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로 빚은 인문학
박운석 지음 / 학이사(이상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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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술은 예로부터 백약지장百藥之長이라 하여 백 가지 약 가운데 으뜸으로 여겼고, 동시에 백독지장百毒之長이라 하여 모든 독 중에서도 가장 강한 것으로 여겼다. 곧, 술이 적절하면 약이 되지만 지나치면 독이 된다는 의미다.

풍류를 즐기던 선비들은 술자리에서도 예절을 엄격히 지켰다. 정약용이 둘째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그러한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참다운 술맛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는 것이다. 저 소가 물을 마시듯 하는 자들은 술이 입술이나 혀를 적실 틈도 없이 곧장 목구멍으로 넘기니 무슨 맛을 알겠는가. 술의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더러운 것을 토하고 잠에 곯아떨어지는 자들에게 무슨 정취가 있겠는가.

pp.14~17

우리 술은 술 이름 하나만 봐도 문학적이고 철학적이다. 이색적인 이름을 가진 술은 도대체 어떤 맛과 향이 날지 궁금해진다.

대표적인 술이 이화주梨花酒다. 이화주는 배꽃을 넣어 빚는 술이 아니라 배꽃이 필 무렵에 빚는 술이다.

<주방문>에 수록되어 있는 석탄주惜呑酒도 독특한 이름을 가진 술이다. 애석할 석惜, 삼킬 탄呑, 술 주酒를 써서, 맛과 향이 뛰어나 차마 삼키기 안타까운 술이라는 말이다.

백수환동주白首還童酒는 불로장생을 꿈꾸는 옛사람들의 바람을 보는 것 같아 미소를 짓게 만드는 이름이다.

pp.38~39

와인은 포도가 재료이기 때문에 완성된 술에서도 포도 향이 난다. 당연한 일이다. 보리의 싹을 틔워 말린 몰트와 홉을 주재료로 만드는 맥주는 곡물 맛과 함께 홉에서 비롯된 향이 특징이다.

전통주는 다르다. 쌀, 물, 누룩만으로 만드는데도(포도를 넣지 않아도) 완성된 술에서 포도 향이 난다. 매실을 넣지 않았어도, 잘 빚은 단양주에서는 매실 향이 난다.

잘 빚은 술에서만 느껴지는 맛과 향이다.

pp.59~60

<동의보감>에서는 '술이 깨고 취하지 않는 법'이 소개되어 있다.

밀실 안에서 뜨거운 물로 세수하고 머리를 수십 번 빗질하면 깨고, 소금으로 이를 닦고 더운 물로 양치하면 세 번만 해도 통쾌해진다.

현대사회에서는 알코올에 소금이 들어가면 물이 된다는 과학적 원리로 설명할 수 있겠다.

p.73

사케는 쌀을 얼마나 깎아냈느냐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다. 많이 깎을수록 술의 가치가 높아진다. 일반적으로 정미율이 50% 이하일 때 다이긴조라고 하는데, '닷사이 23'은 정미율이 23%라는 뜻이니 쌀의 77%를 깎아낸 셈이다.

사케가 쌀을 깎아 내어 만드는데 반해, 우리 전통주는 쌀의 단백질과 지방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우리 전통주는 쌀을 깎아 내지 않고 깨끗하게 씻어 그대로 사용한다.

pp.108~109

"전통주란 우리가 주식으로 삼고 우리 땅에서 생산되는 곡물을 주재료로 하고, 물 이외의 인위적인 가공이나 첨가물 없이 누룩을 발효제로 하여 익힌 술을 지칭한다."고 했다. 고유한 방법과 전통성을 간직하면서도 우리 땅에서 나는 자연산물을 주재료로 하여야 전통주라고 하는 것이다.

p.158

박운석, <전통주로 빚은 인문학> 中

+) 이 책은 전통주 교육 전문가인 저자가 전통주를 빚는 과정을 비롯해, 전통주와 관련된 설화, 전통주 명칭, 전통주와 전통문화와의 관련성 등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낸 책이다.

