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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 아, 사람아!
다이허우잉 지음, 신영복 옮김 / 다섯수레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다이허우잉 지음, 신영복 옮김, ‘사람아 아, 사람아!’, 다섯수레
1. 1938년생인 작가가 1966년 발발한 문화대혁명을 전후를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우선 형식면에서 특이하다. 각 장마다 다른 등장인물들이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해나가기 때문에 한 사건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인물의 내면을 읽어나가는 재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좌파적 지식인이 종북, 친북 등으로 싸잡아 매도되는 경우가 있는데 중화인민공화국의 경우는 그 반대여서 생경하지만 친숙하다. 마르크스주의의 계급투쟁, 노선투쟁의 장에서 서정이나 낭만, 휴머니즘을 논하는 것은 반체제적 행동으로 탄압 당한다.
주홍글씨가 새겨지는 것이 두려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고, 원하지 않은 결혼을 한 쑨위에와 그녀의 딸은 남편(쟈오젼후안)으로부터 버림받는다. 당 간부의 첩이라는 세간의 모욕을 참으며 당의 기득권 틀 안에서 살아온 사람과 우파로 배척당해 사방을 전전하다 다시 돌아온 남자(허징후)와의 감정이 기본 축이다.
애정만으로 현실적 제약을 극복하기에는 벅차기에 애틋한 관계 속에는 사랑 뿐 아니라 우정, 연민, 후회 등의 복합적 감정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밖의 인물들이 자신들의 관점에서 펼치는 주장과 생각도 충분히 설득력을 가진다.
역자인 고 신영복 선생이 평생 펼쳐온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론’과 ‘인간다움’ ‘진정한 아름다움은 모름다움’이며 입장의 차이를 인정하고 인간성의 회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작가와 역자, 두 고인의 신념이 담긴 책이라고 생각한다.
“20년 이상이나 사랑하고 있었어. 나의 애정은 백지 그대로야, 쑨위에. 당신은 오늘에야 비로소 붓을 들어 백지에 색칠을 해 준 거야.” 309쪽
“난 당신과의 생활은 원하지 않아. 그건 당신이 백지이기 때문이야. 내게는 당신이 그릴 수 있는 백지가 없거든. 나도 옛날에는 백지였지만 살아오는 동안 짙은 회색으로 물들어 버리고 말았지. 이 색은 영원히 지울 수 없어. 자오젼후안이 나타남으로써 그 바탕색이 점점 더 분명하게 보여. 원망스러워!” 309-310쪽
- 20여 년 동안의 숙제가 이로써 끝장이 났다. ‘무’에서 시작되어 ‘무’로 끝났다. 아니, 유일한 흔적, 유일한 기념으로 이 담배쌈지를 남기고, 내가 지금껏 가장 사랑했던 두 사람- 아버지와 그녀가 공교롭게도 한 벌의 기념품인 담뱃대와 담배쌈지를 남겨 주었다.(허징후) 355쪽
- 그러나 아버지, ‘내 마음속에 당신이 계시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나는 담뱃대를 쥐면 늘 당신을 생각합니다. 담뱃대에서 당신의 젖, 아버지의 젖을 빱니다. 어머니의 젖이 피로 된 것이라면 아버지의 젖 역시 피로써 만들어진 것입니다. 어머니의 젖은 유방에 고이는 것이지만 아버지의 젖은 심장에 고이는 것입니다.’ 360쪽
- 습관, 습관, 습관보다도 무섭고 권위가 있는 것이 있을까. 사람들은 모두 위를 보고 있다. 사람의 가치는 물론, 그 사람의 말의 가치도 지위에 따라서 다른 법이다. 지위가 높으면 말도 무겁고 지위가 낮으면 말도 가볍다. 이것은 진리는 아니다. 그러나 사실이다. 사실은 흔히 진리보다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이런 상태를 개선하지 않고 우리들에게 희망이 있는 것일까? 402쪽(쑨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