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서평

 

이번 나오키상 수상작 후보로 마지막까지 거론된 미치오 슈스케의 이 소설이 번역 출간 전부터 무척 기대가 됐습니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중고매장이 왠지 매력적으로 느껴졌거든요. 그리고 막상 수상작인 '작은집'을 읽고 나서 좀 의아했기 때문에 더 이 소설이 기대가 됐습니다.

 

미치오 슈스케의 저작들을 재미있게 읽어오고 있지만 화재가 되었던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들보다 조금 덜 유명한 어른들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들이 더 좋더라구요. 좀 더 따스한 이야기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 소설 역시 그렇구요. 두 남자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선 아무래도 '까마귀의 엄지'가 떠오르는데 그 소설보다는 좀 더 개연성이 있는 느낌이 들고 그래서 반대로 덜 드라마틱하기도 합니다.

 

총 4개의 파트로 이루어져있는데 소소한 재미들이 있는 소설입니다. 일단 4계절로 나눠져있어서 봄부터 겨울까지이고 소제목은 각 인물들의 이름과 연관이 있습니다. 가사사기에는 까치, 히구라시에는 쓰르라미, 미나미에는 남쪽, 다치바나에는 귤나무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화자는 가사사기가 아니라 히구라시 마사오입니다. 이 유약한 남자는 사이타마 시의 변두리에 있는 '가사사기 중고매장'의 다락방에서 가사사기와 같이 생활하며 개업 2년동안 매장을 운영중입니다. 미대를 졸업해서 갖고 있는 손재주 덕분에 동업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매번 이야기 앞에서 근처 절의 중에게 비싼 값에 물건을 떠넘겨오게되는 일을 당하곤 하는데 마지막 이야기가 바로 이 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투덜투덜해도 정작 상황에 닥치면 한 마디도 못하는 유약한 성격이라 읽는 사람이 답답할 때도 있지만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씨가 너무 깊어서 한없이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바로 이 히구라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반면 가사사기 조스케는 정말 자기 멋대로인 캐릭터입니다. 늘 '머피의 법칙' 영어 원서를 읽으면서 꼭 사람 불안하게 거기에서 읽은 법칙을 얘기해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하는 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거침없이 하지요. 이런 설정 자체가 마치 셜록 홈즈와 왓슨을 보는 것 같습니다.

 

재밌는 것은 이 소설에서 추리와 해결은 히구라시의 몫이지만요. 홈즈는 제멋대로라도 천재에 사건 해결이라도 했지만 가사사기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히구라시는 늘 가사사기가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만들어줍니다. 단순히 유약해서가 아니라 나미짱을 위해서랄까요. 나미짱이 존경하는 가사사기의 존재를 지켜주고 싶어하는 히구라시. 답답하면서도 애처로운 캐릭터랄까요.

 

"애당초 이번 사건을 그렇게 어렵지 않아. 이미 체크메이트 직전의 상태라고 해도 될 정도지. 앞으로 한 수라고, 히구라시군. 앞으로 한 수만 더 두면 체크메이트야." (p. 122)

 

이런 발언을 자신 만만하게 하면서 꽤 논리적인 추리를 펼치는 가사사기지만 항상 어긋나기만 합니다. 이걸 제대로 해결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히구라시도 대단합니다.

 

'봄: 까치로 만든 다리'에서는 매입한 새 청동상에 얽힌 사건을 추리해냅니다. '여름: 쓰르라미가 우는 강'에서는 공방 '누마자와 목공점'에서 주문한 대량 물건을 판매하러 가서 생긴 일을 다룹니다. '가을: 남쪽 인연'에서는 왜 그렇게 히구라시가 나미짱을 지켜주고 싶어하는지 그들에 얽힌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겨울: 귤나무가 자라는 절'에서는 매번 히구라시를 골탕먹였던 오호지 절의 주지에 얽힌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대체로 홈드라마같은 면이 있는 소설이고 약간의 추리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약간의 실소를 머금게하는 부분들이 있는 유쾌한 소설입니다. 가끔은 따뜻하기도 하구요. 그리고 마지막엔 살짝의 반전같은 부분도 있어서 이곳저곳을 많이 신경 쓴 티가 나는 소설이랄까요. 원제는 '가사사기 일행의 사계'정도 되는 것 같은데 국내 번역본 제목이 더 좋은 것 같아요.

 

미우라 시온의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집'의 좀 밝은 버전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은집'보다는 되려 이 쪽이 더 취향에 맞지만 아무래도 수상작으로 주기엔 조금 깊이가 부족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소설이라 별 다섯개를 매겨봅니다.

 

 

 

 

 

책 정보

 

Kasasagi Tachi no Shiki by Shusuke Michio (2011)
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
지은이 미치오 슈스케
펴낸곳 (주)미래엔 (북폴리오)
초판 1쇄 인쇄 2011년 10월 15일
초판 1쇄 발행 2011년 10월 20일
옮긴이 김은모
디자인 김지혜, 김아름

 

 

 

   p. 122
   "애당초 이번 사건을 그렇게 어렵지 않아. 이미 체크메이트 직전의 상태라고 해도 될 정도지. 앞으로 한 수라고, 히구라시군. 앞으로 한 수만 더 두면 체크메이트야."
   가사사기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을 때 정해 놓고 하는 대사를 입에 담았다. 덧붙여, 가사사기는 지금까지 체스를 둬본 적도 없다.

 

   p.160~1
   "어째서 강이 구불구불 구부러져 있는지 압니까?"
   ...
   "물이 높은 곳을 피해서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강은 이렇게 구부러지면서 뻗어나가죠. 이 강은 특별히 더 그렇습니다. 좌우로 심하게 구부러져 있어요. 하지만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
   "인간은 매일매일 여러 가지 일을 생각하고, 여러 가지를 동경하며 구부러지는 법입니다. 누구든지 그래요. 그렇게 흐르고 있는 동안은 어디에 다다를지 모르죠. 제가 생각건대 구부러진다는 건 중요한 일이에요."

 

   p. 162~3
   "쓰르라미를 '저녁이 아쉬워 우는 매미'라고 부르는 지방도 있는 모양이더군요."
   ...
   나는 지금 이 자리를 떠나기가 정말로 아쉬웠다.
   아쉽다는 것은 분명 잊고 싶지 않다는 뜻이고 소중히 하겠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추억에서 꺼내 자신의 힘으로 삼기 위해, 마음속 어딘가에 간직해 두겠다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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