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마지막 우체국
무라세 다케시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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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해답은 언제나 과거의 내 안에.'

p.41

살아도 돼.

살아도 되고말고.

내게 보낸 편지에 '이런 나라도 계속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라고 썼던데, 그런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마.

세상에는 뇌물을 받아먹는 정치인도 있고 자기 부모를 죽이는 자식도 있어. 그런 사람들도 사는 마당에.

올바르게 살아가는 네가 살아도 될지 말지 고민할 필요가 뭐가 있겠어?

p.46

- '해답은 언제나 과거의 내 안에'

과거와 미래의 경계선에서 서성일 때면 네가 지나온 과거를 믿으면 돼.

현재는 과거를 이겨냈다는 증표잖아.

괴롭다는 건 과거에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pp.79~80 [첫 번째 편지 - 최애에게]

비굴해지지 말게.

비굴해지면 안 돼.

지갑을 훔쳤다고 솔직하게 고백할 줄 아는 사람이 어째서 쓰레기라는 건가?

생각해 보게.

아침 일찍 시작되는 건설 현장에 자네가 한 번이라도 지각한 적 있나?

내가 지쳐서 일어설 기력이 없을 때 손을 내밀어준 게 누구였나?

전에도 말했다시피 진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은

자기가 변변찮다는 사실을 모를뿐더러 설사 알더라도 인정하지 않아.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는 사람을 이 사회는 반드시 받아들여 줄 걸세.

pp.150~151 [두 번째 편지 - 친구에게]

"나는 네 마음을 충분히 이해해. 그렇지만 우리가 타인의 시선을 결정할 수는 없단다. 중요한 건 네가 어떻게 하고 싶으냐, 더 정확히 말하면 네가 무엇을 믿느냐에 달렸단다."

"네 신념을 타인에게 반드시 인정받을 필요는 없어. 중요한 건 그걸 옳다고 믿는 네 마음이지. 네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도록 살아가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단다. 너는 네가 아요이에게 한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니?"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일 네가 소신을 지켜 나가고 있다면,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현혹될 거 없단다. 좀 외로울 수는 있지만 고독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그 시간이 반드시 너를 강하게 만들어줄 거야. 인생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고 살아가는 자세보다 더 강한 건 없다고 나는 믿어."

pp.196~199 [세 번째 편지 - 할머니에게]

혹시 몰라서 헤드라이트도 하나 챙겼어.

네가 걸어가야 할 길이 어두울 수도 있거든.

그래도 겁낼 거 없어.

착한 사람이 길을 안내해 줄 거라 믿지만,

혹시 아무도 없으면 그걸 머리에 쓰면 돼.

밝은 빛이 사방을 비추면 헤매지 않고

앞으로 걸어갈 수 있을 거야.

pp.267~268 [네 번째 편지 - 반려견에게]

당신이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지 당신을 보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등대는 눈에 띄지 않지만,

누군가는 그 불빛을 의지하고 있잖아.

당신 얼굴까지는 안 보이지만, 당신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여기에도 한 명 있다는 것만은 기억해 줘. 이상.

p.323 [다섯 번째 편지 - 연인에게]

무라세 다케시, <세상의 마지막 우체국> 中

+) 이 소설집에는 다섯 편의 소설이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실려있다.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진심을 전하는 편지를 보낸다는 설정 하에 이야기가 전개되기에 판타지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각 소설마다 다른 주인공으로 인물을 설정했으나 이들이 다른 작품에도 주변 인물로 등장해, 작품 간의 관련성을 유지하고 있기에 연작 소설의 분위기를 풍긴다.

