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이들의 고통과 죄책감!

모방범 1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0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7월

미야베 미유키의 대표작! 

 
도쿄의 오가와 공원에서 어느 날 여자의 잘린 팔이 쓰레기통에서 발견된다. 팔의 주인을 찾는 과정에서 방송국으로 범인으로 생각되는 한 사내의 전화가 걸려온다. 물론 변조된 목소리였다. 누군지 궁금해죽겠지? 하며 조롱하듯 걸려온 전화. 혹시 자신의 아이가 살해된 건 아닐까 조바심 내며 걱정하던 가족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 팔과 함께 발견된 핸드백. 핸드백의 주인은 후루카와 마리코라는 사회 초년생의 것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심리적 장애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은 정신이 무너지게 된다. 

범인에게 온갖 조롱을 당하면서도 손녀는 살아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아리마 요시오 할어버지에게 손녀의 시체가 발견된다. 자신의 가족들에게 고통을 주고, 무너뜨렸던 범인.
그런데 그 범인들(방송국 사건으로 공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이 발견된다. 그것도 주검으로. 하지만 그들이 진짜 범인일까?

작품 내에 등장하는 수많은 피해자, 유족, 그리고 범인으로 의심되는 용의자, 사건의 실마리를 쫓는 경찰, 그리고 목격자인 신이치와 기자 시게코까지. 그럼에도 각각의 인물들은 연결되어 있으며, 사건의 실마리를 해결하는 데 단서가 되고 있다. 

남겨진 이들의 고통과 죄책감!
 

『모방범』은 분량에서도 다른 작품들을 압도한다. 세 권으로 이루어진데다 각권이 약 550페이지 정도이니 할 말 다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6관왕에 빛나는, 그야말로 미야베 미유키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평론가들에게는 호오가 갈리기도 하지만, 이 작품이 가치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 없으리라.

인간으로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 범인이 벌이는 끔찍한 살인사건. 하지만 그는 그것을 범죄라 생각하지 않았다. 즐기면서 범행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남겨진 이들, 유족들은 어찌할 것인가. 후회와 자기 혐오, 그리고 자책으로 뒤덮인 유족들. 그들은 자신들이 지켜주지 못했기에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한다. 살인사건으로 사회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났는지, 다시는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뿐이다. 그 속에는 피해자 유족들의 자리는 없는 것이다.

토막난 시체로 돌아온 딸의 모습을 보고 그는 누구를 저주할 것 같아? 범인일까? 아니면 자기 자신일까? 불륜에 빠져 딸을 지켜주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비참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고, 스스로를 책망하지 않을까?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제 손으로 범인을 잡고 말겠다는 집념을 불태우지 않을까? 또는 자기 혐오와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미쳐버리거나 자살을 시도하거나 하지 않을까?

그들의 고통과 죄책감이 담겨 있는 『모방범』. 인간이 저지르는 범죄 중에서 '살인'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가를 알려주는 작품이었다. 

지구에서 살아간다는 황홀한 환상!

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가본 적이 있나요?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다고, 또 좋은 성적으로 부모님의 기대를 한껏 부풀게 만들었던 주인공 '나'는 이상하게도 취업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저 죽고 싶을 뿐이었다. 소심함에 강력한 수면제는 사지 못하고, 약한 효과를 내는 수면제 200알을 놓고 배부를 것 같아 죽음을 미루는, 조금은 우리의 모습을 닮은 평범한 친구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날 할머니가 15년 전에 소식이 끊긴 고모 이야기를 꺼내며 그녀가 'NASA'의 우주비행사라는 사실을 들려준다. 그리고 만나고 오라는 할머니의 말에, 취업도 제대로 되지 않던 차 기분을 새롭게 하기 위해 단짝 친구인 '민이'와 미국으로 향하게 된다.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가본 적 있어요? 그건 사실 끔찍하리만치 실망스러운 일이에요. 희미하게 반짝거렸던 것들이 주름과 악취로 번들거리면서 또렷하게 다가온다면 누군들 절망하지 않겠어요. 세상은 언제나 내가 그린 그림보다 멋이 떨어지죠. 현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일찍 인정하지 않으면 사는 것은 상처의 연속일 거예요. 나중엔 꿈꿨던 일조차 머쓱해지고 말걸요. 

지구에서 살아간다는 황홀한 환상!


실망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아둥바둥하던 사람들, 하지만 그 사람끼리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는 모습에서 우리는 삶의 '긍정'을 느끼게 된다. 즉 지구에서 살아간다는 삶 자체가 너무나도 황홀한 환상이라는 '사실' 말이다.

