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초콜릿 왈츠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60
모리 에토 지음, 고향옥 옮김 / 비룡소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서평

 

이 책은 세 곡의 클래식을 모티브로 하는 세 편의 단편 모음집입니다. 작가의 첫 단편집이라고 하네요. 남는 것이 시간 밖에 없을 때 종일 피아노만 치던 작가가 꼭 한번 써보고 싶었다는 이야기가 후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전부 피아노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각각 별개의 단편들이구요. 등장 인물들이 13살, 14살, 15살로 동화 같은 이야기랄지, 치유계 소설이랄지 따스한 이야기들입니다.

 

모리 에토하면 2006년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로 제135회 나오키상 수상 작가라고 알고 있는데 아동 교육 전문 학교를 나와 아동 문학상을 다수 수상한 바 있네요. 1990년 '리듬'으로 고단샤 아동 문학상으로 데뷔했고 제2회 무쿠하토주 아동 문학상 수상. '컬러풀'로 제46회 산케이 아동 출판 문화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저는 나오키상 수상 작품이 실린 소설만을 읽어봐서 작가에 대해 잘 몰랐는데 찾아보니 동화 작가 본업이구나 싶을 정도로 압도적인 수치군요. 이 책도 역시 그렇습니다. 10대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는 소설들의 장르도 다양하긴 하지만 몇 가지 형태로 정형화되어 있을 것 같은데요. 선생님이 교훈을 주는 방식인 전형적인 스타일의 동화라면 시게마츠 기요시가 떠오르지요.

 

반대로 학생들의 입장에서 바라본, 실제 규칙보다는 '우리'를 강조한 소설들은 순수 문학이라기보다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소설이랄지 라이트 노벨스러운 장르에서 많이 나타나는 편이구요. 또 다른 분류로는 판타지적인 그야말로 동화같은 이야기를 다룬 스타일도 있습니다. 이 소설은 그 가운데 위치한 느낌정도입니다.

 

 

어린이는 잠잔다 (로베르트 슈만의 '어린이의 정경' 중에서)
화자인 '교'는 오 년 전부터 매년 여름마다 이종 사촌 아키라 형의 별장에서 여름을 보냅니다. 총 다섯 명의 남자 아이들의 모임. 부자인 아키라 형과 달리 교의 집은 신칸센을 타지도 못해서 오랜 시간이 걸려 별장에 갑니다. 아키라 형은 규칙을 정해두고 모두 같이 움직이는 편인데 특히 LP판으로 듣는 클래식 감상 시간은 모두 졸음으로 몰아넣는 공포의 시간입니다.

 

중학생이 록이나 팝송이 아닌 클래식이라니 이상하다면서 마음의 응어리를 도모아키와 이야기하지만 혹시라도 아키라 형의 기분이 상할까봐, 그러면 다시는 별장에서의 모임을 갖지못할까봐 그 의견은 함구하기로 합니다. 만약 이 소설의 장르가 추리물이었다면 이쯤에서 살인이 일어난다던가 사건의 시작이 되겠지만 동화인 이 소설에서는 아키라 형의 이미지는 사실 오해였던 것이고 왜 그토록 클래식에 집착했는지 내막이 나오게 됩니다. 친척이라 더 공감할 수 있었던 여름의 추억이 아니었나 싶은 이야기입니다.

 

"피아노의 음색이 사람의 결핍된 마음을 채워 준다." p. 64

 


그녀의 아리아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중에서)
열 다섯의 화자는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한 달이나 지속되어 체력은 말도 못할 정도. 그래서 구기 대회를 위한 축구 연습을 몰래 빠져나와 메이지 시대 말기에 지어져 지금은 쓰지 않는 낡은 학교 건물에 들어가 숨어 있기로 합니다. 거기서 후지타니 리에코를 만납니다. 바흐가 불면증 환자를 위해 지은 곡이라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피아노로 치고 있는 그녀와 친해진 후로 줄곳 그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만나 대화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녀의 거짓말을 알게되고 실망하게 됩니다. 그녀의 진짜 모습을 알게되고 고민하고 결론을 내리는 과정들이 독특할 것 없이 구태의연한 면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해피엔딩이라 따스한 이야기였습니다.