광고 회사 영업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미키'를 버티게 해준 음악가에게 보내는 편지, 알바로 전전하던 '오키'를 헌신적으로 도와준 친구를 속여 괴로울 때 그에게 보내는 사과의 편지,

진심을 왜곡하는 친구들의 괴롭힘으로 괴로운 '메구미'가 지혜로운 할머니께 보내는 편지, 남편을 잃고 유일한 가족이었던 반려견도 자신의 부주의로 잃었다고 자책하는 엄마가 반려견에게 보내는 편지, 부정한 방법으로 대기업을 이끌다가 실패의 길에 들어선 '사와무라'가 죽은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

이들은 모두 천국에 편지를 보낸다는 '아오조라 우체국' 광고를 보고 우체국을 방문한다. 그리고 본인의 재산에 비례해 상당히 큰 금액을 지불하며 천국으로 편지를 쓴다.

죽은 이들이 세상을 떠난 지 49일이 되기 전까지만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기에, 이들은 두 배의 우푯값을 지불해서라도 답장을 받고 싶어 한다.

처음부터 편지에 하고 싶은 말을 전부 적지는 못하지만, 그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이들은 지난 삶을 돌아보고 현재의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또 희망적인 미래도 꿈꾸며 적극적으로 인생을 살아간다.

한 사람의 생을 버티게 하는 존재는 누구에게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소설이다. 그리고 잘못된 선택에서도 사람들은 반성하며 배우고 성장한다는 걸 가르쳐준다.

'굿 럭' 인형이 여러 사람에게 계속 선물로 전해지며 받는 이의 행복과 행운을 빌어준다는 설정이 다섯 편의 이야기를 하나로 엮는 데 도움이 된다.

죽은 이들에게 편지를 쓰고 답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살아남은 이들에게 큰 희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는 사과를, 누군가는 고백을, 누군가는 사랑을, 누군가는 감사를 표현하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살아있을 때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판타지 힐링 소설이었다. 천국으로 편지를 보내도록 돕는 우체국이 정말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있었으면 좋겠는, 그런 마음을 갖게 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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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널 먹을 거야 온그림책 28
데이비드 더프 지음, 마리안나 코프 그림, 김지은 옮김 / 봄볕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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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오늘은 살아 있기 참 좋은 날이다.

그렇지, 프랭크? "

" 맞아, 최고야! "

뿌지직!

" 이봐! 너 왜 그랬어? "

" 미안, 네 친구를 못 봤어. "

" 어...... 앞을 잘 보고 다녀야지. "

" 미안해. 내가 잘못했으니 책임질게. "

" 마음 쓸 필요 없어.

할 일이 하나 생겼네.

꿈틀꿈틀

나중에 친구들과 얘를 먹을 거야. "

" 이 애는 몇 주만 지나면 썩어서 흐물흐물해질 거야. 그러면 우리가 먹겠지.

지렁이들이 어떤 일을 하면서 사는지 모르니? "

" 내가 널 먹는다면, 그건 생명이 돌고 도는 과정일 뿐이야. "

" 너희 지렁이들이 참 중요한 일을 하는 것 같구나.

그런데 나는 네 친구를 밟았잖아. 마음이 점점 더 안 좋아. "

" 이봐. 네가 정말 실수를 바로잡고 싶다면

저 위에 있는 새를 한번 봐 줄래? "

" 날 위해서 저 새를 계속 감시해 줄 수 있니? "

쿨쿨쿨...

"프랭크?

프래애앵크? "

" 만약 나에게 어떤 일이 생기면, 너는 나를 먹겠지. 그럼 그때 날 좋은 무언가로 바꿔 줄 수 있겠니? "

" 그렇게 할게. 덩치 큰 내 친구야."

데이비드 더프 지음, 마리안나 코포 그림, <난 널 먹을 거야> 中

+) 편안한 느낌을 주는 이 그림책은 '지렁이 프랭크'와 '커다란 초식 공룡'이 친구가 되면서 서로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이들이 읽는 그림책인데 첫 장면부터 파격적으로 시작해서 조금 놀랐다. 프랭크가 지렁이 친구와 '살아있기 참 좋은, 최고의 날'을 만끽하고 있을 때, 갑자기 등장한 공룡이 본의 아니게 지렁이 친구를 밟는다.

