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힘
장석주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석주, 은유의 힘, 다산책방



1. “방문의 배꼽을 꼬옥 누르는 순간부터 사춘기는 시작된다”고 썼었다. 샤워를 하거나 용변을 볼 때 화장실 문을 잠그는 일은 알몸을 타인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방어본능이라면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소녀가 방문을 잠그는 일은 역설적으로 벗은 몸 그 자체로 봐달라는 공격적 본능이다. 배꼽은 문명의 중심이자 내 몸의 가운데에 있다. 나는 배꼽에서 나왔으므로 배꼽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배꼽은 자존감이다. 그래서 “사춘기의 배꼽은” 아름답다.




2. 시(詩)는 은유(隱喩)다. 본뜻을 숨기고 대상을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수사법을 넘어 시 자체가 은유라는 말이다. 잔잔하게 흐르다가 장애물을 만나 굽이치는 강물의 삶에서 두 손으로 한 부분을 떠내어 그릇에 담가두고 기다린다.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을 것은 가라앉고 증발할 것은 증발하고 날아갈 것은 날아간다. 시간이 지나도 흐릿함이 지워지지 않기도 하지만 대개는 본연의 물만 남는다. 그것을 오래 바라보는 일, 바라보다가 눈을 감기도 하고, ‘너는 어디에서 왔니’ 말을 걸기도 하고, 물 속의 어둠과 빛에 대해 생각하고, 물을 흘려보낸 사람과 물을 짊어진 사람을 떠올리는 일. 모두 삶을 은유로서 살아가는 일이다.




3. 이 책은 장석주 시인의 시에 관한 에세이다. 초반 몇 꼭지는 ‘은유’에 관한 내용이 많지만 전체적으로는 시가 써지고 작동하는 원리에 대해 철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책이라고 느꼈다. 위대한 철학자는 시인이고, 위대한 시인은 철학자라는 말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인용하는 철학책을 유심히 살펴보고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에 관심 있는 사람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 메모


- 거울상은 근본에서 존재의 결여이고 결핍이다. 거울상들은 항상 텅 빈 신체들이다. (중략) 은유가 거울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거울이 대상을 비쳐내는 것, 즉 거울상이 실재의 현전이 아니라 실재와 무관한 허상이라는 것이다. (중략) “거울에서 타자인 자기를 찾아내는 것”, 그게 바로 은유화다. 사사키 아타루, 『야전과 영원』,안천 옮김, 자음과모음, 127쪽
32쪽


- 죽음은 단 한 점의 모호함도 없는 자명함 그 자체다. (중략) 시는 이런 자명함 속에서 배태되지 않는다. 시는 모호함 속에서 윤곽을 만들며 떠오른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것, 어떤 찰나, 저녁의 거무스름한 물, 생리하는 개들, 처제들의 상상임신 같은 것, 이런 모든 모호함들은 시의 자궁이다. 시를 쓸 때는 대상에서 가장 먼 이미지들을 데려와야 한다. 대상과 먼 이미지들 사이의 모호함을 타고 나가라는 뜻이다. 대상과 유사성으로 인접한 이미지들 사이에는 모호함이 깃들 여지가 없다. 그러니 시가 나타나지 않는다. 109-110쪽



목차)
1. 그림자들의 노래
2. 은유의 깊이, 은유의 광휘
3. 시인, 다양성의 중재자
4. 우주가 열리는 파동!
5. 거울의 시, 거울의 제국
6. ‘소녀’라는 문화적 코드
7. 최후의 인간들이 부르는 노래들
8. 말은 감각들의 통역관
9. 물의 노래
10. ‘이름들’의 세계에서 산다는 것
11. “처남들과 처제들”의 슬하에서
12. 동물의 시간, 인간의 시간
13. 예언자 없는 시대의 시
14.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15. 은유들의 보석상자
16. 지금 누군가 울고 있다
17. 목소리들은 먼 곳에서 온다
18. 가끔 바람부는 쪽으로 귀기울여봐
19. 시가 “망치질”이 되는 방식
20. 시의 육체, 육체의 시
21. 시는 어디서 오는가?
22. 검정의 노래
23. 시인은 견자(見者)다.

24. 얼굴-가면의 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