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 황금지구의
가이도 다케루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서평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이 소설은 가이도 다케루의 의학 미스터리 '다구치 - 시라토리 콤비 시리즈'의 외전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용은 전혀 연관이 없구요. 같은 지역인 사쿠라노미야를 공유하고 있으며 '나이팅게일의 침묵'에서 등장했던 인물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비중이 그리 큰 편은 아니구요. '나전미궁'으로 예상되는 부분도 잠시 언급됩니다.
 
이번에는 공학도랄까 물리학도랄까 그쪽 계열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요. 작가가 '시인 불명 사회'를 집필하던 중에 머리 식힐 겸 즐겁게 써내려간 소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상당히 유쾌하고 가벼운 특징이 있습니다. 찾아보니 평가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닌데 저는 재밌게 봤고 짜임있는 진행과 반전 덕분에 별 다섯개를 매겨봅니다.
 
아무래도 가이도 다케루의 소설들은 어딘가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라고 확실히 규정지을만큼 2% 가벼움이 있달까요. 거기에 이 소설은 더 가벼운 면이 있습니다. 기본적인 캐릭터의 구성은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으로 시작된 '다구치 - 시라토리 콤비'와 상당히 비슷합니다.
 
배경은 2013년으로 설정되어 있구요. 1988년 거품경기로인해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1억엔씩 주기로 결정했던 이야기에서 시작이 됩니다. 이 사쿠라노미야 공무원들은 부의 상징인 금을 갖고 싶었지만 1억엔 상당의 금을 갖고 있어봐야 의미가 없기에 아이디어를 내서 지구의를 만들기로 결정합니다. 어느 정도 큰 황금지구의는 이론적으로 불가능해서 결국 지도의 일본 부분만 금으로 만드는 작업을 착수합니다.
 
그냥 머리 식히려고 적은 소설이라지만 이 황금지구의에 대한 현실적인 계산 덕분에 무척 고생을 했다고 하네요. 이 황금지구의는 사쿠라미야 수족관에 놓이게 되는데 불경기인 지금 히라누마 헤이스케에게 대학 친구가 나타납니다.
 
화자는 바로 이 히라누마 헤이스케입니다. 그는 '히라누마 철공소'의 영업부장 겸 임시 공원으로 일을 하는 중인데 아버지의 공장을 돕기 위해 진학한 물성물리학과 대학원에서 이렇다할 논문을 쓰지못한 채 포기 상태에 있습니다.
 
대학 때 만나 불행을 몰아다주고 함께 많은 범법행위를 하고 다녔던 히사미츠 조지, 일명 글라스 조의 등장에서 여태까지의 평범했던 이야기는 범죄물로 흘러가게 됩니다. 바로 황금지구의를 접수하자는 의견을 냅니다.
 
단순히 잠입해서 훔쳐내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히라누마 철공소'에서 만든 수많은 기기들을 가지고 지구의를 자르고 도려내고 대체품을 만들고 등등. 이야기는 상당히 이공계 스타일로 흘러가는데 너무 전문적이라 되려 어처구니가 없어집니다. 즉흥적이고 말만 번지르르한 글라스 조와 무척 성실한 듯 보여서 이런 범행과는 어울리지 않는 헤이스케의 조합은 '다구치 - 시라토리 콤비'가 절로 떠오르기도 하지요.
 
전혀 학문적 지식이 없으면서도 특이한 기계들을 뚝딱 만들어내는 헤이스케의 천재적인 아버지도 그렇지만 짜증나게 만드는 수족관 관장이나 시청 관재과 과장 고니시도 어떤 의미에서는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갑니다. 헤이스케의 부인 기미코나 아들 유스케도 평범한 인물은 아닌 것 같이 보입니다. 
 
