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로 수프만 생각했다
요시다 아쓰히로 지음, 민경욱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서평

 

이 소설은 작가의 고향인 세타가야의 아카쓰쓰미를 모델로 하는 3부작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오다큐선의 고우도쿠지역과 도큐 세타가야선의 야마시타역이 가장 가까운 역인데 저자의 꿈이 세타가야선의 기관사였기에 노면전차인 세타가야선만이 달리는 공간으로 설정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소설과는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지만 내용은 이어지지 않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어떨지 모르겠네요. '회오리바람 식당의 밤'이 첫 번째 소설입니다.

 

아가와 사와코의 '수프 오페라'를 읽고 나서 '수프'와 관련된 소설이 궁금해 검색해보게되던 차에 알게된 소설인데 시리즈중 두 번째라 하여 '회오리바람 식당의 밤'을 먼저 읽었습니다. 그 소설을 읽고 완전히 이 작가의 팬이 됐습니다. 어딘가 시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의 글과 철학적인 사색을 담은 그런 독특한 향이 풍기는 소설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그와는 좀 다른 색체가 있어서 또 신기하더라구요. 좀 더 산문적이랄까 그런 편이구요. 더 홈드라마 같은 현실적인 느낌이 확고한 것 같습니다. 주인공 오리(大里)는 '오리이 군'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어하지만 정작 본격적으로 쓸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관련 일을 하려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학생 때부터 자주 다녔던 오래된 영화관이 있는 마음에서 살게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사람들이 '3'이 적힌 봉투를 들고 다니길래 물어보니 샌드위치 가게가 엄청 맛있다는 추천을 받아 가게 됩니다. 주인의 이름이 '안도'라서 '트르와'라는 이름을 붙였다는(프랑스어 숫자 1, 2와 발음이 같다.' 샌드위치 가게는 정말 맛있습니다. 그래서 자주 다니게 되고 친해지게 됩니다.

 

자취방 창문으로 교회가 보이고 너무 맛있는 샌드위치 가게 '트르와'가 있고 좋아하는 영화를 미친듯이 보러다니는 오리이군의 일상은 어딘가 비일상적이긴 하지만 집주인도 걱정해주고 안도씨 역시 자신의 가게에서 일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걱정해서 결국 일을 하게 됩니다.

 

전문적으로 영화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옛영화 속의 엑스트라에게 매료되어 그 작품들만을 찾아보는 오리이군은 자신과 자주 만나게 되는 녹색 모자의 한 여자분을 알게 됩니다. 둘 밖엔 아무도 없는 영화관에서 그녀가 뚜껑을 연 보온병에서 흘러나고는 수프의 향기. 그것 때문에 제목이 이런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이야기는 '본격 수프 만드는 소설'로 흘러갑니다.

 

굉장히 보수적이랄까 무뚝뚝하달까 그래서 핸드폰도 여태 없었던 안도씨와의 조합은 이제껏 이야기 속에 되는대로 살던 오리이군에게 전염이 되었는지 그의 수프 만들기는 안도씨같은 느낌처럼 굉장히 열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단순히 처음 느낀 '한 여성으로부터 맡게된 엄청나게 맛있을 것 같은 수프 때문에 그녀를 계속 그리워했다'는 류의 단순한 로맨스 소설은 아닌 것이지요. 제목 그대로 수프를 만드는 장인이 되어 열심히 만드는 그의 이야기는 전반부에서 나왔던 오리이군과 전혀 다른 사람인듯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전투적이라던가 그런 것은 아니구요. 이 마을의 일원이 되어 서로를 위하는 따스한 사람들의 모습에 더욱 응집력이 생기는듯한 느낌이 듭니다. 달지 않고 씹는 맛이 있어 영화가 전혀 생각이 안난다는 트르와의 샌드위치와 이름은 아직 없지만 엄마의 맛이 난다는 스프를 꼭 이 쓰키부네초에서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마지막에 가서도 철학적인 요소들을 집어넣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시계인데요. 남편이 죽고는 계속 태엽을 감아주면서 차는 시계 이야기를 하는 마담은 그렇게 자신도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안도씨는 아내가 죽은 후론 아내가 죽인 시간만이 자신에게 시간이라 시계는 차지않는다고, 그러나 아들 리쓰는 아빠 몰래 엄마의 시계의 태엽을 늘 감아둡니다.

 

오리이군은 시계를 하나 차서 손목에 찹니다. 그리고 늘 7분이 빠른 시계를 차고 있는 그녀와 맞춰 자신의 시계를 조정합니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멍하니 이 마을에 왔던 오리이군은 이제 수프를 만드는 사람으로, 좀 더 정확하게 살아가고자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어 있습니다. 그를 좀 더 현실적으로 바꾼 것같은 것은 역시 사랑이 아닐까요. 그에게 시계가 이제는 필요한 상황이 오고 그마저도 누군가에게 맞춰서 살아가고 싶다는 그런 때가 그에게 온 것입니다.

 

따스함이 가득한 요시다 아쓰히로의 쓰키부네초 이야기. 다음 이야기도 몹시 기다려집니다.

 

 

 

 

책 정보

 

Sorekara wa soup no koto bakari kangaeteit (それからはス-プのことばかり考えて暮らした) by Atsuhiro Yoshida (2006)
그후로 수프만 생각했다
지은이 요시다 아쓰히로
펴낸곳 동아일보사 (블루 엘리펀트)
1판 1쇄 인쇄 2011년 11월 18일
1판 1쇄 발행 2011년 11월 25일
옮긴이 민경욱
표지 디자인 황시야
본문 디자인 전상미
일러스트 박경연

 

 

   p. 211
   벌써 완전히 잊었지만 나는 언젠가 영화 대본을 쓰고 싶어했던 적이 있다. 그것은 어떠면 이 <휘파람>같이 지극히 평범한 마을 사람들을 그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움직임도 없지만 그래도 역시 끊임없이 변해가는 것이 있는, 그래서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해가는 것 사이에서 무력한 마을 사람들은 종종 길을 헤매다 말을 잃는다.
   바로 그때 휘파람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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