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 문학과지성 시인선 373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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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날개'

 

산에 올라 두리번거렸다

나무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 걷고 걸어 나무 하나를 찾았다

나무를 찾고 산의 마음에 표시를 하였다

반을 얻었다

 

다시 나무 하나를 찾았다

하지만 아직은 서쪽으로 더 자랄 일이 있는 나무여서

나무에 돌을 매달고 다시 산의 마음에 표시를 하였다

 

일 년쯤을 기다려 두 나무에서 큰 가지 하나씩을 베었다

사개를 맞대고 질빵을 걸으니

반은 절반을 마주 보며 어깨가 되었다

어깨 위에 또 하나의 어깨를 메고

그 위에 세상을 얹고 걸어나갔다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세계를 지났다

 

한번 얻은 지게는 버릴 것이 못 되었다

어깨를 자른대도 지게는 나를 따라왔다

내 살을 지고 내 터를 지고 풍경마저 한몸처럼 옮겼다

 

누구나 죄진 사람같이 지게로 태어나

죄처럼 업혔던 시절이 있었다

 

업힌 것이 날개인 줄 알고

퍼드득퍼드득 살려고도 하였다

 

 

이병률, <찬란> 中

 

 

+) 이 시집 속의 화자에게 세상이란 어떤 존재일까. 아니, 그에게 세상 속의 자신이란 어떤 존재일까. 그것은 안과 밖의 경계지음이 아니다. 화자는 세상에 있는 동시에 세상이 되는 것이다. 곧 화자가 곧 세상이 되는 곳에서 그는 존재한다. "나는 여기에 있으며 안에 있다 / 안쪽이며 여기인 세계에 붙들려 있다 / 나는 지금 여기 숱한 풍경들을 스치느라 / 저 바깥을 생각해본 적 없는데 / 여기 있으냐 묻는다 // 삶이 여기에 있으라 했다" ([이 안] 부분)

 

"세상을 끊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 그러기 위해서는 또 태어나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기억의 집] 부분) 화자가 세상과 멀어지는 일에 대해 생각한 순간 그것은 곧 새로 태어나야 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화자가 세계를 자신과 동일시할수록 모든 것들은 견고해진다. 그 견고함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것을 응시하는 자신의 심리로 표현된다. 화자는 "살고자 하는 일이 찬란이었으므로" "찬란하지 않으면 모두 뒤처지고 / 광장에서 멀어지리"라고 짐작한다. ([찬란] 부분)

 

"상처가 상처를 지배"하고, "미래를 가만히 듣는" 생각을 통해 ([창문의 완성] 부분) 창문이 완성되는 세상, "삶을 줄이기 위해 다리의 힘을" 쓰는 세상 ([다리] 부분), "검은 봉지를 형제 삼아 지네온 고양이"의 울음을 통해 그가 "살아온 날들"에 자신의 삶을 투영해 보기도 한다. ([고양이가 울었다] 부분) 세상 속의 존재들을 응시하는 눈, 그 눈을 따라 내면으로 들어가면 사람의 마음이 있다. 안타깝고 안쓰럽게 바라보면서 철저하게 감정을 절제하는 태도가 보인다.

 

이병률의 시집 <찬란>은 그렇게 화자와 동일시 되는 세상과, 그 존재들에 자신의 마음을 비추는 화자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 시집 보다 한결 여유로워진 것 같다. 어쩌면 시적 대상과의 거리가 멀어진 것도 같다. 그 거리는 연결점이 촘촘히 이어진 사실적 구성이 아니라, 심리적 거리감이라고나 할까. 대상에 거리를 두고 시인의 생각을 불어넣고 있는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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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트머스 문학동네 시집 83
윤성택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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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 바늘

 

 

걸려들었다

울음이 목구멍에서 팽팽하게 당겨져

풀렸다가 채였다가 한 시절이 가고 있다

 

감기를 앓으면 항상 목부터 아팠다

퉁퉁 부은 목은 물조차 잘 삼키지 못하고

뜨거운 공중으로 훌쩍 당겨졌다

일 년에 한두 번 위태롭게 앓고 나면

거울 속 비친 문양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렇다고 함부로

남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다

 

목 안에 바늘을 품고 사는 사람들,

목숨보다 질긴 줄이 당겨지고 있다는 걸

알기까지 얼마나 울음을 상켜야 하나

통곡으로 제 안을 보여주는 건

많이 끌려와 지쳤기 때문이다

 

갓난아이 앙앙대는 입을 보고 있으면

걸려든 목젖, 바늘이 보인다

일순간 잡아채는 날이 도사리고 있을지라도

살아 있는 내내 빼낼 수는 없는 것이다

 

 

윤성택, <리트머스> 中

 

 

+) 모처럼 시집에서 시에 대해 고민하는 흔적을 보았다. 윤성택의 <리트머스>는 오랜 습작을 통해 더 나은 시를 위해 발돋움하는 작품들의 모음이다. 사물 묘사에 적절히 얽혀 있는 비유적 표현들이 반가웠다고 해야 할까. "옥상 균열은 눕고 싶은 건물의 표정이었다. / 부러진 안테나가 금의 끝점에 꽂혀 있었고 / 입주민 양미간으로도 쉽게 금이 번졌다" ([장안상가] 부분) 그의 시는 사실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작가의 마음이 잘 드러난다.

