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의 뱀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서평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본 서평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작년 나오키상을 수상한 후 이 소설로도 후보에 올라 최후까지 각축을 벌였다는 소문

을 듣고 기대했던 작품입니다. '12지 시리즈'에 속하구요. 어린 왕자에 나오는 '보아

뱀'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그간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중 아이를 화자로 하는 소설들은

의도적으로 어린 아이의 사고를 써내려가려는 부분이 거슬리는 면이 있었습니다. 최

근들어 이런 면들이 좀 나아져서 문체가 유려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물론 어

른을 화자로 하는 소설들은 그렇지 않았으니 딱히 문체가 발전했다고 볼 수 없겠지만

요.) 이 소설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부터 대학생까지의 시점이 이동하는 편인데 그런

문제점은 없었습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무척이나 잘 썼다고 느꼈기 때문에 '이거 '달과 게'(작년 나오키상

수상작)보다 더 괜찮은 작품인 것 같은데?'라는 감상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왜 수상

하지 못했나를 생각해보니 표현의 방식이 너무 직관적이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 나오키상은 어딘가 '문학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어느 정도 모호함을 유려

하게 사용하는 면에서 큰 점수를 주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올해 수상작인 나카지마 쿄코의 '작은 집' 역시 전반적으로 평이한 문체를

지니고 있지만 결말의 충격은 여운이 꽤 큽니다. '진실'에 대한 부분을 놀라게 하는

반전이나 새로운 요소의 등장이 아니라 결말이 주는 '진실'이 얼마나 주인공을 고뇌

에 빠뜨렸느냐를 표현하는 방식에서랄까요.

 

게다가 그 부분에서 화자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 아니라 관찰자로 하여금 추측

을 할 수 있게 하고 일부의 판단에 대해서는 읽는 사람에게 그 평가를 맡깁니다. 그

런 문학적 요소를 잘 사용한 점이 높이 평가된 것 같습니다.

 

반면 이 '구체의 뱀'에서는 엔터테인먼트 소설과 순수 문학 소설의 경계를 넘나들면

서 읽는 동안에는 재미있었지만 결말은 좀 아쉬웠습니다. 역시 후보작에 머물렀던 것

은 결말의 방식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주인공의 심리 상태가 좀 더 세밀히 묘사되

었다거나 고뇌를 표현했다기 보다 너무 빨리 마무리지었다는 느낌이랄까요.

 

드라마가 마지막화에서 분량에 맞춰 끝내기 위해서 '10년후'라는 문구 하나로 시점을

옮겨버리는 그런 느낌처럼요. 그냥 소설로는 재밌습니다. 그리고 이 서평의 평가 역

시 별 다섯개를 가감없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오키상 후보작에서라면 결말이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야기는 한 소년의 성장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은 마을에서 엘리트지만 차가운

아버지와 자라온 소년. 그 아버지 덕분에 부모님은 이혼으로 이어지고 아버지는 도시

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자신은 남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옆집에서 함께 살게 되는 이

야기입니다.

 

흰개미퇴치 일을 하는 옆집 아저씨 오츠타로 씨는 화목하고 평범한 가정을 이뤘지만

아내와 큰 딸을 먼저 잃고 둘째 딸과 주인공 토모와 한 가족처럼 정겹게 살아갑니다.

조금 기묘한 소녀인 사요와 평범한 동생 나오. 사요가 죽기 전의 이야기부터 이 후

알게된 사요를 닮은 기묘한 여인과의 이야기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이 정신없이

진행됩니다.

 

갑작스러운 죽음과 맞닿아있는 이 이야기 안의 진짜 내용은 사람과 사람 간의 '생각

의 차이'에서 모든 일이 벌어진다는 면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진실을 말할 수 없음

으로부터 오는 오해와 사랑하기 때문에 진실한 것으로부터 오는 절망은 아무도 순수

한 행복을 얻지 못하게하는 파괴력을 지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알고서, 다 안고서 함께하는 삶은

생(生)에 대한 증오와 동시에 느끼는 평안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그 안에서 안

주하는 토모는 모든 것을 극복한 인물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힘에 굴복당한 무기력

한 인물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모르는 사람과 살아가는 대

신 공범자와 기꺼이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가는 삶을 선택한 느낌이랄까요. 그러나

결말은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당연한 진리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구요.

 

후반부를 좀 더 자세히 그렸다면, 그래서 토모가 느끼는 감정에대해 좀 더 세밀하게

써내려갔다면 좀 더 대작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운 소설이지만, 그대로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혀지긴 합니다.

 

'재미'라는 표현을 쓰기엔 조금 무거운 소설이긴 하지만 '진실'이라는 것이 왜곡됨으

로써 낳는 무서움과 밝혀짐으로써 낳는 파괴감은 분명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 같습

니다. 언제나 진실해야한다거나 거짓말도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하는 고지식한 소설은

아닙니다. 그 두 가지면을 모두 요구받는, 그저 순수히 사람과 사람이 만나 행복할

수 있지 못했을 각 인물들이 너무도 애처로운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책 정보

 

Kyutai no Hebi by Shusuke Michio (2009)
구체의 뱀
저자 미치오 슈스케
발행처 (주) 학산문화사 (북홀릭)
2012년 1월 10일 초판 발행
역자 김은모
디자인 황시야_디자인플러그
커버사진 김창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