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권 제복경관 카와쿠보 시리즈 2
사사키 조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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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서평

홋카이도 토카치 지방에 위치한 인구 6천 명의 작은 마을 시모베츠. 이곳 주재소에 단신부임한 마을 유일의 경찰관 카와쿠보 아츠시(p. 486). '제복수사'의 후속편으로 이 '폭설권'이 나왔습니다. 전작은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번에는 장편입니다. 여러 인물들이 나와서 좀 단일한 이야기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스타일의 장편들이 그렇듯 나중에 모든 인물들이 한 자리에서 만나게 됩니다.

경찰 소설들의 특징이 아무래도 주인공 경찰의 활약상을 그렸다는 면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계절적 특징 덕분에 주인공 카와쿠보보다는 여러 등장 인물들이 한 이야기씩을 구성하여 크게 한 소설을 이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카와쿠보도 그 중 한 인물이긴 하지만 의외로 분량이 적은 편입니다.

대개 3월 히간(춘분과 추분을 중심으로 하는 7일간) 무렵에 북일본을 공습하는 폭풍우 히간아레가 찾아옵니다(p. 5). 규모는 항상 다르지만 간선도로의 교통이 완전히 단절되어 만 하루 혹은 그 이상 마을에 고립되기도 한답니다. 한번 악천후가 발생한 이후 눈은 다녹았는데 갑자기 강력한 히간아레가 닥치게 됩니다. 1957년 7명의 아이가 죽었던 사건이 있었는데 그 일대에서 이 시기에 그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의 등장을 통해 이 소설에 앞으로 나오게될 올해의 히간아레가 뭔가 심상치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게됩니다. 카와쿠보는 시체를 발견하게 되고 눈폭풍은 점점 강력해집니다. 한편 각각의 이야기에 등장할 인물들이 하나 둘씩 등장하는데 농업자재 판매를 하는 회사에 근무하는 니시다, 남편 몰래 휴대폰 미팅 사이트에서 한 남자를 사귀게 되었지만 이상한 남자여서 복잡해진 아케미, 그 남자 스가와라. 야쿠자 아다치와 그 조장집을 턴 사사하라와 사토. 펜션을 운영 중인 마스다 부부. 계부와 둘만 있게 되어 가출을 한 미유키와 그녀를 도와준 트럭 운전사 야마구치. 이 정도의 인물들이 이이기의 한 몫씩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오늘, 꼭 이동을 해야된다는 점에 있습니다. 변변치 않은 직장을 그만두고 횡령해서 얼마남지 않은 인생을 흥청망청 살아볼까, 남편 몰래 바람핀 남자를 죽일까, 야쿠자 집에서 훔친 돈을 갖고 달아나려면 꼭 이 지역을 빠져나가야 한다. 지긋지긋한 엄마의 남자로부터 탈출하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가진 이들은 히간아레를 뚫고 이 지역을 벗어나고자 하지만 거대한 이 자연의 벽은 너무도 높습니다.

한편 카와쿠보는 수사도 할 수 없고 피해 신고가 들어와도 움직일 수 없어서 신경만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입니다. 모두 한 자리에 모이게된 등장인물들. 시체가 나오고 불안에 떨면서 자신들의 하루를 보내게 되고 이야기는 끝을 맞습니다.

홋카이도 출신으로 그곳을 배경삼는 사사키 조만이 쓸 수 있는 소재와 경관을 내세운 수사물이라는 점에서 그 특징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이번 작품도 참 기대했고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카와쿠보의 활약이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점과 너무 일본에서 흔한 패턴이라는 점에서 조금 고심을 했지만, 마지막 카와쿠보의 육감은 역시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구요. 소설 자체가 여러 등장 인물의 입장에서 쓰여졌으니 이런 느낌의 경찰 소설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좀 더 카와쿠보의 활약상이 그려지길 바라봅니다. 

