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 류시화 제3시집
류시화 지음 / 문학의숲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비켜선 것들에 대한 예의'

 

나에게 부족한 것은 비켜선 것들에 대한 예의였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한쪽으로 비켜서 있는 이들

봄의 앞다툼 속 먼발치에 피어 있는 무명초

하루나 이틀 나타났다 사라지는 덩굴별꽃

중심에 있는 것들을 위해서는 많은 눈물 흘리면서도

비켜선 것들을 위해서는 눈물 흘리지 않았다

산 자들의 행렬에 뒤로 물러선 혼들

까만 씨앗 몇 개 손에 쥔 채 저만치 떨어져 핀 산나리처럼

마음 한켠에 비켜서 있는 이들

곁눈질로라도 바라보아야 할 것은

비켜선 무늬들의 아름다움이었는데

일등성 별들 저 멀리 눈물겹게 반짝이고 있는 삼등성 별들이었는데

절벽 끝 홀로 핀 섬쑥부쟁이처럼

조금은 세상으로부터 물러나야 저녁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아, 나는 알지 못했다

나의 증명을 위해

수많은 비켜선 존재들이 필요했다는 것을

언젠가 그들과 자리바꿈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

한쪽으로 비켜서기 위해서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비켜선 세월만큼이나

많은 것들이 내 생을 비켜 갔다

나에게 부족한 것은

비켜선 것들에 대한 예의였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잠깐 빛났다

모습을 감추는 것들에 대한 예의였다

 

 

류시화,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中

 

 

+) 시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돌이고, 꽃이며, 주변에서 만나는 자연이었다. 그것들이 시인에게는 주변의 것이 아닌 자기 것으로 내재되면서 동일시되고 있다. 시인은 이 시집에서 자연에서 사는 인간의 모습을 다시 주목하였고, 그것이 사람의 기본적 태도임을 증명한다. 그의 시는 과학적이거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느끼는 순간 바로 적어 내려간 듯 자연스럽게 설레는 감정이 묻어난다.

 

내가 류시화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감수성을 건드리는 몇 개의 문장들 때문이다. 이는 예전에도, 지금도 지속되고 있기에 그가 변하지 않는 필치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내게는 매력적이다. 이 시인에게 중요한 것은 삶이며, 사람이다.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라도, 사람이라면 간직해야 할 기본적 사상들이 그의 시에는 담겨 있다.

 

그의 시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은 명상 그 이상의 것이다. 때로 사람들은 류시화 시인의 시를 명상글 혹은 잠언글로 매도하는데, 나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발전된 평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명상이면 안될까? 잠언이면 부족할까? 시가 간직한 기능 중의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것이라면, 그의 시는 분명 시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한다고 본다.

 

다만, 변함없는 그의 필력에서 발전없음을 보는 독자라면 내가 딱히 변명을 하지 못하겠다. 왜냐하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느끼는 그의 필력은 타락 혹은 세속에의 때묻음이 아니기에 그 자체로 발전이라 여기기에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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