 

그것은 경험에서 시작될 수도 있고, 세심한 관찰에서 시작됐을 수도 있다. 시인은 시적 대상에 자신의 사유를 덧씌워 제법 잘 어울리는 마네킹 같은 시를 선보인다. "폐선에 걸터앉은 노인은 닻처럼 휘었다 / 필생 무게중심이 되어왔다는 듯 / 웅크린 등은 갈고리처럼 앙상하다 / 적막이라는 그물을 투망질하는 건 / 담벼락에 걸쳐진 담쟁이들뿐"([닻] 부분) 매장 전시용으로 움직임없이 서 있는 마네킹 같은 시. 긍정적으로 보자면 작가가 내세운 시의 표준이라 볼 수 있고, 부정적으로 보자면 식상하거나 틀에 박힌 작품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긍정적으로 보고 싶다. 작가가 생각하는 시란 주변 사물을 관찰하는 눈에서 비롯된다. 그것을 시작으로 작가는 단어들을 조립한다. 중요한 것은 단순 조립이 아니라 중간에 자신이 적절히 제도하는 작업을 거친다는 점이다. 자르기도 하고 붙이기도 하며 때로 새로운 것을 끼워넣기도 한다. 그렇게 윤성택의 시는 생겨난다. 이 모든 것을 영감 혹은 feel이라고 치자.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과정이라면 더욱 성실해보이는 시인이니까.

 

아무렇게나 자기만의 생각을 나열해 놓은 것을 '시'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살짝 보여주고 싶다. 적어도 이정도의 성실함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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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문학.판 시 2
이성복 지음 / 열림원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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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압력의 차이'

 

                                                              우리의 피를 소란케 하는 건

                                                              무덤에 대한 열망일 뿐임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 윌리엄 버들러 예이츠, [流轉(유전)]

 

어떤 식육 식물은 제 속의 공기압을 아주 낮게 해. 지나가는 벌레들이 저절로 빨려들게 한다. 드럼 통 석유를 따라붓는 일도 같은 이치. 처음엔 열심히 펌프질하지만, 나중엔 펌프를 떼지 않고선 멈출 수 없다. 모든 건 압력의 차이. 인생도 따라붓기의 일종이라면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의 구분은 진공 무덤 속으로 빨려드는 순서를 말한다. 늙어 힘 빠지고 동작이 굼뜬 것은 저기압 중심 가까이 왔다는 것, 바야흐로 느긋한 식사가 시작되리라는 것.

 

 

이성복,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中

 

 

+) 이성복의 이번 시집은 우리말로 번역된 외국 시인들의 시를 읽고, 거기서 비롯된 것을 글로 엮어낸 점에서 독특하다. 시집에 실린 각 시의 제목 아래 인용된 외국 시인들의 시에서 떠오른 단상이 그 시와 어떤 방식으로든 연관되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진 셈이다. '어떻게든'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외국 시의 구절을 사용했거나, 혹은 내용을 읽고 비롯된 감정들을 시로 썼거나, 시어가 간직한 상징성을 이끌어내서 시를 지었기 때문이다. 즉, 그만큼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시로 소화했다는 점이다.

 

시인이 그들의 시를 인용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의 말대로라면 "평소에 좋아하던 다른 나라 시에 말붙이는 기회'를 가져보고자 이 시들을 지은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확인하는" 작업, 이성복이 이번 시집에서 다룬 전체적인 틀이다. 말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때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말로 표현되리라 믿지만, 사실상 우리가 생각하는 것의 대부분은 표현하지 못할 때가 많다. 말이나 글로 형상화낼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가 외국 시인들의 시를 인용한 것은 잠시나마 그들의 시 구절을 빌려 자기 생각의 일부를 드러낸 것은 아닐까. 시를 읽으면서 너무 인용한 시에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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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문학과지성 시인선 359
송찬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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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이것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만년필 끝 이렇게 작고 짧은 삽날을 나는 여지껏 본 적이 없다

 

한때, 이것으로 허공에 광두정을 박고 술 취한 넥타이나 구름을 걸어두었다. 이것으로 경매에 나오는 죽은 말 대가리 눈 화장을 해주는 미용사 일도 하였다

 

또 한때, 이것으로 근엄한 장군의 수염을 그리거나 부유한 앵무새의 혓바닥 노릇을 한 적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이것으로 공원묘지의 일을 얻어 비명을 읽어주거나 가끔씩 때늦은 후회의 글을 쓰기도 한다

 

그리하여 볕 좋은 어느 가을날 오후 나는 눈썹 까만 해바라기 씨를 까먹으면서, 해바라기 그 황금 원반에 새겨진 파카니 크리스탈이니 하는 빛나는 만년필 시대의 이름들을 추억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오래된 만년필을 만지작거리며 지난 날 습작의 삶을 돌이켜본다 -만년필은 백지의 벽에 머리를 짓찧는다 만년필은 캄캄한 백지 속으로 들어가 오랜 불면의 밤을 밝힌다- 이런 수사는 모두 고통스런 지난 일들이다!