저자는 술이라는 틀에 전통주를 넣기 보다 인문학적 시선으로 전통주와 전통문화와의 연계성을 살피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설명한다.

여러 고전 문헌의 기록을 근거로 다양한 전통주에 얽힌 사연을 역사, 문화적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어렵게 쓴 책이 아니기에 전통주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이 읽어도 이해하기 쉽다.

에세이 형식으로 작성된 글들을 모아 엮어서 전통주에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의 술 문화에 대해서도 접할 수 있기에 흥미롭게 읽으며 공감했다.

특히 맥주와 와인, 사케 등과 비교하여 전통주가 갖고 있는 장점을 살린 부분에서는 더 공감하며 동의했다. 담백하나 깊이 있는 전통주 제조법을 확인할 땐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도 가질 수 있었다.

전통주를 쌀과 누룩과 물만으로 만들기도 한다는 언급에 조금 놀랐다. 꽃 등을 재료로 사용한 전통주도 있겠지만, 저 세 가지만으로 깊은 맛과 향긋한 향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이 책에서는 그간 들어보지 못한 다양한 전통주를 만날 수 있는데 각각의 술에 얽힌 문화와 역사가 매력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전통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친밀함으로 독자에게 다가가는 글이라고 느꼈다. 전통주를 바라보는 인문학적 시선을 에세이 형식으로 가볍게, 친근하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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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아빠 투자 불변의 법칙 - 500억 자산가가 남긴 마지막 유산
타짱 지음, 박선영 옮김 / 큰숲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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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자산가치주 투자

수익가치주 투자

시클리컬가치주 투자

'자산'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된 종목을 사는 투자법

'수익 창출 능력'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된 종목을 사는 투자법

경기가 순환하는 업계에서 '경기의 바닥'에 있는 종목을 사는 투자법

난이도 ★

수익 기대치 ★

난이도 ★★

수익 기대치 ★★

난이도 ★★★

수익 기대치 ★★★

찾는 법

PBR(주가순자산비율) 0.5배 이하, 자기자본비율 60% 이상으로 스크리닝

찾는 법

영업이익률 10% 이상, PER(주가수익비율) 10배 이하, PBR(주가순자산비율) 1.5배 이하, ROA(총자산이익률) 7% 이상, 시가총액 300억 엔(3000억) 이하로 선별

찾는 법

경기가 순환하는 업계에서 '경기의 바닥'에 있는 종목을 사는 투자법

pp.13~15

나는 '매일 주식 관련 책을 읽기'로 결심한 뒤 연간 100권 정도를 읽고 나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저평가된 주식을 장기적으로 보유하는 것이 주식의 왕도'라는 사실을 배운 것이다.

p.38

  • 주식의 네 가지 종류와 공략법

① 성장가치주(그로스주) : 실적이 급성장하는 기업

② 수익가치주(실적안정주) : 성장가치주만큼 급성장은 아니지만 안정적으로 실적을 올리는 기업

③ 자산가치주(실적부진주) : 실적이 점점 나빠지지만 자산의 가치가 있는 기업

④ 시클리컬가치주(경기민감주) : 경기에 따라 실적이 좋을 때와 나쁠 때가 순환하는 기업

일반적으로 '가치주 투자'는 ② 수익가치주와 ③ 자산가치주를 사는 투자를 말한다. 그중에서도 ② '수익가치주 투자'는 실적 부진주를 사는 ③ '자산가치주 투자'와는 구분된다. ② 수익가치주 투자에서 실적이 부진한 기업의 주식을 사는 이유는 그 기업이 지닌 부동산과 같은 '보유자산'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성장주 투자보다 가치주 투자를 추천하고 싶다.

pp.61~64

주가(기업의 가치) = 보유자산 + 장래 수익 (+바이어스)

여기서 바이어스는 '이 기업의 주가는 절대 오른다'거나 혹은 '이 기업은 장래성이 없다'와 같은 투자자들의 편견이다. 가치주 투자에서 성공하려면 '기업의 가치'를 올바르게 평가해야 한다.

p.70

지금까지 소개한 자산가치주는 모두 '옛날부터 있던 회사'다. 설립연도가 오래될수록 기대치가 높아지고 특히 공장 부지와 같은 넓은 토지를 보유하고 있으면 더욱 좋다.

