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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사랑을 바라보다 - 문태준 시인을 울린 사랑 시들
문태준 지음 / 마음의숲 / 2014년 7월
평점 :
흉터 속의 새
유홍준
새의 부리만 한
흉터가 내 허벅지에 있다 열다섯 살 저녁때
새가 날아와서 갇혔다
꺼내줄까 새야
꺼내줄까 새야
혼자가 되면
나는 흉터를 긁는다
허벅지에 갇힌 새가, 꿈틀거린다
p.34
- 정끝별의 '세상의 등뼈'에 덧붙여
시인은 '대주는 것'이 우리의 삶을 등뼈처럼 곧추세우고 지탱한다고 말한다. 그것도 무작정, 이득을 따지는 일 없이, 자린고비 노릇을 하지 않고 아는 품, 주는 돈, 사랑에 젖은 붉은 입술, 든든한 어깨를 허심히 대주는 일이 세상의 등뼈라고 말한다. 그것도 후일 대금을 받을 생각을 접고서.
다른이의 상처를 대신 앓아 내가 먼저 눈물을 흘리고, 다른 이의 생의 의지가 곧두박질치는 것을 내가 먼저 바닥으로 내려가 받아내고, 그리하여 다른이의 허기진 영혼에게 내가 한 공기의 따듯한 밥이 되는 일, 그것을 시인은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이라고 말한다. '대주는 것'이라는 투박한 말 속에 이처럼 크고 깊고 완전한 사랑이 담겨 있는 줄은 미쳐 몰랐다. 사랑은 이처럼 묵연한 성격이라는 걸 더러는 잊고 살았다.
p.110
문태준 엮고 해설, <가만히 사랑을 바라보다> 中
+) 이 시집에서 엮은 시에 대해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주로 잃어버린, 잃어가는 인간 마음의 본성을 들여다보고 찾게 해주는 시들을 중심으로 엮었다'고. 우리는 시가 우리에게 주는 엄청난 에너지를 잘 모르며 살아가곤 한다. 짧은 한 구절의 말들이 가슴에 와 닿고, 그것이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시인이 대부분 「불교신문」에 시 해설을 쓰며 연재했던 것들을 수정 보완했다고 한다. 우리의 마음와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는 시들을 엮고, 현대를 대표하는 문태준 시인이 직접 시평을 간략히 썼다. 마음의 위로나 평안을 위해 읽기에 좋은 시집이다.
한 사람이 쓴 시를 읽는 재미는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기에 좋지만, 이렇게 여러 사람의 시를 읽는 재미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 기분이 들기에 좋다. 한 사람, 한 사람 그들의 생각이 시로 발화되면서, 나는 오랜만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책을 읽었다는 느낌이다.
문태준의 시적인 해설도 인상적이다. 어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쉽게 시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시를 낯설거나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벗이 되어준다. 그의 해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