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수 없기에 쓰는 글

여행을 다녀오고 책을 읽고 신문을 보고 텔레비전을 봐도 글을 쓸 수 없다. 글이 쓸 수 없어서 이 글을 쓴다. 연휵 끝나는 마지막 날 저녁이 다음날 출근길보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도 같은 이치겠지. 마음은 시간보다 더 예민한 동물이다.

글은 공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날아가는 공을 낚아채는 것, 이성복 시인은 시에 대해, 쓰지 않으면 허위이고 쓰면 불가능해지는 것을 쓴다고 하셨지만 내 글은 쓸 수록 허구에 같힌 진실에 가까워진다. 

한 글자가 다음 글자를 토하고, 한 행이 다음 행을 밀어내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나는 자꾸 뒤로 걷고 있다. 거제 몽돌해변에서 돌무지 사이로 튀기는 파도의 물줄기처럼 내 옷깃 적시는 놈도 있겠지. 반반한 돌을 골라 앉아 기다린다. 

아침일찍 문 연 커피가게에 매일 똑같은 시간에 문을 열며 "따뜻한 아메리카노요!"소리치는 단골처럼 내 가게에도 단골이 생기겠지. 쿠폰도 마구 찍어줘야겠다. 쿠폰 10개 모이면 글 하나 공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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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0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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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음과 눈물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읽고)



1. 놀이공원이나 백화점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꼬마는 울어제끼기 시작했다. 거리를 오고가는 수많은 사람 중에 내 편은 없구나, 내 편인줄 알았던 엄마가 시야에서 사라진 순간 공포는 엄습한다. 엄마가 나를 잊은걸까?

"이놈새끼, 내가 그 자리에 가만 있으라고 했지? 어? 왜 말안들어!!"



엄마는 4번타자처럼 손바닥으로 수박만한 엉덩이를 두드려 팼다. 엄마는 원심력을 몰라도 허리의 반동과 손목스냅을 사용할줄 안다. 엄마는 물리학자다. 꼬마는 또 울어재낀다. 엉덩이에 전해지는 찌릿한 고통과 엄마가 사라진 찰나 느낀 그리움, 엄마가 나를 잊지 않았고, 나는 엄마를 잃지 않았다는 안도감은 눈물에 버무려졌다. 짠맛과 쓴맛 단맛이 모두 난다.


2. 잊음은 잃음이다. 연인이 헤어질 때 흘리는 눈물을 악어의 눈물로 매도하지 말자. 상대와 함께 했던 추억의 시간들이 내 앞에선 사람의 왼쪽에서 오른쪽눈으로 지나가고 상대의 등을 보는 순간 잊음과 잊혀짐의 시간이 시작된다. 모래시계에 담긴 기억의 모래 알갱이의 숫자와 굵기만큼 사람마다 잊음의 속도는 다르다. 억지로 잊으려고 하지 말자. 과거의 끔찍한 기억의 사금파리들을 잊으려할수록 기억이 더 선명해지기도 하니까.



3. 상대를 가정한 잊음과 잊혀짐의 문제가 아닌, '나'를 잊고 잃는 문제는 차원이 다르다. 출생의 비밀과 기억상실증이 소재로 밥먹듯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의 얘기가 내 문제가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점점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됐을때, 열심히 색칠했던 물감이 벗겨지는 것을 바라보는 심정은 어떨까?

파트릭 모디아니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의 주인공은 '나'를 찾아 나섰다. 별 볼일 없는 흥신소의 탐정이라도 탐정일텐데, 계속 헛다리만 짚는다.

나는 누구일까? 기 롤랑? 페드로 멕케부아? 스테른? 하워드 드뤼즈? 프레디?

아드리아네의 실타래는 자꾸 꼬여만 간다. 
흥신소 사장이었던 '위트'가 주인공에 보낸 편지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고 한 당신의 말은 옳았습니다.'
(183쪽)

과거를 잃은 현재는 잊혀진 과거의 또다른 얼굴이다. 마찬가지로 미래는 잊혀지고 잃어버림이 예정된 현재다. 개인이든 국가든 과거를 잊은 존재는 미래도 없다. 오래 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나는 누구인가' '집단과 국가는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천착해 온 이유다.



4.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읽었지만 선뜻 책의 메시지가 와 닿지 않았다. 머리속은 뒤엉키고 앞 쪽에 배치된 단서들은 기억속에서 증발했다.

