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까지 비밀이야
안세화 지음 / 한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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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머잖아 세 사람은 결의했다. 그 자리에서 각자 핸드폰을 꺼내고는 '말은 은이고, 침묵은 금이다'라는 오래된 서양 격언을 SNS에 올렸다.

그리고 다음 날, 백산의 SNS에 뜬 새 게시물을 보았다.

'세 사람이 아는 비밀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아라비아 속담과 함께 간밤에 세 사람이 회동했던 고깃집 외관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p.41

'그날 내가 쓸데없는 소리만 안 했어도...'

주원은 후회했다. 백산이 경솔하게 비밀을 발설하기 전, 자신이 먼저 비밀을 공유한 일을 뼈아프게 여겼다. 죽을 때까지 죽은 게 아니었는데. 함부로 입을 놀린 시점부터 지금까지, 주원과 친구들의 죽음은 멀리 밀려난 것이 아니었다. 약간 유예되었던 것에 불과했다.

p.77

"그렇다면 왜 고민하는 거야? 너희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잖아."

"간단하다고?"

"정말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면."

효진이 묘하게 화색을 띠며 말했다.

"죽기 전에 먼저 죽여버려."

"뭐?"

"셋보단 하나가 죽는 게 낫잖아. 연쇄살인마의 목숨 따위 아까워할 필요도 없고."

pp.80~81

"멍청한 놈, 정신을 바짝 차렸어야지."

예전에 자신이 했던 말을 상기시키며 말했다.

"인간은 희한하다고 했잖아. 좋은 놈 나쁜 놈이 하늘과 땅 차이라고."

그러고는 당시엔 하지 않은 말을 덧붙였다.

"그놈들이 따로 있는 줄 알았어? 정신을 어디에다 두고 사느냐에 따라 이런 놈도 됐다, 저런 놈도 됐다 하는 거야. 그 나이 먹도록 그것도 몰랐냐."

p.129

"그냥 미친놈이 아니라 가진 게 많은 미친놈이잖아. 자기가 누리고 있는 모든 걸 다 걸고 그 짓을 또 할 정도로 멍청할 것 같진 않아."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주원도 예상도 친구들의 추측과 다르지 않았다.

p.141

"오해가 있으시네요. 그 문자는 백산 씨를 위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럼요?"

"서주원 씨를 위한 거였죠."

"네?"

"정확히는 서주원 씨와 친구분들이요."

"눈에 무언가가 씐 상태가 어떤 건지 잘 알거든요."

p.176

안세화, <무덤까지 비밀이야> 中

+) 이 책은 등산 중에 조난 당한 세 명의 친구와 낯선 한 청년이, 죽을 것 같은 공포 앞에서 우연히 각자의 비밀을 공유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바람피운 건 절대 아니지만 아내가 볼까 봐 두려워 첫사랑과 찍은 셀카 사진을 버리는 서주원, 평소 술 마시는 사람을 혐오하는 듯 행동했는데 사실 소주를 좋아한다는 신태일, 회사 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가끔 도박을 즐겼다는 고상혁,

그리고 딱 세 번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고, 그냥 죽이고 싶어서 죽였다고 중얼거리던 젊은 대학생 백산의 고백으로 네 사람의 비밀은 공유된다.

세 친구는 백산의 말이 사실이라면 미친 연쇄 살인마와 한 공간에 있다는 게 부담스러웠으나, 그는 이미 조난으로 지친 상태였다.

비는 계속 쏟아지고 산속 깊은 동굴에서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린 네 남자는 곧 죽을 거라 생각했으나, 뜻밖에 구조되어 각자의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문제는 백산의 엄청난 비밀을 공유한 상태라 이들은 평온한 일상을 살 수가 없다. 게다가 세 친구 앞에 수시로 등장하는 백산 때문에 피가 마른다. 그러나 살인에 대한 증거는 없고 셋은 불안감만 증폭된다.

부유한 대학생 백산이 연쇄 살인마라는 걸 아무도 믿어주지 않고 세 사람의 근처를 맴도는 백산은 계속해서 우연을 가장한 만남으로 이들을 압박한다.

참다못한 세 친구는 백산이 연쇄 살인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하나 오히려 이들의 삶만 피폐해지게 된다.

백산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위로해 주는 첫사랑과 다시 만난 주원, 음주 상태로 아이들의 수영을 지도해 온 태일, 상습적인 도박으로 파산 상태인 상혁.