 


책 정보

Bousetsu-ken by Joh Sasaki (2009)
폭설권
저자 사사키 조
발행처 (주) 학산문화사 (북홀릭)
2011년 3월 25일 초판 발행
역자 이기웅
디자인 curious safa

 

   p. 349
   불가능하다. 카와쿠보는 즉시 판단을 내렸다. 사람 손으로 뭔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발걸음조차 제대로 내디딜 수 없다. 만약 사고차를 끌어 올리려면 남자 몇이 서로의 몸에 로프를 묶고 행동해야 하리라.


   p. 351

   미안하다. 카와쿠보는 창밖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당신을 구출하러 갈 수 없다. 대자연의 맹위 앞에 우리 인간은 너무 무력하다.


   p. 471
   나 혼자라도 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 마을의 주재 경관이다. 이 마을에서 일어난 범죄에 대해서는 가장 먼저 대응해야 할 책임을 지녔다. 조직이 시간 맞춰 움직일 수 없다면 혼자서라도 해야만 한다. 범죄 발생 현장인 펜션은 내 관할 구역 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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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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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소설의 줄거리를 알고 있으면 호기심이 동해서 더 보고 싶어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어두운 소재들의 책은 잘 손이 안가기 마련입니다. 이 책도 최근 많은 호평을 받고 있지만 앞선 이유로 조금 미뤘었는데 책을 읽기 시작한 순간 그런 걱정따윈 기우였던듯 완전히 몰입해서 순식간에 읽어버리게 되었네요.  

한 소년이 '살인자의 아들'이란 이름하에 너무도 괴로운 시간들을 보내왔습니다. 부인과 옆집 소녀와 그 아버지를 죽이고 댐을 열어 저지대 사람들도 죽였다는 희대의 살인마가 된 아버지. 소년 서원은 7년동안 친척들도 밀어내고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세상에 숨어살아왔습니다. 아버지의 사형이 확정될즈음 그도 한 바닷가 마을에 정착해 숨어살고 있고 이 사건들을 추억하듯 간간히 독자들에게 보여줍니다.

문체들은 사건의 무게보다는 한결 가벼운 부분이 있어서 이들에게 닥칠 이 끔찍한 사건들이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하면서 '읽기'를 강요하는 면도 있습니다. 야구선수였다가 은퇴하고 경비회사에 다니는 서원의 아버지 현수와 억철스럽게도 좋은 남편을 닥달해서 가계를 꾸려가는 서원의 어머니 은주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한편 이야기의 중요 인물이 될 세령댐의 경비로 일하는 승환은 세령호 일대 지주의 집안인 세령이네의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어린 소녀를 아버지가 회초리로 때리고 모든 동네 사람들은 모른척한다는 것. 이 아버지 영제는 되려 승환에게 뒤집어씌우려는 이상한 사람이기도 해서 그가 이 문제에 개입을 못하게 막습니다.

시세보다 싼 값에 아파트를 사서 지방근무를 자청하게 한 은주는 남편을 이 세령댐 경비로 지원하게 하고 가족은 이사를 오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 비극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 입니다.

정말 중요한 '사실'은 읽는 분들의 재미를 위해 덮어두기로 하고 이 소설을 구성하는 몇 가지 요소들을 언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작가는 후기를 통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바로 이 '그러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야기되지 않은, 혹은 이야기할 수 없는 '어떤 세계'. 불편하고 혼란스럽지만 우리가 한사코 들여다봐야 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왜 그래야 하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모두 '그러나'를 피해 갈 수 없는 존재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다.

   이 소설은 '그러나'에 관한 이야기다.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파멸의 질주를 멈출 수 없었던 한 사내의 이야기이자, 누구에게나 있는 자기만의 지옥에 관한 이야기며, 물러설 곳 없는 벼랑 끝에서 자신의 생을 걸어 지켜낸 '무엇'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다. (p. 521~2)

이 소설의 '사실'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 녹아있는 '진실'이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이 이미 일어난 이야기라면, 돌이킬 수 없는 과거였다면, '진실'은 이 '사실'을 통해 파급될 수 있는 부정적인 일들이 되어버릴 지 모를 미래의 '사실'을 바로 잡아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두 아버지가 등장합니다. 너무도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지만 분명한 것은 닮지 말아야할 '아버지'의 모습을 닮았다는 면입니다. 어머니를 때리는 것이 정당하다고 믿는 아버지. 그래야 고칠 수 있다는 오만한 사고를 갖고 있는 아버지에게 아들은 그것을 그대로 닮아 그 인생을 밟아갑니다. 한편 다른 아버지는 다릅니다. 술만 마시면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가 싫어서 자신은 그렇게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자신이 그 아버지와 같은 행동을 했고 영원히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하는 또 다른 한 아버지가 있습니다.

