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시인선 32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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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1. 이 시집을 읽었는데 한차례 병치레를 한 것 같다. 유난히 아픈 화자가 많이 등장해서일까. “시인은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고 말하지만 애초에 진단부터 틀렸다. 내가 당신 때문에 아픈 것인데 그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잊어도 이제는 내성이 생겨 더 큰 슬픔이 아픔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고독과 슬픔을 조곤조곤 말하고 있다. 꾀병이어도 좋고 아프다, 아프다 생각하다 한 번쯤 아파도 좋다. 아프면 언젠가 나으니까. 나으면 또 아플 거니까.



2. 세로수길 가로등 (박동민, 2017 시산맥 봄호)

내가 어둡대요/밤새 손들고 벌 받는 중에도 쉴 새 없이 까부는 난데/ 바닥에 붙은 은색 껌종이처럼/ 나의 꿈도 통통 튀는 용수철이었죠// 커서 뭐가 되려는지/ 뭐라도 되겠지, 하시던 분들/ 보세요!/ 나는 매일 런웨이를 걸어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워킹 워킹,/ 배운 적은 없죠// 무대 위 조명을 받으며/ 옷걸이들이 홋홋 모자를 쓰고 걷네요/ 나는 통유리 앞에서 마네킹이 웃을 때까지 춤을 춰요/이렇게 흥이 많은데 내가 어둡다니 원// 어젯밤에는 발톱에 페디큐어를 칠하다가 미친년처럼 웃었어요/ 런웨이에선 절대 웃으면 안되거든요// 요새 시즌이라 먹어도 자꾸 말라요 체질인가봐요/ 모가지보다 다리가 길어서 슬픈 족속// 자기 전에 비밀 하나 말해줄까요/ 사실 워킹보다 중요한 건 턴 턴,/ 뒤도 안돌아보고 꿈속으로 워킹 워킹/ 배우지 않은 걸음으로





3. 메모

- 꾀병 25쪽 부분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 낙(落)50-51쪽

그날 아버지가/ 들고 온 비닐봉지// 얄랑거리는 잉어// 잉어 입술처럼/ 귀퉁이가 헐은/ 파란 대문 집// 담벼락마다/ 솟아 있는/ 깨진 유리병들// 월담하듯 잉어는/ 내가 낮에 놀던/ 고무대야에 뛰어들고// 나와 몸집이 비슷했던 잉어// 그날따라 어머니는 치마 속으로/ 나를 못 숨어들게 하고// 이불을 덮고 끙끙 앓다가/ 다 죽기 전에 손수 배를 가르느라/ 한밤중에 잉어 내장을 긁어내느라// 탯줄처럼 길게/ 끌려내려오던 달빛// “당신 이걸 고아먹어야지 뭐하려고 조림을 해”// 다음날 아침/ 밥상에 살이 댕댕하게 오른// 그러니까 동생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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