자산가치주 투자는 어느 정도 종잣돈이 모인 상태에서 '약간 보수적으로 투자하고 싶을 때' 가장 효과가 좋은 투자법이다.

pp.80~81

재무상태표에서 필수적으로 체크해야 할 내용은 '현금 및 현금성 자산', '토지', '투자유가증권', '단기 및 장기차입금' 항목이다.

p.94

수익가치주가 많은 업계로는 은행, 금융, 상사, 철강, 자동차, 해운, 전력, 가스, 건설, 의약품 등이 있다 이들 업계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기업이 많고 PER(주가수익비율)이나 PBR(주가순자산비율)이 낮은 경향이 있다. 특히 종합상사나 해운업계, 금융업계는 수익의 안정성과 높은 배당률이 매력적이므로 가치주 투자자들이 주목하는 회사가 많은 편이다.

p.129

시클리컬가치주는 '경기 변동에 따라 주가가 크게 움직이는 주식'이다. 구체적으로는 '철강, 비철, 광업, 유리, 석유, 석탄, 고무, 화학, 섬유, 종이 펄프'와 같은 업계의 주식을 말한다. 한마디로 '옛날부터 내려오던 오래된 업계'다.

'차별화가 어렵고 회사에 따라 상품과 서비스가 크게 바뀌지 않는 업계'라는 이미지가 있다.

pp.154~155

  • 시클리컬가치주의 투자 전략

① 경기 사이클의 파악이 중요

- 경기의 바닥(불황기)에서 사고 호황기에서 파는 것이 왕도

- 금리, 정책, 실적의 추세를 체크

② PER, PBR, 배당수익률 체크

- 시클리컬가치주는 PER이 낮아도 '경기 감속으로 이익이 줄어들' 리스크가 있다.

- 배당수익률이 높아도 '실적 악화로 배당이 삭감될' 위험이 있다.

- PBR 1배가 깨지거나 적자 전환과 배당 중지로 주가가 폭락한 종목이 매력적이다.

③ 분산투자로 리스크 관리

- 철강, 상사, 건설과 같은 경기민감주를 조합해서 투자한다.

- 경기방어주와의 균형도 염두에 둔다.

p.168

타짱, <부자 아빠 투자 불변의 법칙> 中

+) 이 책은 어렸을 때부터 부자가 되고 싶었고, 부자가 되기 위해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한다.

저자는 성인이 되면서 주식에 관심을 갖고 주식 관련 서적을 100권 넘게 읽으며 실전 투자 방법을 읽혀 나간다. 그리고 싸게 사서 비싸게 팔 수 있는 가치주 투자 방법을 권하며 여러 투자 기술을 전달한다.

이 책에서는 자산가치주, 수익가치주, 시클리컬가치주로 나누어 각 가치주들의 특징과 핵심 포인트, 찾는 방법, 사야 할 때와 팔아야 할 때를 정하는 기준, 장점과 단점 등을 설명한다.

저자가 일본인이므로 일본 주식회사 등에 투자한 경험을 상세하게 언급하며 투자 과정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또 투자 방법 내용을 정리하는 표와 그림, 도표 등을 틈틈이 사용하고 있어서 독자 입장에서 정리가 잘 되는 책이었다.

특히 책의 후반부에는 저자가 직접 작성한 기업 분석 리포트에 대한 예시와 어떻게 기업 분석 리포트를 작성하는 것이 좋은지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방법들을 가르쳐 주고 있어서 도움이 된다.

주식 투자 경험자인 저자는 주식 투자자의 심리를 꿰뚫고 있어서, 주가의 오르내림이 있을 때 각 가치주별로 대응할 수 있는 사고방식을 제시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주식 투자에 대한 공부가 이렇게 어렵고 끈질긴 것이라는 걸 느꼈다. 각 회사에 대해, 경기 변동에 대해, 회사 분석 리포트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막연하게 투자하는 방식의 위험성도 깨달았다.

