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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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인삼각二人三脚으로 벽 통과하기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하도시와 벽, 이후 페이지만 표시)을 다 읽고 나니 백석의 시가 생각났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중략)//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백석,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현실 세계에서 열일곱 살 소년인 는 열여섯 살 소녀인 가 말하는 것을 받아 적는다. “네가 도시의 큰 틀을 말해주면 내가 그에 대해 실제적인 질문을 하고 네가 대답해서 보충하는 식”(21)이다. 둘의 이야기로 만든 비밀 도시에서 와 재회하지만 를 기억하지 못한다. 도시의 진짜라면 실제 세계의 는 본체의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도서관에서 꿈 읽는 이로서 의 도움을 받아 서고에 보관된 오래된 꿈을 읽어나간다. “나 말고 도서관을 찾아오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도서관은 언제나 나와 너만의 것이다.”(74)

 

  나는 이 소설의 같은 그녀를 생각한다.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있었지만 학교가 엇갈리면서 그녀와 멀어졌다. 전해오는 소식으로 그녀가 국립 대학교 국문학과에 진학했다는 소식을 듣긴 했었다.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가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를 몇 가지 말했다. 구글링에 능숙한 한 친구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한 대형서점에서 일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때 무슨 용기가 났는지 그 서점에 전화를 걸어 그녀의 연락처를 알려줄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서점 직원은 그녀의 동의 없이 함부로 개인정보를 알려줄 수가 없으므로 그녀의 의사를 먼저 물어보겠다고 말했다. 결국 그녀와 연락이 닿지 못했다. 거기까지가 그녀와의 인연인가보다 생각했다.도시와 벽에도 ’, ‘카페 여주인의 로맨스가 등장한다. 사랑과 그리움의 정서가 공기처럼 퍼져 있고 중력같이 작용한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통속적인 연애 소설이라고 할 수 없다.

 

  도시 주변에는 백석의 시에 등장할 것 같은 짐승들이 산다. “날카로운 외뿔이 달린 과묵한 황금색 짐승들은 아침이면 정연히 줄지어 도시 안으로 들어왔다가 밤이 되면 벽 바깥의 서식지에서 몸을 맞대고 잠든다.” (130) 도시 안팎으로 출입이 가능한 유일한 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뿔피리를 불면 짐승들은 도시 안으로 들어왔다가 저녁에는 바깥으로 돌아간다. 먹이를 찾아 헤매다가 추위와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은 짐승의 사체 위에 한없이 쌓이는 눈, 유채기름을 뿌리고 사체를 태우는 연기가 잔상으로 남았다. “겨울밤이 밝으면 그들 중 몇 마리가 서식지 바닥에 하얀 눈옷을 덮어쓰고 드러누워 있었다. 누군가의 죄를 떠안고 대신 죽어간 이들처럼.” (426)

 

  소설의 머릿돌인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 시작하자.

  높이가 8미터에 이르는 은 빈틈없이 견고하고 완벽하다. 그러나 실존이 본질에 우선한다는 하이데거의 말처럼 벽의 특성과는 별개로 벽의 실존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현실과 비현실, 실제와 꿈, 본체와 그림자, 삶과 죽음, 의식과 마음 같은 의 껍질을 하나씩 벗겨 나가는 과정이 이 소설을 읽는 기쁨 중 하나다.

 

  나는 이 작품이 구조적, 내용적으로 이인삼각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이인삼각(二人三脚) 사전적 의미는 두 사람이 옆으로 나란히 서서 맞닿은 쪽의 발목을 묶고 세 발처럼 하여 함께 뛰는 경기. (육달 월)(물리칠 각)이 합쳐진 글자인데, ()(가다)와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을 본뜬 병부 절()이 합쳐진 글자로 의지하다는 뜻도 파생된다.

 

  구조적으로 소설은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현실 세계와 가상의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을 한 챕터씩 번갈아 가며 동시 진행한다. 2부는 실제 세계의 산골 마을 도서관을 중심으로, 3부에서는 실제와 가상이 오고간다. ‘, 도시와 도시 바깥이, 현실과 비현실이, 현실과 꿈이, 삶과 죽음이, 의식과 마음이 각각 한 발 씩 내밀어 발목을 묶고 어깨를 겯은 채 달린다. 묶인 발목 같은 은 통제, 억압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인삼각의 중심축으로서 스토리에 숨을 불어넣고 이야기를 추동하는 힘이다.

 

  벽은 무엇일까. 절대적 타자로서 아버지같은 존재일까.