어둠 속을 비추는 한줄기 빛 같은 선율. p. 111

 

 

아몬드 초콜릿 왈츠 (에릭 사티의 '자질구레하고 유쾌한 담화' 중에서)
특이한 피아노 선생님 기누코에게 피아노를 배우는 기미에와 나오. 꾀병에도 혼을 내지않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그 선생님은 기미에와 나오에게 너무 소중한 사람입니다. 괴짜로 알려져있는 에릭 사티를 너무 사랑하는 선생님에게 에릭 사티와 닮은 프랑스의 친구 스테판이 찾아옵니다. 평범한 엄마들은 스테판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이를 학원에 그만 보내지만 피아노 학원에 다니면서 피아노가 치기 싫어서 노래를 부르는 기미에는 스테판을 좋아합니다.

 

행복한 이들의 시간을 지난 후 기미에의 변화와 우울함은 주변 사람들을 위태위태하게 만들지만 정형화된 규칙으로 한 사람을 정의하고 훈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모습은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래도 기미에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모습은 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선을 넘은 것 같기는 한데 말이지요.

 

스테판의 향후 행보의 묘사에서도 작가는 그다지 그런 부분을 생각하진 않는구나 싶어서 시게마츠 기요시 스타일의 전형적인 동화는 아니구나 라고 차이점을 느끼긴 했습니다. (시게마츠 기요시 스타일의 소설은 어딘가 준법정신이 탁월해야할 것 같은 선입견이 제게 있거든요. 모리 에토는 소설로 짐작컨데 잠시의 일탈을 즐기는 캐릭터가 아닐까 싶습니다.)

 

앞의 두 편의 단편과 달리 어떤 계기를 통해서 긍정적인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맘이 바뀌고 결정하는 타이밍만이 나오는 이야기라 좀 다른 면이 있는 소설이긴 합니다. 캐릭터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스토리 자체도 캐릭터와 어울린달까요. 때로는 엉망진창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지만 행복하게 산다면야 그런 면이 어떤가 싶은 부분도 분명 있겠지요.

 

그런 스토리답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 관계인지, 어떤 결심을 했는지 전혀 보여주지는 않지만 각자 성장해간다는 면에서 조금 인상적인 소설이었습니다.

 

"아몬드 초콜릿처럼 살아가래."
아몬드 초콜릿처럼?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말은 슬그머니 내 안으로 들어와 내 마음속 어딘가의 뚜껑을 열었다. 또 그 속에서 또 다른 빛이 뿜어져 나와 다른 무엇인가를 비추었다. 그 빛은 미래의 먼 앞날까지도 비춰 주는 것 같았다.
p. 196

 

아무래도 동화여서 어려운 면은 없긴 하지만 단순한 소설임에도 결말이 궁금해져서 쉽게 읽힙니다. 나쁘진 않지만 극찬할 정도도 아닌 것 같아서 별은 네 개만 매겨봅니다.

 

 

 

 

 

 

책 정보

 

Almond iri Chocolate no Waltz by Eto Mori (1996, 2005)
아몬드 초콜릿 왈츠
지은이 모리 에토
펴낸곳 (주)비룡소
1판 1쇄 찍음 2012년 4월 20일
1판 1쇄 펴냄 2012년 4월 30일
옮긴이 고향옥
디자인 인수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요나라 사요나라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서평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은 노후된 '미즈노사토 주택'이라는 시영 단지의 주민들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자칫 별거없어보이는 한가한 일상처럼 서술되지만 카메라맨들이 누군가를 주시하고 있는 것을 보니 유명인의 이야기나 범죄와 관련된 일이 있어보입니다.