살인이 등장하는 소설은 주로 비슷한 패턴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범인은 누구인가, 진상은 무엇인가의 근본적인 이야기이거나 반대로 살인을 한 사람에 대한 재조명으로 과연 그가 악인인 것인지 그 본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패턴도 있습니다. 이 소설은 그 모든 것들을 녹여내고 있고 나아가 앞서 언급한 '사실'과 '진실'을 통한 미래의 '사실'을 긍정적으로 바로잡고자하는 노력이 들어있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좀 독특했습니다.

단순히 살인을 묻는 한 가지 질문이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었고, 그렇다고 과연 누구에게 죄가 있는 것인지 두 가지 보기가 있는 질문이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나약함이 때로는 죄를 낳기도 합니다. 그리고 정말 이상한 사람이 존재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괴롭게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모든 악한 상황들 속에서도 다른 무엇도 아닌 '아버지의 사랑'이 가슴 가득 남는 것은 역시 그 무게가 가볍지 않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책 정보

7년의 밤
지은이 정유정 
도서출판 은행나무
1판 1쇄 발행 2011년 3월 23일 
1판 2쇄 발행 2011년 3월 30일 
디자인 오진경

 

   p. 8
   ... 무수한 얼굴들 사이에서 아저씨를 찾던 짧은 순간, 카메라들이 나를 향해 일제히 섬광을 뿜었다. 나는 빛의 바다에서 홀로 섬이 되었다.


   p. 13

   마을 앞바다에 있는 돌섬의 수중절벽이 이 적요한 땅으로 그들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아저씨와 나도 그들처럼 불려왔다가 눌러앉았다.


   p. 42
   숨을 마시면 흉통이 왔다. 기사의 헤드카피는 활자의 조합이 아니었다. 내 갈비뼈 밑에 찔러 넣은 세상의 칼이었다.


   p. 75
   대한민국은 자기 딸을 때렸다고 부모를 감옥에 보내는 선진사회가 아니었다.


   p. 505
   "... 그런데 그날은 그곳으로 갈 수가 없었네. 꿈속의 세상 대신 무시무시한 것이 몰려왔어. 아이 곁에서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있다는 직감. 그때 깨달았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뭘 할 수 있는지. 자네, 선수시절 내 포지션, 기억하나."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 게임을 복기해서 패인을 찾아내는 사람, 게임의 판을 읽고 흐름을 조율하는 사람, 타석에 들어선 타자를 분석하고, 행동을 예측하고, 승부할 시기와 수를 판단하는 사람, 온몸으로 홈 플레이트를 사수하는 사람, 그게 포수지. 그리고 난 열두 살 때부터 포수로 길러진 사람이고. ..."

 

   p. 507

   "자네가 그림을 맞춰줬으면 해. 그래 주기만 하면 내가……"

   ...

   "마지막으로 포수노릇을 할 수 있을 것 같네."


   p. 513

   "아니야. 단지 네가 자발적으로 그 일을 하기를 바란 것이지."

   "왜요?"
   "팀장님은 네 안에 도사리고 있는 걸 두려워했어. 그것이…….

   아저씨는 한동안 앞만 바라보았다.

   "너 자신을 죽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고, 나아가 너를 괴물로 만들 수도 있으니까."

   "제 안에 있는 걸 누가 만들었는데요. 그 과정을 고스란히 밟은 사람이 누군데요. 아버지예요. 자신을 죽이고, 누군가를 죽이고, 스스로 괴물이 된 사람은 바로 아버지라고요."

   "그래서였어."

   나는 입을 다물었다. 서늘한 기운이 가슴을 쓸고 갔다. 아저씨가 말했다.

   "그래서…… 넌 아니기를 바란 거야."


   p. 516
         I believe in the church of baseball.


   p. 517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길고 길었던 밤이 빛의 바다로 침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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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중독자의 고백
톰 라비 지음, 김영선 옮김, 현태준 그림 / 돌베개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서평


이 책은 2011년으로 쓰여진지 20년이 된다고 합니다. 저자는 신문사 프리랜서, 편집자, 작가로 일한 경력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책과 관련된 직종에 있다보니 당연히 책을 많이 접할 수 밖에 없고 책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이 직업상 더 좋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점점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라는 문장이 절로 생각이 나더라구요. 

사실 '책 중독자'란 표현은 상대적일 수도 있습니다. 일 년동안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사람에게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읽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며, 반대로 한 달에 한 권 읽는 사람에게 한 주에 한 권의 책을 읽는 사람은 대단해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독자'라는 완곡한 표현은 대체 어느 정도이길래 그럴까 라며 가벼운 마음으로 궁금해 했었지요. 그런데 이 사람의 중독은 정말 단어 그대로의 '중독'에 걸맞는 모습이었습니다.