물론 이들의 숨은 진실은 연쇄 살인마 백산 앞에서 비교적 작은 일이 된다. 그리고 이들은 합심하여 백산이 자기들을 죽이기 전에 방어하기 위한 전략을 짠다.

나쁜 사람의 기준은 무엇인가, 악함의 정도를 비교할 수 있을까, 나쁜 짓은 어디까지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을까, 정의와 자기 보호 중 자기 보호가 우선인 게 나쁜 걸까 등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스릴러 추리 소설 같은 이 작품은 사람이 어디까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또 자기 보호 혹은 자기방어가 맹목적인 틀을 설정할 수 있다는 것도 알려준다.

더불어 자신을 지키기 위해 타인을 제거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개인적으로는 인물들의 생생한 심리에 동화되어 같이 고민하며 걱정한 작품이었다.

작은 책자 한 권임에도 쫓고 쫓기는 서사적 전개로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쉼 없이 흥미롭게 읽었다. 역시 비밀은 혼자만 간직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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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의 마음공부 - 1,400년의 세월을 건너온 마음을 아는 길
강기진 지음 / 유노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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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이는 모든 경계는 오직 마음을 보는 것일 뿐이다.

마음이 환영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보이는 것이 즉시 없어질 것이다."

《금강삼매경》, <입실제품>

《삼매경》은 모든 경전을 아우르는 불경의 종합판이라고 할 만한 책으로, 궁극의 깨달음의 경지인 금강삼매에 대한 가르침을 전한다. 이를 통해 모든 번뇌와 장애, 집착을 돌파해 굳건한 마음의 경지에 이를 수 있으니, 이는 그대로 마음공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p.32

어리석은 무명으로 인해 없는 경계를 지어내고 이를 분별하니 여덟 가지 식의 파도가 일렁인다.

빛과 어둠이 따로 없는데 경계를 지어내고 빛에 집착한다. 기쁨과 슬픔이 따로 없는데 기쁨에 집착한다. 영광과 좌절, 쾌락과 고통, 정당함과 부당함 모두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부당함에 치를 떤다. 네 편과 내 편, 이것과 저것..., 분별과 집착은 끝이 없다.

p.86

부처와 여래의 지혜 경지는 이분법 분별을 넘어서니, 일체의 분별과 집착이 없다. 이는 진여의 존재인 부처와 여래가 분별지를 여의고 무분별지만 지녔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결과 부처와 여래는 구체적인 베풂과 작위를 여의게 된다.

p.129

즉 신은 애써 자기 모습을 감추고자 하여 인간의 마음의 심연에 자리 잡았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생의, 즉 만물을 낳고자 하는 자신의 뜻인 창조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은 창조를 위해 애써 자기 모습을 감추며, 무명의 바람이 불도록 놓아두는 것이다. 그리고 무명의 바람이 불 때 마음 바다에는 파도의 물결이 일렁이는 것이다.

p.146

어떻게 인욕을 닦을 것인가?

이른바 응당 타인의 번뇌를 참아서 마음에 보복할 생각을 품지 말아야 한다.

《대승기신론》, <수행신심분>

p.175

대반열반은 원래 불교에서 석가모니 부처가 육체적인 죽음과 함께 맞이한 완전한 해탈 상태를 의미했다. 즉 석가모니 부처의 죽음은 단순한 육체적 죽음이 아니라 모든 고통과 윤회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난 궁극적 해탈에 이른 것임을 강조하는 의미였다.

그러므로 서두의 《금강삼매경》 구절은 대반열반의 의미를 새로이 정의한 것이다. 무생행을 실천함으로써 무상법을 이루고, 그리하여 한마음 본원을 회복한 상태가 대반열반이라는 새롭고 고유한 통찰을 제시한다.

pp.238~239

불교 사찰은 흔히 고승과의 인연을 내세우는데, 역대 고승 중 원효만큼 많은 사찰에서 창주로 모시고 있는 분이 없다. 원효와의 인연을 내세우는 사찰은 지금도 전국에 100여 군데가 넘는다. 그리고 각 사찰의 연기 설화 속에서 원효는 신이한 능력으로 활약을 펼친다. 민초들의 사모하는 마음이 그와 같은 연기 설화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p.312

강기진, <원효의 마음공부> 中

+) 이 책은 해골 물 한 바가지 일화로 익숙한 스님인 '원효'의 사상을 《금강삼매경》, 《대승기신론서》 등의 책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현대인의 복잡한 마음을 불교 관점에서, 특히 원효의 시선에서 풀어내고 있다. 일상의 여러 일들에 마음이 흔들릴 때 바깥에서 원인을 찾을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수많은 감각이 만들어낸 허영에 현혹되지 말고, 무엇이든 나누고 가르려는 이분화된 틀에 갇히지 말고, 마음의 본모습을 바라보라는 말이다.

