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시하다 - 김혜순 시론
김혜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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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시론, ‘여성, 시하다’, 문학과지성사


1. 근 40년의 시력을 가진 김혜순 시인의 시론집이다. 이성복 시인의 《무한화서》가 시 창작에 대한 압축된 말의 모음집이라면, 이 책은 김혜순 시인이 찍어 온 발자국들을 시인 스스로 수집해 분석한 산문집에 가까운 연구서다.



시인이 천착해 온 ‘바리데기’ 신화를 분석하고 시와 연결한 앞부분의 챕터들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뒷부분의 서너 챕터들은 작품론에 가까워서 큰 줄기만 읽어도 무방하겠다.




●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 내 몸으로 시를 쓴다는 것은, ‘시한다’는 것은 내가 내 안에서 내 몸인 여자를 찾아 헤매고, 꺼내놓으려는 지난한 출산 행위와 다름이 없다. 11쪽



● 쓰레기와 유령

‘바리데기’(버려진 아이) ‘바리공주’

- 바리데기는 세 번의 버림을 받는다. 첫 번째는 딸이라서 버려지는(죽는) 것이고, 두 번째는 죽음의 장소로 들어가 여행(탐색)하고 결혼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넘나드는 자로서의 영구적인 작업에 참여하는 것이다. 나는 이 세 번의 부재(죽음) 경험이 바리데기의 시적 여정, 여성시인으로서의 나의 시가 ‘시하는’ 경험들이라고 생각한다. 18쪽



* 나의 지옥, 나의 뮤즈

- 이제까지 나의 시에 대한 충고 중에 가장 많은 결말, 화해를 모색하라는 명령과 사회의 바다에 나오라는 명령. 모르겠는가. 이 두 명령은 모두 나에게 시를 그만 쓰라고 명령하는 거다. 그만하라는 거다. 시를 산문성에 종속시키라는 명령이다. 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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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탄생하라 문학과지성 시인선 501
이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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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시집, 사랑은 탄생하라, 문학과지성사


1. 2012년에 출간된 시집『불가능한 종이의 역사』에서 느꼈던 고독의 이미지가 반복된다. 「우리는 지구에서 고독하다」를 방에 혼자 앉아 스스로에게 들려주자. 외로움이 타인과의 관계로부터 생기는 감정이라면 고독은 자신과의 불화로부터 시작되는 감정이다. ‘고독하다’가 반복되는 그 시를 읽으면 슬프면서도 위로가 된다.




저번 시집이 ‘고독’의 ‘상태’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번 시집은 ‘고독’의 ‘극복’을 위한 애씀이라 정의하고 싶다. 극복의 수단은 ‘사랑’이다.


‘사이는 사랑이다. 채워도 채워도 비어 있는 것, 주어도 주어도 모자라는 것이 사랑이다. 채우지 않으면 비어 있는 곳도 없으니, 주지 않으면 모자라는 것도 없으니 채우기 시작하면 비로소 탄생하는 공간. 주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결핍되기 시작하는 시간. 사랑. 사랑은 나를 사라지게 한다. 사랑은 내가 사라질 때만 지속된다. 당신의 손이 먼저이고 당신의 안색이 먼저이고 나는 점점 사라진다.’ (이원 산문집, 《산책 안에 담은 것들 24쪽》




사랑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붓는 양보다 빠지는 양이 훨씬 많아 결코 채워지지 않는 항아리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고 상처를 받는 일을 반복할 수 밖에 없다.




이 시집을 다 읽고 하나의 이미지를 그려 보았다. 해변에 있는 하얀 벽돌로 된 별장의 테라스에서, 하얀 의자를 바다 쪽으로 놓고, 두 손을 모으고 노을이 지는 하늘의 저 멀리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는 여인의 모습.


* 메모


- 사람은 탄생하라 133-136쪽 부분

우리의 심장을 풀어/ 발이 없는 새/ 멈추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졌던// 하나의 돌은// 바닥까지 내려온 허공이 되어 있다/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아도 된다// (중략)// 사람은 절망하라// 사람은 탄생하라/ 사랑은 탄생하라// 우리의 심장을 풀어 다시/ 우리의 심장/ 모두 다른 박동이 모여/ 하나의 심장/ 모두의 숨으로 만드는/ 단 하나의 심장// 우리의 심장을 풀면/ 심장뿐인 새


* 사람은 절망하라/ 사람은 탄생하라: 이상, 「언에 관한 각서 2」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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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자본주의공화국 - 맥주 덕후 기자와 북한 전문 특파원, 스키니 진을 입은 북한을 가다!
다니엘 튜더.제임스 피어슨 지음, 전병근 옮김 / 비아북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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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튜더 제임스 피어슨, 조선자본주의 공화국(맥주 덕후 기자와 북한 전문 특파원, 스키니 진을 입은 북한을 가다!), 비아북



1. ‘북한에서 ICBM(대륙간 탄도 미사일) 급 미사일 발사, 레드 라인 근접, 국가안전보장회의 소집, 한미일 공조’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반복되는 상용구에 일부 보수층을 제외한 일반 국민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이를 안보불감증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트럼프의 화염 발언과 아베의 위기 조장 발언은 다분히 국내에서 처한 그들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보인다. 북한은 동맹국인 한국에서 몇 천 킬로미터 떨어진 나라가 아닌 인접 지역이므로 북한에 대한 공격은 한반도 전체의 황폐화를 뜻한다. 극심한 혼란과 제3차 세계대전으로의 확전 양상은 중국이 원하는 바도 아니다. 요약하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정전 중이므로 이를 빨리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통일로 가는 길에 접어들어야 한다는 결론은 분명히 정해져 있다.



