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 알타이 걸어본다 6
배수아 지음 / 난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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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에세이,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난다


배수아 작가가 몽골 투바 유목민이면서 독일어로 소설을 쓰는 ‘갈잔 치낙’이라는 작가의 초대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알타이에서 겪은 약 3주의 여정을 담은 책이다.



러시아 중국 몽골의 국경이 접하는 지대인 알타이 지방은 변방의 변방 같은, 소설 『마션』에 나오는 황량한 땅이지만 그곳에도 사람이 산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변변한 샤워시설도 없는 곳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생활을 작가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로 잘 풀어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다가 어느 챕터에서는 내가 마치 그곳에 있는 것만 같은 극한의 고독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얼마 전 출간 된 작가의 소설집『뱀과 물』의 여러 테마나 풍경이 알타이 여행에서 영감을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도 많았다. 예를 들어 트럭에 십여 명이 타고 몇 시간씩 황량한 길을 달리는 모습, 말을 타고 길을 가다가 죽은 말의 머리뼈를 보는 장면을 『뱀과 물』에서 보았었다.



나도 어느 순간 훌쩍 알타이 같은 곳으로 떠날 수 있을까. 그런 용기가 있을까.


아, 문득 내 책장에 꽂힌 몽골 출신 ‘게 아요르잔’ 작가의 『샤먼의 전설』이 생각났다. 몇 년 전 한 북페스티벌에서 저자 사인까지 받아놓고 읽지 않고 넣어 둔 책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읽어봐야겠다.



* 메모

- 음울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태연자약하고 우수라고 하기엔 너무나 건조한, 햇빛에 진하게 그을린 듯한 어떤 늙은 얼굴을 연상시키는 무표정한 어둠. 흐릿한 전등불 아래서 피곤하고 무심한 표정을 짓는 어둠. 32쪽

- 내 이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울란바토르 공항에서, 그가 들고 있는 종이 위에. 33쪽


- 누군가 그날 꿈속에서 그 차가운 물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면, 그는 아마도 검은 호수에 사는 유일한 물고기로 변했으리라. 나는 그가 물속에서 헤엄치는 것을, 그의 그림자가 검게 너울거리며 물 가운데로 향하고 그의 붉은 아가미가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그의 반짝이는 초록빛 비늘, 짙은색 등지느러미와 꼬리의 움직임, 투명한 살갗 아래 하얗게 드러나 보이는 등뼈, 검고 동그란 눈동자가 점액과도 같은 눈자위 속을 무표정하게 떠다니는 것까지 모두 자세히 지켜보았을 것이다. 101쪽


- 타오르는 불꽃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형태가 원시적인 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몸체를 이러저리 들어올리고 팔을 하늘로 향해 치켜들며, 얼굴을 붉게 하고 혀를 내밀며 몸을 빙글빙글 반복해서 회전시키고, 두 눈을 흥분에 겨워 번득이며 입가에는 뜨거운 미소를 흘리는 젊은 여인과 같이 보였다. 불의 여신, 유목민들이 그런 믿음을 갖고 있는 것도 이상할 이유가 없었다. 나도 그 믿음이 갖고 싶었다. 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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