 

기본적인 사건의 틀은 네 살 생일이 갓 지난 다치바나 사토미의 외아들 메구무의 실종입니다. 기자나 경찰이 나오는 점에서 일종의 추리물의 모습을 띄고 있긴 하지만 요시다 슈이치 소설에 익숙한 분이라면 예상하셨듯이 '사건'에 집중하기 보다 등장 인물들의 내면을 파고든 소설을 써내는 그의 취향이 역시 묻어납니다.

 

결국 이야기의 방향은 한 사건에 얽혀 있는 관련 인물들의 내면은 아닙니다. 특정 한 주변인의 과거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고 전혀 상관없는 한 인물이 주인공으로 변화되어 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아이의 실종을 조사하던 기자 와타나베는 몇 가지 상황들을 통해서 무언가 숨겨진 내막을 짐작해내고 조사를 시작합니다. 이런 과정은 범죄자가 또 다른 범죄를 낳았는지에 대해 독자에게 의혹을 제기하게 되긴 하지만 일반적인 추리물이 아닌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인 이상 처음 보여주었던 '사건'의 중심이 다른 쪽으로 옮겨가는 것을 알 수 있지요.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같은 오자키 슌스케와 아내 가나코. 부부의 관계가 뒤틀려있는 와타나베와는 대조적인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이 부부에 대한 과거에는 일종의 내막이 있었습니다. 설마 하고 소설의 처음부터 의심이 되긴 했지만 반전을 그리지 않는 요시다 슈이치 소설답게 추리소설적인 트릭은 나오지 않고 역시 추측했던대로의 그 주요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지요.

 

'스톡홀름 증후군(혹은 리마 신드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질이 인질범에게 동화되어 공격적 태도가 완화되는 현상입니다. 이 소재는 종종 쓰여진 바 있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스톡홀름 증후군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지만 전혀 예상치못했던 비정상적인 관계의 두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나온다는 점은 일맥상통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한 인간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그는 죄를 짓고 용서받을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이 아니라(이런 면은 '악인'과 비슷한 맥락인듯 보입니다.) 상황 속에서 죄를 지었지만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 면을 이해하는 가해자와 그런 본성을 파악한 피해자가 나오는 소설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 피해자가 자기 스스로 가해자와 함께 있는 상황을 선택합니다.

 

물론 소설 속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조했다던가 사건을 용서하거나 그런 형태의 모습으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이 소설 속의 피해자는 당연히 가해자를 미워하고 자신의 인생을 파괴한 그를 증오하는 것으로 짐작되지만 겉으로는 전혀 그런 모습이 그려지지 않고 평범해보입니다.

 

그에게 복수를 감행하는 사건도 잠시 등장하지만 지독하게 악인으로 변신하거나 처절한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인생을 망친 피해자가 복수심에 불타는 악인이 될 수 없는 것인지, 혹은 가해자인 그를 사랑한다던가의 뚜렷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어쩌면 둘 다 제대로 해내지 못한 피해자의 모습을 그렸을지도 모릅니다.

 

피해자인데 마치 가해자인듯 따가운 시선을 받고 인생의 설 곳을 잃은 한 인물, 그 사건을 공유한다는 사실만으로 가해자와 함께 있는 것이 그나마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그녀. 복수를 하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한 그녀의 마음을 누가 한 문장으로 정의해서 단정지을 수 있었을까요.

 

'복수심에 불타 그간 연기를 했던 가해자였다.'라는 한 문장으로 설명될 수 있는 소설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생각이나 결정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요시다 슈이치는 그려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누군가에 의해 마음을 짓밟혔지만 그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마음을 짓밟힌 한 인물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는 자신이 놓이지 않은 상황에 안도하며 누군가에게 이런 잔인함을 보인 것은 아닐까란 생각을 해봅니다.
 
쉽지 않은 소재이지만 단순 명쾌한 답으로 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 수 많은 생각들로 가슴이 일렁이게 써내려간 요시다 슈이치의 '사요나라 사요나라'. 다시 한번 요시다 슈이치란 소설가에 대해 감탄을 하게 되었습니다.