옷도 사지 않고 여러 판권들을 사모으고, 자신이 얼마만큼의 책을 샀는지도 알지 못한채 무언가에 홀리듯 사모으고, 시간 약속도 잊어버리며 디킨스를 좋아하는지 나를 좋아하는지 울부짖으며 선택하라는 여자친구에게 - 당당하게 디킨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 트롤럽보다는 더 사랑한다고 하는 남자. 그게 바로 이 책의 저자입니다.

이 모든게 DNA 때문이라고, 날 때부터 정해진거라고 주장하고 싶어서 제발 그쪽 관련 분들은 연구를 좀 해달라고 부탁하는 철저한 책중독자. 그는 자신의 심각한 증상을 고쳐보겠다고 이 책을 쓴 것은 아닙니다. 물론 '치유하기'란 항목이 분명 마지막에 있긴 합니다.

마지막까지 읽다보면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을 납득시키려고 이런 책을 쓴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외곬수적인 사랑은 여전합니다. 한순간에 바뀌는 것 자체가 '중독자'라고 할 수 없겠지만요. 중독의 여러 증상들과 테스트 항목을 둔 것은 마치 이 병을 고쳐야한다는 의사나 심리학자들의 접근법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책의 역사와 단지 모으는 사람인지 책을 사랑하는 사람인지에 대해, 수집광이나 여러 책중독자들의 패턴 등을 통해 '책 중독자'들을 분류합니다. 그리고 어떤 책을 사느냐로 분류하고 이상적인 책방이나 독서의 장소도 나열합니다. 정리의 패턴과 집착에 관한 이야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치유의 항목들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마지막 항목이 무려 '곤란을 겪을 때까지 책을 사들여라' 입니다. 여기까지 와선 웃어버리고 말았네요.

'책 중독자'라고 불리울 정도의 사람이라면 분명 곤란을 겪을 상황까지도 처해봤을 것 같습니다. 반대로 어떤 이들은 이 책을 보면서 난 그래도 이 사람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며 자신을 위로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구요. 이 책은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라 여러 학자들이나 문학가들의 책을 참고한 부분이 많아서 작가가 꽤 고심을 하고 노력을 하면서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는 반복되고 인간의 실수 또한 반복됩니다. 타인의 지혜를 얻어서 좀 더 현명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독서의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일까요. 그러나 '중용'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타인의 생각을 습득한 후, 자기 것으로 만들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너무 지나친 집착으로 다른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중독자라면 분명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을 보며 책을 멀리하는 사람에게는 경종을 울리고 반대로 또 작가처럼 집착하는 사람에게도 경종을 울리는 그런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정보

Biblioholism: The Literary Addiction by Tom Raabe (2001)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 
톰 라비 지음 
현태준 그림 
펴낸곳 돌베개 
2011년 2월 7일 초판 1쇄 발행 
2011년 2월 21일 초판 2쇄 발행
김영선 옮김
표지디자인 민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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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 뮤직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5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5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서평


이 소설은 미국 작가 마이클 코넬리의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5편에 해당되는 작품입니다. 2011년에 17편까지 나왔다니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워낙 유명한 작가라 명성은 들어왔지만 읽기는 이 작품이 처음입니다. 56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이야기를 꽤 빠른 시간에 읽어낼 정도로 역시 몰입도가 뛰어난 작가입니다. '명불허전'라는 단어가 곧 떠오르더라구요. 이 소설은 배리 상 수상작, 매커비티 상과 해밋 상 후보작에 올랐다고 합니다.

해리 보슈는 1년만에 'LA 경찰국 살인전담팀'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그 첫날 맞닥드린 사건은 트렁크에서 시체가 발견된 사건입니다. 마피아의 '트렁크 뮤직' 사건과 비슷해서 조직범죄수사계에 연락해 넘겨야할지 고민하지만 오랜만에 맡은 사건이라 자신이 해결하고 싶어합니다. 피해자를 조사하다보니 아무래도 영화쪽 관련 인사인 것 같고 유명한 인물일 것 같아서 조용히 처리하고자 합니다.

우선 이 소설의 특징은 굉장히 차근차근한 진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실제로 진행되는 사건처럼 아주 꼼꼼하고 건실하게 기록을 해두었습니다. 그러나 그 문장들이 너무 늘어진다던가 지나친 묘사는 아닙니다. 꼭 필요하기 때문에 적어내려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의 찰진 문장들이랄까요.