그렇게 읽는 이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려는데 더 충격적인 말을 지렁이가 한다. 당황하며 무척 미안해하는 공룡에게 프랭크는 이렇게 말한다. "나중에 친구들과 얘를 먹을 거야."

놀람의 연속으로 계속 그다음 장을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그림책이라니. 평온한 느낌을 주는 그림들 사이에서 지렁이 프랭크의 단호하지만 부드러운 말은 독자로 하여금 관심을 집중하게 만든다. 왜? 왜지?

이 그림책은 살아있는 존재들의 끝과 시작을 알려주며, 서로가 먹고 먹히는 관계의 틀을 보여주고 있다. 즉, 모든 존재들마다 존재하는 가치가 있음을 가르쳐 준다.

무언가를 먹어서 다시 새로운 시작을 선물하는 지렁이 프랭크의 삶, 지렁이를 지켜보는 '새'로부터 프랭크를 지켜주는 커다란 초식 동물 공룡의 삶, 프랭크가 아니더라도 다른 지렁이를 먹이로 잡아가는 새의 삶 등등.

저자는 생명 순환의 가치와 자연에서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존재 가치를 따뜻한 그림책으로 설명하고 있다. 모든 생명이 살아가는 이유를 알려주면서 그들 하나하나 의미 있고 소중한 존재라는 걸 표현한다.

더불어 어떻게 친구가 되는지 지렁이와 공룡의 모습을 통해 천천히 드러낸다. 또 친구에게 용기 있게 사과하는 모습과 그 사과를 따뜻하게 받아주는 모습도 볼 수 있어서 배우며 느낄 점이 많다.

그림책이기에 그림 한 컷 한 컷 살펴보며 등장 캐릭터의 표정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다. 또 자연 순환의 모습을 그림으로 보기에 아이들이 인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자연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 탄생과 죽음이 시작과 끝의 반복이라는 점, 생명이 이어지며 순환할 때 서로의 마음도 나눈다는 걸 가르쳐 주는 책이었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 용서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것, 약속한 걸 지키는 것 등의 자세를 일깨워 주는 작품이라고도 느꼈다.

어린 독자들에게 죽음의 의미와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를 새롭게 환기할 수 있는 그림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을 알려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모든 존재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시 태어난다는 것, 그렇게 자연에서 돌고 돌며 살아간다는 것, 모두가 가치 있는 생명이라는 것 등을 상징적으로 잘 담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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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정신과 - 별난 정신과 의사의 유쾌한 진료일지
윤우상 지음 / 포르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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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We are all patients! 우리는 모두 환자야."는 내가 정신과 전공의 1년 차로 들어갔을 때 3년 차 선배가 해 준 말이다.

"우리 머릿속에는 나만의 색안경이 있어. 살아오면서 저절로 생긴 거지. 내 머릿속 안경이 빨간색이면 하얀 세상을 빨갛게 보고 세상은 빨갛다고 믿고 살아가지. 이런 게 투사야. 내 꼴대로 세상을 보는 거야. 바깥세상의 진실은 상관없고 내가 보는 게 진실이 되는 거지. 투사는 한마디로 망상이지."

세상이 동그란데 나는 세모라 하고 누구는 네모라 하고 누구는 별 모양이라 한다. 각자 자기가 본 세상이 맞다며 우기고 싸운다. 진실은 어디 가고 망상의 싸움만 한다. 내가 정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착각 속에 살고 있을 수 있다. 내가 보는 세상은 모두 내가 만든 투사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pp.26~27

30대 남자 환자다. 연애를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모태 솔로다. 여자 목소리 환청이 들리는데 두 가지 버전으로 나타난다. 사랑한다, 좋아한다는 애인 목소리와 바보, 멍청이라고 욕하는 엄마 목소리다. 환청이 애인 목소리일 때는 기분 좋게 웃다가 엄마 목소리로 바뀌면 시무룩해진다. 그 환자가 시무룩하게 있어서 물었다.