또한 주식에 투자할 때는 그 회사의 가치를 판단하기 위해 실적이나 자본만 볼 것이 아니라 보유 자산 등도 고려해 회사의 과거, 현재, 미래를 두루 살펴보는 게 유익하다는 것도 배웠다.

가치주를 발견하는 방법과 기준을 신뢰성 있게 제시하고 있어서 투자 공부에 도움이 된다. 투병 중인 저자가 이 책을 쓴 건 자녀들이 투자를 공부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 목적을 잘 살린 책이었다.

투자 종목을 찾는 방법과 기업 분석 리포트 작성법을 배우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주식 투자자가 왜 부지런해야 하는지, 부지런한 투자자가 왜 성공할 수밖에 없는지 사실적으로 보여준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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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클레어 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반타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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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신앙의 상실은 특별한 깨달음을 주지도 않았거니와 끔찍하게 괴롭지도 않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자라난 체념은 내가 살아가며 겪은 일들로 더욱 공고해졌으며, 결국 신과의 대화는 무조건 일방통행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내 죽음과 잇따라 처음 그 자리에 다시 태어난 재탄생이라는 논쟁은 결국 기운 빠지는 필연으로 종결지어졌고, 이제 나는 끝내 실패한 실험을 지켜보는 과학자처럼 극심한 낙담과 초탈에 빠져 현실을 바라보게 되었다.

p.35

난 보자마자 실소를 터뜨렸다. 현판에는 '성마고 정신병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누군가 '불행한 이들을 위한'을 박박 지워버렸는지 보기 흉한 빈자리만 남아 있었다. 내가 두 번째 생애에서 일곱 살의 나이에 창밖으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던 바로 그 병원이었다.

p.41

"이게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까, 오거스트 박사님? 당신은 죽으면 그만이다, 이렇게 생각하십니까? 세계가 리셋된다 이거죠, 쾅! 하고."

"우리같이 하찮은 삶을 사는 하찮은 사람들은 다 죽고 없어지고 이 모든 게......"

p.95

복잡성을 이유로 어떤 개입도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크로노스 클럽의 만트라였다. 그리고 내가 지금 이 말을 전한다. 이건 고결하지도 대담하지도 정의롭지도 야심만만하지도 않은 만트라지만, 유유히 흘러가는 역사의 물줄기에, 감히 시간 그 자체에 손을 대려는 시도를 경계하려는 일이니, 이 신성한 맹약은 반드시 모든 크로노스 클럽 본부의 문 앞에 걸려 있어야만 한다.

p.112

공포는 재탄생에 있다. 재탄생, 그리고 몸이 아무리 갱생해도 정신은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라지지 않는 두려움.

p.140

"나는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는 없잖아. 안 그래?"

"우리는 이 모든 걸 알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아. 우리가 세계를 바꿔야 한다는 말이 아니야. 우리한테 해결책이 있다는 얘기도 아니고.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으면 미래는 어떻게 될까? 하지만 우리는...... 무언가는 해야 해."

pp.267~268

당신은 신입니까, 오거스트 박사님? 당신만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생명체입니까? 기억한다고 해서, 당신의 고통이 더 크고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까? 당신이 이 모든 걸 경험했다고 해서, 당신의 삶이 유일하게 의미가 있는 삶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p.345

"바보구나. 뭐가 옳은지 아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

p.431

클레어 노스, <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中

+) 이 소설은 660쪽이라는 방대한 분량의 장편 소설이다. 정확히는 과거를 기억한 채 끝없이 반복되는 생에 관한 SF 스릴러 소설이라고 하면 될 듯하다.

매번 같은 해에 태어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세 네 살 무렵부터 본인의 지난 과거를 기억하는 남자, 그가 바로 '해리 오거스트'이다.

처음 한두 번 비슷한 생은 신경 쓰지 않다가 계속해서 자기 인생이 반복되고 있다는 걸 깨달은 남자는 그 굴레를 벗어나고 싶어서 여러 방안을 생각해낸다.