이렇게 나열하다 보면 전부 천재들 밖에 없어서 어이가 없어지는 면이 있는데 그것 역시 가이도 다케루 소설 속의 특징이 아닐까 싶습니다. 허황된 인물인 글라스 조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성실한 헤이스케의 중심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다보니 이것은 도둑질을 하는 얘기가 아니라 무슨 납기일을 맞추는 공장의 스토리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역시 범죄물에서 반전이 없으면 재미가 없겠지요. 너무 순탄하게 일은 흘러가지만 역시 헤이스케는 속았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정신없이 일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지만 더 이상한 상황에 놓이게됩니다. 결국 주변 천재들의 도움 아닌 도움 덕분에 사태들은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지만 거대하거나 장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웃지못할 에피소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보다 더 한 반전은 마지막에 따로 있는 것 같구요.
 
거창하지 않은 이야기지만 등장하는 기계들은 꽤나 거창하고 여러 천재들이 등장하는데도 이 소설 속의 모습은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대수롭지 않은 청년들의 치기어린 장난 같은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강력한 범죄라는 느낌보다는 좀 코믹하고 안타까운 느낌의 감정이 헤이스케에게 드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구치 - 시라토리 콤비'처럼 '헤이스케 - 글라스 조 콤비'로 마을의 소소한 사건을 수사하는 홈드라마같은 추리물은 어떨지 생각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한데 말이지요. '다구치 - 시라토리 콤비 시리즈'가 드라마로 계속 방영되고 있는데 이 이야기도 영화화되면 괜찮지 않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등장하는 기계들을 만드는게 더 큰 일이 되려나요.
 
 
 

 

책 정보

 

Yume miru ougon chikyugi by Takeru Kaidou (2007)

울트라 황금지구의

지은이 가이도 다케루

펴낸곳 (주)위즈덤하우스 (예담)

초판 1쇄 인쇄 2012년 1월 10일

초판 1쇄 발행 2012년 1월 17일

옮긴이 신유희

디자인 하은혜

일러스트 삐뚤어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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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의 뱀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서평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본 서평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작년 나오키상을 수상한 후 이 소설로도 후보에 올라 최후까지 각축을 벌였다는 소문

을 듣고 기대했던 작품입니다. '12지 시리즈'에 속하구요. 어린 왕자에 나오는 '보아

뱀'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그간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중 아이를 화자로 하는 소설들은

의도적으로 어린 아이의 사고를 써내려가려는 부분이 거슬리는 면이 있었습니다. 최

근들어 이런 면들이 좀 나아져서 문체가 유려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물론 어

른을 화자로 하는 소설들은 그렇지 않았으니 딱히 문체가 발전했다고 볼 수 없겠지만

요.) 이 소설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부터 대학생까지의 시점이 이동하는 편인데 그런

문제점은 없었습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무척이나 잘 썼다고 느꼈기 때문에 '이거 '달과 게'(작년 나오키상

수상작)보다 더 괜찮은 작품인 것 같은데?'라는 감상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왜 수상

하지 못했나를 생각해보니 표현의 방식이 너무 직관적이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 나오키상은 어딘가 '문학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어느 정도 모호함을 유려

하게 사용하는 면에서 큰 점수를 주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올해 수상작인 나카지마 쿄코의 '작은 집' 역시 전반적으로 평이한 문체를

지니고 있지만 결말의 충격은 여운이 꽤 큽니다. '진실'에 대한 부분을 놀라게 하는

반전이나 새로운 요소의 등장이 아니라 결말이 주는 '진실'이 얼마나 주인공을 고뇌

에 빠뜨렸느냐를 표현하는 방식에서랄까요.

 

게다가 그 부분에서 화자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 아니라 관찰자로 하여금 추측

을 할 수 있게 하고 일부의 판단에 대해서는 읽는 사람에게 그 평가를 맡깁니다. 그

런 문학적 요소를 잘 사용한 점이 높이 평가된 것 같습니다.