저자는 마음이 탁해지는 원인을 구조적으로 이해하고자 원효의 사상에 칸트와 융 철학을 도입하고, 다시 하나되는 마음을 위해 소승불교와 쇼펜하우어 철학을 함께 언급한다.

결국 마음이 곧 세계가 되기에 어떤 마음을 먹고 살아야 하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모든 법을 초월한 깨달음을 거쳐 한마음에 이르는 것이 답이라고 본다.

이 책은 불교 사상에 근원을 둔 원효의 철학은 물론 다양한 서양 철학자들의 사유도 담고 있어서 고전을 복합적으로 접하는 느낌이 있다.

또 저자가 현대인의 여러 상황을 사례와 비유로 들기에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더불어 원효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차분하게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우리의 마음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든다는 저자의 말을 곱씹으며 평온한 마음의 힘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 책이었다.

원효가 현실에서 수많은 민초들과 함께했듯이 저자 역시 원효의 철학으로 현대인의 마음을 다독이려 한 책이 아닐까 생각했다.

고요하지만 흔들림 없는 마음으로 마음 안팎의 질서를 지켜가는 자세가 어떤 건지 보여주려 한 책이라고 느꼈다. 종교를 떠나 원효가 걸어온 마음공부의 길을 지친 현대인에게 전하는 책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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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 사는 쪽으로, 포기하지 않는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는 : 제7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
조태호 지음 / 어떤책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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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묻고 싶다.

아주 쉽게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삶을 선택해야 하는

당신의 이유는 무엇인가.

16%

과거가 아닌 지금, 여기에 내가 있다. 나와 내게 부여된 과거의 것들을 하나씩 구분 짓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지금 여기'말고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이 애당초 없다. '지금 여기'가 쌓이고 쌓여 내 삶이 된다면, 내가 누리는 '지금 여기'를 허망하게 흘려보내는 것이야말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교만하고 콧대 높은 실직자는 '지금 여기'로 돌아와야 했다. 과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미래를 불안해하지 않고, 지금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하기.

18%

일이 화를 준 것이 아니라 내가 화를 불러와 나의 시간과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팩트와 느낌 사이에는 반드시 틈이 있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로봇처럼 반응하지 않으려면 둘 사이의 틈을 최대한 벌려 놓아야 한다. 반응에 대한 선택권을 내 손에 틀어쥐어야 한다는 뜻이다.

21%

해 보면 별거 아닌데, 해 보지 않아 평생을 하지 못하는 어떤 것. 난 여기까지야,라고 스스로 경계를 긋는 것. 이런 경계를 만드는 이유는 분명했다. 경계를 그어 버리고 그 안에만 머물기로 하면 혹시 올지도 모르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 낼 수 있으니까.

무엇이든 해 봐야 해낼 수 있다.

29%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의 의지로 변화를 선택했다. 그 모든 것을 겪었지만, 상황에 휘둘리지 않았다. 간절함을 품은 채 선택한 그 길이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

편안함보다 변화를 향했던 나의 선택은,

언제나 옳았다.

매번 그때는 모를 뿐이다.

48%

선택은 순식간이다. 선택 이후의 상황이 긴 것이다. 때로는 영원처럼 느껴질 만큼 길고, 어떨 때는 포기하고 싶을 만큼 길기도 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처지를 비관하기도 하고, 때론 후회하며 절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후, 소망을 품고 기다리는 것. 잘 생각해 보면 그것 외에는 내가 할 게 없다.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56%

모든 일은 당신의 가장 완벽한 때에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일어난다.

60%

교토대는 어떻게 이러한 지원을 할 수 있었을까?

"일등이 아니라, 유일을 추구하기 때문이죠."

노벨상 수상자, 노요리 료지 이화학연구소 소장이 명쾌하게 정리해 주었다.

"연구자는 일등을 할 필요가 없어요. 일등이 누구인지, 어떻게 일등이 되었는지에 관심을 두지도 마세요.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과연 자기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인지에만 관심을 쏟으면 됩니다. 내가 한 것도 오직 그것뿐이고, 노벨상과 명예는 부수적으로 따라온 것들이지요."

88%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내게 호의적이라는 믿음을 가지면 이 선택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완전히 가벼울 수는 없다. 어떤 선택은 여전히 무겁다.