다양한 종교에서 해결 방법을 찾으려고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본인에게 일어나는 엄청난 비밀을 이야기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에 그걸 믿는 사람보다 믿지 않는 사람이 더 많기에 그는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고립된다.

그렇게 그는 되풀이되는 인생의 틀에서 지루함과 외로움에 지쳐만 간다. 그럴 때 그에게 다가오는 세력들이 있다.

미래를 알고 있다면 본인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역사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무리들. 그들은 해리 오거스트를 설득하기 위해 강압적으로 그를 압박한다.

그러나 반복되는 과거와 지속되는 현재에서 그는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런 존재가 인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하며 흔들린다.

그는 다시 태어날 때마다 많은 언어와 문화, 사회적 지식을 배우고 쌓는다. 그의 환상적인 경험은 수많은 위협과 비웃음, 그리고 의심 속에서 그렇게 천천히 방향을 찾아간다.

열다섯 번째의 삶이라는 제목에서도 나오듯 이 소설에는 그의 반복되는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다. 중요한 건 그 반복이 일정한 틀일 뿐 그 안에서 주인공은 계속해서 변화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자기 존재 가치를 찾아, 어떤 방식이든 시도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며 포기하기도 한다. 이 소설은 그런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방대한 분량의 장편 소설이지만 스릴러 갈래이기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고, 사회 역사적 배경을 통해 시대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과거를 아는 힘이 미래를 바꾸는 힘이 될지 모른다는 걸 소설을 통해 확인했다. 그리고 이게 과연 득일지 해일지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해리 오거스트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소설이었다.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삶은 편하지 않다. 너무 특이한 삶도 편할 수 없다. 이 소설은 그런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인류를 위하는 일을 하는 것, 역사를 바꾸는 기회를 갖는 것. 이게 과연 옳은 일일까. 소설을 읽으면서 해리 오거스트의 입장과 그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입장, 모두에 각각 서 있어보았다.

입장과 상황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쪽에서도 내적 갈등과 두려움이 동반되리라 생각한다. 긴 분량임에도 지루하지 않게 쉼 없이 읽은 책이었다.

지적인 스릴러라는 어느 소설가의 평에 깊이 공감한다. 사회 문화적, 역사적 상황들을 어렵지 않게 살핀 기분이 든다. 참신한 발상의 지적 스릴러를 접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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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뇌는 만들어진다 - 평생 공부머리를 결정짓는 뇌 성장 수업
노규식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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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전략적 사고를 하는 능력이 우수하다는 것이다. 전략적 사고란 복잡한 상황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아내는 능력으로, 주로 뇌의 전두엽에서 여러 가지 실행 기능을 통해 이루어진다. 전략적 사고의 핵심 요소는 계획 세우기, 조직화하기, 우선순위 정하기, 점검하기, 기억하기, 유연하게 생각하기로 나눌 수 있다.

pp.21~22

  • 부모가 아이의 공부 뇌를 만든다

- 아이의 호기심을 존중하고 지원해주기

- 아이의 질문에 함께 고민하고 탐구하기

-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환경 만들어주기

  • 아이의 흥미를 유지해주는 3가지 방법

- 아이의 실패를 아이 자체의 능력이나 정체성과 연결하지 않는다.

- 결과보다는 시도와 탐색, 수정의 움직임에 주목해야 한다.

- 실패 직후의 감정보다 실패를 인식하기 전의 고민과 탐색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pp.32~42

아이들에게는 빠르게 답을 맞히는 연습보다 천천히 사고를 붙잡고 구성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오답을 확인한 뒤 바로 정답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고 오류가 있었는지 탐색하는 과정이 인지 능력을 성장시키는 기회다.