 

반면 이 '구체의 뱀'에서는 엔터테인먼트 소설과 순수 문학 소설의 경계를 넘나들면

서 읽는 동안에는 재미있었지만 결말은 좀 아쉬웠습니다. 역시 후보작에 머물렀던 것

은 결말의 방식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주인공의 심리 상태가 좀 더 세밀히 묘사되

었다거나 고뇌를 표현했다기 보다 너무 빨리 마무리지었다는 느낌이랄까요.

 

드라마가 마지막화에서 분량에 맞춰 끝내기 위해서 '10년후'라는 문구 하나로 시점을

옮겨버리는 그런 느낌처럼요. 그냥 소설로는 재밌습니다. 그리고 이 서평의 평가 역

시 별 다섯개를 가감없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오키상 후보작에서라면 결말이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야기는 한 소년의 성장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은 마을에서 엘리트지만 차가운

아버지와 자라온 소년. 그 아버지 덕분에 부모님은 이혼으로 이어지고 아버지는 도시

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자신은 남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옆집에서 함께 살게 되는 이

야기입니다.

 

흰개미퇴치 일을 하는 옆집 아저씨 오츠타로 씨는 화목하고 평범한 가정을 이뤘지만

아내와 큰 딸을 먼저 잃고 둘째 딸과 주인공 토모와 한 가족처럼 정겹게 살아갑니다.

조금 기묘한 소녀인 사요와 평범한 동생 나오. 사요가 죽기 전의 이야기부터 이 후

알게된 사요를 닮은 기묘한 여인과의 이야기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이 정신없이

진행됩니다.

 

갑작스러운 죽음과 맞닿아있는 이 이야기 안의 진짜 내용은 사람과 사람 간의 '생각

의 차이'에서 모든 일이 벌어진다는 면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진실을 말할 수 없음

으로부터 오는 오해와 사랑하기 때문에 진실한 것으로부터 오는 절망은 아무도 순수

한 행복을 얻지 못하게하는 파괴력을 지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알고서, 다 안고서 함께하는 삶은

생(生)에 대한 증오와 동시에 느끼는 평안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그 안에서 안

주하는 토모는 모든 것을 극복한 인물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힘에 굴복당한 무기력

한 인물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모르는 사람과 살아가는 대

신 공범자와 기꺼이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가는 삶을 선택한 느낌이랄까요. 그러나

결말은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당연한 진리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구요.

 

후반부를 좀 더 자세히 그렸다면, 그래서 토모가 느끼는 감정에대해 좀 더 세밀하게

써내려갔다면 좀 더 대작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운 소설이지만, 그대로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혀지긴 합니다.

 

'재미'라는 표현을 쓰기엔 조금 무거운 소설이긴 하지만 '진실'이라는 것이 왜곡됨으

로써 낳는 무서움과 밝혀짐으로써 낳는 파괴감은 분명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 같습

니다. 언제나 진실해야한다거나 거짓말도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하는 고지식한 소설은

아닙니다. 그 두 가지면을 모두 요구받는, 그저 순수히 사람과 사람이 만나 행복할

수 있지 못했을 각 인물들이 너무도 애처로운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책 정보

 

Kyutai no Hebi by Shusuke Michio (2009)
구체의 뱀
저자 미치오 슈스케
발행처 (주) 학산문화사 (북홀릭)
2012년 1월 10일 초판 발행
역자 김은모
디자인 황시야_디자인플러그
커버사진 김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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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을 향해 쏴라 이카가와 시 시리즈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임희선 옮김 / 지식여행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서평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본 서평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소설은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이카가와 시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국내에서는 가장 먼저 세 번째인 '완전 범죄에 고양이는 몇 마리 필요한가'가 번역 출간되었고 그 다음으로 첫 번째 작품인 '밀실의 열쇠를 빌려드립니다'가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먼저 첫 번째와 세 번째 작품을 읽고 이 책을 읽게 되면 하나의 캐릭터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 과정을 알 수 있게 되는 재미도 있습니다.

