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테미스
앤디 위어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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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위어 소설, 아르테미스, 알에이치코리아



소설《마션》과 이를 기초로 한 동명의 영화를 보았다면 이 소설도 무척 기대하며 펼쳤을 것이다. 소설의 무대는 제목처럼 ‘아르테미스’ 달에 건설된 도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뿌리가 있지만 달에서 태어는 ‘재즈 바샤라’가 주인공인데 그녀는 신을 믿지 않는다. 달에서 포터이자 밀수업을 하는 주인공이 회사 일방의 부탁을 받고 알루미늄의 원료가 되는 암석수확기를 파괴하고, 그 과정에서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그 이면에 깔린 스토리가 서서히 밝혀지면서 아르테미스를 잠재적 위험에서 구해내는 과정을 그렸다.



등장인물이 많고 이름도 낯설어서 처음에는 적응이 쉽지 않지만 읽어나가면 자연스럽게 캐릭터가 생각나 무리가 없다. 지구 중력의 6분의 1 밖에 안 되는 달은 여전히 대부분의 지구 거주 인간에게 신비스런 곳이다. 달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의식주와 교통수단을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고 아주 약간의 물리학과 화학상식이 있다면 좀 더 풍성하게 소설을 읽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발단 전개 절정 결말의 충실한 구조를 따르고 있고 끝부분에 약간의 신파적으로 화해하는 장면도 있어서 뻔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달이라는 무대의 생동감이 이를 덮고도 남는다. 빨리 영화화된 작품을 보고 싶다.



- 나는 사람들에게 있을 법하지 않은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퀸즐랜드 유리의 화재와 트론이 어떻게 날 고용했는지, 일이 어떻게 잘못 돌아갔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인사건으로 이어졌는지를. 이야기는 오 팔라시우, 왼손잡이, 진 추로 이어졌다. 산체스 알루미늄의 산소 공급 계약과, 트론이 그 계약을 차지하려 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무대를 스보보다에게 넘겨서 ZAFO와,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했다. 그런 다음 충격에 잠긴 사람들 얼굴을 향해 수십 명의 조직폭력배들이 아르테미스로 오고 있다는 이야기로 마무리했다. 316쪽





- “연착륙, 즉 소프트렌디드 그램(soft-landed grams)을 줄인 거예요. S.L.G. 슬러그(Slug죠. 1 슬러그면 KSC를 통해 지구에서 아르테미스까지 1그램의 화물을 옮길 수 있어요.”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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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지나가는 오후의 상상 시산맥 기획시선 56
최인숙 지음 / 시산맥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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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 시집, 구름이 지나가는 오후의 상상, 시산맥사

시집 제목처럼 시인은 세심한 관찰력 위에 상상력을 탑처럼 쌓으며 시상을 전개한다. 제목이 시의 중심 소재를 은유적으로 나타내는 경우가 곳곳에 보인다. 예를 들어 등 뒤 가려운 곳 그 중에서도 “손이 닿지 않는 그곳”에서 바나나가 열린다. 이때 바나나는 가려운 등-효자손-손가락처럼 변주되는 식이다. 이런 변주 방식이 단조롭지 않고 무한 확장성을 가진다. 쉽게 읽히면서도 뻔하지 않게 시상을 전개하는 방식이 능숙함이 느껴진다.




- 바나나 17쪽

바나나는// 등이 가려울 때 열린다// 손이 닿지 않는 그곳은// 습한 열대// 그는 돌아앉았던가 허리를 굽혔던가// 바나나는 그때마다 다른 음으로 흔들리고// 익는다// 매달릴 때마다 하나씩 없어지는// 저 손가락




- 아코디언 고양 42-43쪽 부분

하양 고양이 검정고양이/ 고양이들이 지붕 위를 걸어 다니면/ 아코디언 속에서 고의적으로 늙어가는 고양이/ 서른일곱 마리가 다섯 손가락 사이에서 담을 넘어 다니며/ (중략)



- 관계자 외 출입금지 47쪽 부분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다급하게 두드릴 때조차/ 어둠은 눈높이보다 조금 높은 곳에 눈을 맞추고/ 거만하게 그러나 초점 없이 내려다볼 것이다/ (중략)



- 만약에 젤리처럼, 67쪽 부분

허물어지는 것에 기댈 때가 있죠. 두 개의 짙은 눈썹만으로 공원에 걸린 시계는 11시 5분. 배고프기에는 조금 이르고 잠들기까지는 조금 긴 시간. 스케치북을 꺼내 의자 위에 펼쳐놓으면 다시 겨울이라 불러도 될까요. (중략) 바이러스 이름을 모르고 감가가 끝나는 것처럼 나는 봉지 속 약을 삼키고 열에 들떠 눕고, 시계는 늘 같은 시간을 가리키며 훌쩍이는데.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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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쇳물 쓰지 마라
제페토 지음 / 수오서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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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시인 제페토, 그 쇳물 쓰지 마라, 수오서재


1. 다음 기사에 댓글을 단 저자의 시를 짧은 기사와 함께 담은 책이다. 신상은 알려진 바 없고, 소문에 모 대학 국문학과 교수라고 한다. 그의 시 속에 담긴 시상 전개방식이나 시어들을 보면 사십 대 중후반 이상의 연배는 되는 것 같다.