사실은 고모가 '우주 비행사'가 아니었다는 사실, 그리고 나 또한 취업 시험에 꼭 붙어야 한다는, 강박증에 걸린 듯 삶의 목표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했던 삶 속에서 '신기루'만을 좇지 않았나 생각하게 한다. 친구인 민이도 한국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자신의 정체성이 미국에서는 해방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왔지만, 결국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계절이 바뀔 무렵 내 머리에서는 솜털 같은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화장실에서 거울을 바라보다가 정수리 부분에 자그마하게 일어난 머리털들을 발견했다. 꼭 어린아이의 것처럼 부드럽고 약한 모발이었다. 밤에 자리에 누우면 나는 손을 올려서 그 잔머리들을 쓰다듬곤 했다. 간질간질한 기분과 함께 졸음이 오면 기분 좋은 꿈을 꿀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끊임없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이 둥글고 환한 지구에서 살아가는 꿈이었다. 
 

『달의 바다』는 지금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결코 우울하거나, 슬프다거나 하지 않다는 사실을 유쾌하고 따듯하게 그려내고 있다. 지구에서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축복받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나쁘지 않아, 지금의 나도."

혼자라서 느끼는 '나'라는 존재!

혼자 있기 좋은 날 - 제136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
아오야마 나나에 지음, 정유리 옮김 / 이레 / 2007년 8월

혼자라서 느끼는 '나'라는 존재!
 

20세의 치즈. 공부는 하기 싫지만, 언제까지 엄마와 함께 살며 빚지는 기분을 느끼기는 싫다. 하루빨리 집에서 벗어나 내 손으로 벌어먹으며 살고 싶다. 그런 그녀에게 기회가 왔다. 도쿄에 사는 엄마의 지인(이라기보다는 먼 친척) 깅코 할머니가 자신과 사는 것을 흔쾌히 허락해준 것이다. 할머니라 따분할 것 같지만, 엄마도 곧 외국으로 나가고 이런 기회는 다시없을 테니까. 

자꾸만 틀어지는 남자친구와의 관계, 전철을 타고 바쁘게 살아가는 직장인들을 부러워하는 마음…… 치즈는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제대로 살아가는 것인지 궁금하다. 내세울 것이라고는 젊음밖에 없는 치즈는 때때로 심술궂게 피부를 자랑해가며 깅코에게 버릇없이 굴기도 하지만, 그런 혼란한 시기를 겪었을 71세의 깅코는 유유자적하고 태평하기만 하다. 나이가 들면 저렇게 되는 걸까? 치즈는 깅코의 나이로 텔레포트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한다. 
 

제대로 된 생활 같은 거,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내게는 불가능할 것 같다. 손에 넣었다가는 내팽개치고, 내팽개쳐지고, 정작 내팽개치고 싶은 것들은 언제까지고 떨쳐버리지 못하고, 내 인생은 온통 그런 일들뿐이다.  

 

"미래는 없어도 시작하는 건 자유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사회로 내딛는 시기'가 다가온다. 이제 깅코와의 생활도 떠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하지만 그녀와의 이별은 생각보다 어렵다.
"할머니, 저 이대로 좋을까요? 세상 밖은 험난하겠죠? 저 같은 건 금방 낙오되고 말겠죠?"
그런 그녀의 물음에 깅코는 한마디로 일축한다. 지금 네가 살아가는 세상도 세상이라고, 세상에 안과 밖은 없는 거라고.
 

저쪽도 내게 마음이 있는 건지 모르지만, 아무리 허둥대도, 걱정해도, 기대해도, 어차피 다 제 갈 데로 흘러가겠지. …… 미래가 없어도 끝이 보여도 어쨌든 시작하는 건 자유다. 이제 곧 봄이니까 다소 무책임해지더라도 용서해주자.

엄마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했던 깅코 할머니와의 생활. 물론 완전한 독립은 할 수 없었지만, 그간 괴로웠던 마음, 안달복달했던 치즈는 할머니와의 생활로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그냥 물흐르는 대로 내버려두자. 그것이 설령 무책임하더라도……. 

자립을 위해 사회로 내딛는 치즈의 첫걸음. 그것은 어떠한 모습일까?
그것은 그저 치즈처럼 물흐르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까…….

 

숨막히게 쫓고 쫓기는 처절한 사투!

그레이브 디거 ㅣ 밀리언셀러 클럽 66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전새롬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6월

숨막히게 쫓고 쫓기는 처절한 사투!

야가미 도시히코. 32세의 남자. 어렸을 때부터 고생을 해온 탓에 10년 이상은 나이들어 보이는 외모. 못된 짓은 다 저지르고 다녔던 그였지만 이상하게도 예전에 벌였던 사기, 청소년들의 꿈을 짓밟은 짓은 아직까지도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그런 그에게 갱생의 기회가 찾아왔다. 혹시 몰라 등록시켜놓았던 '골수 기증'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나로 인해 그 사람이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다니. 이보다 더 멋진 일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이거 좋은 일 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돈 좀 꿔보려는 생각에 들렀던 지인의 집. 그러나 그 친구는 욕조 속에 삶아진 채 죽어 있었다. 게다가 뒤이어 들어오는 낯선 이들. 이러다 내가 범인으로 몰리겠는데, 영문도 모른 채 달아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일은 시작일 뿐이었다. 야가미의 바람은 오로지 '그 사람'을 위해 무사히 병원에 도착하는 것뿐인데.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런 짓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했다. 속죄를 위해서? 거짓 오디션으로 아이들 마음에 상처 준 게 후회가 되어서?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신이 도우려는 상대는 약한 어린아이가 아니던가? 본인의 책임이 아닌 불행에 시달려 상처받고 무릎을 끌어안고 울 수밖에 없는 가여운 어린아이. 그것은 바로 자신의 과거의 모습이었다. …… 친부모의 폭행에 의해 너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말만 듣고 자란 자신이, 자존심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
  