"왜요? 오늘은 엄마 목소리가 들려요?"

"아니요. 오늘은 아무 소리도 안 들려요."

"소리가 안 들리니 편하겠네요."

"아니에요. 소리가 안 들리면 이상해요. 둘 다 나를 버린 것 같아요. 애인도 엄마도요..."

pp.51~52

공간을 바꾸면 삶이 바뀐다. 내 삶을 바꾸고 싶다면 공간을 바꾸는 방법이 가장 간단하다.

다만 공간 바꾸는 게 쉽지는 않다. 걸리는 게 많기 때문이다. 무엇이 걸릴까? 내적인 이유와 외적인 이유가 있다.

내적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불안, 의심, 귀찮음이다.

외적인 이유도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시간, 돈, 가족이다.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갈 때는 그냥 방해물을 주렁주렁 매달고 들어가야 한다. 불안과 의심을 품에 안고, 돈과 시간과 가족의 문제를 등에 업고 뚜벅뚜벅 움직여야 한다. 신기한 점은 해결 안 날 것 같은 문제도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가면 어떻게든 정리된다는 것이다.

pp.63~65

나는 지금도 이렇게 생각한다.

'나의 혀는 메스다. 나의 혀 놀림이 집도의의 칼과 같다. 내 혀 놀림으로 상처를 봉합하고, 내 혀 놀림으로 암을 제거하고, 내 혀 놀림으로 심장을 다시 뛰게 한다. 잘 못하면 내 혀 놀림으로 상처를 주고, 멀쩡한 혈관을 자르고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내 혀는 칼이다.'

지금도 몸 컨디션이 안 좋으면 나태해지고 흔들린다. 그때 다시 생각하고 정신 차린다. 나는 수술하는 사람이다. 오늘 수술하는 날이다. 나의 혀, 나의 말 한마디가 그의 삶을 좌우할 수 있다!

p.179

몸의 고통은 혼자서 겪을 수밖에 없지만 마음의 고통은 나눌 수 있다. 누군가 그의 고통을 알아주고 받아 주면 그 고통이 덜어진다. 몸의 고통은 의사가 치료해 주지만 마음의 고통은 같이 아파해 주는 사람이 치료해 줄 수 있다.

p.233

그녀는 머릿속에 가혹한 재판관을 모시고 산다. 자기 행동 하나하나를 판단해서 죄를 묻고 벌을 내린다. 그러니 늘 불안하고 두렵다. 가혹한 재판관은 '병적인 초자아' 때문이다. 초자아는 '착하게 살아라', '좋은 사람이 돼라'와 같이 도덕과 윤리를 추구하고 이상적인 자신을 추구하는 정신 기능이다.

그러나 초자아도 너무 강하면 병이 된다. 내 안의 초자아가 너무 가혹하면 가벼운 실수에도 하루 종일 바보라고 구박하고, 남에게 살짝 민폐 끼쳐도 죄책감에 시달리고, 남보다 조금만 부족해도 심한 열등감에 허덕인다. 매일 자책과 자학이 번갈아 온다.

pp.269~270

윤우상, <명랑한 정신과> 中

+) 이 책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저자가 30년이 넘게 환자와 함께 해온 일상을 담고 있다. 마음이 아픈 이들을 돌보는 의사와 간호사의 삶, 그리고 자기만의 철학과 생각이 확고한 환자들의 삶이 기록되어 있다.

'명랑한 정신과'라는 책의 제목만큼 화사하고 귀여운 그림들로 가득 찬 명랑한 책 표지를 보며 책의 분위기를 상상했다.