쪽방, 지하철 계단, 세월호, 갈대, 노동자. 단어를 발음해 보는 것만으로도 울림이 있는 모습을 잘 형상화 해놓은 시들. 아래로 향하는 따뜻한 시선과 위를 향하는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가 함께 담겨 있다.



- 명치 19쪽 부분

만져지는 시란/ 어떤 느낌입니까/ 그 두텁고 무덤덤한 종이 위에/ 오돌토돌한 요철을 나열한 다음/ 느린 손끝으로 읽어내는 일 말입니다




- 그 쇳물 쓰지 마라 25쪽 부분

광염(狂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




- 부활 27쪽

어찌 됐건/ 생을 마친 종이를 부활의 초입까지 나르는 일은/ 늙은이들의 몫이 되었다

언덕을 오르던 정오/ 말보로 상자는 납작해진 주둥이로/ 브라질 숲에서 왔노라 자랑을 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작에 고향을 잊은 노인은/ 의심스러운 저울에 무거운 시선을 보태느라/ 눈이 시렸다/ 영락없는 푼돈이지만/ 당분간 목숨은 그럭저럭 붙은 셈이다

장차 자신의 장례비를 외투에 넣고 돌아선 그는/ 곤궁한 처지를 푸념하는 대신/ 그깟 외로움 하나 견디지 못한/ 아들놈의 죽음을 나무랐다/ 그러고는 생각했다/ 어째서 사람은 부활하지 않는가, 하고





- 마중(기사: ‘노동자의 어머니’ 영원히 잠들다 : 전태일 열사의 모친 고 이소선 여사의 영결식이 열린 7일 오전 서울 대학로에 고인의 운구행렬이 지나고 있다. 2011. 09. 07. )

온통 눈밭일 세상/ 마중 나온 스물두 살 사내가/ 길눈 어두운 어머니를 위해/ 맨발로 눈길을 녹입니다/ 희미한 석유 냄새에/ 니 태일이 아이가, 하고/ 이름 부르시는데도/ 근사한 미소로 맞이하고픈 그는/ 돌아서면 울음이 터질 것 같아/ 못 들은 척/ 시린 발을 멈추지 않았았습니다/ 어쨌든 인사를 해야 한다면 어머니,/ 잘 오시었다고 말해야 할까요




- 쪽방촌의 겨울 212쪽

누구나 가난하여/ 본의 아니게 평등한 이곳은/ 찬 공기가 고여 드는 빈민의 분지

힙겹게 숨 들이쉰 폐병쟁이는/ 한 평 남짓한 쪽방 공기를/ 벌이 없이 축내는 것이 미안하여/ 폐에 스미기도 전에/ 마신 것에 얼마를 얹어/ 밭은기침으로 토해냈다

누구나 지병이 있어/ 건강 또한 평등한 이곳에서는/ 이웃을 탓하는 대신 팔자를 탓하고/ 세상을 원망하는 대신/ 혹시 모를 전생의 죄를/ 곰곰이 떠올려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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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도시의 즐거움 세계사 시인선 4
최승호 지음 / 세계사 / 199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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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시집, 세속도시의 즐거움, 세계사


오랜만에 90년대 시집을 읽었다. 80년 후반 민주화 과정과 90년대 초반의 독일 통일 같은 정치적 상황 변화 외에 ‘생활’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이 놓여 있다. 급격히 도시화와 자본주의화가 진행되는 과정에 생기는 구질서와 신질서의 불협화음을 예민한 시인들이 놓쳤을 리 없다. 즉물적이고 선명한 죽음의 이미지가 많다.

‘온몸이 혓바닥뿐인 벌건 욕망들’의 세계는 모습을 시시때때로 바꿀 뿐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 메모


- 몸 11쪽

끙끙 앓는 하나님/ 누구보다도 당신이 불쌍합니다/ 우리가 암덩어리가 아니어야/ 당신 몸이 거뜬할 텐데

피둥피둥 회충떼처럼 불어나며/ 이리저리 힘차게 회오리치는/ 온몸이 혓바닥뿐인 벌건 욕망들


- 공장지대 14쪽

무뇌아를 낳고 보니 산모는/ 몸 안에 공장지대가 들어선 느낌이다. / 젖을 짜면 흘러내리는 허연 폐수와/ 아이 배꼽에 매달린 비닐끈들. / 저 굴뚝들과 나는 간통한 게 분명해!/ 자궁 속에 고무인형 키워온 듯/ 무뇌아를 낳고 산모는/ 머릿속에 뇌가 있는지 의심스러워/ 정수리 털들을 하루종일 뽑아댄다.