망각은 피할 수 없다. 다만 나는 잊혀지고 싶지 않다. 잊지 않고, 잊혀지지 않고, 잃지 않기 위해 읽는다. 기억하고 기록하고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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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엄마에게



엄마는 결혼식날 치마저고리 대신 환자복을 입었다
살얼음 위를 걷는 드레스에는 고드름이 걸렸다
수술실은 아가리를 다문채 말이 없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했던가
인내는 짧고 수술은 길었다



한쪽만 들리는 칼국수 이어폰에서 엄마목소리가 나왔다
부위가 부위인지라 마음의 준비는 하거래이
십년 전에 세상 베린 아버님이 보고싶다 며늘아 딱 오 년만
더 살고싶다 하셨는데
이모는 주저 앉고 아빠는 고개를 돌렸다
고장난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방울은 침대를 적셨다



간이침대는 엄마의 자궁처럼 편안하다
나도 엄마가 되어 엄마에게 젖을 물린다
잘도 잔다 우리 아가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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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







초록 눈을 깜빡거리다가 노란 잎에 붉은 피가 베이면

가슴이 뛴다

망설임은 길고 짧음은 누가 정하는가

망설임의 신호가 없는 비보호의 심장은 소리없이 뛴다






예외없는 규칙과 규칙없는 예외의 길섶을 

아이들은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며 규칙의 철판에 예외를 긋는다

어른들의 무단횡단은 노랗다

규칙은 예외에 짓눌려 숨이 가쁘다







그린라이트

눈동자가 노랗다가 초록이 되면 심장은 성큼성금 2루로 뛴다

간발의 차로 아웃이라도 허리띠에 묻은 진흙을 털며 씨익 웃는다

신호등 옆 빵집에서 망설임은 샛노란 숨을 내쉰다






#신호등 #그린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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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2 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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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글쓰기와 김훈(와우북페스티벌을 다녀오고 김훈의 자전거 여행2를 읽은 즈음)



1. 2015년 10월 2일 7:30 전날 이원 시인의 강연에 이어 이 날은 박수밀 작가(본인은 고전 인문학자라 불리길 원했다)의 차례였다. 주제는 '연암 박지원이 들려주는 글 짓는 법'

전날과 같은 서교예술센터에서 개최되어 5분전에 도착했다. 사전신청명단에 체크를 하는데 전날 자원봉사했던 학생이 알아봤다. "어, 어제도 오셨죠?" 매일 아침 가는 분식집에서 내가 들어서자마자 참치김밥을 내주는 아줌마말고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또 여기 있었다.

2. 연암 박지원, 교과서에서 배웠던 '허생전' '호질'정도만 알았지 나는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 박지원 의원만큼 그를 몰랐다. 나랑 별 상관없는 사람이다. 작가는 박지원의 글쓰기를 '생태적 글쓰기'라 명명했다.

예를 들어보자. 조선시대 선비들은 '꽃'을 노래할 때 꽃의 생김새와 꽃의 향기를 노래했다. 꽃와 풀에도 등급을 나누었다. 사군자는 1,2등급으로 작은 꽃들이 옹기종기 모인 이름없는 풀은 저 밑 등급인 잡초였다. 반면 연암은 '벌레와 더듬이와 꽃술에 관심이 없는 자는 도무지 문장의 정신이 없는 것이고, 사물의 형상을 음미하지 못하는 자는 한 글자도 모른다고 말해도 상관없을 것이다(종북소선자서)'고 했다.

중요한 것은 연암은 꽃의 향기와 자태가 아니라 '꽃술'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이다. 김현 선생은 문학의 쓰임은 그 쓸모없음에 있다고 하셨다. 쓸모없는 존재인 벌레, 잡초같은 일상적 사물에 교감하는 것이 생태적 글쓰기라 했다(학계에서 작가가 아무리 주장해도 도무지 알아먹지 못한다며 푸념하면서)

3. '생태적 글쓰기'라. 말이 쉽지. 통 와닿지 않는다. 그렇지만 생태적 글쓰기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은 소설가 '김훈'선생이다. '자전거여행2(문학동네)'를 읽으면서 하찮은 미물이라도 가만히 오랫동안 관찰하고 골똘히 생각하는 선생의 자세를 온전히 느꼈다.
그런 생태감을 특유의 밀고당기는 문체로 풀어나간다.

"배는 엔진의 힘으로 나아가지 않고, 저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아는 힘으로 간다. (중략) 선박은 자신의 위치를 아는 그 앎의 힘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늠한다. 내가 어디에 처해 있는지를 알아야만 나는 어디로 가는가를 알 수 있다.(28쪽)"

대나무의 삶은 두꺼워지는 삶이 아니라 단단해지는 삶이라며 담양의 대나무숲을 묘사한 부분,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과 친구였던 원효를 비교한 부분, 소설로 쓴 '남한산성'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4. 강연과 자전거여행을 관통하는 정신은 일상성과 관찰, 자연과의 교감이었다. 때로는 기신기신 일어나 눈을 비비며 한 곳과 하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리라. 그러면 뭐가 나올까 싶기도 하지만, 어느새 나는 풀과 꽃과 흙과 바람과 얘기를 나누고 있을 것이다.

‪#‎와우북페스티벌‬ ‪#‎김훈‬ ‪#‎자전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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