그리고 책을 펼치면서 환자들의 짠하고 아픈 이야기, 그러면서 되게 유쾌하고 신기한 이야기, 또 그들 나름의 우직하고 흔들림 없는 이야기 등을 접하며 웃다가 울고, 울다가 다시 웃었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모두 환자라고. 세상은 자기만의 시선으로 파악되기 때문에 그게 진실인지의 여부는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다. 본인이 본 세상이 정상이라고 믿고 사실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깊이 공감했다. 우리는 대부분 자기가 경험한 것 위주로, 자기가 보고 들은 것 위주로 세상을 판단한다. 사람들을 분석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파악한다.

그리고 그 틀에서 자기만의 철학을 쌓고 자기만의 잣대를 만든다.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 과연 누가 정상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는 환자들에 대한 편견이 좀 줄어들었다. 그들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생겼다고나 할까.

그들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왜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환영과 들리지 않는 환청이 들리는지, 또 그 순간 그들은 얼마나 혼란스러울지 등을 우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은 유쾌하고 발랄하며 제목 그대로 명랑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물론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도 갖지만 시원하게 웃으면서 가볍게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떠올리게 한다.

어떤 스토리에서는 마음이 아파 훌쩍이다가, 환자를 생각하는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들 그리고 환자들 곁에서 응원해 주는 이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기도 한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사이코드라마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 타인이 하는 연기일 뿐인데 감정 몰입이 될까, 그게 당사자들에게 와닿을까 싶었다.

그런데 사이코드라마를 통해 자기의 솔직한 심리를 토로하는 이들의 사연을 보기만 했는데도 감정 이입이 되어 훌쩍이다가 엉엉 울고 말았다.

마음이 아픈 이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던 저자의 말이 기억난다. 사람 사이에서 받은 상처도, 어쩌면 사람 사이에서 나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책이었다.

정신 병원의 일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한 사람들, 그리고 마음이 아픈 이들이 왜 그렇게까지 되었는지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 정신과 의사와 간호사의 삶이 어떤 것인지 궁금한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듯하다.

더불어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들, 마음이 아파 힘든 사람들, 따뜻하고 유쾌한 이들의 대화로 한바탕 웃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읽기만 했는데도 위로가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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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건너기 소설의 첫 만남 30
천선란 지음, 리툰 그림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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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가끔 사람을 미치게 해. 진절머리 난다는 듯 외치던 엄마의 말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원하는 것이 있어도 말하지 않고 상대방이 알아줄 때까지 눈치 주는 아이,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어딘가 묘하게 음침한 구석이 있는 아이. 그게 공효였다.

p.20

그냥 싫어. 같이 있으면 짜증나.

구체적인 이유가 있었다면 거기에 얽매여 살았겠지만 오히려 그쪽이 더 나았을 것이다. 공효가 이후 십 대의 인맥을 모두 망친 데에는, 작은 말실수 하나에 밤을 새우는 것에는 지솔의 공이 컸다. 그래도 공효는 지솔을 미워하지 않았다. 공효는 타인을 미워하는 일이 자신을 미워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그래서 차라리 모든 걸 자기 탓으로 돌리는 게 편했다.

p.24

공효는 멈추지 않고 호흡했다. 어린 공효가 조금씩 공효를 따라 숨을 훅, 후욱, 후우욱, 훅, 내뱉기 시작했다. 한동안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서서 기절하지 않기 위해, 중력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숨을 쉬었다.

"이렇게 하는 거야. 소리를 지르고 싶을 때는. 알겠어? 그럼 네가 이기는 거야."

"뭐를?"

"뭐든. 중력도 이기는데 뭘 못 이기겠어?"

p.36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을 직면해야 하는지, 무엇을 감싸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천천히 짚기에는 삶이 너무 바빴다.

"무서워. 근데 옛날만큼 무섭지는 않아. 싸우면 이길 수 있을 것 같기도 해."

"왜?"

"거미보다 무서운 게 많아져서."

"......잘됐다."

"뭐가 잘돼? 무서운 게 더 많아졌다니까?"

