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나태주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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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너,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오늘의 일은 오늘의 일로 충분하다

조금쯤 모자라거나 비뚤어진 구석이 있다면

내일 다시 하거나 내일

다시 고쳐서 하면 된다

조그마한 성공도 성공이다

그만큼에서 그치거나 만족하라는 말이 아니고

작은 성공을 슬퍼하거나

그것을 빌미 삼아 스스로를 나무라거나

힘들게 하지 말자는 말이다

나는 오늘도 많은 일들과 만났고

견딜 수 없는 일들까지 견뎠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셈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오히려 칭찬해주고

보듬어 껴안아줄 일이다

오늘을 믿고 기대한 것처럼

내일을 또 믿고 기대해라

오늘의 일은 오늘의 일로 충분하다

너, 너무도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나태주,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中

+) 이 책은 시인이 최근 2년 동안 써온 시를 모은 시집이다. 최근 2년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힘든 시기였고, 저자는 그런 상황에서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시로 전달한다.

'오늘 하루 실패한 것 같아 /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시나요 / 그럴 수도 있지요 / 때로는 자기 자신이 밉고 싫어질 때도 있지요 / 그렇지만 너무 많이는 / 그러지 마시길 바라요 / 자기 자신을 미워하더라도 / 끝까지는 미워하지 마시길 바라요 / 생각해보면 모두가 다 당신 탓만은 아니에요 / 세상일이란 인간의 일이란 / 그 무엇 하나도 저절로 /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 되지 않는다는 걸 / 당신도 잘 아시잖아요' [실패한 당신을 위하여] 中

저자의 시에는 힘든 순간과 상황에 대한 위로가 담겨 있다. 천천히 토닥여주는 시어들 틈에서 저자의 마음이 묻어나고, 너그러운 어조에서 읽는 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 같은 장소에서 두 번이나 / 넘어져서 무릎을 깼다 // 아, 인생이란 /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 배우는 것이구나! //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인생2] 中

그리고 넘어지고 깨지는 삶을 살면서 깨닫게 된 인생의 이치를 풀어내기도 한다.

'굽힐 수 없는 일을 / 굽히게 해주시니 감사'하고 '기다릴 수 없는 일을 기다리게 해주시니 감사'하다고 언급한다. [에움길] 中

순간순간 자신이 겪은 것을 일반화하는 힘이 저자의 시에서 드러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 바라보아주는 사람의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법] 中

저자는 주변의 모든 것들을 따뜻하게 바라본다. 그렇게 생각하고 생각하며 사랑하고 사랑한다. 너그럽고 따뜻하게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시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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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사랑을 바라보다 - 문태준 시인을 울린 사랑 시들
문태준 지음 / 마음의숲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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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 속의 새

 

유홍준

 

새의 부리만 한

흉터가 내 허벅지에 있다 열다섯 살 저녁때

새가 날아와서 갇혔다

 

꺼내줄까 새야

꺼내줄까 새야

 

혼자가 되면

나는 흉터를 긁는다

허벅지에 갇힌 새가, 꿈틀거린다

p.34

 

 

- 정끝별의 '세상의 등뼈'에 덧붙여

 

시인은 '대주는 것'이 우리의 삶을 등뼈처럼 곧추세우고 지탱한다고 말한다. 그것도 무작정, 이득을 따지는 일 없이, 자린고비 노릇을 하지 않고 아는 품, 주는 돈, 사랑에 젖은 붉은 입술, 든든한 어깨를 허심히 대주는 일이 세상의 등뼈라고 말한다. 그것도 후일 대금을 받을 생각을 접고서.

다른이의 상처를 대신 앓아 내가 먼저 눈물을 흘리고, 다른 이의 생의 의지가 곧두박질치는 것을 내가 먼저 바닥으로 내려가 받아내고, 그리하여 다른이의 허기진 영혼에게 내가 한 공기의 따듯한 밥이 되는 일, 그것을 시인은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이라고 말한다. '대주는 것'이라는 투박한 말 속에 이처럼 크고 깊고 완전한 사랑이 담겨 있는 줄은 미쳐 몰랐다. 사랑은 이처럼 묵연한 성격이라는 걸 더러는 잊고 살았다.

p.110

 

 

문태준 엮고 해설, <가만히 사랑을 바라보다> 中

 

 

+) 이 시집에서 엮은 시에 대해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주로 잃어버린, 잃어가는 인간 마음의 본성을 들여다보고 찾게 해주는 시들을 중심으로 엮었다'고. 우리는 시가 우리에게 주는 엄청난 에너지를 잘 모르며 살아가곤 한다. 짧은 한 구절의 말들이 가슴에 와 닿고, 그것이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시인이 대부분 「불교신문」에 시 해설을 쓰며 연재했던 것들을 수정 보완했다고 한다. 우리의 마음와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는 시들을 엮고, 현대를 대표하는 문태준 시인이 직접 시평을 간략히 썼다. 마음의 위로나 평안을 위해 읽기에 좋은 시집이다.