 

이 '이카가와 시'는 '지바 현 동쪽, 가나가와 현 서쪽' 정도에 위치한 어항으로 오징어잡이 항구로 전국에서 손꼽힌 적이 있다고 합니다(이카가와 : 오징어 강).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대학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진행되었고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초밥 체인점 주인이 의뢰인으로 나옵니다.

 

두 번째 이 작품에서는 세 번째 이야기와 반대로 서양식 저택을 소유하고 있는 오징어 관련 산업 재벌이 의뢰인으로 등장합니다. 지역의 특정을 잘 살리고 있지요. 비록 가상의 도시이지만요.

 

그렇지만 이야기의 시작은 그것과는 좀 동떨어져있는 사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이야기 속에는 권총이 등장합니다. 어느 형사가 범인을 검거하다가 권총을 잃어버리는 사태에 직면합니다. 물론 도둑이 잘못한 것이지 형사의 잘못은 아닌 상황이지만요. 그래서 경찰서는 비상 사태가 되고 결국 시체가 발견됩니다.

 

스나가와 경부와 나카야마 쇼지는 결국 그 피해자에게서 발견된 단 하나의 전화번호를 찾아 우카이 탐정에게 도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엉뚱한 상황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인연으로 우카이 탐정에게 의뢰가 들어옵니다. 1년치 가게 세가 밀렸어도 재미없는 사건은 맡지 않겠다는 심보의 우카이이지만 집 주인의 협박에 못이겨 결국 의뢰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렇게 탐정이 가는 곳에서 사건이 발생하게 되듯 역시나 밀실 총기 난사 사건이 등장하게 됩니다. 정통 추리물들이 좀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가 있다면 히가시가와 도쿠야 소설은 늘 그렇듯 실소를 머금게하는 부분들이 종종 나오고 그리 멋있지 않고 삶에 찌든 탐정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 추리를 풀어낼 땐 역시 멋있다는 소리가 나오게끔 진상을 밝혀줍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궁금해서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추리물이지요. 그리고 아무래도 시리즈가 지닌 장점은 단순히 이 이야기에서 끝난다는 것이 아니라 다음 이야기에서도 새로운 활약을 벌여줄 것을 예상하게 하기에 더 기대를 갖게됩니다. 그리고 시리즈이기 때문에 늘 다른 사건과 다른 패턴으로 쓰여진다는 다양성도 장점이 될 것 같습니다.

 

새롭지 않은 캐릭터가 새롭게 자리 매김을 하고 우카이와 단순히 사돈 관계였던 류헤이가 좀 더 사무소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가고 그렇지만 천재적인 발상과는 다르게 여전히 계획없이 사는 우카이, 정상적인 것 같은데 철부지 같은 시나가와 경부와 왠지 이번 이야기에서는 좀 의젓했던 시키까지. 네 번째 이야기도 빨리 번역 출간되길 바래봅니다.

 

 

 

 

 

책 정보

 

Misshitsu ni Mukatte Ute! by Tokuya Higashigawa (2002)

밀실을 향해 쏴라

지은이 히가시가와 도쿠야

펴낸곳 도서출판 지식여행

옮긴이 임희선

초판 1쇄 인쇄 2012년 1월 2일

초판 1쇄 발행 2012년 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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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서평

 

이번 나오키상 수상작 후보로 마지막까지 거론된 미치오 슈스케의 이 소설이 번역 출간 전부터 무척 기대가 됐습니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중고매장이 왠지 매력적으로 느껴졌거든요. 그리고 막상 수상작인 '작은집'을 읽고 나서 좀 의아했기 때문에 더 이 소설이 기대가 됐습니다.

 

미치오 슈스케의 저작들을 재미있게 읽어오고 있지만 화재가 되었던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들보다 조금 덜 유명한 어른들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들이 더 좋더라구요. 좀 더 따스한 이야기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 소설 역시 그렇구요. 두 남자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선 아무래도 '까마귀의 엄지'가 떠오르는데 그 소설보다는 좀 더 개연성이 있는 느낌이 들고 그래서 반대로 덜 드라마틱하기도 합니다.