 

 

 

 

 

 

 

책 정보

 

Sayonara Keikoku by Shuichi Yoshida (2008)
사요나라 사요나라
지은이 요시다 슈이치
임프린트 노블마인 (웅진씽크빅)
초판 1쇄 발행 2009년 1월 20일
초판 5쇄 발행 2009년 5월 15일
옮긴이 이영미
북디자인 오필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라색 위크엔드 - 18세 가을 스기하라 사야카 시리즈 4
아카가와 지로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서평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이 소설은 아카가와 지로의 스기하라 사야카 시리즈 4편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15세를 시작으로 '스기하라 사야카'라는 주인공의 성장과 함께 매년 9월마다 책이 나오는 독특한 컨셉입니다. 정통 추리물이라기보다는 아카가와 지로의 작풍답게 엔터테인먼트적인 라이트 추리물 정도에 속합니다.

 

하지만 10대 소녀가 추리하는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컨셉이기에 라이트 추리물이라고 단정짓기에는 조금 무거운 사건들을 다루기도 합니다. 3편에서는 조금 실망을 했었는데 4편은 전작의 느낌이 돌아온 것과 3편의 무거움이 함께 가는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대입을 앞둔 여고생의 모습이 마냥 밝기만할 수 없으니까요.

 

진로를 앞두고 친구에게 영향을 받은 느낌은 3편과 비슷합니다. 제목은 색 이름 + 외래어로 구성되고 있는데 늘 제목이 주요한 매개체가 되는 물건이었다면 이번에는 감정적인 느낌입니다. 따로 내용상 드러나지는 않구요. 좀 포괄적입니다. 앞서 설명한 느낌과 제목 역시 동일합니다.

 

그런 '바이올렛스러운' 느낌이 깔려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사건이 통일감을 갖췄달지 그런 면에선 3편을 제외한 1, 2편이 많이 떠오릅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1, 2편에서 사야카가 밝았던 것이지 사건 자체는 무거운 것을 볼 때 4편은 사야카는 어둡지만 사건은 그리 무겁지만은 않습니다. 물론 살인은 등장하지만요.

 

이번 이야기 속에서도 교코의 방황은 계속 됩니다. 새로운 만남이 의대 대입을 앞둔 교코에게 갈등의 요소가 됩니다. 그리고 사야카는 언제나 밝을 줄 알았지만 아버지의 병환, 오빠의 무관심, 남자친구 엄마의 반대로 인해서 밝은 모습은 그리 나오지 않습니다. 성장의 과정을 보여주기 위한 모습인 것 같지만 조금 아쉬운 면은 있네요. 밝지만 반면 놀라울 정도의 직관을 지니고 있는 양면의 소녀라는 그 간극이 참 좋았는데 말이죠. 그리고 여전히 사야카의 중학교 선생님인 기누코와 형사 가와무라는 결혼을 하지 못한 채로 있습니다.

 

사야카는 현명하고 똑똑해서 꽤 우수한 성적의 학생일 줄 알았는데 중간 정도의 성적으로 고등학교와 같은 재단의 대학으로 진학을 결정했습니다. 반면 수재였던 교코는 의대 입학을 목표로 진학반에 들어가 둘은 자주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키오의 어머니의 반대로 자주 보지 못하고 갑자기 아버지가 쓰러지는 등 사야카는 3편과는 또 다른 걱정 속에 있습니다.

 

교코가 새로운 남자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고 알게 되는데 그 남자의 소문이 좋지 않습니다. 이외 별개로 부인이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사카이의 이야기도 번갈아가며 진행됩니다.

 

이번 이야기에서 통일감을 느낀 것은 주제가 명확한 점 때문입니다. 누구의 입장에서 봐도 주요한 포인트가 되는 것은 '관계'입니다. '어느 한 사람의 그 자체의 모습이 아니라 제 3자가 오해하고 있는 모습'이랄까요.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던 편이었습니다.