  2부의 현실 세계에서 산골 마을 도서관장으로 일하는 는 한 소년을 알게 된다. 전임 관장이자 그림자 없는 인간(유령)고다쓰의 무덤가에서 내뱉는 의 독백을 소년이 엿듣는다. 소년은 비범한 능력을 발휘해 가 묘사한 도시를 지도에 재현해낸다. 늘 옐로 서브마린이 그려진 파카를 입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소년은 에게 도시의 벽은 역병을 막기 위해지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역병은 아니고 비유로서의 역병”, “영혼이 앓는 역병”, “끝나지 않는 역병”(527, 528)을 뜻한다는 것이다. 한편 도시로 증발해 버린 소년을 찾는 그의 형이 말하듯 벽은 한 인간을 이루고 있는 의식”(651), 빙산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에 가라앉아 감춰져있는 독자적인 의지와 생명력을 지닌 마음의 상태로 보는 해석도 있다. 이렇게 다층적인 의미를 가진 벽이 존재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불확실한 벽이다. 경우에 따라, 상대에 따라 견고함을 달리하고 형상을 바꿔나간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684)

 

  나는 비유로서의 역병이라는 문구를 실제의 역병이라는 의미에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바람으로 받아들였다. 하루키는 동명(同名)의 중편(1985)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1995)세계의 끝부분을 확장해도시와 벽을 완성했다. 변화무쌍한 코로나19라는 벽에 둘러싸인 2021, 저자는 집필 중에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사회적 환경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느낀 내면의 불안과 고뇌가 이 소설에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자를 떼어내고 도시에 사는 주민들은 코로나19 이전의 삶을 한동안 잊었던 우리처럼 집합적 기억을 상실한 것 같다. “지리에 대한 수평적 호기심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에 대한 수직적 호기심도 없는 사람들은 스스로 격리되었다. 페스트, 메르스, 코로나와의 전쟁은 인간의 육체 뿐 아니라 마음도 찢어발긴다. 일본의 전쟁 역사인 노몬한 사건(1939년 일본 만주국과 몽골의 영토전쟁)’에 대해 다룬태엽감은 새 연대기이래 하루키는 집합적 기억인 역사에 대한 언급을 꾸준히 해왔다. 2차 세계대전의 패전과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대한 일본정부와 일본 국민의 자기책임회피, 역사왜곡을 일삼는 일본 우익, 중국의 홍콩 민주화 요구 탄압, 유럽의 배타적인 난민정책 등을 강도 높게 비판해왔다. 하루키는 대중문학 작가일 뿐이고 노벨상을 의식하고 작품을 쓴다는 비난은 지나치다.

 

  그렇다면 변화무쌍한 벽 앞에 선 우리는 어떡해야 하나. 1) 젤리처럼 물렁물렁한 벽이라고 믿고 벽을 정면 돌파하기 2) 토끼처럼 굴을 파서 벽 밑으로 지나가기 3) 새처럼 날아올라 벽을 뛰어넘기. 어느 것도 만만치 않다. 의식의 벽에 부딪쳤을 때 이인삼각의 마음으로 돌아가 보자. 핸디캡이 있을 때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벽이 우리를 통과하게 하면 된다. 벽을 옮기자. 궁극적으로 우리가 벽이 되자. 술래를 피해 옷장에 숨은 아이처럼 벽속에서 사람들을 기다렸다가 짜잔, 하고 벽에 문을 내자.

 

  ‘과 더불어 내게 흥미로운 소재는 그림자도서관이었다.

그림자는 본체의 부속물인데, 인간이 가진 부정적인 감정, 어두운 생각과 마음을 상징하한다고 생각한다. “머리 위에 접시를 얹고 있을 땐 하늘을 쳐다보지 않는 편이 좋다는 문지기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그림자를 데리고 도시에 살 수 없으므로 그림자를 떼어내야 한다는 취지인데, 접시는 그림자고 하늘은 도시를 뜻하는 것일까. 아델베르트 폰 사미소의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가 떠오른다. 그림자를 팔고 금화가 쏟아지는 자루를 넘겨받은 남자 페터 슐레밀은 그림자가 없으면 빛도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는 그림자를 팔고 빛을 잃었다. 그림자가 없으면 빛도 없다. 그림자는 빛의 존재증거이기 때문이다. 개인과 사회(혹은 국가)는 늘 그림자를 의식하고 살아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림자를 마주볼 수 있는 용기와 인지적 공감능력을 길러야 본체를 잃지 않는다.

 

  도시 속 짐승과 사물들은 그림자가 있는데 오직 인간만 그림자가 없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그림자는 호모 사피엔스가 도시 속에 갇힘으로써 잃어버린 인간 고유한 특성일까. 이를테면 사람이 품은 갖가지 종류의 감정이죠. 슬픔, 망설임, 질투, 두려움, 고뇌, 절망, 의심, 미움, 곤혹, 오뇌, 회의, 자기 연민······ 그리고 꿈, 사랑”(178)같은.

 

  그림자는 도시와 바깥의 중간지점에 산다. 도시 안이 상상계라면 그 바깥 세계는 실재계이고 그림자는 꿈처럼 반무의식의 상징계를 의미한다. ‘의 그림자는 죽어가는 생명처럼 말한다. “여기 있는 그녀가 그림자고 벽 바깥에 있던 그녀가 본체였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중략) 실은 이곳이 그림자의 나라가 아닐까. 그림자들이 모여 이 고립된 도시 안에서 서로 도와가며 숨죽이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176)

 

  그림자를 버린 자만 이 도시에 거주할 수 있다는 원칙을 부정하는 문장들이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 지금 여기의 가 실은 그림자이고, 거기의 가 진짜 일수도 있다는 것. 육체와 영혼, 몸과 마음, 껍데기와 알맹이, 현실과 꿈, 고유의 역할과 사회적 역할 등이 대립적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다. 본체와 그림자는 손등과 손바닥처럼 표리일체다. 손이 나의 자아라면 상황에 따라 상대방에게 손을 펴고 악수를 청할 수 있고, 주먹을 쥐고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그 둘 다 손이 하는 일이다.