개념은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몸을 거쳐 기억되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감각을 통한 학습은 개념을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저장하는 데 효과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공부를 스스로 '설계'하는 경험이다. 오늘 무엇을 공부할지, 어떤 방식으로 할지, 끝나고 무엇이 남았는지를 점검하게 해야 진짜 자기 주도 학습이 된다.

pp.59~61

열 살 이전에는 단순하고 구체적인 개념이 형성되고, 열 살 전후부터 개념을 연결하고 추상화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그렇기에 초등 저학년 시기의 학습은 '앞서가기'보다 '생각하는 근육'을 기르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10세 이전엔 '학습 준비'를, 10세 이후엔 '공부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 시기가 평생 성적의 출발점이 된다.

pp.97~98

뇌는 반복적으로 주입되는 정보에 '고속 통행로'를 마든다. 한번 만들어진 길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한정적인 시간 내 중요한 정보는 '많이 잊히는 것은 자주, 이미 고정된 것은 적게' 반복하는 것이 효율적인 기억 전략이다.

p.127

  • 독서와 글쓰기만큼 뇌를 자극하는 학습법도 없다

실제로 뇌과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독서는 뇌를 발달시키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충분한 독서로 뇌를 건강하게 만들어야 비판적 사고도 가능하고 새로운 개념의 창조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pp.152~153

문해력을 키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여전히 독서다.

p.158

수학을 잘하려면 언적 이해력이 함께 자라야 한다. 문제의 조건을 해석하고, 수학적 개념을 설명할 수 있고, 설명을 듣고 피드백할 수 있는 능력은 모두 언어를 바탕으로 한다. 언어 능력은 단지 교과서와 문제만 반복해서 본다고 늘지 않는다. 이 시기 아이에게 다양한 책을 읽고, 자기 생을 써보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경험이 필수적이다.

p.203

  • 집에서 만드는 루틴 훈련법

-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자는 것부터 시작한다.

- '할 일표'가 아닌 '리듬표'를 만든다.

- '조용한 시간' 루틴이 꼭 필요하다.

- 디지털 기기 없는 아날로그 시간 루틴을 만들어 시행한다.

- 잠들기 전 하루를 정리해본다.

p.256

노규식, <공부 뇌는 만들어진다> 中

+) 이 책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저자가 뇌의 구조와 뇌의 발달 원리를 토대로 학습 능력을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공부에 필요한 뇌가 만들어진다고 주장하며 뇌 기능을 알고 뇌 발달 시기에 맞게 인지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집중력과 주의력을 구분 짓고 주의력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언급하며, 기억력과 언어 능력을 활용한 학습 전략에 대해 정리한다.

AI 시대에서 이해 중심의 학습자만큼 비판 중심의 학습자가 왜 필요한지 말하며, 아이의 창의성을 기르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가르쳐 준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아이의 잠재력을 키우고 공부하는 뇌를 만들려면 부모가 무엇을 하는 게 좋은지 제시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중요한 부모의 말과 아이가 학습하는데 필요한 환경적 조건에 대해서 써 내려간다.

이 책은 뇌의 구조와 원리를 이해하면 후천적으로 공부 뇌를 발달시킬 수 있다고 설명한다. 공부에 집중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뇌를 활용하는지 보여주며, 단계적으로 자라는 공부 뇌를 고려한 체계적인 학습전략을 제안한다.

책을 읽으면서 학습에는 다양한 뇌 기능이 종합적으로 사용된다는 걸 배웠다. 단순히 집중력, 끈기, 암기력 등으로 구분할 게 아니라 학습에 필요한 인지능력을 뇌의 구조와 원리에 맞게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아이의 뇌 성장을 위해 부모가 어떻게 해야 좋은지에 대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있어서 도움이 된다.

뇌 성장 단계에 맞게 필요한 학습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전략과, 후천적으로 뇌 성장을 도울 방법이 있다 뇌 과학적 근거와 사례를 제시한 점에 신뢰감이 드는 책이었다.

실제 가정 내에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이해하기 쉽게 제안하고 있기에, 아이를 돕고 싶은 부모들에게 유익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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냠냠 소설의 첫 만남 32
백온유 지음, joggen 그림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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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인자한 엄마 말투'를 쓰는 것도 아니꼬웠지만, 평소에는 친하지도 않으면서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때만 가게에 와서 애교를 부리며 음식을 털어먹는 애들이 더 얄미웠다. 하지만 나는 회장이니까 끝까지 웃으면서 애들을 대한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꽤 어른스러운 편인 것 같다.

p.18

나는 이서우를 관찰하다가 민망해지기 일쑤였다. 왜긴 왜야. 이서우를 좋아하니까 그렇지, 뭐. 인정하니 당당해졌고 어깨를 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서우와는 좀처럼 길게 말할 기회가 없었다. 그나마 내가 회장이니까 뭘 챙겨 준답시고 문자라도 할 수 있었지, 우리는 같은 동네에 살지도 않았고, 그 애는 학원도 독서실도 안 다녔다.