그 결과가 좋아도, 혹은 나빠도 내 안의 근본적인 것들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모든 것들이 그저 지나갈 하나의 과정이 되는 것을 깨닫는 시간들을 보냈다. 내 노력의 대가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한 뒤 장차 올 것들에 대한 소망을 품는 법을 배우고, 내게 주어진 시간이 끝날 때까지 기쁨을 간직한 채 살기로 다짐하는 날들을 지냈다.

95%

조태호, <당신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中

+) 이 책은 고학력자이며 해당 분야의 전문가였고 방송에 나올 만큼 인지도가 높았던 그가 돌연 일본행을 결정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일본 정부의 국비 장학생을 선택한 것이 그의 인생을 말 그대로 다사다난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는 매 순간 무엇이든 쉽지 않은 결정해야 했고 그 결과에 책임져야 했다.

혼자라면 몰라도 아내와 아이들이 있기에 모든 선택은 신중한 만큼 힘들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한 사람의 생에 어쩌면 이렇게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싶게, 저자의 삶에는 수많은 돌발 상황과 변수가 생겼다.

어린 시절 황망한 사고로 동생의 죽음을 겪고, 일본 유학 시절에는 조선인을 혐오하는 교수를 만나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성격과 맞지 않는 일을 하며 방황하다가 죽을 뻔한 위기를 겪는다. 그리고 또다시 운명처럼 일본 유학을 떠났으나 거기서 자리 잡기는 쉽지 않았다.

어렵게 합격한 연구소에서 연구를 시작하려는 시점에 일본 대지진을 겪으며 또 한 번이 위기를 맞는다. 그 뒤 미국에서의 연구 활동을 이어가다가,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종교인의 삶을 살기도 했다.

이 한 권의 에세이집에는 그의 순탄치 않은 인생이 가득 담겨 있다. 하지만 단순히 어떤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자서전처럼 토로한 글이 아니다.

그가 겪은 모든 일들에, 그가 지나온 모든 순간에, 그가 내린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보여주며, 그것이 삶에서 어떤 깨달음을 주었는지 진정성 있게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 경험과 깨달음이 단순히 개인적인 것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읽는 이에게도 깊은 사유의 시간을 주고 큰 감동을 선물한다.

한 사람의 생애가, 그가 내린 선택이, 그의 겪은 일들이, 그와 전혀 다른 사람인 우리의 삶에도 고스란히 접목된다.

과거 우리가 내렸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든 지금의 우리는 그것에 연연할 게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나가면 된다는 것.

끝없이 이어지는 선택에 너무 지치지 말자는 것. 외부의 상황이 우리를 두렵게 만들 수는 있으나, 우리 안의 단단한 의지와 스스로의 선택을 믿는 힘으로 견딜 것.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건 결국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는 힘이라는 것. 인생의 변수의 연속이니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바꾸려 애쓰지 말자는 것.

또 모든 상황은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흘러가고 있고 그건 우리가 내린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 선택의 결과를 자책하거나 상황을 원망하기 보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하자는 것.

에세이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저자의 감정에 동화되어 힘든 순간에는 잠시 멈추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읽는 과정을 반복한 책이었다.

그의 입장이라면 어땠을까에 몰입하다가 숨 막힐 것 같은 막막함과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가 깨달은 삶의 이치는 읽는 이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가 용기낸 한 걸음이 다음 장으로 넘길 용기를 준다.

명확한 어조와 진실한 문장이 고단한 상황도 지나갈 것이고 그 순간도 결국 우리를 강하게 만드는 하나의 흐름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만든다.

저자가 종교인으로서 내린 선택도 제시되어 있으나, 그것을 종교적 선택으로만 여길 게 아니라 개인적 선택으로 본다면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다.

한 권의 에세이집이었으나 수 권의 소설을 읽은 듯해 간접적인 경험을 제대로 했다는 느낌이다. 더불어 사람을 단단하게 만드는 삶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고된 삶에 지친 이들, 막막한 결정 앞에 고민하는 이들, 변화를 선택하기에 두려운 이들, 자기 선택의 결과로 흔들리는 이들, 인생의 변수로 막막한 이들, 살아갈 이유를 찾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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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누이, 다경
서미애 지음 / 한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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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뭐 하는 거야? 너 중학생이야."

"왜, 경험이야. 경험. 여행 중에는 일탈이라는 것도 해 보라고."

"그건 일탈이 아니고 비행이라고 하는 거야."

"네가 그래서 친구가 없는 거야. 두 마디만 하면 답답하거든."