피해자의 신원은 빨리 파악된 편입니다. 하나하나 증거들을 모으면서 그가 죽기 전 라스베가스에서 며칠 묵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보슈는 라스베가스로 향합니다. 반정도 분량으로 라스베가스와 로스앤젤레스가 배경이 되는 것 같습니다. 피해자 앤서니 앨리소가 묵었던 곳과 들렸던 곳들을 다니다 문득 옛연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함께 보낸 것이 빌미가 되어 나중에 문제가 생기게 되고 앨리소가 관련되어 있었던 일을 파악하면서 대충의 그의 인생의 윤곽을 잡아나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관심없어 하던 조직범죄수사계, OCID의 의중을 파악하게 되고 여러 관계들을 통해 '해리 보슈'라는 인물이 조용해보이지만 강할 때는 강하게 나가는 인물임을 보여줍니다. 강력계 형사로 근무하려면 당연하겠지만요.

이제까지의 정황들과 증거들을 통해 피의자로 추정되는 인물을 잡고 총기까지 손에 넣게 되지만 일은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실종과 의문과 새로운 진상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마치 지금까지의 것들은 모두 아니였다는, 이제 새롭게 시작해야한다는 패턴을 취하게 되지만 결국 밝혀진 진상을 보면 그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끝까지 방심하지 못하게 지속적으로 지켜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참 독특하게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독자들이 다 연결시킬 수 있는 노련함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행간의 매력을 아는 작가랄까요. 독자로 하여금 눈치챌 수 있는 절절한 꺼리들을 노련하게 제공할 수 있는 작가가 역시 더 환호를 끌어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가장 잘 만들어진 추리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반발자국 앞 정도에서 추리를 할 수 있게 만드는 작품이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한발자국 앞 정도에서 너무 빨리 추리해낸다면 너무 싱겁게 되고 그렇다고 좀 뒤에서 깨닫게 되면 너무 이야기는 미궁에 빠지는 기분이 들겠지요. 그러나 조금 앞에서 '맞다 그 정황들이 이렇게 이어지는구나!'하고 의혹을 품어 함께 수사하는 기분이 들게 하면 정말 내가 추리한 것같이 통쾌하고 재밌게 보게되는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그런 작품을 만났네요.

이 소설 속에는 살인 사건만이 아니라 그 안에 사랑도 있고 배신도 있고 타이밍도 있습니다. 오랜만에 미국 추리물을 읽었더니 '역시 이런 패턴이 미국 스타일이지!' 하면서 감탄했네요. 짜임새있는 틀을 만들어두고 차근히 거기까지 도달하면서도 재미의 요소들을 잃지 않는 작가의 필력에 감탄했습니다. 너무 단조롭지도 않으면서 간혹식 위트있는 표현들로 잔잔한 웃음을 주는 이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에 한동안 탐닉하게 될 것 같습니다. 

 
 

 

책 정보

Trunk Music _ Hieronymus by Michael Connelly (1997)
트렁크 뮤직_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Vol. 5
지은이 마이클 코넬리
낸 곳 랜덤하우스코리아(주)
1판 1쇄 인쇄 2011년 4월 5일
1판 1쇄 발행 2011년 4월 12일
옮긴이 한정아 

 


   p. 250
   대수롭지 않은 거라고 그냥 넘겨버릴 수 있었지만, 보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보슈는 모든 것이 다 제자리가 있고 이유가 있다고 믿었다. 대수롭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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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성
타리에이 베소스 지음, 정윤희 옮김 / 살림Friends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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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 소설은 스칸디나비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북유럽 문학상 및 노르웨이 문학 협회상 수상작입니다. 작가는 노르웨이 국민작가이자 북유럽의 거장이라 불리는 타리에이 베소스입니다. 세 차례 노벨 문학생 후보에 오르면서 유명해졌다고 하네요. 스칸디나비아 반도가 낳은 20세기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으며 작가의 이름을 따서 '타리에이 베소스 상'이 제정되었는데 노르웨이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이라고 합니다.

열한 살의 소녀 시스. 학교에서 가장 인기가 많고 중심이 되는 아이입니다. 얼마 전 고아가 되어 이모네 집으로 이사를 왔다는 운이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학교에서 가장 유명한 아이답게 운과도 친하게 지내고 싶어하는 시스이지만, 운은 같이 놀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운이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것을 알고 친하게 지내기로 합니다. 