 

이제는 가족이 아닌 것 같이 변해버린 오빠에 대한 걱정과 아키와의 엄마 때문에 고민인 사야카. 부모님을 생각해야하는 기누코 선생님이나 아키오. 여자친구의 아버지가 고민인 가와무라. 자신의 앞날을 위해 타인이 오해할만한 행동을 삼가해야하는 교코. 전혀 몰랐던 부인의 일면을 보게된 사카이. 누구도 진정으로 만나지 못하는 다다노까지.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 서로에 대해 판단하는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을 거쳐서 제 3자가 된 누군가를 통해 듣게 되는 소문이나 오해 덕분에 자신의 평가가 엇갈리게 되고 또 다른 오해를 낳게되는 것이 이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의 관계란 기묘합니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 아무 문제없이 지낼 수 있어도 그 곳에 또 다른 한 사람이 끼어들면 잔잔한 호수에 거침없이 던져진 돌멩이 한 조각처럼 오래도록 파문을 낳고 하니까요.

 

물론 그러한 파문은 단순한 악의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같은 마음의 세 사람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둘 중 한 사람을 더 중시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겠지요. 이 판단이 다른 누군가에게로 옮겨가게되면 관계는 또 변화하기 마련이겠지요.

 

무엇이 진실이고 어떤 선택이 옳다는 단순한 결론보다는 사람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소설이었습니다. 무겁고 어려운 소설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가볍기만한 여운을 주지 않는 것이 아카가와 지로의 소설이고 오래 사랑받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네요. 19세는 사야카의 대학 생활이 펼쳐질 것 같아서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됩니다.

 

 

 

 

 

 

 

책 정보

 

Usumuraski no Weekend by Jiro Akagawa (1991)

보라색 위크엔드

스기하라 사야카 18세 가을

지은이 아카가와 지로

펴낸곳 씨엘북스

초판 1쇄 찍음 2013년 1월 05일

초판 1쇄 펴냄 2013년 1월 12일

옮긴이 한성례

디자인 enter design

일러스트 www.yuhaillust.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숭이와 게의 전쟁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서평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3년만의 장편 소설을 출간한 요시다 슈이치. 문학계 신인상, 야마모토 슈고로상, 아쿠타가와상 등의 수상 작품들의 작가이며 드라마나 영화화된 작품들의 원작 작가. 그의 이름은 몰라도 영화 '악인'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작가입니다. 작품에 간간히 한국인이나 한국 관련 이야기가 등장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요.

 

이 소설의 원제는 '헤이세이 원숭이와 게 교전도'로 어미 게를 속이고 죽인 원숭이에게 새끼 게들이 앙갚음을 한다는 전래동화를 모티프로하는 현대판 리메이크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렇고 일본도 비슷한 시기에 대선을 치뤘기 때문에 조금 더 연관성을 느낄 법한 정치와 관련된 일화도 있습니다. 보잘것없이 평범한 몇 사람의 힘이 모여 목적한 바를 이루고 각자의 행복한 인생을 살아간다는 조금은 동화같은 이야기이지요.

 

이런 형태가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이 종종 쓰여진 방식이긴 합니다. 너무 동화적인 결말이랄까 그렇습니다. 최근 일본 내에서 부는 힐링이랄지 위로를 하는 동화같은 소설이랄지, 그런 붐에 편승해서 역시 그런 류의 소설이라고 상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마지마 미쓰키가 남편을 찾아 도쿄로 상경하는 부분부터 시작됩니다. 나가사키의 고토후쿠에지마라는 섬을 떠나 연락이 끊긴 남편 마지마 도모키를 찾아나섭니다. 그러다가 도모키를 아는 하마모토 준페이를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그는 가부키초의 한국 술집 '란'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습니다.

 

기존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읽어온 독자라면 이런 도입부에서 분명 미쓰키와 준페이는 파경을 맞는다던가 이상한 일에 휘말리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갖고 있을 것 같습니다. 선입견일지는 모르겠지만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들은 대부분 어딘가 불안하고 어긋난 관계를 많이 그려왔기 때문일 것 같은데요. 전혀 그런 류의 소설은 아니더라구요.