다경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선규의 말을 받아치며 놀렸다.

p. 64

"트로이 목마의 진짜 의미가 뭐게?"

"진짜 의미? 그거 말 모양의 비밀 병기 아니야?"

"잘 모르는 존재를 함부로 들이면... 다 죽는다는 거."

p.75

"우리 식구 다 수사물 좋아해서 일요일마다 같이 보고 범인 맞히기 했었거든요."

"그런 취미가 있는 줄은 몰랐네."

"그런 걸 보다 보니 세상엔 정말 끔찍하게 나쁜 인간이 많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경은 어딘가 먼 곳에 시선을 두고 중얼거렸다.

"나는 찾아낼 거예요. 엄마 아빠를 그렇게 죽게 만든 사람. 찾아내서...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p.127

"... 그 아이는 아직 어려서 모를 거야. 아빠가 자신에게 한 짓이 뭘 의미하는 건지. 근데 나는 알잖아. 아이가 가장 의지하고 믿고 있는 존재가 아이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너라면 어떨 것 같아?"

p.166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해도 그냥 포기하면 안 돼. 그럼 다경이 네 세계는 아주 작을 거야. 이해하지 못하면 가만히 지켜봐. 오래 지켜보다 보면 네가 모르던 것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몰라.

그런 뒤에도 네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냥 그런 세상이 있구나 하고 잊어버려. 세상엔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으니까.'

pp.202~203

서미애, <여우누이, 다경> 中

+) 이 책의 표지를 보면 한 소녀가 집 한 채를 손에 들고 있다. 여우누이 설화를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터라 표지와 제목을 통해 소설 속 상황을 상상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정환'의 친한 친구이자 동업자인 '경호' 부부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고 곧 죽은 채 발견된다. 정환은 졸지에 혼자가 된 경호의 딸 '다경'을 본인의 집에 얼마 동안 머물게 한다.

아내인 '세라'도 찬성했고 두 아들 '민규'와 '선규'는 경호네 가족과 여행도 함께 다닌 터라 이해해 주리라 여기고 내린 선택이다.

그렇게 다경이 정환의 집에 머물면서 집에는 묘한 기운이 감돈다. 중학생인 다경과 고2 수험생인 민규는 어렸을 때는 잘 어울렸지만 민규에게 다경은 어색하고 불편한 존재이다.

다경과 같은 또래 선규는 사춘기에 접어들며 다경의 존재가 당황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 많다. 엄마에게 떠밀려 자기 방을 억지로 양보하게 되어 짜증난 상태에서 둘의 대화는 시작된다.

정환의 아내 세라는 늘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다경이가 집에 오면서 무뚝뚝한 남자들과 지내던 때와 사뭇 다른 기분을 경험한다.

이렇듯 소설은 인물 각각의 시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자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쪼개진 조각을 맞추듯 어떤 상황인지 확인하고자 쉼 없이 읽게 된다.

다경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흐를수록 가족 간의 묘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선규는 형 민규를 오해하고, 정환과 세라는 부부 싸움을 한다.

사건이 전개되면서 다경이 왜 영악한 아이가 되었는지 알게 된다. 원래는 어른스러운 아이였는지 몰라도 부모의 죽음을 겪고 범인을 찾아 복수하고 싶은 마음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다경이 바로 중학생이라는 점이다. 열다섯 또래의 아이가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 건 어른들의 잘못 때문이지 않을까.

소설이 후반부로 향할수록 상황은 극에 치닫고 다경을 비롯한 인물들의 입장과 심리가 이해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아, 이를 어쩌나.

죄를 지은 자 한 사람만 벌을 받으면 되는 게 아닐까 싶다가, 그럼 남은 자의 설움과 분노에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고, 아무 죄가 없어도 피해를 받는 존재에게 미안하다면 죽은 이들에게는 미안하지 않단 말인가.

현실에서 충분히 있을법한 이야기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다경과 선규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까.

심리 스릴러 소설이며 추리 소설의 갈래답게 궁금증을 유발하며 계속 읽게 만든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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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신 신은 아이 초록달팽이 동화 3
유영선 지음, 시농 그림 / 초록달팽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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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구름도 목이 메나 봅니다.

"널 보고 싶으면 학교로 갈 게. 더울 때면 비가 되어서 네게 가고, 추울 때면 흰 눈이 되어서 네게 날아갈게. 신우야, 나는 언제나 네가 볼 수 있는 하늘에 있을 거야."

p.20 [내 친구, 구름]

아기 까치는 서둘러 집으로 날아갔습니다.

