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테스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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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키냐르, 부테스(Boutès), 문학과지성사



1. 내 머릿속이 거친 풍랑을 만나 전두엽이 흔들릴 때, 관자놀이에서 맥박이 뛰며 춤을 출 때에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헤밍웨이가 글을 쓸 때 자주 들었다던 멘델스존의 무언가(無言歌),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들으면 뇌의 멀미가 조금 잦아든다. 말과 활자와 잡념들이 뇌 속을 버무리기 전에 나는 공중에 울려 퍼진 소리의 물침대에 몸을 맡긴다. 나만의 생존수영이다.


2. 황금 양털을 찾아 떠난 아르고호의 일원이었던 ‘부테스’는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 바다에 뛰어들어 익사했다. ‘부테스’는 다이버의 원형이다. 오디세우스나 오르페우스와 달리 기꺼이 ‘가지 않을 수 없었을 곳’으로 떠난 자. 욕망에 가장 충실했던 자다.


파멸로 이끈 세이렌의 노래, 정확히 음악에 대해 키냐르는 ‘물로 뛰어드는 욕망’(29쪽)이라고 했다. 뱃속의 양수에서 놀다가 듣던 산모가 내뱉는 말을 듣는 데서부터 시작된 음악에 대한 반응은 본능적이다.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춤을 추는 것이 현대로 오면서 ‘앉아서 연주’하고 ‘앉아서 청취’하는 음악으로 변질되었다고 안타까워한다.


3. 이 책은 오디세우스나 오르페우스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던 부테스를 소환해 음악의 본질에 관해 서술한다. 시초, 옛날, 근원에 대해 장르를 넘나들며 서술하는 키냐르식의 간결한 문체는 읽는 맛을 더해준다. 음악을 ‘감상(당)하는’ 단순 청자의 지위에서 벗어나 내 속에 내재되어 있을 것 같은 움직임(춤)에 대한 본능을 찾아봐야겠다.





* 메모




* 메모


- 물 속의 삶과 대기권의 삶은 출생하면서 분리된다. 애벌레(거의 물고기)의 삶과 나비(거의 새)의 삶. 거의 물고기, 거의 새: 이것이 바로 부테스의 모습이고 세이렌들의 모습이다. 36쪽



- 세 가지 주석 59쪽

1)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다.(하지만 모든 죽음이 먹히는 것이라는 의미에서는 돌이킬 수 있다. 즉 죽음으로 파괴된 것을 섭취함으로써 가능하다. 육식동물의 경우에 실은 죽음이 유일한 영양분이다.)

2) 돌이킬 수 없는 운동에는 방향성이 없다.(단지 가지 못했을 수도 있는 곳에 이제는 도달하지 않을 수 없을 뿐이다.)

3) 기원은 시간 내에서 이어진다.(옛날의 돌이킬 수 없는 특성이 지금이라는 모든 순간의 만회 불가능의 토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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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힘
장석주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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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은유의 힘, 다산책방



1. “방문의 배꼽을 꼬옥 누르는 순간부터 사춘기는 시작된다”고 썼었다. 샤워를 하거나 용변을 볼 때 화장실 문을 잠그는 일은 알몸을 타인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방어본능이라면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소녀가 방문을 잠그는 일은 역설적으로 벗은 몸 그 자체로 봐달라는 공격적 본능이다. 배꼽은 문명의 중심이자 내 몸의 가운데에 있다. 나는 배꼽에서 나왔으므로 배꼽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배꼽은 자존감이다. 그래서 “사춘기의 배꼽은” 아름답다.