 

한 사람이 쓴 시를 읽는 재미는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기에 좋지만, 이렇게 여러 사람의 시를 읽는 재미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 기분이 들기에 좋다. 한 사람, 한 사람 그들의 생각이 시로 발화되면서, 나는 오랜만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책을 읽었다는 느낌이다.

 

문태준의 시적인 해설도 인상적이다. 어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쉽게 시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시를 낯설거나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벗이 되어준다. 그의 해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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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 류시화 제3시집
류시화 지음 / 문학의숲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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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켜선 것들에 대한 예의'

 

나에게 부족한 것은 비켜선 것들에 대한 예의였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한쪽으로 비켜서 있는 이들

봄의 앞다툼 속 먼발치에 피어 있는 무명초

하루나 이틀 나타났다 사라지는 덩굴별꽃

중심에 있는 것들을 위해서는 많은 눈물 흘리면서도

비켜선 것들을 위해서는 눈물 흘리지 않았다

산 자들의 행렬에 뒤로 물러선 혼들

까만 씨앗 몇 개 손에 쥔 채 저만치 떨어져 핀 산나리처럼

마음 한켠에 비켜서 있는 이들

곁눈질로라도 바라보아야 할 것은

비켜선 무늬들의 아름다움이었는데

일등성 별들 저 멀리 눈물겹게 반짝이고 있는 삼등성 별들이었는데

절벽 끝 홀로 핀 섬쑥부쟁이처럼

조금은 세상으로부터 물러나야 저녁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아, 나는 알지 못했다

나의 증명을 위해

수많은 비켜선 존재들이 필요했다는 것을

언젠가 그들과 자리바꿈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

한쪽으로 비켜서기 위해서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비켜선 세월만큼이나

많은 것들이 내 생을 비켜 갔다

나에게 부족한 것은

비켜선 것들에 대한 예의였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잠깐 빛났다

모습을 감추는 것들에 대한 예의였다

 

 

류시화,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中

 

 

+) 시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돌이고, 꽃이며, 주변에서 만나는 자연이었다. 그것들이 시인에게는 주변의 것이 아닌 자기 것으로 내재되면서 동일시되고 있다. 시인은 이 시집에서 자연에서 사는 인간의 모습을 다시 주목하였고, 그것이 사람의 기본적 태도임을 증명한다. 그의 시는 과학적이거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느끼는 순간 바로 적어 내려간 듯 자연스럽게 설레는 감정이 묻어난다.

 

내가 류시화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감수성을 건드리는 몇 개의 문장들 때문이다. 이는 예전에도, 지금도 지속되고 있기에 그가 변하지 않는 필치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내게는 매력적이다. 이 시인에게 중요한 것은 삶이며, 사람이다.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라도, 사람이라면 간직해야 할 기본적 사상들이 그의 시에는 담겨 있다.

 

그의 시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은 명상 그 이상의 것이다. 때로 사람들은 류시화 시인의 시를 명상글 혹은 잠언글로 매도하는데, 나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발전된 평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명상이면 안될까? 잠언이면 부족할까? 시가 간직한 기능 중의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것이라면, 그의 시는 분명 시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한다고 본다.

 

다만, 변함없는 그의 필력에서 발전없음을 보는 독자라면 내가 딱히 변명을 하지 못하겠다. 왜냐하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느끼는 그의 필력은 타락 혹은 세속에의 때묻음이 아니기에 그 자체로 발전이라 여기기에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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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시인선 32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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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절기'

 

나는 통영에 가서야 뱃사람들은 바닷길을 외울 때 앞이 아니라 배가 지나온 뒤의 광경을 기억한다는 사실, 그리고 당신의 무릎이 아주 차갑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

 

비린 것을 먹지 못하는 당신 손을 잡고 시장을 세 바퀴나 돌다보면 살 만해지는 삶을 견디지 못하는 내 습관이나 황도를 백도라고 말하는 당신의 착각도 조금 누그러들었다

 