"나는 평생 저 거미를 못 넘을 텐데 너는 그걸 해낸 거잖아."

pp.47~49

모든 선택의 기준에 어린 공효가 있었다. 같이 잠수하며 숨을 참은 것도, 무중력 공간에서 기뻤던 것도, 출구 없는 우주로 나아가고 싶었던 것도, 좁은 복도에 서서 하늘을 노려보던 어린 공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는 너를 좋아해. 공효야.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너를 너무 좋아한단다."

pp.64~66

천선란, <노을 건너기> 中

+) 이 소설은 성인이 된 현재의 '공효'가 어린 시절 기억 속 과거의 '어린 공효'를 만나는 이야기이다. 공효는 우주 비행사로 안전한 비행을 위해 자아 안정 훈련을 받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공효는 어린 공효를 만난다.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라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나, '의식하며 살고 있는 지금의 나'와 '무의식 속 기억 내 나'의 만남, 즉 자아의 만남이라는 표현이 더 옳을 듯하다.

공효는 어린 시절의 공효를 만나면서 그때의 기억과 감정을 하나 둘 떠올리기 시작한다. 왜 아파했는지, 왜 힘들어했는지, 어떻게 견디고 있었는지, 어떤 점이 속상했는지 등등을 어린 공효와의 만남으로 생각한다.

그 시절 두려움과 고통의 원인을 지금의 공효가 하나씩 헤아리면서 어린 공효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공효는 그런 순간을 건너갈 수 있다고 믿으며 어린 공효와 함께 용기를 낸다.

사람은 스스로를 잘 알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 상황에 따라 사람들은 달라지며 본인이 내린 선택의 이유도 각각이다. 마찬가지로 기억 또한 정확하기보다 자기 위주로 저장되기에 객관적이기도 어렵다.

그만큼 자기 객관화는 쉽지 않은 일이며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용기를 내기도 힘들다. 아프고 힘들었던 순간을 참고 견디며 어떻게든 지나갈 거라 믿었던 어린 공효, 그 아이를 본 어른 공효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지금의 삶에 지치고 아픈 이들에게는 이 순간을 건너갈 수 있다는 믿음이 되고, 기억 속 고통에 아픈 이들에게는 그 순간을 지금도 꿋꿋하게 건널 수 있다는 응원이 되리라 생각했다.

어린 시절의 자기를 만나는 환상적인 소설이지만 이야기는 상당히 현실적이라고 느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든, 자기를 둘러싼 상황에서든 우리는 스스로의 탓으로 돌릴 때가 있다.

자기에게 문제를 찾아서 그 상황을 접고 싶은 순간이 있다. 이 소설은 그때의 감정을 어루만지며 두려움과 상처를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은지 잘 보여준다.

자신을 용서하기 힘들었던 순간이나 자기가 정말 싫었던 순간 때문에 아픈 이들에게, 그건 그때의 자신이 내렸던 하나의 선택이었을 뿐이니 아픈 만큼 스스로를 안아주라고 가르쳐 주는 소설 같다.

피하기보다 마주 서고 비난하기보다 감싸주며 지나치기보다 함께 가라는 걸 알려주는 작품이었다. 우리의 기억 속 아픔에, 그때의 우리 자신에, 따뜻한 악수를 내미는 소설이었다.

친구와의 관계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청소년들에게, 타인의 말에 상처받아 아픈 사람들에게 잔잔한 위로와 응원을 주는 책이라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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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삶의 언어가 될 때 - 고요히 나를 회복하는 필사의 시간
김종원 지음 / 큰숲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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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햇빛에 비치면 먼지도 빛난다.

그대, 아름다운 시선을 유지하라.

신도 절망하는 곳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p.40 -괴테

일상이 가장 위대한 자산이다.

이 세상 어떤 것도 내가 누리는 오늘 이 시간보다

더 비싸거나 귀중하지 않다.