2. 시(詩)는 은유(隱喩)다. 본뜻을 숨기고 대상을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수사법을 넘어 시 자체가 은유라는 말이다. 잔잔하게 흐르다가 장애물을 만나 굽이치는 강물의 삶에서 두 손으로 한 부분을 떠내어 그릇에 담가두고 기다린다.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을 것은 가라앉고 증발할 것은 증발하고 날아갈 것은 날아간다. 시간이 지나도 흐릿함이 지워지지 않기도 하지만 대개는 본연의 물만 남는다. 그것을 오래 바라보는 일, 바라보다가 눈을 감기도 하고, ‘너는 어디에서 왔니’ 말을 걸기도 하고, 물 속의 어둠과 빛에 대해 생각하고, 물을 흘려보낸 사람과 물을 짊어진 사람을 떠올리는 일. 모두 삶을 은유로서 살아가는 일이다.




3. 이 책은 장석주 시인의 시에 관한 에세이다. 초반 몇 꼭지는 ‘은유’에 관한 내용이 많지만 전체적으로는 시가 써지고 작동하는 원리에 대해 철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책이라고 느꼈다. 위대한 철학자는 시인이고, 위대한 시인은 철학자라는 말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인용하는 철학책을 유심히 살펴보고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에 관심 있는 사람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 메모


- 거울상은 근본에서 존재의 결여이고 결핍이다. 거울상들은 항상 텅 빈 신체들이다. (중략) 은유가 거울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거울이 대상을 비쳐내는 것, 즉 거울상이 실재의 현전이 아니라 실재와 무관한 허상이라는 것이다. (중략) “거울에서 타자인 자기를 찾아내는 것”, 그게 바로 은유화다. 사사키 아타루, 『야전과 영원』,안천 옮김, 자음과모음, 127쪽
32쪽


- 죽음은 단 한 점의 모호함도 없는 자명함 그 자체다. (중략) 시는 이런 자명함 속에서 배태되지 않는다. 시는 모호함 속에서 윤곽을 만들며 떠오른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것, 어떤 찰나, 저녁의 거무스름한 물, 생리하는 개들, 처제들의 상상임신 같은 것, 이런 모든 모호함들은 시의 자궁이다. 시를 쓸 때는 대상에서 가장 먼 이미지들을 데려와야 한다. 대상과 먼 이미지들 사이의 모호함을 타고 나가라는 뜻이다. 대상과 유사성으로 인접한 이미지들 사이에는 모호함이 깃들 여지가 없다. 그러니 시가 나타나지 않는다. 109-110쪽



목차)
1. 그림자들의 노래
2. 은유의 깊이, 은유의 광휘
3. 시인, 다양성의 중재자
4. 우주가 열리는 파동!
5. 거울의 시, 거울의 제국
6. ‘소녀’라는 문화적 코드
7. 최후의 인간들이 부르는 노래들
8. 말은 감각들의 통역관
9. 물의 노래
10. ‘이름들’의 세계에서 산다는 것
11. “처남들과 처제들”의 슬하에서
12. 동물의 시간, 인간의 시간
13. 예언자 없는 시대의 시
14.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15. 은유들의 보석상자
16. 지금 누군가 울고 있다
17. 목소리들은 먼 곳에서 온다
18. 가끔 바람부는 쪽으로 귀기울여봐
19. 시가 “망치질”이 되는 방식
20. 시의 육체, 육체의 시
21. 시는 어디서 오는가?
22. 검정의 노래
23. 시인은 견자(見者)다.

24. 얼굴-가면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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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나이 - 완성된 삶을 위하여
로마노 과르디니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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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노 과르디니 지음, 김태환 옮김, 삶과 나이(완성된 삶을 위하여)(Die Lebensalter), 문학과지성사



1. 이탈리아 출생의 독일 신학자이자 철학자의 책. 삶의 시기를 ‘유년, 청년, 중년, 노년, 말년’으로 구분하여 시기별로 겪게 되는 현상과 위기를 강연형식으로 서술했다.


각 시기는 전체 인생의 부분으로서의 의미 외에 그 자체가 하나의 독자성을 가진다. 어느 한 시기를 제대로 겪어내지 못하는 경우 그 시기만 망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인생의 커다란 구멍이 생긴다. 부분이 전체요 전체가 부분이다. 또한 전체 인생은 각 부분의 총합이 아니다. 나룻배가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오는 도중에 도착하게 되는 포인트는 여러 개지만 나룻배가 내려온 길은 하나의 강이며, 인생이다.