우리는 매번 끝을 보고서야 서로의 편을 들어주었고 끝물 과일들은 가난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입술부터 팔꿈치까지 과즙을 뚝뚝 흘리며 물복숭아를 먹는 당신, 나는 그 축농(膿) 같은 장면을 넘기면서 우리가 같이 보낸 절기들을 줄줄 외워보았다

 

 

 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中

 

 

+) 꽤 오랜만에 따뜻한 군고구마 같은 시집 한 권을 읽었다. 요즘 젊은 시인들에게서 보아 온 모호한 주체가 등장하는 시가 아니라 아니라 비교적 서정적 주체가 분명하게 등장하는 시가 한 아름 담겨있는 시집이다. 읽으면서 달달하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애처로울만치 화자의 감정에 빠져들기도 했다.

 

이 시집에는 결코 낡지 않은 서정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시인은 오랫동안 내면에 간직해온 감정을 차분하게 형상화하는데 그것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읽는 이로 하여금 오래된 사진을 보며 떠오르는 어떤 추억 같은 것들을 연상하게 만드는 푸근한 온돌방 같은 것이다. 그 느낌은 우리에게 동일성의 끈을 건내주는데, 마치 나도 이런 추억들이 내 안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아서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요즘 젊은 시인들의 난감한 시를 볼 때마다 불안하기도 했었는데, 그것은 그런 시를 애써 독파해보고자 하는 나의 헛된 욕망 때문이었다. 읽을 수 있는 만큼, 수용할 수 있는 만큼 수용하면 되는데 어쩐지 뒤떨어지고 동떨어지는 것 같은 불안 때문에 시집을 붙들고 끙끙 대곤 했다. 그러나 이번 박준의 시집을 읽으면서 불안해할 필요가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가 받아들이고 되새길 수 있는 만큼만 시를 이해하자. 그것이 시읽기의 출발점이 아닐까.

 

꽤 오랜만에 사랑을, 서정을, 죽음을, 인간의 근원적 정서를, 낡지 않게 만드는 시인을 만났다. 오래된 서정을 신선하고 반갑게 만드는 젊은 시인을 만난 것 같아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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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413
이우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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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오래된 별에'

 

저녁에 소파 팔걸이에 앉아 잤다

컵 속에 혼자가 출렁인다

구름이 아니고 오리가 아니고

손가락으로 안경알을 닦으며 닦은 안경을 쓰며 뭉개진 살의 금들

 

낮에 번들거리는 은행 유리문 손잡이를 보고 섰다

커다란 빈 가방 속으로 별이 가까워지는 것도 보았다

 

머리 위에 차가운 귤이 환하고

내 온도는 식는다

 

옆집 하늘에 구름이 많다 손바닥에서 아픈 소리가 자라고 세게 꽃이 솟고

 

 

이우성,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 中

 

 

+) 나는 이 시집을 읽으면서 시인이 철저하게 계획해서 시를 썼거나, 아니면 이 시인 특유의 단어 사용 방법이 있어서 문장을 만들어냈거나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단어를 문장의 어느 틈에 끼워 넣을까 계획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적절한 단어를 찾기도 어려울 것이고, 전체적인 시상에 어울릴만한 시어를 선택하고 여러 종류의 어미를 활용하는 것도 어려울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계획해서 쓴 시가 아니라면, 시인 특유의 문장 구성법일까.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그건 문장의 연결성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단어의 채택이 과감하기 때문이다. 이 문장에 저 단어가 말이 될까 싶을 정도로 파격적인 문장들로 이루어진 시들이 많다. 화려한 수사법이나 현학적인 단어가 아니라 온전히 일상어로만 시를 쓴 시인은 이 시집에서 전체적인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어찌보면 시라는 최소한의 형식은 지키면서 상당히 절제된 심미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어떤 독자들은 짧은 문장과 몇 개의 단어로 잘 정돈된 이 시집을 옹호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독자들은 독자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주는 시라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낼 수도 있다. 그건 읽는이의 선택이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가 좀 더 발전된 시를 쓰기 위해서는 이런 절제된 시를 쓰되 독자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길 바란다.

 

'이우성, 나무, 마음, 가방' 등의 시어는 이 시집 곳곳에서 등장한다. 등장할 때마다 같은 무게는 아닐테지만, 같은 색깔을 띠는 것은 맞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전체적인 균일함이 있는 대신, 비슷한 색감이 느껴지는 시들이 많아서 그 차이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언젠가 다시 한번 꺼내 읽어야겠다. 조금은 외롭고, 조금은 쓸쓸한 그런 느낌의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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