무덤을 파는 자라는 뜻의 그레이브 디거Grave Digger는 중세유럽의 전설에 등장하는 암살자이다. 마녀재판과 똑같은 고문방법으로 살해하는 그레이브 디거. 그런데 이자가 현대의 일본에 다시 등장하다니. 그것도 너무나도 잔인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죽이면서 말이다. 도대체 야가미와 '그레이브 디거'는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그레이브 디거』는 알 수 없는 범죄의 손길, 의문의 살인사건, 그리고 착하게 갱생하려는 야가미, 사건을 해결하려는 수사관과의 관계를 일본의 도쿄, 그리고 24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에 브레이크 없는 버스에 올라탄 '스피드'처럼 순식간에 읽어내려가게 한다.
갑자기 착해지겠다는 악당 야가미의 모습에 조금은 감정이입이 힘들 수도 있겠으나, 착한 사람 악한 사람이 따로 나누어지지 않았다는, 인간은 누구나 착해지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리 이상할 법도 없다.
저자의 전작 『13계단』에서도 그랬지만, 인간은 누구나 착하다는 '성선설'을 다카노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느님, 꼭 그 아이를 살려주세요. 이식을 성공시켜주세요. 아무 잘못도 없는 어리고 순수한 생명을 빼앗아가지 마세요.
무엇 하나 보답받지 못한 인생에서 처음으로 야가미의 마음이 희망으로 가득찼다. 자신만의 신, 자신의 선한 마음이 만들어낸 신에게 악당은 열심히 기도를 올렸다.
 

죽을 뻔했던 처절한 사투를 겪고 자신의 골수를 이식받고 새로운 삶을 받을 아이를 위해 병원에 무사히 도착했지만, 그 모든 것은 나를 위한 것이었다. 야가미가 아이에게 새로운 삶을 선사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야가미에게 새로운 삶을 주는 것일 테니까.

혼란스러운 사춘기를 아름답게 그린 수작!

안녕, 그저께
이토 타카미 지음, 강라현 옮김 / 달리 / 2007년 6월

혼란스러운 사춘기를 아름답게 그린 수작!

 
뭐든지 눈물이 나고 고민이 많은 시기. '사춘기', 이 시기를 거치지 않고는 '성인'으로 가는 길을 걸을 수 없다. 스스로는 어른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한참은 어린이인 이 시기의 혼란스러움을 『안녕, 그저께』는 쌍둥이 남매 미카와 유스케를 통해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쌍둥이이면서도 성격은 판이한 미카와 유스케. 미카는 여자아이지만, 자신이 남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말괄량이 아가씨다. 그에 반해 유스케는 자신의 쌍둥이 누이를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그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섬세하고 침착한 성격의 남자아이다. 그런데 이들 남매에게는 둘만의 비밀이 있다. 바로 '그저께'라는 동물이다.
그저께는 무슨 동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흘리는 눈물을 받아먹고 커지는 '그저께'를 보고 눈물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 믿게 된다. 하지만 '사춘기' 시기의 이 아이들에게는 '눈물' 흘릴 일이 많다. 친구와의 관계, 부모의 이혼, 그리고 사랑.

사춘기를 혹독하게 겪어낸 뒤 다가오는 어른의 느낌이란 어떤 것일까?
홍수로 인해 떠내려가버린 '그저께'. 하지만 그저께가 없어져버린 뒤, 아이러니하게도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눈물로 커버린 미카의 일부가 새로운 미카가 되어, 모레의 미카로 태어나버린 듯하다. 실컷 울고 나서 한층 성숙해버린 아이들.

 
"괜찮아, 괜찮아. 아이들에게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어. 그러니까 나도 행복해질 거야."
그 말대로다.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 미카는 점점 행복해질 것이다. 그것이 행복해질 권리를 누리는 방법이니까. 하지만 정확하게는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그런 권리를?갖고 있다. 단지 그 사실을 모를 뿐이다. 그러니까 모두 걱정하지 마시길.

 
조금조금씩 변해가던 우리들의 모습. 사춘기라는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로 인해 성숙해진 우리. 그 시기가 없었다면 어른이 된 지금의 모습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잊혀져버린 그 시기를 '그저께'가 안내하는 시간여행으로 떠올릴 수 있었다.

"안녕, 나의 그저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