 

그리고 한편 준페이는 뺑소니를 목격하게 되는데 그 때의 범인과 자수를 한 범인이 다름을 알고 돈을 마련하기 위한 범행을 꾸미게 됩니다. 이 부분에서는 미치오 슈스케의 '까마귀와 엄지'가 떠오르기도 하더라구요. 어딘가 허술한 범죄랄까요.

 

준페이가 일하는 술집의 마담 '미키'와 단골 손님이자 미키를 좋아하는 야쿠자 출신의고사카 다쓰야도 주요 인물입니다. 준페이와 도모키가 협박하려는 뺑소니 범인 가족들의 이야기도 등장하면서 1막이 마무리됩니다. 2막에서는 뺑소니 범인을 협박하는 이야기는 이어지지만 예상 밖으로 전혀 다른 전개를 통해 각 인물들이 연결됩니다.

 

단순히 돈만 좀 원했던 두 사람의 예상과 달리 정보를 원하는 과정에서 야쿠자와 관련된 일이 생기게되고 등장 인물들이 알지 못하는 어떤 사건에 연루되게 되면서 상황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게됩니다. 3막에서는 그런 상대에 대항해서 엉뚱하게 정치에 입문하게 되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대단한 인물을 그린다던가 정치에 대한 어떤 큰 이념을 가지고 진행되는 소설은 아닙니다. 단지 각 사람의 행복이 더 중시되고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이럴바엔 후보가 되어 맞불을 놓자는 조금 황당한 의도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시종일관 즐겁고 소박한 작은 도시의 사람들을 그려내며 그들의 작은 힘이 모여 행복감을 얻게되는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소박하기만한 소재는 아닙니다. 호스트, 마담, 야쿠자, 뺑소니 범인, 복수, 협박, 피의자 가족, 피해자 가족, 정치 비리, 살인 등이 모조리 나오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악인'에서 작가가 그려냈던 묵직한 분위기와는 달리 이런 상황 속에서도 밝은 모습을 잃지 말자는 희망의 메시지가 느껴질 정도로 밝은 작품이랄까요.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권력에 대항하는 정치 이야기는 이사카 코타로의 '마왕', '모던 타임스'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많은 인물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그려냈고 그들이 함께 즐거움을 찾아내는 이야기가 나쁘진 않았지만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읽어온 팬으로써는 조금 의아하기도 한 소설이었습니다. '워터'라던가 몇 작품 속에서 분명 밝은 모습을 보여준 작가이긴 했지만 그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느껴지는 '섬세한 불안감'을 상당히 가볍게 표현해놓은 점 때문입니다.

 

호스트와 야쿠자가 나오면서도 선거에 이길 수 있는 이야기가 좀 가볍기도 하고 동화적인 느낌도 들어서 별을 매기는데 상당한 고심을 했는데요. 재미있게 읽었고 소설 자체의 완성도 문제는 아니니 그냥 다섯 개를 매깁니다. 요시다 슈이치의 그런 불안감이 그 작가의 색깔이라고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만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보시는게 어떨까 덧붙여봅니다.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고사카의 웃음소리를 듣자, 어쩌면 그도 자기랑 똑같이 준페이에게 뭔가를 걸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키와 마찬가지로 어디선가 잘못 디뎌 버린 자기 인생을 준페이의 승리로 보상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이미 바랄 수도 없게 된 평범한 삶에 대한 꿈을 다시 한 번 꿀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가 있을지도 모른다. (p. 501)

 

 

 

 

책 정보

 

Heiseisarukanikatsenzu by Shuichi Yoshida (2011)

원숭이와 게의 전쟁

지은이 요시다 슈이치

옮긴이 이영미

도서출판 은행나무

1판 1쇄 인쇄 2012년 12월 12일

1판 1쇄 발행 2012년 12월 19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따뜻함을 드세요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서평

 

영화화도 된 '달팽이 식당'의 저자 오가와 이토의 또 다른 음식 소설입니다. 그녀의 네 번째 장편소설 '쓰루카메 조산원'도 드라마화되었습니다. 요리에 관한 조예도 깊을 것같은 저자는 무척이나 아름답게 음식에 대한 묘사를 하는 작가입니다. 