 

총 4개의 파트로 이루어져있는데 소소한 재미들이 있는 소설입니다. 일단 4계절로 나눠져있어서 봄부터 겨울까지이고 소제목은 각 인물들의 이름과 연관이 있습니다. 가사사기에는 까치, 히구라시에는 쓰르라미, 미나미에는 남쪽, 다치바나에는 귤나무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화자는 가사사기가 아니라 히구라시 마사오입니다. 이 유약한 남자는 사이타마 시의 변두리에 있는 '가사사기 중고매장'의 다락방에서 가사사기와 같이 생활하며 개업 2년동안 매장을 운영중입니다. 미대를 졸업해서 갖고 있는 손재주 덕분에 동업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매번 이야기 앞에서 근처 절의 중에게 비싼 값에 물건을 떠넘겨오게되는 일을 당하곤 하는데 마지막 이야기가 바로 이 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투덜투덜해도 정작 상황에 닥치면 한 마디도 못하는 유약한 성격이라 읽는 사람이 답답할 때도 있지만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씨가 너무 깊어서 한없이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바로 이 히구라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반면 가사사기 조스케는 정말 자기 멋대로인 캐릭터입니다. 늘 '머피의 법칙' 영어 원서를 읽으면서 꼭 사람 불안하게 거기에서 읽은 법칙을 얘기해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하는 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거침없이 하지요. 이런 설정 자체가 마치 셜록 홈즈와 왓슨을 보는 것 같습니다.

 

재밌는 것은 이 소설에서 추리와 해결은 히구라시의 몫이지만요. 홈즈는 제멋대로라도 천재에 사건 해결이라도 했지만 가사사기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히구라시는 늘 가사사기가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만들어줍니다. 단순히 유약해서가 아니라 나미짱을 위해서랄까요. 나미짱이 존경하는 가사사기의 존재를 지켜주고 싶어하는 히구라시. 답답하면서도 애처로운 캐릭터랄까요.

 

"애당초 이번 사건을 그렇게 어렵지 않아. 이미 체크메이트 직전의 상태라고 해도 될 정도지. 앞으로 한 수라고, 히구라시군. 앞으로 한 수만 더 두면 체크메이트야." (p. 122)

 

이런 발언을 자신 만만하게 하면서 꽤 논리적인 추리를 펼치는 가사사기지만 항상 어긋나기만 합니다. 이걸 제대로 해결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히구라시도 대단합니다.

 

'봄: 까치로 만든 다리'에서는 매입한 새 청동상에 얽힌 사건을 추리해냅니다. '여름: 쓰르라미가 우는 강'에서는 공방 '누마자와 목공점'에서 주문한 대량 물건을 판매하러 가서 생긴 일을 다룹니다. '가을: 남쪽 인연'에서는 왜 그렇게 히구라시가 나미짱을 지켜주고 싶어하는지 그들에 얽힌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겨울: 귤나무가 자라는 절'에서는 매번 히구라시를 골탕먹였던 오호지 절의 주지에 얽힌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대체로 홈드라마같은 면이 있는 소설이고 약간의 추리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약간의 실소를 머금게하는 부분들이 있는 유쾌한 소설입니다. 가끔은 따뜻하기도 하구요. 그리고 마지막엔 살짝의 반전같은 부분도 있어서 이곳저곳을 많이 신경 쓴 티가 나는 소설이랄까요. 원제는 '가사사기 일행의 사계'정도 되는 것 같은데 국내 번역본 제목이 더 좋은 것 같아요.

 

미우라 시온의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집'의 좀 밝은 버전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은집'보다는 되려 이 쪽이 더 취향에 맞지만 아무래도 수상작으로 주기엔 조금 깊이가 부족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소설이라 별 다섯개를 매겨봅니다.