- 렌트카의 길 16-17쪽 부분

기억상실의 헝클어진 길들은/ 개들이 오줌으로 점 찍은 전봇대들은/ 다리 입구의 울부짖는 돌사자들과/ 주유소의 긴 고무호스는/ 나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아슬아슬한 길 위에서의/ 신경질적인 경적,/ 1초를 빗나간 죽음과/ 1인치 곁을 쌩쌩 스쳐가는 죽음들/ (중략)




- 저녁의 상자 49쪽

연탄재 담은 상자를 안고/ 문을 나선다 죽음의 경계선을/ 넘은 뒤에 누가 내 불꺼진 뼈들을 절굿공이로 빻을 것인지/ 눈구멍에 겨울 해 불타고/ 혀 없는 夕陽天이/ 분홍색 뱀꼬리 햇살을 삼키는 저녁/ 상자에서 식은 해골들이/ 굴러떨어지며/ 부스스 먼지를 일으킨다
[출처] 최승호 시집, 세속도시의 즐거움, 세계사|작성자 동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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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 알타이 걸어본다 6
배수아 지음 / 난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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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에세이,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난다


배수아 작가가 몽골 투바 유목민이면서 독일어로 소설을 쓰는 ‘갈잔 치낙’이라는 작가의 초대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알타이에서 겪은 약 3주의 여정을 담은 책이다.



러시아 중국 몽골의 국경이 접하는 지대인 알타이 지방은 변방의 변방 같은, 소설 『마션』에 나오는 황량한 땅이지만 그곳에도 사람이 산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변변한 샤워시설도 없는 곳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생활을 작가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로 잘 풀어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다가 어느 챕터에서는 내가 마치 그곳에 있는 것만 같은 극한의 고독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얼마 전 출간 된 작가의 소설집『뱀과 물』의 여러 테마나 풍경이 알타이 여행에서 영감을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도 많았다. 예를 들어 트럭에 십여 명이 타고 몇 시간씩 황량한 길을 달리는 모습, 말을 타고 길을 가다가 죽은 말의 머리뼈를 보는 장면을 『뱀과 물』에서 보았었다.



나도 어느 순간 훌쩍 알타이 같은 곳으로 떠날 수 있을까. 그런 용기가 있을까.


아, 문득 내 책장에 꽂힌 몽골 출신 ‘게 아요르잔’ 작가의 『샤먼의 전설』이 생각났다. 몇 년 전 한 북페스티벌에서 저자 사인까지 받아놓고 읽지 않고 넣어 둔 책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읽어봐야겠다.



* 메모

- 음울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태연자약하고 우수라고 하기엔 너무나 건조한, 햇빛에 진하게 그을린 듯한 어떤 늙은 얼굴을 연상시키는 무표정한 어둠. 흐릿한 전등불 아래서 피곤하고 무심한 표정을 짓는 어둠. 32쪽

- 내 이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울란바토르 공항에서, 그가 들고 있는 종이 위에. 33쪽


- 누군가 그날 꿈속에서 그 차가운 물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면, 그는 아마도 검은 호수에 사는 유일한 물고기로 변했으리라. 나는 그가 물속에서 헤엄치는 것을, 그의 그림자가 검게 너울거리며 물 가운데로 향하고 그의 붉은 아가미가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그의 반짝이는 초록빛 비늘, 짙은색 등지느러미와 꼬리의 움직임, 투명한 살갗 아래 하얗게 드러나 보이는 등뼈, 검고 동그란 눈동자가 점액과도 같은 눈자위 속을 무표정하게 떠다니는 것까지 모두 자세히 지켜보았을 것이다. 101쪽


- 타오르는 불꽃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형태가 원시적인 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몸체를 이러저리 들어올리고 팔을 하늘로 향해 치켜들며, 얼굴을 붉게 하고 혀를 내밀며 몸을 빙글빙글 반복해서 회전시키고, 두 눈을 흥분에 겨워 번득이며 입가에는 뜨거운 미소를 흘리는 젊은 여인과 같이 보였다. 불의 여신, 유목민들이 그런 믿음을 갖고 있는 것도 이상할 이유가 없었다. 나도 그 믿음이 갖고 싶었다. 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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