 

'달팽이 식당'이 아름다운 동화로 기억되긴 하지만 링고가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계기라던가 아버지에 대한 것이라던가 그리 동화스러운 이야기만은 아니었지요. 오가와 이토의 다른 소설들 속에서 그런 경향이 드러나버리면 좀 읽고싶어지지 않아지는 면이 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이 '따뜻함을 드세요'는 중간 정도 되는 소설이지 않나 싶습니다.

 

제목과 달리 '음식'만을 소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과 죽음'을 소재로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각 단편 속에서 죽음이 많이 등장합니다. 물론 삶은 죽음으로 이어져있고 죽음이 순차적으로 진행되지 않듯 언제나 접할 수 있겠지만 지나칠 정도로 지속적으로 등장하더라구요.

 

역자의 말까지 161페이지 밖에 안되는 짧은 소설입니다. 거기에 총 7편의 단편이 들어있으니 아주 짧은 소설들입니다. 기억을 잃은 할머니의 마지막 음식, 손녀가 떠올린 지난 추억의 빙수. 천연 얼음을 사용해서 할머니가 무척 마음에 들어했던 그 빙수를 사러가는 소녀의 모습을 그린 '할머니의 빙수'.

 

어릴 때 미식가인 아버지로 부터 전수받은 식당들을 소개하는 요코하마에서의 커플의 이야기를 그린 '아버지의 삼겹살 덮밥', 마흔 살의 생일을 앞두고 이별과 송이 버섯 요리를 함께 하는 이야기를 그린 '안녕, 송이버섯', 결혼 전 마지막 된장국을 아빠에게 끓여주는 이야기를 그린 '코짱의 된장국', 예전을 회상하며 기념일에 크로켓을 먹으러 가는 '그리운 하트콜로릿', 돼지와 살고 있는 남자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만찬 이야기를 그린 '폴크의 만찬', 돌아가신 아빠를 엄마와 함께 기리며 '때아닌 계절에 기리탄포'.

 

이렇게 일곱 가지 이야기입니다. 죽음을 앞둔 할머니, 급사한 남자 친구, 엄마가 죽기 전에 알려준 된장국,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는 할머니, 죽기로 작정하고 마지막 만찬을, 아빠가 죽은 후 먹고 싶어하시던 음식을 함께 먹는 이야기까지 한편을 제외하고는 전부 죽음과 긴밀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 한편 마저도 인연이 끝났다는 점에서 혹은 죽을 때까지 함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죽음과 닿아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컨셉인 것인지, 이렇게까지 죽음에 연연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삶이 죽음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야 먹고 사는 이 삶을 더 중시하고자 하는 마음은 생깁니다. 이런 불만을 덮어두고라도 이 소설이 탁월한 점은 역시 오가와 이토가 표현해내는 요리, 식사에 관한 아름다운 묘사 그 자체에 대한 점이 아닐까 싶네요.

 

미식이라할 법한 대단한 만찬을 바라게되다가도 지금 먹는 이 음식 자체의 맛을 기쁘게 느끼고 소중하게 표현하면 어떨까란 생각도 하게 됩니다. '심야식당', '고독한 미식가', '달팽이 식당', '카모메 식당' 등과 함께 배고플 땐 보면 안되는 소설이 아닐까 싶네요.

 

 

 

 

 

 

책 정보

 

Atsu Atsu o Meshiagare by Ito Ogawa (2011)

따뜻함을 드세요

지은이 오가와 이토

펴낸곳 (주)미래엔

초판 1쇄 인쇄 2012년 8월 8일

초판 1쇄 발행 2012년 8월 17일

옮긴이 권남희

디자인 김지혜, 김아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