내가 반복하는 것이 나를 증명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매일 자기 자신이 반복하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즐기는 사람이다.

p.44 -괴테

(오늘의 필사)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도

내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믿는 동안에는

여전히 그걸 해낼 가능성이 존재한다.

p.68

바보와 현명한 자들은 우리 삶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

가장 위험한 사람들은 바로

어중간한 바보와 어중간하게 현명한 사람들이다.

-괴테

(오늘의 질문) 나는 물음표가 있는 하루를 살고 있는가?

pp.88~89

(오늘의 필사)

작가라는 명사를 가지려면

글쓰기라는 동사를 실천해야 한다.

동사를 품에 안으면,

명사는 저절로 따라온다.

p.98

한낮의 빛이 어둠의 깊이를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악인에게는 자신을 증오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pp.116~118 -니체

나를 파괴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

네 운명을 사랑하라.

p.124 -니체

(오늘의 필사)

세상은 해석하는 자의 몫이다.

해석한 만큼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다.

모두가 같은 것을 바라보지만

모두가 같은 것을 발견하는 건 아니다.

p.176

(오늘의 필사)

삶은 두려움의 연속이다.

수많은 날을 살았어도

오늘은 누구에게나 처음이기 때문이다.

p.180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늘 침묵해야 한다.

진짜 어른에게 나이가 든다는 건

자신의 언어를 정밀하고 세련되게 다듬는 과정이다.

pp.216~218 -비트겐슈타인

김종원, <철학이 삶의 언어가 될 때> 中

+) 이 책은 삶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인생의 이치와 지혜를 철학자 괴테, 니체,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바탕으로 전하고 있다.

인생의 방황기와 고통 속에서도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괴테의 신념,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의 운명을 사랑하고 용기 있게 수용하라는 니체의 마인드, 자기만의 언어가 자기의 생을 만들고 이끌어간다는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을 담은 책이다.

'고요히 나를 회복하는 필사의 시간'이라는 부제에서도 드러나듯 책은 '철학자의 말, 오늘의 필사, 오늘의 질문' 3단 구성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저자는 철학자의 말로 하루의 시작을 열고, 그와 더불어 우리가 사유할 수 있는 문장을 필사의 시간으로 이어간다. 그리고 한 문장의 질문으로 우리가 우리의 현실에 다가가도록 돕는다.

철학자의 말에서 저자의 인문학적 접근으로 이어져 우리 스스로의 내면과 삶을 돌아보는 순간을 마련해 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자의 말과 저자의 조언이 책의 왼쪽에 있다면, 독자가 필사하는 공간은 오른쪽에 마련되어 있다. 또 필사하기 편하도록 책을 잘 펼쳐지게 엮고 있어서 독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따뜻하게 와닿는다.

하루 한 쪽씩, 혹은 일주일에 한두 쪽씩 필사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괴테, 니체, 비트겐슈타인 순으로 구성되었으나 독자가 읽고 싶은 순서로 필사를 해도 괜찮다고 느낀다.

이 책에 수록된 세 철학자의 말을 읽으며 그들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이런 말을 어떤 상황에서 했을지, 어떤 책에 기록되어 있는지, 그들의 인생은 어땠는지 등 호기심이 생긴다.

또한 저자의 인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조언이 지난 삶을 돌아보며 삶을 재정비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필사하며 철학자의 말과 저자의 조언이 어우러져 내면에 깊이 새길 수 있다.

그러면서 오늘의 질문을 통해 자기 자신과 스스로의 생, 그 삶을 대하는 태도 등도 성찰할 수 있다. 필사하는 시간만큼 자신에게 던진 질문에 답을 찾는 시간도 소중하다는 걸 알려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손으로 필사하기 편하도록 독자를 배려해 책을 편집한 이들의 정성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그 따뜻한 마음에서도 철학이 삶으로 녹아들고 있다는 걸 보여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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