주말에 단둘이 도서관에 가자고 할까 하다가 내가 생각해도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서 포기했다. 그 대신 영화 보러 가자고 할까, 아니면 마라탕을 먹으러 가자고 할까 망설이기만 하다가 방학이 시작되고 말았다. 내가 이렇게 답답한 면이 있는지 십오 년 만에 처음 알았다.

pp.22~23

"미안해."

"아니야. 나야말로 맛있게 다 받아먹어놓고 이래서 미안해. 오늘은 내가 맛있는 거 사 주고 싶었는데, 너는 거의 먹지도 못하더라."

"미안해."

내가 한 말인지 이서우가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 사이에 더는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이서우가 내게서 멀어지는 동안, 나는 바보같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pp.68~69

"근데 있잖아, 너 그럼 나도 불쌍하다고 생각했어?"

"그럴 리가 없잖아. 엄마가 분식집 하기 전까지는 내가 너한테 더 많이 얻어먹었는데 그럼 네가 나를 불쌍하게 생각한 거 아니야?"

"아닌데, 나는 너랑 있으면 재밌어서 같이 밥 먹자고 조른 건데."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이서우랑 있으면 비슷해. 그냥 "

"그냥 뭐?"

"그냥 좋아서 그런 거지 뭐."

"그럼 그렇게 말하면 되겠네."

"용기가 안 나."

"용기를 내면 되겠네."

pp.71~72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결국 재채기하듯 내뱉고 말았다.

"냠냠!"

pp.78~79

백온유, <냠냠> 中

+) 이 소설 속 중학생 주인공 '채원'이는 학급 회장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회장직을 맡으며 엄마처럼 다정하게 챙겨줘야 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체득한다.

같은 반 '서우'가 그런 친구이다. 준비물도 잊어버리고 숙제도 까먹는 아이라 회장으로서 챙겨주다 보니 어느새 정이 들고 나중에는 그런 자기감정이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걸 깨닫는다.

어느 날 서우가 끼니를 부실하게 먹는 것 같아 그때부터 온갖 핑계를 대며 서우에게 음식을 전달한다. 이미 가게를 하고 있는 엄마의 떡볶이를 개발 중이라며 맛 평가를 부탁하고, 그 외 다양한 음식들을 도시락으로 싸와 서우와 함께 먹는다.

그러다가 자신이 급식 카드를 사용하는 서원이의 상황을 모르는 척하며 다가선 게 오히려 서우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고 둘은 어색해진다.

하지만 편견 없이 좋아하는 마음으로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던 '윤영'이의 조언 덕분에 채원이는 서우에게 진심을 이야기한다. 물론 채원이만의 방식으로 말이다.

이 작품은 '냠냠' 소리가 이렇게 반갑고 행복한 표현이구나 하고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고 싶은 마음. 좋아하는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냠냠' 먹을 때 행복해지는 마음.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작품이다.

또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편견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이기에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싶고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그런 설렘을 매우 잘 그리고 있다.

채원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어떻게 하면 같이 먹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그 순간까지 맛있게 만들어낸 소설이었다.

아이들에게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라고 느꼈다. 특히 결말에서 두 아이의 솔직담백한 모습이 무척 사랑스러워서,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순간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어쩌면 사랑이란 맛있는 한 끼를 행복해하며 함께 나누는 게 아닐까 돌아보게 해준 소설이었다. '냠냠' 맛있는 소리로 사랑과 행복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풍경을 본 듯해 흐뭇했다.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는 게 좋을지 배울 수 있는 소설이었다. 그 소중함의 가치를 진솔하고 따뜻하게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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