 5시간을 날아 현지시각 저녁 8시(한국보다 한시간 느림) 칼리보 공항에 안착했다. 기내 좌석간격은 좁았고 서비스는 물을 제외하고 일체 없었다. 심심해서 비행사 카탈로그를 들쳤다. 지금부터 퀴즈를 내겠다. 다음 문장의 의미는?

"이 한국어 식사는 확실히 때문에 달콤한 간장소스에 요리 완벽한 선택 쇠고기의 모든 K-pop및 음식애인을 만족시킬 것이다."

답: Korean beef steak This Korean meal will surely satisfy every K-pop and food lover because of the perfect choice beef cooked in sweet soy sauce

번역기 돌렸네 이것들. 왠만하면 돈주고 번역 좀 하지. 한국인 직원도 있던데......

픽업 나온 현지 가이드와 20년 지기라는 40대 초반 아줌마 4명과 인근 식당에서 준비된 비빔밥을 먹었다. 순간 제주도에 왔나. 한국 사람들로 북적였고 현지인 종업원도 한국어로 인사했다.

열렬한 환영의 비가 쏟아졌다. 보라카이 섬으로 가는 선착장을 향해 벤에 올랐다. 포장도로 였지만 거칠었고, 밤이라 야자수가 심어진 시골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태풍이 일년에 30개 생기면 30개 모두에 직간접적 영향을 받는다는 적도권에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인솔가이드는 관광학과 다니는 학생이고 이름은 니콜, 도와줄 현지인 도우미는 '톤톤', 톤톤은 25살인데 두살배기 딸이 있다. 결혼은 안했는데 필리핀은 기독교 국가라 피임이나 낙태를 하지 않고 아기가 생기면 결혼 않고 동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톤톤'은 밝게 웃고 착해 보였다. 한국어도 곧잘 한다.

톤톤은 린다나우에서 태어났다. 동양인으로 7체급을 석권한 필리핀의 복싱영웅 매니 파퀴아오와 같은 지역이란다. 철저하게 아웃복싱을 하는 메이웨더를 이겨즈길 바랐지만 부상을 안고 경기하느라 제 실력발휘를 못했다. 그건 그렇고 톤톤은 고교졸업 후 돈을 벌기 위해 마닐라로 갔다. 접시닦이부터 여러 일을 5년정도 하다가 고향우로 와서 동거녀를 만나 아기를 가졌고 보라카이에서 일을 구해 5년 정도 일해오고 있었다. 마닐라와 고향근처 외에는 가본적 없다는 마른 고양이처럼 안아주고 싶은 성실한 청년이다. 여행중에 항상 같이 다니니까 좀 더 말을 나눠야겠다.

이런 저런 얘기에 선착장에 도착, 빗방울은 점점 굵어졌다. 30여명이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선내 좌석에 앉았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구명조끼 뒤에 'Mermaid-4'라는 글자가 보였다. 간밤에 옹기종기 모여 노란색 티셔츠에 한손으로 운전하는 절대 자격증이 없을 것 같은 배 운전사에 운명을 맡긴 인어 30마리는 무사히 보라카이 섬에 안칙했다.

밤 12시 꿈 속으로 체크인. 새벽으로 줌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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