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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가본 적이 있나요?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다고, 또 좋은 성적으로 부모님의 기대를 한껏 부풀게 만들었던 주인공 '나'는 이상하게도 취업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저 죽고 싶을 뿐이었다. 소심함에 강력한 수면제는 사지 못하고, 약한 효과를 내는 수면제 200알을 놓고 배부를 것 같아 죽음을 미루는, 조금은 우리의 모습을 닮은 평범한 친구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날 할머니가 15년 전에 소식이 끊긴 고모 이야기를 꺼내며 그녀가 'NASA'의 우주비행사라는 사실을 들려준다. 그리고 만나고 오라는 할머니의 말에, 취업도 제대로 되지 않던 차 기분을 새롭게 하기 위해 단짝 친구인 '민이'와 미국으로 향하게 된다.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가본 적 있어요? 그건 사실 끔찍하리만치 실망스러운 일이에요. 희미하게 반짝거렸던 것들이 주름과 악취로 번들거리면서 또렷하게 다가온다면 누군들 절망하지 않겠어요. 세상은 언제나 내가 그린 그림보다 멋이 떨어지죠. 현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일찍 인정하지 않으면 사는 것은 상처의 연속일 거예요. 나중엔 꿈꿨던 일조차 머쓱해지고 말걸요.
지구에서 살아간다는 황홀한 환상!
실망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아둥바둥하던 사람들, 하지만 그 사람끼리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는 모습에서 우리는 삶의 '긍정'을 느끼게 된다. 즉 지구에서 살아간다는 삶 자체가 너무나도 황홀한 환상이라는 '사실' 말이다.
사실은 고모가 '우주 비행사'가 아니었다는 사실, 그리고 나 또한 취업 시험에 꼭 붙어야 한다는, 강박증에 걸린 듯 삶의 목표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했던 삶 속에서 '신기루'만을 좇지 않았나 생각하게 한다. 친구인 민이도 한국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자신의 정체성이 미국에서는 해방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왔지만, 결국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계절이 바뀔 무렵 내 머리에서는 솜털 같은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화장실에서 거울을 바라보다가 정수리 부분에 자그마하게 일어난 머리털들을 발견했다. 꼭 어린아이의 것처럼 부드럽고 약한 모발이었다. 밤에 자리에 누우면 나는 손을 올려서 그 잔머리들을 쓰다듬곤 했다. 간질간질한 기분과 함께 졸음이 오면 기분 좋은 꿈을 꿀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끊임없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이 둥글고 환한 지구에서 살아가는 꿈이었다.
『달의 바다』는 지금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결코 우울하거나, 슬프다거나 하지 않다는 사실을 유쾌하고 따듯하게 그려내고 있다. 지구에서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축복받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나쁘지 않아, 지금의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