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요나라 사요나라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서평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은 노후된 '미즈노사토 주택'이라는 시영 단지의 주민들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자칫 별거없어보이는 한가한 일상처럼 서술되지만 카메라맨들이 누군가를 주시하고 있는 것을 보니 유명인의 이야기나 범죄와 관련된 일이 있어보입니다.

 

기본적인 사건의 틀은 네 살 생일이 갓 지난 다치바나 사토미의 외아들 메구무의 실종입니다. 기자나 경찰이 나오는 점에서 일종의 추리물의 모습을 띄고 있긴 하지만 요시다 슈이치 소설에 익숙한 분이라면 예상하셨듯이 '사건'에 집중하기 보다 등장 인물들의 내면을 파고든 소설을 써내는 그의 취향이 역시 묻어납니다.

 

결국 이야기의 방향은 한 사건에 얽혀 있는 관련 인물들의 내면은 아닙니다. 특정 한 주변인의 과거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고 전혀 상관없는 한 인물이 주인공으로 변화되어 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아이의 실종을 조사하던 기자 와타나베는 몇 가지 상황들을 통해서 무언가 숨겨진 내막을 짐작해내고 조사를 시작합니다. 이런 과정은 범죄자가 또 다른 범죄를 낳았는지에 대해 독자에게 의혹을 제기하게 되긴 하지만 일반적인 추리물이 아닌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인 이상 처음 보여주었던 '사건'의 중심이 다른 쪽으로 옮겨가는 것을 알 수 있지요.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같은 오자키 슌스케와 아내 가나코. 부부의 관계가 뒤틀려있는 와타나베와는 대조적인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이 부부에 대한 과거에는 일종의 내막이 있었습니다. 설마 하고 소설의 처음부터 의심이 되긴 했지만 반전을 그리지 않는 요시다 슈이치 소설답게 추리소설적인 트릭은 나오지 않고 역시 추측했던대로의 그 주요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지요.

 

'스톡홀름 증후군(혹은 리마 신드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질이 인질범에게 동화되어 공격적 태도가 완화되는 현상입니다. 이 소재는 종종 쓰여진 바 있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스톡홀름 증후군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지만 전혀 예상치못했던 비정상적인 관계의 두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나온다는 점은 일맥상통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한 인간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그는 죄를 짓고 용서받을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이 아니라(이런 면은 '악인'과 비슷한 맥락인듯 보입니다.) 상황 속에서 죄를 지었지만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 면을 이해하는 가해자와 그런 본성을 파악한 피해자가 나오는 소설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 피해자가 자기 스스로 가해자와 함께 있는 상황을 선택합니다.

 

물론 소설 속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조했다던가 사건을 용서하거나 그런 형태의 모습으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이 소설 속의 피해자는 당연히 가해자를 미워하고 자신의 인생을 파괴한 그를 증오하는 것으로 짐작되지만 겉으로는 전혀 그런 모습이 그려지지 않고 평범해보입니다.

 

그에게 복수를 감행하는 사건도 잠시 등장하지만 지독하게 악인으로 변신하거나 처절한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인생을 망친 피해자가 복수심에 불타는 악인이 될 수 없는 것인지, 혹은 가해자인 그를 사랑한다던가의 뚜렷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어쩌면 둘 다 제대로 해내지 못한 피해자의 모습을 그렸을지도 모릅니다.

 

피해자인데 마치 가해자인듯 따가운 시선을 받고 인생의 설 곳을 잃은 한 인물, 그 사건을 공유한다는 사실만으로 가해자와 함께 있는 것이 그나마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그녀. 복수를 하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한 그녀의 마음을 누가 한 문장으로 정의해서 단정지을 수 있었을까요.

 

'복수심에 불타 그간 연기를 했던 가해자였다.'라는 한 문장으로 설명될 수 있는 소설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생각이나 결정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요시다 슈이치는 그려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누군가에 의해 마음을 짓밟혔지만 그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마음을 짓밟힌 한 인물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는 자신이 놓이지 않은 상황에 안도하며 누군가에게 이런 잔인함을 보인 것은 아닐까란 생각을 해봅니다.
 
쉽지 않은 소재이지만 단순 명쾌한 답으로 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 수 많은 생각들로 가슴이 일렁이게 써내려간 요시다 슈이치의 '사요나라 사요나라'. 다시 한번 요시다 슈이치란 소설가에 대해 감탄을 하게 되었습니다.

 

 

 

 

 

 

 

책 정보

 

Sayonara Keikoku by Shuichi Yoshida (2008)
사요나라 사요나라
지은이 요시다 슈이치
임프린트 노블마인 (웅진씽크빅)
초판 1쇄 발행 2009년 1월 20일
초판 5쇄 발행 2009년 5월 15일
옮긴이 이영미
북디자인 오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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