 

하지만 나는 책상 서랍을 여닫을 때마다 혼자 뒹굴어 다니는 이 잊혀진 필기구를 보면서 가끔은 이런 상념에 젖기도 하는 것이다 거품 부글거리는 이 잉크의 늪에 한 마리 푸른 악어가 산다

 

 

송찬호,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中

 

 

+)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꽃과 꽃 사이에서 노닐고 있다. "도대체 그에게는 삶에서의 도망이란 없다 / 다만 꽃에서 꽃으로 / 유유히 흘러 다닐 뿐" ([나비] 부분)이다. 꽃밭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나비처럼 시인은 삶의 어느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과거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저곳에서 이곳으로 넘나든다.

 

그런데 그것은 혼자만의 생이 아니다.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 한 그루의 주변에서 벗을 찾아내고, 반달곰 한 마리에게서 벗의 흔적을 발견한다. 그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 찾아내는 것이다. 아니, 찾고 싶은 것이다. "그게 그게 우리 눈에 딱, 걸렸는 기라 / 서로 가려운 곳 긁어주고 등 비비며 놀다 들킨 것이 부끄러운지 / 곰은 산벚나무 뒤로 숨고 산벚나무는 곰 뒤로 숨어 / 그 풍경이 산벚나무인지 곰인지 분간이 되지 않아 / 우리는 한동안 산행을 멈추고 바라보았는 기라" ([늙은 산벚나무] 부분)

 

이 시집에서 시인이 소망하는 생은 소박하면서도 진실하다. "하얗게 물을 뿜어 올리는 화분 하나 등에 얹고 / 어린 고래로 돌아오는 꿈"을 꾸는 시인, 그에게 "커다란 꿈은 이미 존재하지도 않"는다. ([고래의 꿈] 부분) 잘 살아보겠다는 거창한 꿈 따위 생각하지도 않는다. "소나기 한줄금 시원하게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시끄러운 소리"로 연명한 삶을 반성한다. 그리고 꿈꾼다. "고요히 적막 한 채 지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나기] 부분)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꽃, 나무, 비, 고양이, 코끼리 같은 생명들을 중심으로 시선을 맞춘다. 그들을 통해 삶의 부분들을 확인하고 또 그것이 곧 전체가 된다. 지금 돌아보니 시인에게 삶이란 부분이 곧 전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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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사과 창비시선 301
나희덕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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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이 울리는 것은'

 

 

길에 거꾸로 처박힌 전봇대,

전선 몇가닥이 혓뿌리처럼 드러나 있다

 

물과 양분 대신 전류를 실어나르던

저 잿빛 나무는

서 있는 일에 얼마나 몰두했는지

곁가지 하나 내지 않고 제 생애를 다했다

 

종일 비 내리고

처박힌 전봇대에 아직 전류가 흐르는지

손바닥이 징- 징- 울린다

 

네 비참보다도

네 비참을 바라보는 나의 비참을 견딜 수 없어

내리친 것이 너의 뺨이었다니!

 

손바닥이 울리는 것은

처박힌 전봇대 때문이 아니라

빗줄기 때문이 아니라

서 있는 일에만 몰두했던 나의 수직성 때문

 

 

나희덕, <야생사과> 中

 

 

+) 인간은 '야생'의 기억을 잃어버리고 사는지도 모른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인간의 잃어버린 근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아니, 기억에서 잊혀진 근원을 찾아 더듬더듬 홀로 길을 걷고 있다. "그 숲이 있기는 있었던가? // 그런데 웅웅거리던 벌들은 다 어디로 갔지? / 꽃들은, 너는, 어디에 있지? / 나는 아직 나에게 돌아오지 못했는데?"([숲에 관한 기억] 부분) 주변을 잃어버리자 중심도 잃어버렸다. 주변을 발견하지 못할수록 우리는 스스로를 발견하지 못한다.

 

우리도 모르게 새어나가고 있지는 않을까. 내면의 힘, 인간의 근본적인 에너지가. "쉴새없이 떨어져내리는 물방울들 // 삶의 누수를 알리는 신호음에 / 마른 나무뿌리를 대듯 귀를 기울인다" ([물방울들] 부분) 더 늦기 전에 시인은 사람들이 '나'에서 벗어나, 나 '이외의 것'들에 관심을 갖길 바란다. 그것은 야생으로 돌아가는 기본적인 첫 걸음이다.

 

이 시집은 소통의 불가능으로 인한 어려움과 그것을 깨기 위해 말을 내뱉으려는 화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삼킬 수 없는 것들은 / 삼킬 수 없을 만한 것들이니 삼키지 말자. / 그래도 토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음에 감사하자." ([삼킬 수 없는 것들] 부분) 그것은 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시인 내면에 존재하는 야생에 대한 그리움이다. 자연 그대로의 흐름을 원하는 것이다.

 

내가 나희덕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것은 잘 만들어진 글 덩어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끌어낸 덩어리를 글자로 잘 구성해 놓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풀냄새가 그리워지는 시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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