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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사물들 - 시인의 마음에 비친 내밀한 이야기들
강정 외 지음, 허정 사진 / 한겨레출판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글 강정 외, 사진 허정, 시인의 사물들, 한겨레출판
1. 오래 사귄 대학 친구를 만나고 오는 길, 점점 길어지는 낮, 햇볕이 처음으로 아팠다. 그 아픔의 연유는 무엇이었을까.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선뜻 도와줄게, 말하지 못한 미안함이었을까. 내가 쓴 시에 대한 혹평을 들었기 떄문일까. ‘일부러 자극이 필요해서 찾아간 거잖아. 목적은 달성한 거야.’ 자위하는 심정으로 저벅저벅 전철역으로 걸어왔다.
2. 여러 명의 시인들이 한 가지 사물에 대해 각자의 이야기를 3,4 페이지 정도로 쓴 글 모음책. 성동혁 시인의 시를 읽었을 떄 기독교적인 바탕과 투명함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시인들(김경주, 박성우, 서효인, 성동혁, 안상학, 오은, 윤성택, 이우성, 이원, 이이체, 황인찬, 함민복 등등)이 무척 많이 나오기에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엔 그만이었던 책.
신을 믿게 된 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이었다. (···) 내겐 또래의 아이들보다 조금 빨리 깨닫게 된 것이 있었는데 그건 이 두 가지였다.
첫째, 내가 울면 엄마도 우는구나. 침대차에 실려 수술실로 가는 복도. 엄마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는데 엄마의 얼굴이 그렁그렁 모두 떨어질 것 같았다. (···)
둘쨰, 내가 사랑하는 엄마도 수술실까지는 같이 들어오지 못하는 구나. (···) 수술대 위에 올랐다. 등 전체에 온통 차갑기만 한 수술대가 닿을 떄, 그러니까 철판에 누운 내게로 너무 큰 조명이 켜질 때, 난 혼자구나, 신이 나와 함께해주지 않으면 난 여기서 싸늘해질 수도 있겠구나, 감각했다. 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신을 수술대 위에서 믿기 시작했다. 24쪽
난 신을 믿지만 신을 보지 못했다. 얼굴을 실제로 마주하고 이야기해보지 못했다. 그의 형상을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나는 그를 알 수 있다.
매일 샤워 후 거울 앞에서 물기를 닦는 스스로를 본다. 온몸에 그가 나를 열고 온기를 심어준 자국이 보인다. 내 몸을 열고 그 안을 만진 신의 손이, 그 손이 지나간 자국들이 보인다. 그것이 어릴 적엔 불현듯 콤플렉스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그건 잠시 뿐이었다. 그 자국은 내가 신을 믿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단서가 되었다. 나의 몸이 신의 온기를 담는 커다란 그릇이 된 것임을 난 믿는다. 24-25쪽
NEWS는 동(E)·서(W)·남(S)·북(N)에서 온 말이므로 서양은 소식이 전해져 오는 공간에 주목했다면, 동양은 새롭다(新)라는 시간 개념을 먼저 헤아리는 것일까. 95쪽
이어폰을 끼는 순간, 침묵이 찾아온다는 것. 이어폰으로 음악이 들려오는 순간, 귀는 열리고 입은 닫힌다. 음악은 귓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지만 정확히는 귀의 안도 밖도 아닌, 그래서 안이라고도 밖이라고도 보이는 한 구멍에서 나타났다 사라진다. 끊임없이. 1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