 

  다음으로 도서관을 보자. 현실과 가상 세계에 모두 등장하는 공간이다. 실제 세계에서 중년의 는 산골 마을의 도서관장으로 부임한다. 전임 관장인 고야쓰는 트럭 사고로 아들을 잃고, 사랑하는 부인도 강에 몸을 던졌다. 본인 또한 산책 도중에 심장 발작으로 죽었다. 하지만 그림자가 없는 인간이자 유령으로 앞에 나타나 도서관 안쪽 장작 난로가 있는 정사각형 방에서 대화를 한다. 한편 도시에도 도서관이 있다. 나는 눈에 상처를 낸 꿈 읽는 이의 자격으로 오래된 책상에 앉아 달걀 모양의 오래된 꿈을 읽는다.

 

  도서관의 서고에는 책 대신 오래된 꿈이 수납되어 있다. ‘오래된 꿈이 그림자의 말처럼 이 도시가 성립하기 위해 벽 바깥으로 추방당한 본체가 남겨놓은 마음의 잔향”(177)긁어내어져 밀폐 보존된 사람들 마음의 잔재”(186)이라면 도서관은 마음의 눈으로 마음의 경전을 읽는 신전이다. 보르헤스의 도서관처럼 각각의 마음은 하나의 소우주이고 궁극의 개인 도서관”(557)이다. 도서관은 한 점에서 시작해 알 수 없는 끝을 향해 팽창하는 드넓은 마음들의 총체다. 도서관에서 읽는 대상은 책이나 오래된 꿈이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도서관에서 자신의 내면을 읽는다.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고요하고 고독한 작업이다.

 

  ‘는 고야쓰를 대신해 도서관장이 되었고 비범한 소년은 나의 후임자로서 도시의 도서관에서 꿈 읽는 일을 계속한다. 고야쓰, ‘’, 소년의 순서로 계승의 바통이 현실의 도서관 안쪽 정사각형 방과 의식의 깊은 밑바닥에 있는 작은 정사각형 방”(747)으로 건네지는 구조다. 하루키의 아버지가 난징 대학살(1937) 무렵 중국에서 종군했고 그 때의 참상을 전해들은 하루키도 유사 체험과 트라우마를 겪었을 것이다. 이 소설을 비롯한 하루키의 작품에 군인 장교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아버지의 경험의 계승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그 높고 견고한 도시의 벽으로 돌아가자.

  20091월 이스라엘의 최고 문학상인 예루살렘상수상자로 선정되었다. 2023년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처럼 그해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분쟁이 지속되고 있었다. 하루키는 시상식장에서 벽과 계란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조주희, 하루키의 삶과 작품세계(북스타, 2021) 189-191쪽에서 발췌)

 

  “만약 여기에 단단하고 커다란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혀 깨지는 계란이 있다고 하면, 저는 언제나 계란 쪽에 서겠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많든 적든 각각 하나의 계란이라는 것을. 어쩔 수 없는 하나의 혼과 그것을 둘러싼 약한 껍질을 가진 계란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많든 적든 각자에게 있어 단단하고 커다란 벽에 직면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벽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시스템이라고 불립니다.”

 

  ‘이라는 공고하고 강력한 시스템을 통과하기 위해 달걀 모양의 오래된 꿈을 읽는 이가 필요하며, 그 사실을 이야기로서 전달하는 존재가 소설가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하루키는도시와 벽을 쓴 것이 아닐까.

 

  나는 백석의 시 중에흰 바람벽이 있어를 가장 좋아한다.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중략)/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중략)/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후략)

 

  흰 바람벽이라는 스크린에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나와 내 그림자와 도서관이 나오는 영화. 영화가 끝나도, 끝나지 않는 지난날의 기억이 엔딩 크레딧처럼 올라가는 극장에서 우두커니 앉아있는 고독한 인간. 가끔은 한 편의 소설이나 영화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극장을 나온 나는 변한 게 없는데 모든 것이 달라진 것 같은 느낌. 누군가 나직이 내 귀에 속삭이는 것 같다. “마음으로 원하기만 하면 됩니다.” “당신의 마음은 하늘을 나는 새와 같습니다. 높은 벽도 당신 마음의 날갯짓을 막을 수 없습니다. (중략) 당신의 분신이 그 용감한 낙하를 바깥세계에서 안전하게 받아줄 거라고, 진심으로 믿으면 됩니다.” (754)

 

  이인삼각으로 결승선에 도착한 나는 너에게 용기 내어 물었다. 이름을 알려 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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