 

 

 

 

 

책 정보

 

Kasasagi Tachi no Shiki by Shusuke Michio (2011)
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
지은이 미치오 슈스케
펴낸곳 (주)미래엔 (북폴리오)
초판 1쇄 인쇄 2011년 10월 15일
초판 1쇄 발행 2011년 10월 20일
옮긴이 김은모
디자인 김지혜, 김아름

 

 

 

   p. 122
   "애당초 이번 사건을 그렇게 어렵지 않아. 이미 체크메이트 직전의 상태라고 해도 될 정도지. 앞으로 한 수라고, 히구라시군. 앞으로 한 수만 더 두면 체크메이트야."
   가사사기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을 때 정해 놓고 하는 대사를 입에 담았다. 덧붙여, 가사사기는 지금까지 체스를 둬본 적도 없다.

 

   p.160~1
   "어째서 강이 구불구불 구부러져 있는지 압니까?"
   ...
   "물이 높은 곳을 피해서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강은 이렇게 구부러지면서 뻗어나가죠. 이 강은 특별히 더 그렇습니다. 좌우로 심하게 구부러져 있어요. 하지만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
   "인간은 매일매일 여러 가지 일을 생각하고, 여러 가지를 동경하며 구부러지는 법입니다. 누구든지 그래요. 그렇게 흐르고 있는 동안은 어디에 다다를지 모르죠. 제가 생각건대 구부러진다는 건 중요한 일이에요."

 

   p. 162~3
   "쓰르라미를 '저녁이 아쉬워 우는 매미'라고 부르는 지방도 있는 모양이더군요."
   ...
   나는 지금 이 자리를 떠나기가 정말로 아쉬웠다.
   아쉽다는 것은 분명 잊고 싶지 않다는 뜻이고 소중히 하겠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추억에서 꺼내 자신의 힘으로 삼기 위해, 마음속 어딘가에 간직해 두겠다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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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수프만 생각했다
요시다 아쓰히로 지음, 민경욱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서평

 

이 소설은 작가의 고향인 세타가야의 아카쓰쓰미를 모델로 하는 3부작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오다큐선의 고우도쿠지역과 도큐 세타가야선의 야마시타역이 가장 가까운 역인데 저자의 꿈이 세타가야선의 기관사였기에 노면전차인 세타가야선만이 달리는 공간으로 설정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소설과는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지만 내용은 이어지지 않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어떨지 모르겠네요. '회오리바람 식당의 밤'이 첫 번째 소설입니다.

 

아가와 사와코의 '수프 오페라'를 읽고 나서 '수프'와 관련된 소설이 궁금해 검색해보게되던 차에 알게된 소설인데 시리즈중 두 번째라 하여 '회오리바람 식당의 밤'을 먼저 읽었습니다. 그 소설을 읽고 완전히 이 작가의 팬이 됐습니다. 어딘가 시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의 글과 철학적인 사색을 담은 그런 독특한 향이 풍기는 소설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그와는 좀 다른 색체가 있어서 또 신기하더라구요. 좀 더 산문적이랄까 그런 편이구요. 더 홈드라마 같은 현실적인 느낌이 확고한 것 같습니다. 주인공 오리(大里)는 '오리이 군'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어하지만 정작 본격적으로 쓸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관련 일을 하려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학생 때부터 자주 다녔던 오래된 영화관이 있는 마음에서 살게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사람들이 '3'이 적힌 봉투를 들고 다니길래 물어보니 샌드위치 가게가 엄청 맛있다는 추천을 받아 가게 됩니다. 주인의 이름이 '안도'라서 '트르와'라는 이름을 붙였다는(프랑스어 숫자 1, 2와 발음이 같다.' 샌드위치 가게는 정말 맛있습니다. 그래서 자주 다니게 되고 친해지게 됩니다.

 

자취방 창문으로 교회가 보이고 너무 맛있는 샌드위치 가게 '트르와'가 있고 좋아하는 영화를 미친듯이 보러다니는 오리이군의 일상은 어딘가 비일상적이긴 하지만 집주인도 걱정해주고 안도씨 역시 자신의 가게에서 일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걱정해서 결국 일을 하게 됩니다.