북한의 실상은 휴일 아침에 KBS에서 하던 ‘통일전망대’에서나 볼 수 있었고,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책은 로이터 서울 주재 특파원인 제임스 피어슨과 ‘대동강 맥주가 한국 맥주보다 맛있다’고 썼던 전 이코노미스트 특파원 다니엘 튜더의 북한 취재기다. 남북한이 아닌 제3의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북한의 실상은 국민들이 상식이라 생각하는 지식과 많이 달랐다.




북한에도 남한의 대중문화가 유행했고, ‘평해튼’이라 불리는 남한의 강남 같은 지역이 있으며 북동쪽 청진은 패션의 거리이며, ‘장마당’이라 불리는 시장에서는 없는 물건이 없고, 대부분의 주민들이 1990년 중반의 대기근 이후에 자력구제 식으로 공동작업 외 부업에 뛰어들었다는 얘기 등은 199년 후반 외환위기 이후에 우리나라가 겪은 자본주의가 침투해 온 과정과 상당히 유사해서 놀랐다.




외교와 협상은 상대방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현실인식에서 출발한다. 헌법에 규정하는 것처럼 북한은 우리의 영토인 동시에 대화 협력의 동반자로 평화통일의 한 주체다. 북한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잠시 묻어두고 맨 눈으로 북한을 바라보자. 물론 지금 이 순간도 북한은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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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앨리스 민음의 시 237
신현림 지음 / 민음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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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림 시집, 반지하 앨리스, 민음사




1. 송경동 시인의 시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창비, 2016)이 광장과 크레인에서의 부르짖음이라면, 신현림 시인의 『반지하 앨리스』는 제목처럼 빛이 잘 들지 않고 눅눅하고 축축한 반지하 단칸방에서의 읊조림이자 신음이다. 직설적이고 현실적인 언어들(SNS, 광장, 촛불, 여야 같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시어들)이 많고, 실제 집회나 시위 연단에서 구호로 읽혀도 충분할 정도로 강한 어조의 시도 꽤 많다.




하지만 나는 시의 무게 중심은 반지하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소리치고 울어도 그 외침이나 울음은 반지하 계단을 올라와 지상이나 하늘까지 잘 전달되지 않는다. 메아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외치고 울어야 한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무엇이든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 쪽으로 가고자 했지만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 반지하 앨리스 15쪽

토끼 굴에 빠져든 백 년 전의 앨리스와/ 돈에 쫓겨 반지하로 꺼져 든 앨리스들과 만났다// 생의 반이 다 묻힌 반지하 인생의 나는/ 생의 반을 꽃피우는 이들을 만나 목련 차를 마셨다// 서로 마음에 등불을 켜 갔다



- 눈보라가 퍼붓는 방 77쪽 부분

눈보라를 설탕이라고 쓰자 달콤해지기 시작했다/ 힘들다 씀으로써 나는 조금씩 마음이 편해졌다/ 빛이 보인다고 씀으로써 빛이 느껴졌다/





- 내 혼은 밤 고양이야 78쪽 부분

내 몸이 집이 될래 무덤이 될래// 집이 무덤 속이야 매일 자고 싶거든/ 벌꿀 같은 잠은 쏟아지는데,/ 내 혼은 온 동네 돌아다니는 밤 고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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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 - 들뢰즈 철학 입문 아모르파티 총서 1
김재인 지음 / 느티나무책방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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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인, 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들뢰즈 철학 입문), 느티나무책방



책의 부제처럼 들뢰즈 철학 입문용으로 추천할 만한 책이다. 1925년에 태어나 1995년에 사망하기까지 그 시기 동안에 제2차 세계대전, 68혁명, 오일쇼크, 신자유주의 등 거대한 파고가 몇 번의 파고가 일었다.



마르크스와 니체가 엄마의 자궁을 벗어나 겨우 세상에 머리를 내민 자본주의를 보았다면 들뢰즈는 자본주의의 몸통을 직접 본 사람이기에 훨씬 풍부한 현상을 체험하고 사유할 수 있었다. 책의 저자는 들뢰즈는 어렵다는 것을 전제하고 그에 대한 오해와 오독은 가차 없이 비판하고 현재도 가장 문제적 철학자라고 말한다. 다소 거칠고 단정적인 문체로 씌어진(또는 채록된) 책이지만 입문자가 읽기에는 큰 뼈대를 짚어주고 있어 좋았다.



특히 부록에서 입문자, 중급자, 상급자용으로 추천하는 책과 논문, 저자가 번역한 『안티 오이디푸스』 『천개의 고원』 서문까지 싣고 있어 들뢰즈라는 험난한 대륙을 횡단하는데 이 만한 지도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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