집이 가까워 운의 집에 놀러가는 시스는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러나 정말 운이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는 왠지 듣기 무서워 듣지 않습니다. 운을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스. 운은 다음날 실종이 됩니다. 그리고 운의 행방을 찾기 위해 동네 어른들이 전부 수색대가 되지만 그녀를 찾을 수는 없습니다.

이 소설을 단순하게 바라보면 조금은 어이없는 느낌을 받습니다. 한 소녀의 실종을 통해 또 다른 한 소녀는 영향을 받고 자칫 얼음성의 마력에 끌려가는 것 같지만 다행히 별 일 없이 한 소녀는 살아남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목관악기 연주자'를 잘 캐치하면 이 소설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독일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 이야기는 유명하지요. 쥐를 쫓아주면 돈을 주겠다고 했는데 안줬더니 아이들을 데리고 가버렸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모티브로 쓴 것 같아 보입니다.

추운 나라에 폭포가 떨어지며 생기는 얼음들로 얼음성이란 곳이 만들어집니다. 운은 그곳에서 죽음을 당하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모릅니다. 봄이 되어 날이 풀려도 아직 얼음성은 견고합니다. 아이들은 모험을 좋아해서 얼음성으로 스케이트를 타러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시스는 단순히 놀러가는 것이 아니라 얼음성의 무너짐에 동참하기 위해 아이들을 모아 그곳으로 갑니다. 어디서부터 시스가 이런 마력에 걸렸는지, 이런 생각을 하게되었는지 이 소설 속에서 명확한 것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시스는 그런 의도를 가지고 얼음성에 갔다는 것은 정확하게 보여집니다.

운의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둘이 똑같이 닮았다는 이야기에서 어른들의 추악한 사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촌끼리도 닮을 수 있다는 가정을 해볼 수도 있지만 시스의 강한 거부감을 통해 이들의 출생의 비밀이 있음을 예상해볼 수 있고 시스는 아직 그런 추악한 사정을 받아들일 수 있을만큼 성장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운을 잃고 시스는 아이들과 함께 얼음성에서 무너지려고 계획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이 얼음성은 시스에게 아이의 순수함을 상징하는 곳은 아닐까 싶습니다. 피리부는 사나이를 따라 사라져버린 아이들처럼 목관 악기 연주자와의 대화를 통해서 시스는 얼음성에 모든 친구들을 데리고 가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얼음성은 무너지지 않고 모두 살아남습니다. 시스는 이제 운에 대한 죄책감을 버리고 운을 서서히 잊으면서 어른이 되어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추악한 모든 비밀은 얼음성과 함께 영원히 묻어버리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이 맞는 것인지 잘 모를정도로 작가의 설명은 모호합니다. 유럽 작품들이 그런 경향이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하고 추측을 해볼 따름입니다. 추운 나라 작가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서정적인 표현이 두드러집니다. 

 


책 정보

Is-Slottet (The Ice Palace) by Tarjei Vesaas (1963)
얼음성
지은이 타리에이 베소스
펴낸곳 (주)살림출판사
펴낸날 초판 1쇄 2011년 3월 16일
옮긴이 정윤희 

 

   p. 111
   이곳에는 뭔가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 수색대는 앞으로 다가올 슬픔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밝혀냈고 빛과 죽음의 의혹이 가득한 밤의 향연을 만들어 냈다.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속수무책으로 마력이 가득한 얼음성에 매료되었다.


   p. 208
   우리는 숲 속의 목관악기 연주자, 거부할 수 없는 것들에 매료되었지. 모든 게 벌거벗었고 새롭게 태어났어. 흐르는 물 사이에 바위가 우뚝 서 있네. 우뚝 솟은 나무 자루처럼 꼼짝 않고 버티고 서서 우리를 위해 한 순간을 나누고. 덕분에 빨리 그곳에 닿을 수 있어. 그 순간을 기다리네. 우둔한 작은 새가 바위로 돌진하다가 히스가 무성한 황야에 쓰러지길. 그리고 저 높은 하늘로 날아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기를.


   p. 228
   죽음을 맞은 얼음성은 세상에서 사라지는 마지막 순간에 메아리 소리를 냈다. 격렬한 소동 속에 쨍그랑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여긴 너무 어두워, 라고 말하는 것처럼. ... 거대한 얼음성이 지구상에서 연기처럼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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