각 시기 중에서 말년기의 서술이 인상 깊다. 죽음은 끝이 아닌 완성이며, 죽음의 기술은 죽어간다는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점, 피터팬 증후군을 앓는 ‘영원한 스무 살과 작은 어른은 모두 오늘날 삶의 빈곤을 보여주는 징표(109쪽)’라는 지적,



‘인간은 늙는 만큼 덜 기대하게 됩니다. 또 그런 만큼 덧없음의 감정은 더 강렬해집니다. 기대가 시간을 확장한다면, 답을 안다는 것은 시간을 수축시킵니다. 96쪽’처럼, 왜 젊을 때는 시간이 느리게 가는데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는 느낌을 받는 지에 대한 하나의 단서를 발견할 때마다 기쁨을 얻었다.



무엇보다 간명한 말과 분명한 논지로 서술되어 이해하기 쉽다는 점이 최대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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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종이의 역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418
이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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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시집,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 문학과지성사


1. 이 시집의 키워드나 중심이미지를 고른다면 ‘그림자, 절벽, 피가 흥건한 사고현장’를 꼽겠다. ‘그림자, 절벽, 피가 흥건한 사고현장’이 반드시 어두운 이미지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사물은 정도의 차이에도 반드시 양가적인 감정이나 색채를 보유한다. 모든 색을 다 섞으면 검은 색이 되듯이 그림자 속에 들어온 주체들의 감정은 각양각색이다. 벼랑에서 뛰어내린 사람이 사람이 남겨 놓은 그림자, 사고 현장에서 수습되는 시신의 그림자는 주체(나, 그들)의 또 다른 모습이자 그 주체가 겪는 고독이다.


경쾌한 리듬으로 쓴 시들도 보이지만 고독이 불가능이라는 색연필로 어둠 속에서 긋는 윤곽을 따라가면 흐릿하지만 이미지가 잡힐 것이다.



* 메모



- 서로의 무릎이 닿는다면 16-17쪽 부분



우리는 없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없는 의자와 같이 마주 앉아 있다/ 의자는 없고/ 서로 의자가 되었으므로/ 당신과 나 사이에는 테이블이 놓여야 하지요/ 테이블 아래로 밤이 자꾸 와서/ 당신과 나 사이가 깊어지지요/ 글썽이는 것들은 모두 그곳에 묻히지요/ 모서리가 네 개 다섯 개/ 여섯 개/ 일곱 개로 늘어나지요/ 어긋나는 중이어서 반짝거려요/ 당신의 어깨에서 단풍잎/ 당신의 오른팔에서 불가사리가 떠올라/ 테이블이 자꾸 출렁거려요/ 당신의 가슴 한복판에서 솟아오르는 새/ 뚫린 당신의 가슴과 등 사이에서/ 의자가 사라지고/ 살은 짓무르고/ 오독거리는 것들을 지나/ 서로의 무릎이 닿는다면/ 그 순간 당신과 나는/ 무릎뼈와 조약돌은 같은 안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될까요/ 모든 방향이 사라지고 그러나 바람은/ 방향이 사라지는 곳에서 불어온다면/ 울면서 지워지면서/ 우리는 우리가 먼 미래에서/ 이제 막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 그림자들 49쪽 부분

바닥은 벽은 죽음의 뒷모습일 텐데 그림자들은 등이 얼마나 아플까를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무용수들이 허공으로 껑충껑충 뛰어오를 때 홀로 남겨지는 고독으로 오그라드는 그림자들의 힘줄을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후략)



- 일요일의 고독 1 50쪽 부분

햇빛이 어린 나무 그림자를 아스팔트 바닥에서 꼼짝 못하게 하고 있다// 아이가 제 그림자 속에 공을 튕기며 걸어갔다// 비둘기 두 마리가 나란히 땅에서 하늘로 수평을 끌어올리며 솟구쳤다// (중략)// 시간은 수십만 개의 허공을 허공은 수십만 개의 항문을 동시에 오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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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 아, 사람아!
다이허우잉 지음, 신영복 옮김 / 다섯수레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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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허우잉 지음, 신영복 옮김, ‘사람아 아, 사람아!’, 다섯수레




