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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브 디거 ㅣ 밀리언셀러 클럽 66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전새롬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6월
평점 :
숨막히게 쫓고 쫓기는 처절한 사투!
야가미 도시히코. 32세의 남자. 어렸을 때부터 고생을 해온 탓에 10년 이상은 나이들어 보이는 외모. 못된 짓은 다 저지르고 다녔던 그였지만 이상하게도 예전에 벌였던 사기, 청소년들의 꿈을 짓밟은 짓은 아직까지도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그런 그에게 갱생의 기회가 찾아왔다. 혹시 몰라 등록시켜놓았던 '골수 기증'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나로 인해 그 사람이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다니. 이보다 더 멋진 일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이거 좋은 일 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돈 좀 꿔보려는 생각에 들렀던 지인의 집. 그러나 그 친구는 욕조 속에 삶아진 채 죽어 있었다. 게다가 뒤이어 들어오는 낯선 이들. 이러다 내가 범인으로 몰리겠는데, 영문도 모른 채 달아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일은 시작일 뿐이었다. 야가미의 바람은 오로지 '그 사람'을 위해 무사히 병원에 도착하는 것뿐인데.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런 짓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했다. 속죄를 위해서? 거짓 오디션으로 아이들 마음에 상처 준 게 후회가 되어서?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신이 도우려는 상대는 약한 어린아이가 아니던가? 본인의 책임이 아닌 불행에 시달려 상처받고 무릎을 끌어안고 울 수밖에 없는 가여운 어린아이. 그것은 바로 자신의 과거의 모습이었다. …… 친부모의 폭행에 의해 너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말만 듣고 자란 자신이, 자존심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
무덤을 파는 자라는 뜻의 그레이브 디거Grave Digger는 중세유럽의 전설에 등장하는 암살자이다. 마녀재판과 똑같은 고문방법으로 살해하는 그레이브 디거. 그런데 이자가 현대의 일본에 다시 등장하다니. 그것도 너무나도 잔인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죽이면서 말이다. 도대체 야가미와 '그레이브 디거'는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그레이브 디거』는 알 수 없는 범죄의 손길, 의문의 살인사건, 그리고 착하게 갱생하려는 야가미, 사건을 해결하려는 수사관과의 관계를 일본의 도쿄, 그리고 24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에 브레이크 없는 버스에 올라탄 '스피드'처럼 순식간에 읽어내려가게 한다.
갑자기 착해지겠다는 악당 야가미의 모습에 조금은 감정이입이 힘들 수도 있겠으나, 착한 사람 악한 사람이 따로 나누어지지 않았다는, 인간은 누구나 착해지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리 이상할 법도 없다.
저자의 전작 『13계단』에서도 그랬지만, 인간은 누구나 착하다는 '성선설'을 다카노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느님, 꼭 그 아이를 살려주세요. 이식을 성공시켜주세요. 아무 잘못도 없는 어리고 순수한 생명을 빼앗아가지 마세요.
무엇 하나 보답받지 못한 인생에서 처음으로 야가미의 마음이 희망으로 가득찼다. 자신만의 신, 자신의 선한 마음이 만들어낸 신에게 악당은 열심히 기도를 올렸다.
죽을 뻔했던 처절한 사투를 겪고 자신의 골수를 이식받고 새로운 삶을 받을 아이를 위해 병원에 무사히 도착했지만, 그 모든 것은 나를 위한 것이었다. 야가미가 아이에게 새로운 삶을 선사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야가미에게 새로운 삶을 주는 것일 테니까.