"아빠, 까치밥이라고 했어요. 마을 아이들이 예쁜 감을 그대로 가지 끝에 남겨두었어요."

"그래, 고마운 일이지. 해마다 아이들은 우리 몫으로 감을 남겨 둔단다. 물론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감이 다 익을 때까지 그 감들을 하나도 손대지 않고 있지."

p.36 [까치와 까치밥]

준아.

네 편지 읽고 많은 생각을 했단다.

너의 솔직한 마음이 나의 지난 시간을 뒤돌아보게 했어.

생각해 보면 어른인 나도 부끄러운 일이 많았는데...

반성해 보지 못한 채 이 나이게 되었구나.

이제 퇴원하면 미국으로 돌아갈까 한다.

수연이 할머니가

p.59 [상장보다 무거운 것]

"어른들은 참 이상해요. 발들이 각각 다른데 왜 두 발에 똑같은 신발을 신기려 하는지 모르겠어요. 내 발들은 다른 신발을 신고 싶어 한단 말이에요. 왼발은 왼발이 좋아하는 신발이 있고, 오른발은 오른발이 좋아하는 신발이 있어요."

p.72

누가 보거나 말거나 남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어요.

그 애가 부러웠어요.

나는 부끄러워서 남들 앞에선 절대로 그렇게 못 하거든요.

p.80 [짝신 신은 아이]

"여기 있으면...... 손을 잡고 있는 것 같아."

"누구랑?"

"하늘나라에 있는 엄마랑."

"정말?"

"그럼, 엄마가 얼굴을 만져주는 것 같기도 하고, 어깨를 안아주는 것 같기도 하지."

"엄마 냄새도 나?"

"가끔. 바람이 불 때면......"

pp.88~89 [오빠와 나무]

유영선 동화집, <짝신 신은 아이> 中

+) 이 책에는 총 5편의 동화가 귀여운 그림과 함께 실려 있다. 친구 구름이를 몰래 돌보다가 하늘로 보내며 그리워하는 신우, 추운 겨울을 대비해 다른 곳으로 떠나려다 까치밥을 챙기는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남는 까치 가족,

착한 마음을 다하지 않은 것 같은데 착한 어린이 상을 받아 괴로운 마음을 고백하는 준, 짝신을 신고 당당하게 걷는 친구를 부러워하며 그 아이와 친구가 되고 싶은 은지, 나무 위에서 죽은 엄마를 그리워하는 오빠를 걱정하는 민애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쓴 이 동화집은 친구를 배려하는 태도,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관점, 거짓 없이 착하게 사는 마음, 잘못을 고백하는 용기, 다름을 틀림이 아닌 개성으로 인정하는 자세,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 등이 잘 드러난다.

구름이에게 몰래 물을 가져다주며 살뜰하게 챙기는 신우를 보면서 누군가를 지키는 마음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감나무의 감 몇 개를 까치밥으로 남겨두는 마음과, 그 마음을 따뜻하게 수용하는 까치들의 행동에서 생명을 존중하고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는 자세도 배울 수 있다.

준의 고백 장면에서는 양심에 걸리는 행동은 반성하며 용서를 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도 보여준다. 더불어 그 용감한 고백을 '꾸짖음'이 아닌 '너그러움'으로 받아들이는 어른들의 모습도 의미 있다.

본인의 발이 짝짝이 신발을 원한다며, 왜 어른들은 어린이라고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걸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지 의아해하는 아이의 말을 들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고정관념과 편견이 개성을 막고 있는 건 아닌가. 치우친 시선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 또 개성을 존중하는 태도가 아름다운 관계를 만든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하늘로 떠난 엄마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나무의 맨 위에 앉은 민규를 보며 그리움의 크기를 가늠해 보았다. 그리움에도 크기와 거리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아이의 모습에서 느낀다.

엄마와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은 오빠의 마음, 그리고 오빠와 함께하고 싶지만 나무의 높이가 너무 무서운 민애의 미안함 등을 순수하게 표현했다.

다섯 편의 동화는 아이들의 순수함을 잘 녹여냈다. "동화를 쓴다는 건, 결국 세상을 다시 배우는 일"이라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한 동화집이었다.

중간중간 실린 만화 같은 그림과 함께 읽으면서, 세상을 올바르고 따뜻하게 보는 시선을 배운 책이었다. 더불어 동화를 쓰는 일이 세상을 다시 배우는 일이라는 아름다운 지혜를 가르쳐준 저자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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