1. 1938년생인 작가가 1966년 발발한 문화대혁명을 전후를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우선 형식면에서 특이하다. 각 장마다 다른 등장인물들이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해나가기 때문에 한 사건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인물의 내면을 읽어나가는 재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좌파적 지식인이 종북, 친북 등으로 싸잡아 매도되는 경우가 있는데 중화인민공화국의 경우는 그 반대여서 생경하지만 친숙하다. 마르크스주의의 계급투쟁, 노선투쟁의 장에서 서정이나 낭만, 휴머니즘을 논하는 것은 반체제적 행동으로 탄압 당한다.



주홍글씨가 새겨지는 것이 두려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고, 원하지 않은 결혼을 한 쑨위에와 그녀의 딸은 남편(쟈오젼후안)으로부터 버림받는다. 당 간부의 첩이라는 세간의 모욕을 참으며 당의 기득권 틀 안에서 살아온 사람과 우파로 배척당해 사방을 전전하다 다시 돌아온 남자(허징후)와의 감정이 기본 축이다.



애정만으로 현실적 제약을 극복하기에는 벅차기에 애틋한 관계 속에는 사랑 뿐 아니라 우정, 연민, 후회 등의 복합적 감정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밖의 인물들이 자신들의 관점에서 펼치는 주장과 생각도 충분히 설득력을 가진다.




역자인 고 신영복 선생이 평생 펼쳐온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론’과 ‘인간다움’ ‘진정한 아름다움은 모름다움’이며 입장의 차이를 인정하고 인간성의 회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작가와 역자, 두 고인의 신념이 담긴 책이라고 생각한다.


* 메모


“20년 이상이나 사랑하고 있었어. 나의 애정은 백지 그대로야, 쑨위에. 당신은 오늘에야 비로소 붓을 들어 백지에 색칠을 해 준 거야.” 309쪽



“난 당신과의 생활은 원하지 않아. 그건 당신이 백지이기 때문이야. 내게는 당신이 그릴 수 있는 백지가 없거든. 나도 옛날에는 백지였지만 살아오는 동안 짙은 회색으로 물들어 버리고 말았지. 이 색은 영원히 지울 수 없어. 자오젼후안이 나타남으로써 그 바탕색이 점점 더 분명하게 보여. 원망스러워!” 309-310쪽

- 20여 년 동안의 숙제가 이로써 끝장이 났다. ‘무’에서 시작되어 ‘무’로 끝났다. 아니, 유일한 흔적, 유일한 기념으로 이 담배쌈지를 남기고, 내가 지금껏 가장 사랑했던 두 사람- 아버지와 그녀가 공교롭게도 한 벌의 기념품인 담뱃대와 담배쌈지를 남겨 주었다.(허징후) 355쪽


- 그러나 아버지, ‘내 마음속에 당신이 계시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나는 담뱃대를 쥐면 늘 당신을 생각합니다. 담뱃대에서 당신의 젖, 아버지의 젖을 빱니다. 어머니의 젖이 피로 된 것이라면 아버지의 젖 역시 피로써 만들어진 것입니다. 어머니의 젖은 유방에 고이는 것이지만 아버지의 젖은 심장에 고이는 것입니다.’ 360쪽


- 습관, 습관, 습관보다도 무섭고 권위가 있는 것이 있을까. 사람들은 모두 위를 보고 있다. 사람의 가치는 물론, 그 사람의 말의 가치도 지위에 따라서 다른 법이다. 지위가 높으면 말도 무겁고 지위가 낮으면 말도 가볍다. 이것은 진리는 아니다. 그러나 사실이다. 사실은 흔히 진리보다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이런 상태를 개선하지 않고 우리들에게 희망이 있는 것일까? 402쪽(쑨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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