 

전문적으로 영화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옛영화 속의 엑스트라에게 매료되어 그 작품들만을 찾아보는 오리이군은 자신과 자주 만나게 되는 녹색 모자의 한 여자분을 알게 됩니다. 둘 밖엔 아무도 없는 영화관에서 그녀가 뚜껑을 연 보온병에서 흘러나고는 수프의 향기. 그것 때문에 제목이 이런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이야기는 '본격 수프 만드는 소설'로 흘러갑니다.

 

굉장히 보수적이랄까 무뚝뚝하달까 그래서 핸드폰도 여태 없었던 안도씨와의 조합은 이제껏 이야기 속에 되는대로 살던 오리이군에게 전염이 되었는지 그의 수프 만들기는 안도씨같은 느낌처럼 굉장히 열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단순히 처음 느낀 '한 여성으로부터 맡게된 엄청나게 맛있을 것 같은 수프 때문에 그녀를 계속 그리워했다'는 류의 단순한 로맨스 소설은 아닌 것이지요. 제목 그대로 수프를 만드는 장인이 되어 열심히 만드는 그의 이야기는 전반부에서 나왔던 오리이군과 전혀 다른 사람인듯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전투적이라던가 그런 것은 아니구요. 이 마을의 일원이 되어 서로를 위하는 따스한 사람들의 모습에 더욱 응집력이 생기는듯한 느낌이 듭니다. 달지 않고 씹는 맛이 있어 영화가 전혀 생각이 안난다는 트르와의 샌드위치와 이름은 아직 없지만 엄마의 맛이 난다는 스프를 꼭 이 쓰키부네초에서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마지막에 가서도 철학적인 요소들을 집어넣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시계인데요. 남편이 죽고는 계속 태엽을 감아주면서 차는 시계 이야기를 하는 마담은 그렇게 자신도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안도씨는 아내가 죽은 후론 아내가 죽인 시간만이 자신에게 시간이라 시계는 차지않는다고, 그러나 아들 리쓰는 아빠 몰래 엄마의 시계의 태엽을 늘 감아둡니다.

 

오리이군은 시계를 하나 차서 손목에 찹니다. 그리고 늘 7분이 빠른 시계를 차고 있는 그녀와 맞춰 자신의 시계를 조정합니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멍하니 이 마을에 왔던 오리이군은 이제 수프를 만드는 사람으로, 좀 더 정확하게 살아가고자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어 있습니다. 그를 좀 더 현실적으로 바꾼 것같은 것은 역시 사랑이 아닐까요. 그에게 시계가 이제는 필요한 상황이 오고 그마저도 누군가에게 맞춰서 살아가고 싶다는 그런 때가 그에게 온 것입니다.

 

따스함이 가득한 요시다 아쓰히로의 쓰키부네초 이야기. 다음 이야기도 몹시 기다려집니다.

 

 

 

 

책 정보

 

Sorekara wa soup no koto bakari kangaeteit (それからはス-プのことばかり考えて暮らした) by Atsuhiro Yoshida (2006)
그후로 수프만 생각했다
지은이 요시다 아쓰히로
펴낸곳 동아일보사 (블루 엘리펀트)
1판 1쇄 인쇄 2011년 11월 18일
1판 1쇄 발행 2011년 11월 25일
옮긴이 민경욱
표지 디자인 황시야
본문 디자인 전상미
일러스트 박경연

 

 

   p. 211
   벌써 완전히 잊었지만 나는 언젠가 영화 대본을 쓰고 싶어했던 적이 있다. 그것은 어떠면 이 <휘파람>같이 지극히 평범한 마을 사람들을 그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움직임도 없지만 그래도 역시 끊임없이 변해가는 것이 있는, 그래서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해가는 것 사이에서 무력한 마을 사람들은 종종 길을 헤매다 말을 잃는다.
   바로 그때 휘파람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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